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깨어있는 눈(眼) 과 도마복음 제26장》
음..
지난주에는 선문답을 설명하면서 끝까지 마무리를 못하고 이번 주에 이어서 하겠다고 했는데요.
오늘 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s://m.cafe.daum.net/119sh/XASd/373?
,
많은 사람들이 또는 불교나 기독교 쪽 어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씀들이 있는데요?
성직자들의 수준이 자꾸 떨어진다고 하는 말씀들이랍니다?
★ 성직자(聖職者) 뜻?
(종교적 직분을 맡은 교역자. 신부, 목사, 승려 따위를 말함)
어른들 말씀은 예전보다 환경도 좋아졌고 모든 것이 풍요롭고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가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공부들을 안 한다는 말씀들이신데요.^^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절이나 교회에 점점 안 온다 고도 합니다?^^
절은 더 심각하고요.
그리고 요즘은 젊은 출가자나 목사들은 예전과는 달리 제대로 된 사람들이 점점 더 안 들어오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리고 어느 큰 스님은 출가자들이 대부분 생계형 출가자들이 많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도 많았답니다.
교회에 한 노 목사님도 하시는 말씀이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못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적응이 힘든 아이들을 장로나 집사 같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신학교에 보내서 목사를 만들어 교회를 만들어 주고 목회를 시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노 목사님도 계셨답니다.
그리고 어느 젊은 신도는 스님들이 너무 무식하다는 말을 하는 젊은이도 있었고,
목사가 너무 평범하고 가벼운 설교를 한다는 젊은이도 있었답니다.
한마디로 말해 예전 스님들이나 목사님들은 풍기는 이미지도 유식해 보이고 고급스러웠는데 지금 스님들이나 목사님들은 어딘지 모르게 가볍고 무식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저도 공감이 갔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왜 그럴까요?
왜 성직자들의 수준이 점점 더 떨어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전 성직자들은 머리는 좋지만 집안이 가난해 학교를 못 가는 젊은 사람들이 대거 출가를 했거나 교회를 통해 유학을 가서 목사가 되거나 했다는 것인데요.
반대로 지금은 머리가 좋은 젊은 젊은이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칠 수가 있는 경우라 학업을 마치고 모두가 사회에 진출하게 됐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위에서 말한 한 노 목사님 말씀처럼 절이든 교회든 머리가 처지는 젊은이들이 생계형으로 성직자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스님들이나 목사들이 수준이 떨어질 수 박에 없다는 말씀들이었는데요.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 공감을 했다는 것이고요.
세상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교육열도 올라가고 교육열이 올라가다 보니까 일반 사람들과 성직자들이 뒤바뀌는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옛날에는 일반 백성들이 못 배우고 무식하고 무지한 백성들이 많았지만 그러나 성직자들은 기본적으로 글을 깨우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반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면 먹혔지만
그러나 지금 일반 사람들은 성직자들보다 훨씬 더 많이 배웠고 학력도 높고 경험들도 많다 보니까 일반 젊은 사람들 눈에는 성직자들이 우습게 보이는 거랍니다.
거기다가 스님들은 수행도 안 하고 천도재나 제사 등에만 관심이 깊다 보니까 더 우습게 보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명절에도 차례를 안 지내고 여행을 떠나는 판인데 누가 제사나 지내는 절에 가겠어요?
교회도 마찬가지로 매일 기타 치고 북 치면서 할렐루야만 외치고 있는데 요즘처럼 다양한 세상에 누가 시간 낭비하면서 교회에 가겠고요?
그렇지 않겠어요?
스님이나 목사나 세상 물정도 모르고 머리에 든 것도 없고 머리에 든 것이 없으면 경전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수행이나 수도도 안 하고 경전 구절 중에 몇 가지만 외어서 일상생활 법문이나 설교를 하고 있으니 어느 골 빈 젊은 신도들이 절이나 교회에 찾아가겠습니까?
