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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싸. 지.
240407낮 (딤후4:6-8)
<6)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아멘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6절)
구약성경의 제사법 중에서 전제를 말하는데, 이는 제단 위에 올려진 제물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말하는데(민15:1-10)... 제주를 붓는 행위는 희생제사의 마지막 의식으로 제물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라는 말은 바울이 복음사역을 위해 마지막 까지 바쳐질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순교가 임박했음을 알고 ..남은 자신의 생명을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 산 제물로 순교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죽음(순교)을 임박하게 앞 둔 상황에서 7절에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제목을 <마. 싸. 지.>라고 정했습니다. 요즈음은 첫 음만 가지고 말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잖아요.... <마. 싸. 지.>가 무슨 뜻이냐?
마...잘 마치고,
싸...잘 싸우고,
지...잘 지키고...
사도바울은 사도로서, 신앙인으로서 그가 살면서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해 보면서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한 말씀 중에서 마치고, 싸우고, 지키고의 첫 자를 따서 <마.싸.지.>라고 제목을 졌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울처럼 <마싸지>를 잘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럼 하나하나 그 의미를 알아볼 때 은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마치고(마)
7절입니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도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갈 길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이 땅에 보내셔서 각자가 사명대로 자기의 갈 길을 주셨습니다. 큰 사람이던 작은 사람이던 부자던 가난하던, 많이 배우던 못 배웠던, 각자가 자기의 갈 길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 길은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그 길을 잘 가고 마치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큰 복이요 보람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끝까지 잘 살고 가는 것이 큰 복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주님의 은혜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 다하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삶 다 사시고 인생을 마치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차가 레일(rail) 위를 달려야 하는데, 레일(rail) 위를 벗어나는 것을 탈선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갈 길이 있는데 이 길에서 벗어나 탈선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길, 자기 자리가 있습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자리에, 부모는 부모의 자리에,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자기 위치가 있는데, 우린 그 자리를 잘 지켜야합니다. 탈선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마가는 선교초기에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떠났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행13:13)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기 위치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성공적으로 갈수가 없습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자기 인생만 어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큰 불행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각자 자기의 위치를 잘 지킬 때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이 삶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로서 가야하는 길, 교회에서 맡겨주신 직분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44회 삼남연회 때(2024.4.3-4, 구미제일교회) 열 두 분의 목사님들이 은퇴를 하셨습니다. 8분은 70세가 되어 정년은퇴하시고, 4분은 65세가 되어 자원은퇴를 하셨습니다. 40여 년 동안 목회자로서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켰기에 천여 명이 모인 연회원과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영광스럽게 은퇴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사십년 가까이 어떤 분은 사십년 넘게 목회를 하시면서 얼마나 어려움들이 많았겠습니까? 그 모든 것을 다 견디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영광스럽게 은퇴하는 것을 보게 되어 감동을 받았습니다.
몇 년 전 은퇴하시는 목사님들 인터뷰한 내용을 영상으로 보여줬는데, 은퇴하시는 분들 중에는 감독을 지내진 분도 계셨고, 큰 교회 목회를 하신분도 계시지만, 평생 작은 교회를 목회하시다가 은퇴하신 분도 계셨는데, 그분이 마지막으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는 작은 교회에서만 평생을 목회 했습니다. 큰 교회 목회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때로는 큰 교회 목회가 부럽고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보내주신 곳에서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라고 말씀하셔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자기 위치를 잘 지키며 삽시다.
오늘 본문의 바울을 통하여 우리가 인생길을 잘 달려서 자기가 가야할 길을 가고 삶을 마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바울을 교훈 삼아 우리도 달려갈 길을 잘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각자가 가야할 길, 각자에게 주신 삶 잘 살고 잘 마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싸우며(싸)
다시 7절입니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싸움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인생은 치열한 싸움의 연속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생겨날 때부터 이 세상 태어나면서부터 병마와의 싸움, 공부와의 싸움, 입시전쟁, 취업전쟁, 생업투쟁, 세상이 모두 경쟁 속에서 싸움의 연속입니다. 싸움에는 선한 싸움도 있고, 더러운 싸움도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 판을 더러운 진흙탕 싸움이라고 합니다. 남을 죽이고 자기가 살려는 악한 싸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기는 죽어도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을 살리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험과 죽음과 칼과 온갖 핍박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인생이 어짜피 싸움이라면 우리는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다 가야하겠습니다.
