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이 좁은 문일까? https://youtu.be/lKUbsuIxxuE?si=vHxDeMeTKo3pPmx8
(2024.10.27. 주일 낮 예배)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3 : 22-30
주 제 : 모든 일을 결정할 때, 성령께 물어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1. 회개하라.
지난 주에 이어서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총독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을 죽여서 그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같이 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회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요. 이어서 너희가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도 그렇게 실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찍어버리실 것이라고 재차 말씀의 실행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어요.
그렇지만 막상 회개를 하려고 해도 어떤 일을 회개해야할지 잘 모르지 않습니까? 지하철을 탔는데 앞에 한 분이 서 계셨는데 나도 피곤해서 그냥 무시하고 앉아서 왔습니다. 과연 이것을 회개해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를 수 있어요. 그래서 회개할 때,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하잖아요. 참 회개의 기준이 애매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지요. 유턴입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거꾸로 돌려서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예로 안식일에 치유하신 사건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18년 동안이나 귀신이 들려 몸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마침 안식일이었어요. 회당장이 그날이 안식일임을 말하고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화를 내면서 말하고 안식일에는 이런 고침을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안식일이라도 너희들의 소나 나귀를 끌고 나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런데 안식일이라고 해서 18년 동안 귀신에 들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고쳐주는 것이 어떻게 합당하지 않느냐 하면서 회당장을 꾸짖어 주었습니다.
회당장도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회당장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대 사람들은 당시에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의 뜻을 생각하면 안식일이라도 치유를 하는 것은 옳은 것임을 깨우쳐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의 생각이 잘 못된 것이니 생각을 고쳐라고 하셨어요. 생각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라도 병을 고쳐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2. 좁은 길로 가라.
그런데 문제가 남아 있어요. 안식일에 어떤 병은 고쳐도 되는가? 안식일에 감기는 고쳐도 되는가? 안식일에 암은 고쳐도 되고 설사병은 안되는가?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잖아요?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기준을 주셨어요. 이름하여 좁은 문의 기준입니다.
한 사람이 와서 구원을 받는 자가 적겠습니까? 물었어요.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천국의 문이 닫히고 난 뒤에 어떤 사람이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면 주인이 나와서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할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은 ‘우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또 주는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대답할 것인데 그때 주인은 모르겠다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그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말씀에 따라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끝에 가서 보니까 그들은 말씀대로 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준이 없어요.
물론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이 가장 정확한 기준이지요. 그런데 성경에 모든 기준이 나와 있습니까? 성경에 주일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운전을 해도 괜찮다. 그러나 주일에 여행을 가는 것은 안된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까? 그렇게 정확한 기준이 없으니까, 우왕좌왕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좁은 길입니까? 폭이 2미터면 좁은 길입니까? 넓은 길입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좁은 길로 가라고 하기 전에 이미 그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걸어도 되는 거리는 얼마다 못을 박아두었어요. 2키로, 5리 정도는 괜찮다. 그게 그들 나름대로의 좁은 길이었습니다.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라고 하고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성경에 있으니까, 안식일에 요리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엘리베이타도 작동시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좁은 길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좁은 길 좁은 문 하면 어떤 거창한 것만 생각합니다. 선교사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결혼을 하는데 이 사람과 할 것인가? 아닌가? 이런 것만 좁은 길, 넓은 길을 따져요. 그렇지만 좁은 길을 가라고 할 때 그런 큰 것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일상의 아주 작은 것에서도 과연 어떤 길이 좁은 길일까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3. 기준