성직자들이 공부들을 안 해서 너무 무식한데요?
그러나 옛날 성직자들은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입니다.
수행이나 수도의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보아도 그렇답니다.
옛날로 가면 갈수록 일반 배성들은 무지했고 성직자들은 빛이 났다는 것인데요.
지금은 반대이고요.
수행문화도 역사적 자료가 깊은 지역이 지금의 동북 삼성을 들 수가 있는데요.
제가 자주 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에 동북삼성에는 요하 문명이라는 것이 있었답니다.
흔히 우리 민족을 5천 역사로 알고 있잖아요?
아니랍니다.
5천 년 역사는 어디까지나 요하 문명이 발견되기 전 이야기랍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6천 년이 맞답니다.
저는 지금 국뽕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랍니다.
불교나 기독교는 그 근원지가 요하 문명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사는 왜곡을 할 수가 있어도 그 시대 그 당시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아무리 왜곡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인데요.
<근거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http://ynculture.kr/m/content/view.html?§ion=107&no=2279&category=222
(2)
https://m.blog.naver.com/trueyears/222115732726
(3)
https://youtube.com/watch?v=bca30GjzQI4&si=CWlw7iFcGjeIm6hm
,
제가 왜 성직자들의 수준이 자꾸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아주 먼 옛날의 성직자들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주 먼 옛날 원시시대에는 깨달은 사람들이 그 무리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이 그랬답니다.
환웅 이후로도 몇십 대를 거쳐서 망할 때까지 단군(왕) 제도가 있었고요.
예수님이 계셨던 중동지역이나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답니다.
물론 이 두 지역은 우리의 요하문명보다는 훨씬 후에 탄생된 문화이기는 하지만 어느 지역이나 이 시대에는 선지자(선지식인)들이 우두머리 역할을 했었답니다.
중동지역에는 대표적인 인물이 모세나 여호수아나 솔로몬 같은 사람들을 들 수가 있고요.
물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하고 금방 죽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 시대에는 선지자(선지식인)들이 왕의 역할을 많이 했었답니다.
유럽 쪽은 그리스신화 자체가 선지자들의 이야기이고요.
이렇게 길게는 몇만 년 짧게는 몇천 년 전까지만 해도 깨닫고 증득한 선지자(선지식인)들이 그 무리들을 다스렸답니다.
이 말은 곧 당시의 최고 엘리트들은 수행자들이었고 성직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일반 백성들은 완전히 무식하고 무지한 백성들이 주류를 이루었고요.
그러다가 나라가 형성되면서 전쟁의 시대가 오면서 싸움 잘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왕이 되면서 깨닫고 증득한 선지자(선지식인)들은 왕을 옆에서 돕는 지혜로운 직책으로 서서히 바뀌게 되었답니다.
이들을 그 당시에는 신녀라 불렀고 무녀라 불렀답니다.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때에는 모두 왕 옆에서 신녀나 무녀들이 전쟁의 승패를 예언하고 나라의 길흉 등을 점치고 예언했었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성직자들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었고 왕 다음으로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었답니다.
중동 지역은 제사장이나 예언자들이 이 부류에 속했고 유럽도 예언자나 반지의 제왕에도 많이 등장하는 여러 도사들이 여기에 속한답니다.
아무튼 이 당시에는 전쟁과 함께 수많은 선지자들이 왕을 옆에서 도왔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줄어들면서 나라가 안정되면서 학자들이 등장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선지자들은 뒤로 쳐지게 된답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교이고요.
그래도 제자백가 시대에는 여러 깨달은 도사들이 왕들을 옆에서 도왔었는데요.
하늘의 별을 보고 시간을 정하는 천문학이나 주역 등도 요하문명 때부터 발전을 하게 되는데요.
