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의 주인공 엄홍길 대장 인터뷰]
16일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는 에베레스트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 시신을 찾기 위해 엄홍길 대장이 2005년 휴먼원정대를 조직해 에베레스트를 찾아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원정대는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이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가슴 뜨거운 산악인들의 의리를 담은 영화다. 지난 10일 엄홍길 대장은 시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맡은 황정민과 영화를 봤다. 기자는 12일 엄 대장과 한라산 백록담을 함께 오른 뒤 영화 본 소감을 들어봤다.
-영화 본 소감은?
“만감이 교차하는 거지 뭐. 고난의 여정이 떠오르고 고(故) 박무택 후배를 생각하게 하고. 하여튼 마음이 복잡해지더군. 10년이 지났는데 영화 보니 바로 엊그제 같은 착각이 드네. 눈물도 나고 감동이 복받쳐 오르고. 당시 휴먼원정대를 조직해 시신 수습한다 했을 때 막연했었지. 에베레스트 정상 가는 것도 아니고 시신 수습하러 가는 것인데 누구와 함께 해야 하나서부터 박무택과의 만남과 인연,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느끼게 하더라. 결국 이 시대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 아닌가? 휴먼원정대라는 이름도 그래서 고민 고민 끝에 지은 것이었다.”
-영화는 실제 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했다 보는가?
“영화니 실제 상황을 100% 반영할 수는 없지. 영화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도 없지만, 당시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나 순간순간 실감나게 감동적으로 만들어진 거 같다. 약 90% 정도 당시 상황을 재연했다고 본다. 산악 영화 자체가 수평이 아닌 수직의 세계, 평지가 아닌 산에서 촬영해야 하니 힘들고 위험 요소가 따르기 마련이다. 더구나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산소도 희박한 공기를 마시면서 촬영하는 게 보통 일인가? 고산증을 느끼면서 촬영한다는 것은 전문가도 힘들어 할 텐데 그걸 기획해 영상을 만들었으니 대단한 것이다. 제작자와 배우 모두 완벽한 재현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더라. 그만큼 생동감 있게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영화를 봤을 때 황정민이라는 배우가 엄홍길이라는 느낌이 들던가?
“황정민의 연기력이 탁월한 거 같다.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뭐 이런 거 있잖아. 무엇보다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을 표현하는 연기는 나의 실제 감정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칭찬해 주고 싶다.”
-엄홍길 대장 역을 한 황정민의 연기가 정말 ‘엄홍길 같다’는 장면이 있었나?
“영화 후반부 무택이 시신을 수습하러 가기 위해 고뇌하는 순간, 후배들과 휴먼원정대를 꾸려 현장으로 떠나 시신 수습하는 과정에서 닥친 어려운 상황 연기할 때였다. 그 장면에서 당시 상황이 교묘하게 중첩되더라. 현장에서 시신 발견하고 수습하면서 무전 교신하고 시신 찾아 끌고 내려오는 장면에서 감정이 복받치더라.”
-히말라야 영화에서 엄홍길 대장을 보여준 딱 한 장면을 꼽으라면?
“박무택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할 때지.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아~(감정이 오른 듯) 영화를 두세 번 봐야 할 것 같다. 실제 상황이 중첩되니 온갖 만감이 교차하더라.”
-촬영하는 동안 황정민과 연락은 했나?
“연락하지는 않았는데 나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다 하더라. 황정민과는 촬영장에서도 보고 제작자 윤제균 감독과 함께 술도 한 잔 하고 했었지. 하지만 특별한 주문은 하지 않았지.”
-황정민이 무슨 말을 하던가?
“엄 대장님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나름대로 대장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영화를 보니 나름대로 연구하고 노력을 많이 했더라고. 그런 모습이 영화 속에서 보이더라고.”
-영화 보니 왼손으로 술 따라 마시고 걸어가는 뒷모습 보니 완전 엄홍길이더라.
“그러니까 연구를 많이 했다는 거지. 영화에 많이 녹아나더라고.”
-영화를 보고 가장 감동했던 장면은?
“시신을 두고 오열하면서 고뇌하는 장면이었다. 시신을 끌고 가야 하는 데 영화에서처럼 나도 당시 대원들이 위험에 처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다른 상황에 부닥쳤다. 그 순간 갈등 고뇌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가더라. 순간 내가 포기를 했다. 아니다 포기라기 보다는 여기다 안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영화에서도 제수씨(박무택 부인역 배우 정유미)가 ‘그곳에 안장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감정이 북받치더라.”
-2005년 실제로 시신 수습하면서 원정대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던데?
“시신 발굴하고 얼음에 매달려 있는 무택이를 수습하는 데만 2시간 이상 걸렸다. 오전에는 날씨가 좋았지만, 오후 2시부턴가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드리우고 바람이 엄청나게 불면서 눈발이 날렸다. 순식간에 날씨가 돌변하자 다들 불안해했지.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셰르파 들도 동시에 직감한거지. 큰일 날 수 있겠다 싶었다. 더구나 직선거리 50m 아래 수직 절벽이 있는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하면 시신 수습도 제대로 못 하고 모두 다 죽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시신 끌고 내려온 것이 직선거리로 300m지만 5시간 정도 걸렸다. 시신 중량이 200kg 이상이었다. 시신은 양쪽으로 끌어야 겨우 움직일 정도로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했나?
