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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국운)을 걸고 싸운 족보전쟁 5 |
앞전에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위한 조선의 200년 외교 투쟁사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도 또 그 종계변무(宗系辨誣)이야기를 해야겠다.
1차 종계변무가 명나라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2차 종계변무는 청나라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 더니, 족보 하나에 목숨 건 조선 조정의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러 가보자.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청나라에서…청나라에서….”
“청나라가 뭘 어쨌다고…좀 천천히 말해, 이 자식아. 숨 넘어가겠다.”
“그…그것이… 청나라에서 대청회전(大淸會典)을 만들겠답니다.”
“허…오랑캐 자식들이 할 건 다 하는구만? 이 자식들이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구….”
원래 중원에서 나라를 건국하게 된 역대왕조들은 관행적으로 중국 및 주변국들의 역사문물을 정리한 백과사전식 책을 한질씩 내게 되는데, 일단은 새로운 천하관 속에 속국들을 편입한다는 의미도 의미였지만, 새 왕조가 나왔으니 기본적인 세계관을 정립한다는 의미에 더해서 할 말 많고, 불만 많은 학자들을 모조리 몰아넣어 글이나 쓰게 만들어버려 새로운 정부에 대한 비판을 막게 하는 목적도 있었다. 여기에 덤으로 학문을 사랑하는 문치주의 분위기도 연출해 낼 수 있으니, 역대왕조에서는 이런 서적들을 왕조를 개조(開祖)할 때마다 만들어 냈던 것이다.
“야야, 청나라 놈들이 대청회전 만드는 게 뭐가 어때서? 그까이거 뭐…기분이 좀 뭣 같지만, 어쨌든 그놈들이 중원을 먹었으니, 이해하고 넘어가야지 안 그래?”
“전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청나라 이 오랑캐 놈들이 오리지널로 대청회전을 만들겠다면 또 모를까…. 이것들이 대명회전을 참고로 해서 대청회전을 만들겠답니다.”
“뭐라고? 대명회전? 대명회전에서 명明 자 하나를 청淸자로 바꿔서 책을 만든다고? 이 자식들이 아주 날로 먹으려고 하네…가만…가만 지금 그러니까, 종계변무를 한 만력회전(萬曆會典)을 참고로 해서 대청회전을 바꾼다는 거야? 아니면, 걍 오리지널 대명회전(大明會典)을 쓴다는 거야?”
“그…것이 문제란 것입니다.”
“이런 개스런놈들같으니라구….”
이리하여 조정은 긴급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게 되는데,
“일단 말야, 내가 조선왕 입장으로 해서 친서를 보내는 게 어떨까? 김치 먹여달라고 대통령이 친서 보내는 마당에 이 정도면 외교적으로 큰 문제도 없을 거 같은데 어때?”
“이게 또 좀 미묘 합니다, 전하. 만약 저 떼놈들이 만력회전(萬曆會典)을 참고로 대청회전을 만들겠다고 나선 상황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대국이 하는 일에 우리 같은 찌질한 애들이 나선다고 쿠사리 먹을 확률도 있고…또 사람이란 게 하지 말라면 더 하게 되는지라….”
“맞습니다…괜히 나섰다가 욕만 고기 부페로 먹을 확률이 있습니다.”
“그럼 어쩌라고? 한번 만들어지면 못 잡아도 100년 이상 걸려야 바뀌는게 그런건데…. 저번에 대명회전 한번 바꾸는데, 얼마나 뺑이 쳤는지 기억 안나? 이번에도 또 압박외교, 체력외교로 한 60년 끌어보자고?”
“…….”
“난 못해! 안해! 지금 당장 해결 봐야지. 이런 일 계속 미적거렸다간 방법이 없다니까!”
“…전하, 그럼 떡값을 출동시키면 어떨까요?”
“떡!”
“값!”
“이런 일은…전통적으로 뒷거래가 잘 먹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와이로를 먹이는 겁니다. 은밀하게 돈을 먹이면 이것들도 먹은 게 있으니 우리쪽 의견을 들어줄 겁니다.”
