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언젠가 고래 등을 타고 온 예언자가 부족을 빛으로 인도하리라는 전설. 한 작은 소녀가 그 전설을 현실 속으로 불러낸다.
마오리족 소녀 파이키아(케이샤 캐슬 휴즈)는 두 사람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아이다. 파이키아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와 일족의 지도자가 됐어야 할 쌍둥이 오빠. 족장인 할아버지 코로(라위리 파라텐)는 사내아이의 죽음만 애도하면서 갓난 손녀를 돌아보지 않고, 고집스럽게 지도자의 이름 파이키아를 딸에게 준 아버지 포루라니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외국을 떠돌아다닌다. 어린아이에게 천형을 짊어지도록 만든 전사(前史)를 짧게 읊어내린 <웨일 라이더>는 순식간에 세월을 뛰어넘어 열두살이 된 파이키아에게로 도약한다. 씩씩하고 사려 깊은 파이키아는 맏아들로 태어난 소년들 중에서 지도자를 뽑으려는 할아버지의 수업에 참여하려 하지만,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고래 등에 올라타고 바다를 건너온 조상 파이키아. 코로는 오직 남자만이 그 신성한 이름을 이어받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후계자의 자리를 둘러싼 할아버지와 소녀의 갈등이 폭발로 다가갈 무렵, 바다 멀리에서 고래들이 헤엄쳐온다.
뉴욕에 살고 있던 뉴질랜드 출신 작가 위티 이히마에라는 허드슨 강에 잘못 들어온 고래를 보고 이 영화의 원작인 <웨일 라이더>를 쓰게 됐다. 그의 고향이자 <웨일 라이더>의 배경이기도 한 뉴질랜드 북섬 동부 해안 왕가라는 아직도 파이키아의 조각이 남아 있는 고장이다. 카누를 타고 새로운 섬에 도달했다는 남태평양 원주민의 조상들. 파이키아는 그 여정 도중에 카누가 뒤집어졌고, 신에게 도움을 청해서, 고래 등을 타고 왕가라에 와 자신의 부족을 세웠다. 그뒤 왕가라의 마오리족은 고대의 고래가 다시 찾아오기를, 혹은 고래 위에 올라서서 암흑을 밝힐 예언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됐다. 이히마에라는 모험과 위기와 극복과 기다림을 모두 품은 이 모티브에서 다시 한번 파이키아가 될 어린 영웅의 신화를 찾아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액션영화를 좋아하던 이히마에라의 딸은 왜 영웅은 모두 남자인지 궁금해했고, 덕분에 <웨일 라이더>는 여자라는 질곡을 한겹 더한 풍성한 텍스트로 태어날 수 있었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단순하면서도 페스트리처럼 얇은 층들이 보이는 <웨일 라이더>를 “열두살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열두살 아이들에 관한 영화”라고 현명하게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전투를 준비하는 노래와 춤과 창쓰기를 가르치는 마오리족의 전통, 고래와의 신비한 교감,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신화를 완성하는 소녀, 푸른 언덕과 바다를 양쪽에 두른 왕가라의 절경. <웨일 라이더>는 이처럼 이국적인 설정들이 넘실거리지만 시선은 오로지 파이키아에게만 닿아 있다. 감독 니키 카로는 원작에서 카후였던 소녀의 이름을 그 자체만으로도 묵직한 파이키아로 바꾸었다. 부족 시조의 이름을 소유한 파이키아는 성장영화 속의 소녀들처럼 잔인한 세상에 휘둘리고 어쩔 수 없이 상처입으면서 삶의 다음 단계에 올라서는 아이가 아니다. 그녀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스스로 마음먹었고, 피해갈 수 있었을 상처를 향해 몸을 던진다. “할아버지는 왜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나는 왜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걸까?”라는 지극히 어린아이다운 서운함. 파이키아는 할아버지와 종족을 위해 온 마음으로 기도하고, 고래를 타는 이, 웨일 라이더가 되어, 아물지 못할 수도 있었을 그 화상 위에 습포를 덮는다.
카로는 삼촌 라위리가 내레이터인 원작과 다르게 파이키아를 화자로 선택했다. 마음속의 의문과 대답, 꿈과 소망을 온전히 실어내는 그 목소리는 장대하면서도 포근한 왕가라의 산과 바다 위에 내려앉는다. 어쩌면 파이키아는 모신(母神)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자연스럽게, 영혼을 끌어안으며. 그러나 이것은 꿈꾸는 자의 권리를 말하는 <웨일 라이더>의 함정이기도 하다. 마오리족 여인의 고난을 다룬 <전사의 후예>와 다르게 <웨일 라이더>는 “밖에서는 당신이 대장이지만 부엌에선 내가 대장”이라고 주장하는 당당한 할머니와 평온하게 고립된 마오리족 공동체를 보여준다. 종족이 암흑에 빠져 있다지만, 그 암흑이 무엇인지, <웨일 라이더>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무심하게 지나쳐간다. 세대의 교체, 억눌린 소녀들의 삶, 공동체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 마오리족을 할퀴어온 파편들은 전설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기적을 만나 화해로 이끌린다. 소년들이 고래 이빨을 찾아서 족장이 되고자 깊은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서구를 매혹했던 식민지 시대 삽화처럼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웨일 라이더>는 마음을 울리는 영화다. 고래를 타고 그 무리를 죽음에서 끌어내는 소녀, 그 자신의 몸까지도 바다색으로 물들이며 신화를 재현하는 파이키아는 꿈을 향해 직선으로 걸어가는 선지자처럼 보인다. 혼자 창쓰는 연습을 하고 눈물도 참은 그녀는 영화 내내 그 길 끝에 이를 만한 자격이 있다고 모두를 설득해왔다. 그러므로 선댄스와 토론토영화제의 관객이 이 무명의 영화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화를 담은 노래를 부르며 카누 가운데 버티고 앉아 있는 파이키아는 누구라도 외면할 수 없는, 정직하고 천진난만한 영웅, 고래를 타고 꿈을 꾸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