지난 주 월요일 21일부터 24일 목요일까지 일본 혹카이도 삿뽀로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그외 몇분의 손님들 다 합해서 약 80명 대부대가 갔어요. 수련회를 겸한 관광 여행이었으니까 꽤 일정이 빡빡했습니다. 아침 5시반부터 시작해서 밤 10시까지 계속해서 스캐줄에 따라서 다녔습니다. 그런데요. 여행사에서 나온 가이드가 인솔했었는데 아주 똑똑하고 예쁜 여성이었어요. 삿뽀로의 역사, 호수, 화산, 호텔, 아주 설명을 잘해주었는데 그 사람도 일정에 따라서 움직이다가 보니까, 우리들에게 충분한 쇼핑 시간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로 가면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느냐 물었더니 그때부터 쇼핑에 대해서 말해주었습니다. 우선 동키호테에 대해서 질문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NMN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줄기세포가 들어간 노화억제약품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세포가 돋아나게 만든다고 했어요. 일본에 오시면 이것은 사가셔야 한다고 했어요. 저는 그때까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들어본적도 없었어요. 가이드는 자기 아버지가 그것을 복용하고 살아났다고도 하고 자기는 계속 이것을 먹는데 오래된 친구들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답니다. 너무 어려보여서요. 자기는 아직도 눈이 2.0이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것이 한 통에 3개월 분인데 40만원이랍니다. 그런데 대개는 일년치가 셋트로 팔린답니다. 그러니까 일년치면 160만원인데 일년치를 사면 약간 할인이 있다고 하면서 일년치를 사가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가이드의 인솔 하에 면세점으로 갔습니다. 가기 전에 가이드가 아침 일찍 가야한다고 하면서 이유는 조금 있으면 중국사람이 오는데 중국 사람이 오면 아예 싹쓸이를 하니까 그들이 오기 전에 먼저 들어가서 사야 한다는 거예요. 면세점에 갔어요. NMN을 파는 매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요. 사람들이 빨리 사려고 난리예요. 1년치 셋트 160만원이요. 그때 못사면 큰일 날듯이요. 무슨 일 난 것 같았어요. 와 진짜 놀랐어요.
우리 여행경비가 1인당 55만원이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약 110만원 정도 되는데 차액은 노회에서 지불해주었어요. 만일 노회에서 보조해주지 않았으면 가지 못한 분도 많았을 거예요. 제가 알기로는 그렇게 여유가 있는 분들이 아니었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행경비의 3배나 되는 돈을 아낌없이 내고 그것을 사는 것입니다. 물론 사지 않는 분도 있었습니다. 또 한 통만 사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많은 분들이 그 비싼 것을 사셨어요.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까 조금 화도 나는 것이 면세점에서 쇼핑할 수 있는 시간을 40분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좀 따져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없으니까 깊이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나올 때 보니까 중국 사람들이 와서 면세점 입구에서 들어오려고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행경비의 3배나 들여서 NMN을 사야할까요. 정 그렇다면 한 통만 사서 써보고 정말 좋으면 그때 다른 경로를 통해서 사도 되지 않을까요? 끝나고 나니까 가이드가 그때야 자기 전화번호를 주면서 더 필요하시면 전화로 연락주시면 일본에 왔다갔다 하면서 사드리겠다고 했습니다.
4. 성령에게 물어보십시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잠시라도 마음 속으로 기도하면서 성령에게 살짝 물어보아야 합니다.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보류할까요? 그러면 성령께서 대답하실 것 같습니다. 한 통만 사라고 하시든지, 아니면 좀 참아라라고 하시든지 한 통만 사서 써보고 좋으면 그때 사면 된다고 하시든지 성령께서 내 마음 속에 어떤 감동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과 구분되는 좁은 길 아닐까요? 그런 것까지 성령께서 답을 해주실 것인가?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물으면 분명히 답을 해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시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물론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면서 어떤 답이 환상으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 어떤 감동이 오게 하실 것입니다. 네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 시간에 그런 것이 생각나겠습니까? 물을 수 있지만 그것도 자꾸 성령께 묻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이런 것까지 성경에 나와 있으면 좋겠지만 성경은 그 대신에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오신다고 하셨어요. 구하고 찾는 사람에게 성령은 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경우에 좁은 길, 좁은 문의 기준은 성령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성령에게 물어보십시오. 분명히 성령께서 답을 주실 것입니다. 큰 것만 좁은 길 넓은 길이 있는 것 아닙니다. 일상의 아주 작은 것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구분 되는 좁은 길, 넓은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구원의 길이란 구분되는 길이거든요.
큰 것만 넓은 길 좁은 길 따지던 사람은 끝날에 주님께서 나는 너를 모르겠다라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언제나 성령께 물어서 항상 구원의 길 좁은 길로 다니시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