제자백가 시대가 기원전 700년 전이니까 요하 문명에 해당하는 6천 전에는 이미 동북삼성 사람들은 주역의 뿌리인 64쾌가 있었고 천문학이 발전해 있었기 때문에 하늘을 보고 시간을 보고 자연의 길흉 등을 내다보고 있었다는 것인데요.
그리고 탁록대전 이후 지금의 중국에 삼황오제 하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것이 그대로 제자백가로 이어졌고요.
황하 문명과 아울러 하 왕조를 기원전 23세기로 보니까 하 왕조는 요하 문명보다 1천 년이나 뒤진답니다.
이런 사실들이 밝혀지니까 중국정부는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뭐든지 1등이 돼야 하는데 "어라? 황하문명보다 요하 문명이 1천 년이나 앞서네? 그럼 이것도 우리 거야"
그래서 요하 문명이 뿌리인 "부여, 고구려, 발해도 중국 거야"가 돼야 " 요하 문명도 "중국 거야"가 되니까요.
그렇지 않겠어요?
역사라는 것이 "이것만 우리 거야.!" 할 수가 없잖아요?
아무튼 이 시대의 수행자들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었고 왕 역할도 이들 중에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천 전에 동북 삼성 수행자들은 이미 천문학이 발전되어 있었고 뿐만 아니라 수행자들이 넘쳐흘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가 유럽이나 중도지역으로 흘러들어가서 하늘을 보고 예언을 하는 문화도 생겨난 것이고요.
기독교도 동방박사 같은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답니다.
인도는 베다 성전 이전에는 수행 자체가 없었고 베다 성전 이후에 브라만교라는 수행 집단이 생겨난 것이고요.
이 당시에도 수행자들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었답니다.
왜냐하면 브라만이라는 이름 자체가 귀족들을 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하문명 같은 경우는 이때 이미 마치 지금의 학교처럼 수행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고요.
이런 증거자료들이 내몽고에 위치한 빨간색을 띠는 산에서 몇십만 점씩 나왔다고 해서 홍산문화라 이름을 붙였던 것이고요.
대표적인 설화가 곰과 호랑이 이야기이고요.
당시에는 글이나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어느 지역이나 입으로 역사를 남겼던 시기이기 때문에 유럽은 [신화]로 동양은 [설화]로 인도는 음을 넣어서 [게송]으로 전해지던 시기이기도 하답니다.
아무튼 이 당시에는 성직자나 선지자(선지식인)들이 최고의 지식인들이었고 엘리트 집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쟁의 시기가 되면서 힘 있는 사람들이 왕이 되면서 수행자들은 신녀나 무녀 등으로 강등이 되어서 왕 옆에서 지내오다가 학자들이 대거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신녀나 무녀들은 지금처럼 밖으로 쫓겨나서 사당(祠堂)을 차려놓고 무당(巫堂)이라 불리게 된 것이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당(祠堂)은 제사 등을 지내는 곳으로 당시에 신녀(神女)나 무녀(巫女)들은 학자들이 왕을 옆에서 보필하게 되면서 사당으로 쫓겨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녀(巫女)의 무(巫) 자와 사당(祠堂)의 당(堂) 자를 따서 무당(巫堂)으로 불리게 된 것이고요.
그래서 제 경우는 무당들을 절대로 무시하고 있지 않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이야말로 수행에 있어서는 대 선배들이고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불교가 돈이 급하다 보니까 무당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인데요.
속된 말로 부처님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나와바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속인들은 이래저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격이고요.
무당이란 본래 불교나 유교가가 들어오기 전에는 당군 시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우리 고유의 초대 성직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무당들도 우리 쪽 사람들이라고 저는 보고 있고 본래 수행자들이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제 경우는 무당들과도 교류를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불교는 그 후에 고구려나 신라 백제 때에도 왕가나 귀족 자식들이 출가를 많이 했었답니다.
그 이유는 후처 자식들은 항상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입니다.
귀한 자식들을 살리려고 출가를 많이 시켰었고요.
