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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8. 물날. 날씨: 가을비가 겨울을 부르는 것 같다. 아침열기-손끝활동-점심-청소-맑은샘회의-마침회-수도권 대표교사모임
[세상에서 하나 뿐인 젓가락과 숟가락]
숲 속 놀이터 바닥이 떨어진 나뭇잎으로 수북하다. 누런 색깔이 참 보기 좋다. 숲 속 작은집 지붕에도 누런 설탕을 뿌린 것처럼 보인다. 줄곧 나뭇잎들이 눈처럼 날린다. 내일은 또랑 벼를 모두 베야겠다. 8시 50분 산책 길에 아이들과 밀밭으로 가서 날마다 밀싹 자라는 걸 보는 재미가 있다. 비가 자주 오는 때라 그런지 날마다 쑥쑥 자라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얼마나 자랐는지 보는데 아이들이 재보자고 한다. 풀 하나를 뜯어 밀싹에 대보고 교실로 가져가 재보니 11cm다. 줄곧 기록하는 것도 수학할 때 쓸모가 있겠다. 학교로 들어가기 앞서 텃밭 두 군데를 둘러보고 내일 뽑을 배추와 무를 살펴봤더니 비가 자주 온 탓인지 지난 주 볼 때와 또 다르다. 동사무소 옆 텃밭 배추는 알이 꽉 차고 무가 아주 굵다. 쪽파는 땅 위치에 따라 크기가 다른데 김장에 쓸만할 정도는 됐다. 배추와 무를 하나씩 뽑아서 학교에 가져와 깨끗히 씻어 맛을 보는데 달다. 점심 때 아이들이 모두 먹도록 잘 씻어 놓고 교실로 올라갔다. 아침 마을과 텃밭을 걸으며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아침열기가 되고 하루 흐름을 나눈다. 요즘은 4학년 동생들과 더 친하게 지내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형, 누나 노릇을 하려면 더 마음을 내야지 싶다. 미리 준비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자꾸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은 뜻이 있기도 하다. 교실로 올라와 피리와 천자문, 수학자 책을 읽어가니 일 년 동안 해온 공부들이 하나 둘 모아져간다. 사실 더 욕심나는 공부도 많기도 하나 이미 많은 교육활동을 해온지라 밑그림대로 갈무리를 잘하는 몫이 남았다. 원서가 수학 익힘책을 펴들고 지금 해도 되냐고 묻는다. 2학기 들어 날마다 셈 익힘책을 두 쪽 씩 풀고 가는데 일찍 해놓고 싶은 마음에서다. 날마다 셈이 슬슬 자리가 잡혀가고 셈 익힘에 크게 도움이 되어간다. 오전 글쓰기 시간에는 어제 젓가락을 만드는 활동을 이어 오늘은 숟가락을 깎는다. 대나무 숟가락은 창칼과 조각도를 써야 해서 쉽지 않은 공부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려주면 선생이 톱으로 잘라준 뒤 조각도를 쓰는데 먼저 선생이 본보기를 보여주고 안전하게 쓰는 법을 일러준다. 그래도 순간 다침은 일어난다. 선생이 장갑을 가지러 간 사이에 원서가 창칼을 쓰다 손가락을 베어 피가 나왔다. 다행히 스친 것이라 밴드 하나면 되긴 했는데 더 조심하게 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젓가락 숟가락이 넘치는 시대에 아주 힘든 소근육 활동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들어내는 숟가락 젓가락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감성을 가져다 줄까. 손으로 무엇을 만들어내는 기쁨은 하지 않으면 모르는 재미이지만 한 번 빠져들면 자연스레 집중력을 길러주고 빠져드는 명상이 된다. 어릴 때부터 온 몸을 쓰고 손과 발을 쓰며 근육을 발달시키는 활동은 뇌과학 견지에서 아주 좋다. 그러니 아이들이 스스로 생산하는 기쁨을 누리는 많은 손끝활동이 초등 교육 과정에 아주 중요한 꼭지로 잡혀야 한다. 1학년은 어머니들 도움으로 오전 줄곧 볏짚으로 종이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요즘 6학년은 목공 선생님이 잘라 준 나무 도마를 사포질하고 기름칠하며 말린다. 지난 주 전체 손끝 활동으로 한지조각보, 나무곤충, 천연비누도 만들었다. 모둠마다 바느질, 뜨개질, 직조가 줄곧 되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은 날마다 뇌를 발달 시키며 소근육을 훈련시키는 셈이다. 일과 놀이로 자라는 아이들에게 인지교과 또한 통합교과로 자리 잡히고 있다. 익힘이 필요한 교과는 조금 더 세심하게 반복해서 익히는 시간과 통합교과 수업 뒤 갈무리가 중요하게 다가오겠다. 교육 활동이 더 섬세하게 갈무리되고 초등교육 과정 전체로 단계마다 정리해야 할 몫을 놓치지 않도록 애써야겠다. 맑은샘회의 시간에는 요즘 큐브 바람이 불어 늘 큐브를 들고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이들이 보기에 수업할 때나 밥 먹을 때도 큐브를 돌리는 모습이 아니다 싶었던 게다. 어린이들이 자연스레 바람직한 어린이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규칙을 세워가는 맑은샘회의는 언제나 새롭다. 저녁에는 서울에서 수도권 대표교사 모임이 있어 조한별 선생과 함께 다녀왔다. 학교마다 전자기기와 미디어에 대한 문화를 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내년 1월에 우리학교에서 하게 되는 교사 연수 계획과 일나누기까지 마치고 나니 9시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학교마다 들려주는 좋은 이야기 덕분에 피곤함을 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