“ ‘아, 무택이가 더 이상 내려가기를 원하지 않는 거 같구나. 여기서 산과 함께 있으라는 운명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히말라야 신이 ‘너희들이 하려고 하는 의지를 알겠다. 그냥 내려가라’는 계시를 하는 듯했다. 순간 그런 직감을 느꼈다. 이건 오랜 산쟁이로서의 감이다. 더 욕심 내면 안 되겠다. 그래서 능선에 돌을 파라 했다. 그곳 볕이 잘 드는 곳에 안장하고 내려왔다.”
-2005년 휴먼원정대에 고 박무택 부인이 원정대와 함께 베이스캠프에 왔나?
“아니다. 영화 속 그 장면 그러니 제수씨가 현장에 온 것 그거는 설정한 거지. 내가 원정대를 꾸려 떠나기 전 박무택 고향집에 가 무택이 어머니와 제수씨를 만났었다. 당시 가족들이 울면서 ‘시신을 잘 수습해 달라’고 당부했었다.”
-박무택 부인은 남편 시신은 끝내 보지 못했나?
“2010년 엄홍길휴먼재단이 추진해온 1차 휴먼스쿨 준공식 때 제수씨와 초등학생이 된 아들 찬민이를 에베레스트로 데려갔다. 그런데 박무택이 사고를 당한 곳은 중국 쪽 에베레스트이고, 제수씨와 찬민이를 데리고 간 곳은 네팔 쪽이었다. 에베레스트 4060m 지점에 건립된 팡보체 학교 준공식 때 찬민에게 ‘아빠가 저기 에베레스트 8500m 지점에 있단다. 아빠가 에베레스트와 함께 영원히 산에 계실 거야’라고 말해줬다.”
-박무택과 원정 나섰던 나머지 두 대원의 시신은 왜 못 찾았나?
“무택이와 정상을 밟았던 후배에게 내려가라고 했잖아. 너무 지치고 위험하니 내려가라고 했는데 그 이후 어디서 없어졌는지 모른다. 부대장은 무택이와 만났는데 무택이를 만난 날 이후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추측컨데 두 명 다 추락사한 것 같다.”
-영화 속에 박무택이 절박한 상황에 부닥쳐 있던 상황은 실제 상황이었나?
“그럼. 당시 무전 교신 내용과 절박한 상황이 모두 실제 있었던 그대로다.”
-영화에 코미디적 요소가 있어 긴장감을 반감시켰다는 지적도 있는데.
“물론 그런 부분은 없지 않아 있지만 영화 전개상 필요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시신 수습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면 더 무겁게 전개됐을 것이다. 그러면 다큐멘터리 영화로 흐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보고 대중적으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재밌는 부분이 들어가 영화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는 당연한 거 아닌가?”
-영화를 보고 아쉬웠던 점은?
“결국은 수습과정이거든. 시신 발견하는 과정과 마무리하는 부분을 더 리얼하게 실제 상황처럼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영화의 핵심인데 그 부분이 좀 더 길었으면 했다. 유가족의 애절한 마음, 부모님의 자식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더 절박하게 나타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 속에서 산은 정복하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 얘기하지. 사람들이 산을 정복했다고 하지만 정복이라는 단어는 히말라야처럼 위대한 자연을 두고 표현한다는 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잘못됐다 생각해. 정상을 밟는다는 거 자체가 산이 받아준다는 거야. 산이 받아들여 주고 선택하니 인간이 올라가는 거지. 물론 인간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은 자연이 허락해야 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세상으로 히말라야 신이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야.”
-영화 시사회를 마치고 황정민의 첫 마디가 뭐였나?
“‘제가 대장님역을 맘에 들게 했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잘 보셨습니까?’ 라고 하더라. ‘그래서 고생 많았다. 하여튼 힘들고 어려운 촬영이었을 텐데 사고 없이 마무리했다니 다행이다. 힘든 여정이었을 텐데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져 좋다’고 했다.”
-히말라야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줬으면 하는가?
“세상의 인연과 인간의 존엄성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무택이 시신을 수습하겠다고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켰다. 휴먼원정대는 정상 도전도 아니고 시신을 수습 하러 가는 것이었다. 모두가 무택이를 위해 나섰고 시신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휴머니즘의 과정을 담았기에 생명의 가치 죽음을 넘어선 약속을 지키는 게 저알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공감을 했으면 한다. 현대사회가 얼마나 메마르고 각박한가? 우리가 서로 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죽음을 쉽게 생각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 살아가면서 생명의 존엄성 약속과 인연의 소중함을 간직했으면 한다. 겨울이 춥고 삭막하다지만 이 영화를 통해 서로 깊은 정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첫댓글 나머지 두 명의 산악인들도편안한곳에서 고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영화의 명대사 "8000메터
까지 올라가는까 살아온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것 같죠
아닙니다 아무 생각도 안납니다
오로지 자신의 모습을 다시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