그러니 왕가나 귀족 부모들 입장에서는 출가한 자식들이 얼마나 안쓰럽겠어요?
특히 어머니 마음은 더 안쓰러웠을 것이고요.
후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도 서러운데 본처 자식들이 죽이려고 하니 왕가나 귀족들 입장에서는 출가라도 시키는 것이 그나마 좋았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 덕분에 삼국시대에는 불교가 크게 번성할 수가 있었답니다.
왜냐하면 왕가나 귀족 부모들이 출가한 자식들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보시들을 했으니까요.
그와 아울러 귀한 집 자식들이다 보니 기본적으로는 글을 깨우친 스님들도 많았고 학식이 높은 스님들도 삼국시대에는 많았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백성들도 스님들을 많이 따랐던 것이고요.
대표적인 인물들이 자장율사나 원효대사 의상대사 등을 들 수가 있답니다.
그러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신라가 망하면서 고려 말기까지는 불교는 그야말로 황금기를 누렸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도 깊게 모이면 섞는 법이기 때문에 고려 말기 때에 불교는 그야말로 섞을 대로 섞어서 급기야는 신돈이라는 중이 정치판에 끼어들면서 불교의 운명도 서서히 기울어지게 되는데요.
조선이 들어서면서 세종대왕 때부터는 유교를 숭상하게 되면서 불교는 완전히 천민으로 전락하게 되고요.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스님들은 글을 많이 배웠답니다.
왜냐하면 글을 모르면 경전 공부를 할 수가 없으니까요.
일반 백성들은 아직도 일자무식 그 자체였고요.
그러니 이 당시에는 스님들은 존경을 많이 받았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불교가 탄압을 받다 보니까 수행문화도 서서히 없어지고 유교의 제사 문화가 백성들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시기이기도 하답니다.
<참고 동영상>
https://youtu.be/43c0h_sBaQI?si=nDTEYN0Act5K7EdT
,
아무튼 조선 때까지만 하더라도 스님들은 매우 유식한 분들이 많았답니다.
일제 때까지만 해도 똑똑하고 총명한 스님들이 많았고요.
반대로 일반 백성들은 그때까지도 일자무식 그 자체였고요.
어른들은 잘 아시겠지만 우리도 문맹률을 벗어난 것이 불교 몇십 년 안 된답니다.
이것이 해방을 거쳐서 자유당을 거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나오면서 이 땅에도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경제와 아울러 일반 백성들도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지금은 성직자들보다도 훨씬 더 유식한 신도들이 많아졌다는 것인데요.
반대로 지금 성직자들은 신자들 보다 무식해졌고요.
옛날과는 반대가 됐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같은 경우도 천주교는 조선 때 박해를 많이 받았지만 개신교는 할렌 같은 의사 선교사들이 일반 백성들과 가까워지면서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이 땅에 안착을 했었고요.
이 당시에 교회들을 통해 똑똑한 젊은이들이 대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기독교는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단듯 이 땅에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똑똑하고 총명한 지식인들이 모두 교회 쪽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불교 쪽으로도 많이 몰렸고요.
이 당시에 교회를 통해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이승만 박사를 비롯해서 서재필 박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답니다.
그것도 교회를 통해서 말이지요.
그리고 이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각계각층에 엘리트 층이 된답니다.
이런 배경으로 특히 개신교는 급성장하게 되고요.
그러니 당연히 교회가 커질 수 박에요.
불교는 이 당시에 종파 간에 서로 치고받고 하면서 사찰들을 빼앗고 뺏기기 바빴고요.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불교나 기독교에도 학식 있고 세련된 엘리트들이 많았답니다.
왜냐하면 머리는 똑똑한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학교를 못 가는 어린 사람들이 절로 많이 갔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동자승이 많이 되기도 했고요.
지금으로부터 40~5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화였답니다.
