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왼쪽그림은 잉글랜드 시인·화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1819년작 밑그림 〈벼룩 유령의(귀신의) 머리(The Head of the Ghost of a Flea)〉이고, 위오른쪽그림은 1820년작 〈벼룩 유령(The Ghost of a Flea; 벼룩 귀신)〉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와 절친했던 잉글랜드 화가·점성술사·천문관상학자(天文觀相學者) 존 발리(John Varley, 1778~1842)가 1828년판 《천문관상(天文觀相)을 고찰한 논문(천문관상론; A Treatise on Zodiacal Physiognomy)》에 기록했듯이, 1819년 어느 교령회(交靈會; 세앙스; séance)에 참석하여 벼룩 유령(조유령; 蚤幽靈; 벼룩 귀신; 조귀신; 蚤鬼神) 같은 곡두(헛것; 환령; 幻靈)을 봤다고 상상한 (아니, 실제로 착각했을) 윌리엄 블레이크는 “나의 상상계를 방문한 이 유령의 형상은 내가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곤충의 형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유령을 상상하여(회상하여) 그리던(묘사하던) 블레이크 앞에 다시 나타난 그 유령은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자신 앞에 나타났다고 착각했을) 블레이크에게 “모든 벼룩은 과다한 흡혈욕(吸血慾; 식혈욕; 食血慾)을 타고난 인령(人靈; 인간의 영혼; 인혼; 人魂)들의 서식지(거처; 거주지)들이다”고 말해줬다고 상상되었다(착각되었을 것이다).
위오른쪽그림에 묘사된 벼룩 유령(혹은, 벼룩 귀신)은 왼손으로 음혈사발(飮血沙鉢; 음혈잔; 飮血盞; 피를 담아 마시는 사발이나 잔)을 들고 그것에 담긴 피를 내려다보며 탐욕스럽게 혀를 날름거린다.
브리튼 전국 미술박물관 협회(테이트; TATE) 홈페이지에서 “인간과 짐승을 혼융(混融)시키는 블레이크의 이런 화법(畵法; amalgamation)은 동물성(動物性; animalistic traits)에 잠식되어 일그러진 인성(人性; 인간성)을 암시한다”고 설명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상상화에 사용된 이런 화법은 곤충을 의인화(擬人化; personifying; impersonating; anthropomorphizing)하는 동시에 의귀화(擬鬼化; ghostifying; 의령화; 擬靈化; spiritualizing; 의마화; 擬魔化; devilizing)하거나 의인법(擬人法; 인화법; 人化法; personification; anthropomorphization; anthropomorphism; impersonation)과 의귀법(擬鬼法; ghostification; 의령법; 擬靈法; spiritualization; 의마법; 擬魔法; devilization)을 동시에 사용하는(겸용하는) 이중의법(二重擬法)이나 겸의법(兼擬法)이라고 별칭될 수 있을 것이다(☞ 참조).
이런 맥락에서 언어습관의 양상들도 인성이나 인간성과 동물성의 관계(☞ 참조)를 암시할 수 있을뿐더러 인간과 동물의 관계, 동물원(動物園)과 인간원(人間園)의 관계, 그것들의 실존주의적 의미나 함의 따위(☞ 참조)마저 얼핏 재고(再考)되게 할 수 있을 성싶다.
하여튼, 한국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벼룩(蚤; 풀렉스 이리탄스; Pulex irritans)은 “벼룩목(조목; 蚤目)에 속하는 곤충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후딱 풀린다(설명된다; 정의된다).
같은 대사전에 설명된 벼룩목(시포납테라; Siphonaptera)은 “후생동물(後生動物) 절지동물문(節肢動物門; 아르트로포타; Arthropoda) 곤충강(昆蟲綱; 인섹타; Insecta)의 한 목(目; biological order)이고, 몸은 작고 옆으로 편평하며 날개는 퇴화하여 없다. 간단한 겹눈과 홑눈을 가진 것 또는 눈이 없는 것도 있으며 뒷다리는 도약에 적합하다. 정온동물(定溫動物)의 외부에 기생하며 불완전 변태를 한다. 벼룩과(科), 박쥐벼룩과, 장님벼룩과 따위가 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 벼룩은 “몸은 검은빛이 나는 갈색 또는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며 뒷다리가 발달되어 잘 뛴다. 사람이나 짐승의 몸에 기생하여 피를 빨아먹는다. 개벼룩, 쥐벼룩, 꽃벼룩 따위가 있다”고 설명된다.
귀신(鬼神)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1)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다는 넋(신귀; 神鬼), (2) 사람에게 화(禍)와 복(福)을 내려준다는 신령(神靈)이나 검, (3) 어떤 일에 남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4) 생김새나 몰골이 몹시 사나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5) 오직 외곬으로 어떤 일을 하거나 어느 한곳에만 붙어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리는데(설명되는데; 정의되는데), 블레이크의 윗그림들에 붙은 화제(畵題)에서는, 당연히, (1)과 (2)를 뜻하도록 쓰였을 것이다.
같은 대사전에서 유령(幽靈)은 “(1) 죽은 사람의 혼령(망혼; 亡魂), (2) 죽은 사람의 혼령이 생시의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 (3) 이름뿐이고 실체는 없는 것”이라고 풀리는데, 블레이크의 화제에 쓰인 유령은 거의 (1)과 (2)를 뜻할 것이다.
귀신이나 유령은 곡두를 닮았다.
왜냐면 곡두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뜻한다고 풀리는(설명되는; 정의되는) 환영(幻影)과 동의어이며, 환영은 “사상(寫像)이나 감각의 착오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보이는 환각 현상”을 뜻한다고 풀리는 환상(幻像)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죡변의 모깃글 두 편(☞ 참조(1) ☞ 참조(2))도 귀신과 유령의 개념이나 어원과 관련하여 미미하게나마 얼핏 참조될 만할 수 있을 성싶다.
아랫그림들은 미국 아동·청소년용 월간지 《세인트 니컬러스 매거진(St. Nicholas Magazine)》(1886년 5월호: 제13권 제7호, pp. 533~535)에 발표된 미국 자연학자·작가 찰스 프레더릭 홀더(Charles Frederick Holder, 1851~1915)의 산문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세계최소규모) 서커스(The Smallest Circus in the World)〉에 수록된 미국 작가·화가 조지프 그린 프랜시스(Joseph Greene Francis, 1849-1930)의 삽화들이다.
(1)은 〈확대경(돋보기)로 관찰된 벼룩들의 “참가자 마음대로 달리는(자유로운 무규칙)” 경주(The “Go-As-You-Please” Race, as seen through a Magnifying Glass)〉이고, (2)는 〈벼룩들의 춤(무용; 무도회)(The Dance)〉, (3)은 〈벼룩들의 허들 경주(장애물 달리기)(The Hurdle-Race)〉, (4) 〈외줄타기하는 풀렉스 이리타니치 경(卿; 나리)(Signor Pulex Irritanici on the Tight-rope)〉이다. “풀렉스 이리타니치”는 벼룩을 뜻하는 라튬어(라티움어; Latium語; 이른바 라틴어; Latin) 학명(學名) “풀렉스 이리탄스(Pulex Irritans)”에서 파생한 호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