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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여행2 -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을 보고 홍콩을 거쳐 귀국하다!
10월 27일 아침에 헤이그 의 호스텔 Hostel Stayokay Den Haag 을 출발해 평화궁 내에
국제사법재판소 와 파노라마 메스다흐 를 보고 걸어서 도심 비넨호프로 가는데
어느 집 지붕에 범선 의 모형이 장식되어 있는 모습에서 17~ 8세기에 네델란드 상선단
이 5대양 6대주 를 누비면서.... "세계 무역을 주름 잡았던 나라" 임을 떠올립니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는 인도,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 에 진출해
후추, 커피, 사탕등 특산품 을 강제로 재배하게 해서 향신료무역 을 독점했는데...
또 18세기 이후 향신료 무역이 부진하게 되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식민지 경영 을
주로 하게 되었으며 1799년에는 영토를 본국 정부에 이양하고 해산했습니다.
시내 지도를 보며 또 물어 가며 우회전하여 걸어가다가 Wagenstraat 라는 거리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니 바로 이준 열사 기념관 인데....
이준열사 기념관 Yi Jun Peace Museum 은 Wagenstraat 124번지에 있는 1620년대
건물로 이준 열사가 투숙했던 호텔 을 교포가 구입해 1995년 기념관 이 되었습니다.
1907년 6월 고종의 밀명으로 이상설, 이위종 과“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에 참석해 을사
조약의 무효와 대한 제국의 독립 을 알리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기에 보니 10시 30분 부터 오후 5시 까지 개관한다고 적혀 있기로
30 여분간 남는 시간에 이 골목을 나와 반대편 골목에 있는 차이나타운 을 구경합니다.
참 중국인들은 대단히 진취적 인데다가 잘 뭉치는 민족 이어서 자기 고향을 떠나기가
쉽지 않은데도 전세계로 나가서 차이나타운 을 건설하고는....
더욱 중국 본토 보다 더 중국적인 거리 를 만들어 자기네 중화문화 를 간직하며....
거기다가 중국어 까지 일상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니 중화민족의 우월감 일러나?
미국이며 일본의 “우리 동포들은 한국말도 못하지만” 얘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현지 민족과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자기 중화 민족의 아이덴티티 를 간직하는 것은 자기네 문화에 대한 자부심 일까요?
이준열사 기념관 으로 돌아와 아무리 초인종을 울려도 문을 열어주지도 않을뿐더러 안에서는
인기척 도 없습니다? 스페인 마요르카섬 에 안익태 선생 집을 찾았을 때도 헛걸음을 했는데
오늘도 이모양 이라? 입구에는 전화번호 조차 없으니 달리 어쩔 도리가 없네요? 이것 하나
보자고 그 먼길을 왔는데 이렇게 돌아서야 하다니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 은 북간도로 망명해 용정 인근 명동 에 우국지사 김약연 이
세운 명동서숙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이때 이동녕, 이동휘 그리고 안중근 이 참여하기도 했다는데.... 학생으로는 윤동주,
나운규, 김광진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05년에 을사조약(늑약) 으로 나라를 뺏기게 되자 이상설 이 아이디어를 내어
평리원 검사 이준과 함께 고종의 밀지 를 받아 블라디보스톡에서 기차를 탔던 것이니
을사조약후 미국, 영국등 세계 열강들이 모두 한성의 공사관을 철수하고 일본을 지지
할 때, 오직 러시아 만은 러일전쟁의 패배도 있고 해서 밀사들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니 그새 일본과 러시아는 밀약
을 맺은 탓으로 밀사들을 냉대 해 황제의 알현조차 거부하고 협조를 철회 합니다.
그렇다고 조선으로 되돌아 갈수도 없는지라, 전 러시아 공사의 아들 이위종을 통역
겸 안내역으로 삼아 여기 헤이그 까지 오기는 했는데.....
만국평화회의 에 참가하자니 어느 한 국가의 안내 가 있어야 하나 그 많은 나라 중에
한국 을 도와주는 나라가 단 한나라도 없었던 것이니.....