그래도 이때에는 불교나 기독교나 공부를 안 하면 제대로 살아남기가 힘든 분위기였기 때문에 기를 쓰고 성직자 생활을 했다는 것인데요.
그로 인해 일반 신도들에 비해 유식하고 배운 것이 많았기 때문에 일반 신도들도 성직자들을 잘 따랐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까지는 참으로 저도 하기가 힘이 들지만 그래도 바른 말을 하자면..
지금 불교 쪽 스님들이나 기독교 쪽 목사들은 머리도 둔하고 근기도 약하고 무엇보다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이 드니까 생계형으로 성직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을 안 해도 불교 쪽이나 기독교 쪽 분들은 쉬쉬하면서도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고요.
그렇지 안 씁니까?
성직자라면 그래도 신도들 고민도 들어주고 때로는 마음을 위로도 해주고 가능하면 해결도 해주고 해야 하는데..?
깨닫고 증득(영접)은 못 했어도 머리에 뭔가 든 것이라도 있어야 상담을 해주던 할 수가 있는데 일반 신도들보다도 경험도 적고, 지식도 없고 학력은 더더욱 낮고 하니 신도들보다도 무식한 스님이나 목사들이 어떻게 신도들을 이끌고 가르치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신도들에게 배워야 할 판인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 스님들이나 목사들을 한번 보십시오?
아무튼 저는 개인적으로 앞으로 점점 더 이런 현상들은 깊어질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그래서 저는 지금 시대를 말법시대로 보고 있고 기독교 식으로 만하면 심판의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고 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불교나 기독교는 지금 본연의 가르침은 뒤로하고 엉뚱한 곳에만 의식들이 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스님들이나 목사들은 수행이나 수도는 전혀 안 하고 있고요.😮💨😮💨
쉽게 말해 지금 스님들이나 목사들은 옛날 스님들이나 목사들에 비해 너무 무식하고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요즘 스님들이나 목사들은 세상 물정도 모르고 경전 공부도 안 해서 일반 신자들보다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똑똑하고 많이 배운 젊은 사람들이 뭘 배우려고 절이나 교회에 가겠느냐 이겁니다?
요즘 스님들이나 목사들은 경전 구절 몇 가지만 외우고 나와서 법문이나 설교를 하고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특히 불교는 지금 유교가 이 땅에 들어온 이후 유교에게 모든 불교의 힘을 빼앗긴 후 아직도 유교의 힘을 못 넘어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유교의 최대 가르침인 조상을 섬기고 죽은 부모들을 섬기는 제사를 불교가 유교 대신 떠받들고 있으니까요.
스님들이 열심히 공부를 해서 지금이라도 유교의 가르침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오히려 유교의 가르침을 섬기고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하고 어리석은 스님들이겠습니까?
더군다나 큰 스님이라는 사람들이 유교의 가르침에 앞장서고 있으니 말입니다?
기독교도 문제이지만 불교는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몰라서 수도를 안 하고 있어서 그렇지 그래도 "예수님~" "예수님~"을 입에 달고 살면서 기독교 외에 가르침들은 멀리하고 있지만
그러나 지금의 불교는 수행을 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도 안 하고 있고 더군다나 불교를 탄압한 유교의 가르침을 신줏단지 모시듯 받들고 있으니 더 큰 문제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스님들은 정말이지 정신들 바짝 차리셔야 한답니다.
,
그러면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 경허집(鏡虛集) (70) ]
20260803
칠십 번째 이야기
,
♡ㅡ♡
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 같이 노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
(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
(1) 불교 가르침
《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이번 한문 글도 너무 길어서 만해 한용운 스님이 번역한 한글로 대체하겠습니다.^^
ㅡ♡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제목 : 동래군 금정산 범어사 계명암 창설 선사기
「화엄경」에 이르기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대자대비(大慈大悲)와 대희대사(大喜大捨)로써 머무는 곳을 삼는다." 하였고 "내지 일체 모든 법이 평등으로 머무는 곳을 삼는다." 하였으니 이속(這裡)이 머무는 곳이니라.