“…야야, 국가가 뇌물을 먹이자고? 이것들이 개념이 너무 충만하잖아? 어이 호조판서…당장 예산안 뽑아봐봐!”
이리하여 영조는 대청회전(大淸會典) 편찬에 관계된 자들 리스트를 뽑아 이들 중 실세로 판단되면 몇 명에게 뇌물을 먹이기로 결정. 호조에서 예산을 뽑아내게 했으니, 그 액수만도 무려 7만냥이었다.
“꼭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냐 방법이 없으니까…. 일단은 사과박스로 보내고, 안되면 책떼기로 해서 채권을 보내던가, 정 안되면 차떼기…아니 가마떼기로 밀어붙혀 버려. 알았지? 네들이 얼마나 뇌물을 잘 주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는 거야 알았지?”
“걱정 마십시오! 공무원 생활 30년 받을 만큼 받아봤고, 줄만큼 줘봤습니다! 뇌물 주는 건 저만한 놈이 없을 것입니다.”
“…야 좀 듣기가 껄적지근하다?”
“…아니 그게….”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어여 가서 가마떼기나 해라.”
“예 전하!”
이리하여 조선의 운명을 건 뇌물특사들은 대청회전(大淸會典) 편찬 실세들을 찾아가 뇌물을 쓰게 되는데, 워낙 뇌물 쓰는데 이력이 나서인지 이들은 포인트를 잡아 제대로 뇌물을 먹이게 된다. 그 덕분인지 대청회전(大淸會典)은 개정판인 만력회전(萬曆會典)을 기본으로 해서 제작에 들어가는 걸로 결정되게 되는데…족보 이름 하나 잘못 올라가 200년 가까이 고생했던 조선왕실의 가계도는 다시 한 고비를 넘겼던 것이다.
그나마 평소 닦아놓은 뇌물 갖다바치는 능력이 있었기에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한다면, 너무 비참할까? 뇌물 잘 주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란 걸 보여준 이 웃지못할 역사 앞에서 지금 대한민국에 펼쳐지고 있는 떡값 논란의 뿌리를 찾는다면…그냥 못 본 척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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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계변무 [宗系辨誣]
조선 태조가 명나라의 《태조실록》 《대명회전(大明會典)》 등에 고려의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되어 있는 것을 처음 안 것은 1394년(태조 3)이었다. 이인임은 우왕 때 이성계의 정적이었는데, 이성계를 그의 아들이라 한 것은 조선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이 사건은 두 나라 사이에 심각한 외교문제로 부각되어 태조 때부터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어 고쳐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시정 약속만 하고 실현되지 못하여 이는 역대 왕들의 가장 큰 현안문제가 되어왔다.
그럼에도 1518년(중종 13) 중국에서 돌아온 주청사(奏請使) 이계맹(李繼孟)은 《대명회전》 조선국조(朝鮮國條)의 주에 명나라 태조의 유훈(遺訓)이라 해서 “이인임의 아들 단(旦:태조 이성계)이 사왕(四王:恭愍 ·禑王 ·昌王 ·恭讓)을 시해하였다”고 정정되지 않았음을 보고하였다.
남곤(南袞)이 주청사로 가서 시정을 요구하는 등 중종 때만 해도 여러 번 사신을 보냈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 뒤 1584년(선조 17) 종계변무주청사 황정욱(黃廷彧) 등이 가서 정정키로 확정을 보고, 1588년 유홍(兪泓)이 고쳐진 《대명회전》을 가지고 돌아와 일단락되었다.
선조는 유홍이 중국에서 돌아올 때 친히 모화관(慕華館)까지 나아가 명나라의 칙사(勅使)를 맞았으며, 공을 세운 유홍에게는 벼슬을 올리고 노비와 전토(田土)도 내렸다. 또한, 선조는 종묘에 가서 종계의 개정을 고하는 제사를 지내고 대사령(大赦令)을 내렸으며, 백관에게도 벼슬을 올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