회의장에 입장 조차 거절당하고 실의에 빠진 이준 은...... 끝내 호텔 인 이 집에서
자살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후 12년이 지나 고종황제의 장례식 에 모인 사람들이 3.1 만세운동 을 벌이는 데...
대다수 조선인들은 만세 운동을 8도에서 벌이면....
일본이 세계 만방의 눈과 여론을 의식해 조선을 독립시켜 줄줄 알았던 것이니!!!
이걸 순진 하다고 해야 하나.... 어리석다 고 해야 하나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델란드 등이 조선이 아니라 일본 편을 든 것은 조선이
독립하면 자기네 식민지도 독립 시켜 주어야 하는데 어떤 얼빠진 나라 가 그러겠는가?
당시 일본에는 중국의 손문 은 물론이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와 인도
의 독립 운동가 들이 망명하여 조국의 독립투쟁 을 위해 애쓰고 있었는데....
일본이 이들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해 주면, 세계 각국도 조선이며 베트남 등의 독립운동가
들을 탄압해 주는 것이니... 어찌 세계 열강들이 조선의 독립 호소를 들어주리요?
또 나는 1945년 8월 15일 날 전국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서는 서로 부등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던 일 을 생각해 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웃의 꼬임에 빠져 비싼 고리채를 내어 물정 모르는 투자를 했다가 집을 날리고 그
이웃에 월세 살면서 우리 아이들이 주인집 아이에게 구박당해 눈물을 흘렸다고 치면!
그 못된 이웃인 주인집이 과욕을 부리다가 망하여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고 해서
만세를 부르며 기뻐해야할 이유 가 있는지? 그럼 그 집이 다시 내 집 이 되는 걸까요?
내가 평소에 먹지 않고 입지 않고 눈물겹게 저축 을 해서 모아둔 돈 이 있다면 경매 에
참여해 낙찰 을 받으면 다시 내집이 될 수도 있지만.... 모아둔 돈 이 없다면???
독립군은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 이후 일본군에 쫃겨 소련으로 도망쳤다가 자유시
사변으로 몰살 당하고 살아남은 일부가 만주로 돌아오나 전투를 벌일 힘은 없었습니다.
만주에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민족주의 독립군은 중국인들과 협력해 1933년에 일본군과
대전자령 및 사도자하 전투 를 벌였으나 1934년이면 만주에서 쫃겨나 흩어져 버렸고.....
그 후 좌파 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 과 연계된 김일성, 최용건등이 동북항일연군 으로 일본군
과 소규모 전투를 몇번 벌였으나 1938년이 되면 그들도 연안이나 소련으로 도주 합니다.
만주에서 쫃겨나 흩어졌던 민족주의자들은 그후 1940년 에 중경에서 광복군 을 조직
했지만 열악한 재정으로 군대 몇백명도 유지하기가 힘든지라.....
당장 내일 아침 때꺼리를 걱정 해야 하는 처지이니 일본군을 상대로 단 한차례의 전투
도 벌이지 못했으니...... 무엇으로 조선의 독립을 주장 할 것인가?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이 일어났을 때, 조선인들이 일본군에 쌀과 면화등 공출을
거부 하고 징용과 징병을 거부 하며 총궐기 하여 일본과 무력으로 싸웠더라면....
가옥 백만채가 불타고 조선인 수십만명이 죽고 수백만명의 이재민이 났을 것이나!!!
그로 인해 태평양전선으로 갈 일본군 50만 정도를 조선에 2~ 3년간 붙잡게 되어....
미군 1만명의 목숨을 구할수 있었다면 조선은 독립을 주장할 자격 이 있게 되는 것이고
희생자는 안타까우나 6.25를 피할수 있었을 것이니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
일본이 망했는데 왜 조선이 독립 해야 하는지? 조선이 자력으로 일본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 중국 등이 그리했다면 조선은 그들 새 주인의 속국 이 되는 것이라...