심문분선사(心聞賁禪師)가 이르기를 “동산화상(洞山和尙)이 이르되 생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묘로써 신령스런 불꽃의 무궁한데에 돌이키면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간다 하니 이것이 무엇인가? 거기서 벗어나면 다시 무슨 깨끗한채 하는 병이 있으랴?
이미 생각하는 자도 없고 또 깨끗한 채 한 것도 없어졌으니 실 한 올도 걸치지 않았구나. 자기의 본체까지도 발견할 수 없으니 이렇게 들어와서 떠들더라도 누구를 물들일 것이며 거슬리거나 따라 주더라도 누구를 성내거나 기쁘게 하리오. 그런 뒤에아 밝 거나 어두운 두 쪽은 떼어버리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곳을 향하여 대비원(大悲院)에 재(齋)가 있다는 소식을 기다려야 비로소 까닭을 알 것이며 비로소 귀결처를 알리라.
이러한 한쪽 눈이 강산과 땅덩이를 꿰뚫어 보아 마치 하늘운 찌르는 긴 칼같이 한다면 누가 감히 마주서서 엿보리요. 이런 뼈대가 있어야 바야흐로 여러 성현들 틈에 들어가서 들고 나고 함께 팔을 저으면서 자비와 지혜의 원력을 성취할 것이며 나와 남이 모두 이로운 법문도 역시 그 하나의 까닭으로부터 생겨날 것이며 별다른 도리란 없도다. "하였으니 이날 속이 또한 머무는 곳 이로다.
혼해장로(混海丈老)가 성월선백(惺月禪伯)에게 청하여 계명암 주지를 하라고 하니 대중과 의논하여 선원을 여기에 설치하고 각방과 암자에서 논 38두락을 거두어 선원에 부쳤으며 혼해(混海)·성월(惺月)·담해(湛海)·화월(華月) 등 여러 스님과 본부에 사는 이씨보현화(李氏普賢華)와 초량에 사는 김씨지명화(金氏智明華)가 여러 곳에 화주하여 사천여금을 얻어 논 40두락을 사서 선방에 부쳤으며 또 본사 토굴에 사는 김씨각심화(金氏覺心華)가논 두 마지기를 헌납하여 선원에 부치니 헌납한 논을 합하여 82두락이 되었다. 이것은 단연코 선원대중에만 공양하는 데 쓰고 다른 곳에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한결같이 영구히 지켜져야 한다.
온 산중 스님들과 세속의 신도들의 공덕과 신심원력은 한가지로 불가사의한 일인데 성월선백이 주지가 되어 앞장서서 권선하고 화주를 하였으니 그 공덕이 더욱 크도다.
이로부터 팔방의 남자들이 이 선방에 들어와서 함께 정진을 하게 되었으니 이 속이 또한 이날 머무를 곳이다.
위에 세 군데 머무를 곳이 같은가 다른가? 만일 다르다고 한 다면 일찌기 어떤 것이 같은 것이며 만일 같다고 한다면 일찌기 어떤 것이 다른 것인가? 또한 쇠뿔은 있는데 쓰이지 않고 토끼 뿔은 없어서 쓰이지 않음인즉 또한 일러라, 필경에 어떠한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도의 눈이 밝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이라도 소화하기 어렵다. "하니 무릇 이 선사(禪社)에서 참구하는 이는 마땅히 광음이 덧없고 네 가지 은혜가 무거운줄 생각해서 자 명·원(慈明·圓)의 넙적다리를 찌름과 귀종·권(歸宗權)의 다리 펴고 통곡한 것을 법칙으로 해야 옳음이로다.
광무 7년 계묘 모춘 하한 주차본사
금강암 경허 성우 근지
ㅡ♡
(2) 예수님의 가르침
[도마복음 제26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는도다.
