인천 이씨 대종회 이동호 회장은 인천과 가문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신라말∼고려시대에 이르는 역사의 전환기에 11명의 왕비와 8명의 왕을 만들어낸 명가의 후손답게 그는 가문을 알리고 바로 세우는 데 남은 인생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속내는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인천의 옛지명 ‘소성’이 바로 사실상 시조인 이기의 작위명에서 비롯됐으며, 이후 경원, 인주 등의 지명이 곧 인천 이씨의 명망으로 변화돼 왔음에도 인천에는 정작 인천 이씨를 기억할 수 있는 유적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인천 이씨의 영광을 엿볼 수있는 것이 ‘원인재(源仁齋)’. 시조 허겸의 묘실로 1990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됐는데 이는 이 회장이 당시 내무부장관으로 재임하며 이루어냈다.
“소성후 시절, 인주의 넓이는 인천과 부천, 서산 이북에 이르기까지 광활했습니다. 그곳을 수대에 걸쳐 세습통치했던 문중의 역사는 곧 인천의 역사였죠.”
인천 이씨로 인해 역사에 첫 선을 보인 인천은 곧 이씨의 가문사와도 동일한 길을 걸었다.
“고려시대 이씨 문중은 무신들의 견제에 밀려 권력의 중심에서 철저히 배제,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후손들은 살기위해 본을 숨기고, 개명하며 그늘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현재 종친회원이 전국적으로 10만명에 불과할 정도로 이씨는 후손이 적은 성씨가 됐다.
“최근 본을 바꾼 이씨 족보를 연구, 인천 이씨에서 갈라진 성씨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가문인 덕수 이씨, 흥양 이씨, 양산 이씨, 함안 이씨 등이 모두 인천 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성입니다.” 이 회장은 요즘 뿌리찾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들 갈라져나간 이씨들이 모두 인천 이씨의 그늘아래 모이는 것, 그것이 바로 이회장의 삶의 목표다.
조태현기자 (블로그)cho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