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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2020, 6, 14
갈2 : 19-20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하는 이 말씀의 그 실제가 반드시 이루어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요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그 실제를 안다면 우리가 죄 사함 받은 것과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이 복음을 믿는다면 내 안에 주의 영이 들어와 계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참된 증거인 성령을 얻는다면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이 복음을 들어도 깨닫는 사람이 많지 않고,
또 이 믿음의 실제를 아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허다한 사람들이 주의 말씀에 순종의 삶을 살지 않고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들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의 삶을 사는 그들이 주께서 그 안에 계시다는 것을 증거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오늘 본문 19-20절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확실한 믿음을 가졌다면, 죄 사함은 물론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항상 말씀의 실제를 찾고 구하는 사람들이 복음을 알고 성령의 증거를 받을 것입니다.
19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이 복음은 우리의 신앙의 중심 되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비밀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을 아는데 있습니다.
이 복음은 반드시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반드시 지옥에 가고야 말겠다고 작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귀를 열고 이 복음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하시는 여기 19절 말씀은 로마서 7장 4절에도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나는 이 로마서 7장 4절 말씀을 가슴이 뛰는 큰 기쁨과 감동과 확신으로 받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내세에 들어가면 율법의 심판을 받습니다.
율법은 내세의 모든 일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법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의 법입니다.
율법의 죄인에 대한 심판은 죽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율법의 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 대신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에 대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오직 우리들의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그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우리 대신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우리들의 죄에 대해서 율법이 요구하는 우리들의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으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몸으로 율법에 대해서 우리의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구약시대 오랜 세월동안 유대민족이 그들의 죄 값으로 짐승을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율법이 이를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들의 죄 값으로 죄 없는 사람의 생명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죄 없는 생명은 없습니다.
이제 세상에 태어난 아이라도 그 피에 죄의 인자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아이도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우리들의 죄 값으로 드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나는 유대민족이 그들의 죄 값으로 짐승을 대신 드렸고, 율법은 이를 받으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내 죄 값으로 자기 몸을 대신 드리신 것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구약의 전례가 없었다면 나는 내 죄 값을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대신 드리신 것에 대해서 의문을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전례를 통해서 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것을 의심 없이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갖고 있으면, 성령을 받지 못합니다.
나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죄 값으로 짐승을 드린 그 전례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말씀을 온전히 믿는 믿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율법은 율법의 심판을 받고 죽은 자를 다시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임을 당한 우리를 심판할 율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심판할 법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죄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의 중요한 핵심은 예수 믿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영원히 죄 사함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깨닫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의 결정적인 부분입니다.
이 복음을 깨닫고 참되게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죄 사함 받았고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증거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성령의 증거를 받았다면 무엇을 더 의심하겠습니까?
우리는 율법의 심판에서 영원히 벗어난 것입니다.
성령이 그것을 증거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구원입니다.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은 첫 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이를 믿는 자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이론이 아닌 것처럼, 우리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죽임을 당했다는 말씀 또한 이론이 아닙니다.
이 진리를 믿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이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믿음으로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이 진리를 믿고 깨닫는 자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들어와 계신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 안에 들어와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1-12절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는 사람들에게 생명이 있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지 않는 사람들은 생명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믿음을 가지려면 반드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도 이 육신의 생명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가전서 5장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사람은 영과 혼가 육으로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영은 죽거나 썩거나 불타서 소멸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의 영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 사함 받고 천국 가는 것이나, 불신자가 그 죄로 지옥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의 영입니다.
진정한 나, 나라는 사람의 정체는 내 영입니다.
우리의 몸을 언젠가 벗는 것이며, 벗으면 곧 바로 썩는 것이 우리의 몸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혼은 육체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감성과 의지와 우리의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과 우리의 이성에 속한 것은 다 혼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은 혼에 속한 것입니다.
혼으로 사는 사람을 육신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혼은 육체에 속한 것이므로 우리가 죽어 육체를 벗을 때에 혼도 소멸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육과 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지만, 예수 믿기 전의 사람들의 영은 온전히 타락하여 육신을 따라 육신의 원대로 살기 때문에 영과 혼을 따로 의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데살로니전서 5장 2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혼은 육체에 속한 것으로 육체를 벗으면 혼은 곧 육체와 함께 소멸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너희의 영과 함께 혼과 몸이 흠 없이 보존되기를 원하노라.”하시는 뜻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강림해 오시는 날 우리는 우리의 영은 그 때에 부활의 새 몸을 입을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썩어질 몸을 거룩하게 구별해 주님께 순종하여 드린다면, 우리의 썩어질 몸도 주님이 오시는 그 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별의 영광도 다르도다.”라고 했습니다.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별의 영광이 다른 것처럼 우리의 몸으로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의 영광이 하나님 나라에서 다르게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42-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욕된 것으로 심고, 약한 것으로 심고, 하는 말은 다 우리의 몸으로 주께 순종함으로라는 뜻입니다.
육의 몸으로 순종하는 자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부활을 믿는다면 이 말씀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이르러서만 아니라 지금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의의 거룩한 성령의 열매가 우리 몸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 실제를 지금도 조금 맛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지체를 주님이 강림하실 때까지 흠 없이 거룩하게 지키면 주님이 오시는 그날 우리가 주의 말씀을 행한 대로 그 영광도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육의 썩을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기 때문이라는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을 우리가 꼭 알아야 합니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으면 되지 않습니까? 하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라는 말씀입니다.
또 로마서 8장 14절의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시는 그분을 알지 못하고 어찌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 수 있으며, 그분의 인도하심 따라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아주 좋은 예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자신의 육신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그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사도임이 그분의 서신에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영혼으로 사는 것처럼,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의 생명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 안에서 바울 자신의 육신의 생명과, 그리스도와 실체적인 생명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바울 사도가 어찌 그런 삶을 살 수가 있었겠습니까?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일어나는 몇 가지 확실한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성경에 기록된 주의 말씀이 주의 음성으로 혹은 사도들이 직접 내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듣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주의 말씀을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믿음과 의지와 소원과 능력을 주십니다.
네 번째는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나와는 다른 인격으로 사시는 분이심을 내 마음으로 확실하게 느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섯 번째는 내 안에서 내가 처한 그 상황에 맞는 말씀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을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내 앞에 계셨더라도 그 말씀을 내게 주셨을 것이라고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이처럼 분명하게 역사하기 때문에 그분의 실제적인 인격을 깨닫게 되고 그분의 참되신 영원한 생명도 알게 됩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면 내 육신의 생명은 불의한 멸망할 생명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분께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것은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