그러나 너는 네 자신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도다.
2. 네 자신의 눈으로부터 들보를 빼낼 때에야 비로서 너는 밝히 보리니, 그제야 너의 형제의 눈으로부터 티를 빼줄 수 있으리라."
.
.
ㅡ♡♡
.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아무쪼록 모두들 건강관리 잘 하시고 가정에 늘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드립니다.🤗🪷🙏🏻
♡
※ 이 글은 주로 수행(수도)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
오늘 경허집 내용도 앞에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인데요.
오늘은 동래군 금정산 범어사 계명암 창설 선사기에 대한 내용이랍니다.
오늘 내용은 길지만 아주 간단한 내용인데요.
마침 계명암에 관한 동영상이 있어서 첨부해 보겠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X-DVVmNRfjg?si=SElmTWOLHDoDFJjr
,
쉽게 말해 범어사 인근에 수행을 하기 위한 자리를 증측했다는 것인데요.
광무 7년이면 1903년으로 한일합방이 1910년도에 됐으니까 계명암을 증측할 당시에는 조선이 개화가 되는 시기였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04년 2월에는 러일전쟁이 터지고 그다음 해인 1905년도에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은 박탈되었는데요.
한마디로 말해 경허스님이 이 글을 쓸 때에는 나라가 망할 때쯤 어수선한 시기라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박해를 한참 당하고 있을 시기이고요.
개신교는 십여 년 있다가 들어오고요.
그래도 불교는 이 당시에 경허스님이 중심이 되어 새롭게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는 것인데요.
이런 어려운 시기에 특이한 점은?
혼해장로(混海丈老)가 성월선백(惺月禪伯)에게 청하여 계명암 주지를 하라고 하니 대중과 의논하여 선원을 여기에 설치하고 각방과 암자에서 논 38두락을 거두어 선원에 부쳤으며 라는 내용과
여러 스님과 본부에 사는 이씨보현화(李氏普賢華)와 초량에 사는 김씨지명화(金氏智明華)가 여러 곳에 화주하여 사천여금을 얻어 논 40두락을 사서 선방에 부쳤으며과
본사 토굴에 사는 김씨각심화(金氏覺心華)가논 두 마지기를 헌납하여 선원에 부치니 헌납한 논을 합하여 82두락이라는 내용이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두락(斗落)이란 논과 밭의 크기를 말하는 것으로 자료를 찾아보니까 논이 1누락이면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약 150평에서 300평을 나타내는 단위라고 되어있었는데요.
적게 잡아 150평 × 82누락이면 도합 12,300평~24,600평이랍니다.
그 당시에 논이 이 정도면 엄청 큰 평수라 할 수가인데요.
왜냐하면 논 한 마지기가 없어서 노비 생활이나 머슴 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당시에는 부지기수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그 어려운 시기에 수행자들을 위해 이런 거금을 선 듯 보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보통 신심이 아니면 어려운 일일 것인데요.
그런데도 지금 스님들은 수행도 안 하고 딴짓 거리들을 하고 있다면 정말이지 이런 스님들은 매 타작이 약일 수 박에 없다는 것인데요.
아무쪼록 제발 부탁이니 옛 어른들의 이런 고생과 마음을 봐서라도 모든 스님들은 선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이 땅에 선풍을 일으켜 세우셔야 한답니다.
뭔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다른 내용들은 그냥 읽어보시면 될 것 같고요.
그러면 기독교 쪽 예수님 가르침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내용은 예수님 가르침 중에서도 참으로 유명한 내용인데요.
쉽게 말해 너는 다른 사람들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곧 다른 사람들 잘못은 잘 알고 있으면서 너의 잘 못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잖아요?
다들 그렇게 살고 있고요.
그런데 내 눈에 있는 들보만 빼내면 밝게 볼 수가 있다는 것인데요.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랍니다.