카이로회담 에서 조선의 독립을 천명할 때“적당한 시기”에 그리한다고 했던 것이니!
미국은 조선이 독립할 자격도 능력도 없으니 25년간 4대국 신탁통치 를 주장했으나...
미국의 경제적 능력 에 대한 두려움으로 소련이 이에 반대해 5년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한국인들이 격렬하게 반탁데모 를 벌여 4대국 신탁통치는 좌절되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독일처럼 신탁통치를 받아들였으면 경상도는 영국, 평안도와 황해도는 중국(장개석)
경기와 강원, 충청, 전라도는 미국이 맡고 함경도를 소련 이 나누었다면.....
전후 미,영,프랑스 신탁통치령이 서독 이 되고 소련령이 동독 이 되었던 것 처럼 한반도 도
그리 되었다면 김일성 이 함경도 하나를 밑천으로 6.25 를 일으킬 수 있었을까요?
이 죽고야 독립했고, 알제리 는 8년간 프랑스와 싸우면서 인구 10% 인 150만명이 죽고서야 독립했으며
인도 는 1차세계대전에 영국편에 서서 이라크에서 오스만투르크와 전투에 수십만 이 죽었으나 영국이
약속을 저버리자 2차 대전때 또 다시 영국편에서 일본군과 싸우는등 백만명이 죽고서야 독립했습니다.
우매한 상념에서 깨어나 운하를 걸어 호스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Den Haag HS
역으로 가서는 암스테르담 가는 기차에 올라 타는데....
돌아보니 헤이그 Den haag 는 네델란드 3번째 도시로 16세기에 네델란드 연방이 성립된
이래 국회의사당 이 설치되었으며 평화궁(국제사법재판소) 과 대사관 이 모여 있습니다.
도심에는 광대한 공원이 여럿 있으며 베아트릭스 여왕의 궁전과 하우스텐보스 등 볼거리가
많은데 헤이그는 영어식 발음이고 현지에서는 덴하그(백작의 울타리) 라고 부릅니다.
또 감자 튀김을 영어권에서는 프렌치프라이 라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프리츠 라고 부른다는
데, 일정이 하도 빡빡하여 마두로담 Madurodam 을 보지도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배낭을 메고 걸어서 Den Haag HS 역으로 가서 암스테르담 가는 기차에 올라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암스테르담 못미쳐서 스키폴 공항 Amsterdam Schiphol Airport 에 도착합니다.
암스테르담은 예전에 2번 이나 보았으니 3번을 계속해서 볼 필요는 없는지라 그만
여기서 귀국 비행기 를 타려는 것이지요!
중국 을 뜻하는 말로 원래는 거란족 이라는 뜻의 “키타이”를 항공사 이름 으로 사용하는
캐세이패시픽 항공 을 이용하는지라..... 도중에 홍콩에서 환승 해야 합니다.
14시 05분에 암스테르담 을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을 날았지만 시차가 7시간 있는
관계로 다음날 아침 인 10월 28일 07시 10분에 홍콩 첵랍콕 공항에 도착합니다.
배낭은 부산까지 부쳤으므로 홀가분한 차림새로 홍콩에 입국 해서는 환전 을 하고는
옥토퍼스카드 八達通 Octopus Card 를 구입해 To City 표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Customer Center 가 얼른 보이지 않기에 그냥 AEL 카드 Airport Express Line 를
100 홍콩 달러에 왕복으로 구입해서는 홍콩섬 으로 가는 기차 를 탑니다.
만약 구룡반도 로 가려면 옥토퍼스 카드 를 구입해 Air Bus A21 침사추이 행 이나
또는 S1 東通站 (뚱청) 행 을 타고는 종점에 내려 지하철 MTR 로 환승하는 데.....
침사추이로 갈거면 라이킹 역에서 환승하고, 구룡반도는 까우룽 스테이션에 내립니다!
우리 부부는 작년에 광주- 계림- 홍콩- 마카오 를 여행할 때에 홍콩은 아주 상세히
보았는 지라 이번에는 비행기 환승 대기시간 에 그냥 시간이나 보내려는 것이지요.