그리고 나머지 내용은 나부터 먼저 깨달아야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깨닫게 해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 쪽 성직자들이나 기독교 쪽 성직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자기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서 밝게 깨달으려고 노력들을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내용도 불교 쪽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불교에서는 눈을 떠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답니다.
그리고 눈먼 장님들은 눈먼 사람들을 인도할 수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고요.
불교에는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오늘 예수님 말씀과 같은 뜻이랍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s://youtube.com/shorts/J7f0zS7GptY?si=0gX5Z0iA4EnQSZR_
,
마치 예수님 가르침처럼..
[네 자신의 눈으로부터 들보를 빼낼 때에야 비로서 너는 밝히 보리니, 그제야 너의 형제의 눈으로부터 티를 빼줄 수 있으리라.]
라는 내용과 같이 불교에서도?
내가 먼저 눈을 떠야 남들의 눈도 뜨게 해줄 수가 있다는 내용과 같다는 것입니다.😁🙏🏻
(끝🤗)
,
<< 부 록 >>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수도를 간략하게 핵심만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동안은 이 구절을 메인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그러니 잘 따라 해 보시면서 하시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질문을 주시기 바랍니다.🤗🙏🏻
,
☆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
★ 수행의 첫걸음은 내가 나를 보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 그리고 사람들이 깨닫기 전에는 내 몸이 나라고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분리해서 관찰하면서 바라보라고 하는 것이랍니다.
★ 그리고 세 번째는 무거운 마음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 보면 마치 어렸을 때 흔들리던 이빨이 나도 모르게 "쑥~" 하고 빠지듯이 밑창이 빠지게 되어있답니다. ✌🏻👍🏻
,
그리고 예수님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답니다.
★ 예수님 방법도 중동 사람들의 종교 문화에 맞게 [기도]라는 단어만 바꾸었을 뿐 원리는 같답니다.
예수님 방법은?
항상 늘 주(主/자신) 안으로 의식을 두고 육체와 마음의 변화를 비교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무거운 마음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몽땅 맡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 보면 마치 감나무 위의 감이 익을 때로 익으면 자기 무게에 바람만 불어도 "툭~" 하고 성령으로 떨어지게 되어있답니다. ✌🏻👍🏻
※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 ※
[1. 예수께서 가라사대,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도마복음 제2장 핵심 내용)
(해설 : 성령은 본인이 직접 찾는 것이고 구하는 것이랍니다.)
※ (성경 구절의 예) ※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서 2장 5~6절)
(해설 : 기독교인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죽으면 섞고 없어질 이 육신을 구할 것입니까?
아니면 영생토록 끊임없이 죽지 않는 성령을 구할 것입니까?
당연히 기독교인이라면 성령을 찾고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에베소서 4장 1절)
(해설 : 기독교에서 말하는 주(主)는 자신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주(자신) 안에 육신 안에 성령이 갇혀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방시키라는 것이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로새서 3장10절)
(해설 : 그러면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내용은 참으로 참되고 참된 예수님 가르침이랍니다.)
이 외에도 많이 있지만 꼭 열심히 따라 하셔서 성령(본성)을 성취하시길 신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그리고 수행이나 수도나 참회하고 회계하는 마음으로 하시면 더욱 잘 된답니다.
반대로 자기가 제일 잘 났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제 경우는 당시에 아주 처절하게 참회하고 회계를 했기 때문에 마음이 꺾여서 쉽게 된 것이고요.(진실)
제 경우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뜬답니다.
"그래! 오늘은 꼭 95% 정도는 알아차림을 달성해 보자"
로 시작을 한답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무더운 날씨에 건강관리 잘하시고 큰 비가 올 때에는 집안 단속 잘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
♡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덮지요?😅
아무리 덮더라도 마음까지 덮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수분 섭취 잘 하시고 노후에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이뭣고..?🙏🏻🙏🏻🙏🏻"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