AEL 기차 는 공항에서 홍콩섬 센트럴 역 까지 23분에 주파하는데, 왕복에 호텔 무료
셔틀 버스를 운행하며 1시간 이내에 환승 하면 지하철 MTR 요금이 공짜 라고 합니다.
예전에 구룡반도의 침사추이 지역에서 민박집 에 묵고는 스타페리 를 타고 홍콩섬 으로
건너 와서는 IFC 빌딩 이며 웨스턴 마켓 을 구경했는데....
IFC 빌딩은 홍콩 제2 국제금융센터 라 불리는 88층 빌딩 으로 완공 당시는 높이가 세계
2위 였는데, 지금은 세계 6번째 빌딩으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이제 또 다시 세월이 흘렀으니 저 순위는 계속해서 내려 갑니다.
홍콩섬에서 동서로 운행하는 2층 짜리 아주 좁은 트램 City Tram 을 타고 코즈웨이베이
와 빅토리아 공원 이며 홍콩 컨벤션센터 및 완차이 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또 홍콩 공원 에서 편도 15HK$(왕복 23HK$) 하는 피크 트램 을 타고 8분만에 정상인
빅토리아 피크 에 이르러 홍콩섬과 바다 건너 구룡반도 를 구경한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지라 그냥 걸어서 가까운 홍콩 공원 으로 가는데,
홍콩은 좁은 길에 차량통행이 원활 하도록 하기 위해....
육교는 빌딩 사이에 다리 를 놓았으니 길을 모르는 사람은 빤히 건너다 보이는 반대편에
가기 위해서도 한참을 둘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홍콩공원 Hongkong Park 에 이르니 산중턱에 꽃과 나무 가 잘 꾸며져 있는데다가
자그만 연못 도 있고.....
더욱 분수 에는 어린아이들이 물장난에 재미 있어 하는 모습을 보는게 즐겁습니다.
공원은 언덕에 지어져 굴곡이 있는 것이 아기자기 한 데.... 언덕을 올라 식물원 에
들어 서면 각종 선인장 들이 참으로 볼만합니다!
다시 내려와 야자나무 를 지나면 1846년에 지어져 영국군 장교의 숙소 였다는 다기
박물관 도 볼만합니다.
예전에는 빅토리아피크 에서 내려와 밤 문화 가 발달된 젊은이의 거리 인 란콰이퐁 거리
Lan Kwai Pomg 蘭桂坊 를 걸으며 밤을 즐긴적 도 있다만.....
오늘은 그 입구에서 식당에 들어가서는 계란 후라이에 토스트와 소세지 그리고 커피
를 겻들여 간단히 점심 을 먹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걸어서 홍콩역 에 도착해서는 Airport Express Line 기차 를 타니 높은
교각 위를 달리는지라 홍콩의 경치 가 펼쳐지는 것이 참으로 전망 이 좋네요?
홍콩 첵랍콕 공항 에 도착해 14시 30분 CX 6898 캐세이패시픽 항공기 가 이륙하니 3시간
20 분을 비행하여 18시 50분 ( 시차 1시간 ) 에 부산 에 도착합니다.
이번 우리 여행은 항공으로 런던 으로 들어가서는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까지
영국을 한바퀴 돌고는 런던에서 저가항공 이지젯 으로 스페인 말라가 에
내려서는 세비야에서 마드리드, 리스본과 포르투등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일주 하고!
다시 스페인의 북서부 바스크족의 고향인 빌바오 에서 대서양을 따라서 프랑스 보르도 로
들어가 투르와 낭트, 앙제와 오를레앙을 거쳐 파리와 랭스를 보고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서는 기차로 브뤼셀과 헤이그 를 보는 한달간의 유럽여행 이 끝난 것 입니다!
첫댓글 저도 선생님과 한 달간의 유럽여행 즐겼습니다.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오랫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소한 추위에 몸 건강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