선한싸움에는 자신의 옛사람과 속사람(새사람)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속사람의 승리를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롬7:22-24절입니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은 자기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죄를 짓게 만드는 다른 법이 하나님의 법대로 살고자 하는 속사람과 싸운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괴롭다고 말합니다.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합니다.
이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하나님 법을 지키며 살려고 부단히 애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인생이 뒤 흔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 자체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분을 단 한번이라도 만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 역사가 B.C.와 A.D.로 갈라졌듯이, 우리 인생도 B.C.와 A.D.로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 만난 사람은 예수 믿기 전과 이후가 절대로 같을 수가 없습니다.
결혼 전과 결혼 후가 다르듯이 말입니다. 만일 결혼하고도 이전과 똑같다면 그 가정은 곧 파탄을 맞을 것입니다. 총각으로 살았던 나, 처녀로 살았던 나, 독신으로 살았던 나를 죽이고 전혀 다른 우리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가정은 곧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듯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가 똑 같으면 그 믿음은 곧 파선하고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아르놀트 반 게네프>라는 학자는 ‘통과의례’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입니다. 그는 수많은 인생을 지켜보면서 인생에는 반드시 거쳐야할 중요한 고비들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출생과 결혼과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통과의례’는 공통된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과거와 단절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혼자 살던 시절과의 단절되는 통과의례입니다. 알을 깨고 나와야지 전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지 알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그 모양 그대로 죽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서 단절은 어떤 의미에선 죽음을 의미합니다. 크리스천은 이전의 내가 죽지 않으면 절대로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천이 되려면 이전의 나와 단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믿고 과거와 단절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방해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영적세계의 신비이고 믿음의 비밀입니다.
술집이나 다니고 도박에 빠질 때에는 가만있지만, 예수를 잘 믿어 보자 하면 절대로 가만두질 않습니다. 주일에 골프 치러 갈 때는 잠잠하다가도 골프대신에 예배드리고 교회가려고 하면 이 정체불명의 영적 존재가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새벽예배 나가자 결심해 보십시오. 새벽에 교회 못나갈 일이 열 가지도 더 생깁니다. 이때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입니다. 이때야 말로 제대로 가고 있다는 신호이므로 기뻐해야 합니다. 곁길로 가면 상관없다가도 바른길로 가려면 딴지를 걸고, 바지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제대로 믿어 보려하면 어려운 일이 더 생깁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결단하면 못 지킬 일이 끊이질 않습니다. 금식기도 하려고 하면 꼭 식사 약속이 생깁니다. 십일조생활하려고 하면 꼭 생각지 않았던 지출이 생깁니다.
내가 믿음생활 제대로 하지 않는데도 별일이 없으면 그것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믿음생활 하려하는데 어려운 일이 끊이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신호로 알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흔히 종교를 바꾸면 집안이 망한다고 경계합니다. 그러나 집안이 완전히 망하더라도 구원 받는 것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급선무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아무리 위험해도 우리는 그 세계로 영행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서강대 교수였던 장영희교수님이 계셨는데(암으로 소천), 이분이 어린 시절 집 앞에서 울고 있는데...엿장수아저씨가 엿을 한 가닥 주면서 “울지마 괜찮아”라고 말해주시더래요...그래서 이분이 이 말에 힘을 얻어서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 뉴욕주립대학에서 영문학박사학위를 받고 서강대 교수를 하셨는데...목발을 집고 다니며 학생들을 잘 가르치셨고, 그분이 지은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살아온 것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적이다. 앞으로 살아갈 것도 기적이다>(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는 말을 했습니다. 너무나 은혜가 되고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선한싸움을 싸우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지켰으니(지)
다시 7절입니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또 한 가지는 바울은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바울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생을 마치려는 시점에서 바울은 믿음을 끝까지 지킨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시대에는 박해시대라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딤후4:10절입니다.
<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마는 바울과 함께 복음 전하던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이 2차 투옥 때 바울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나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고난을 피하기 위해 신앙마저 버리게 된 것입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했다고 말씀합니다. 데마처럼, 아무리 큰 은혜를 받고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로 열심히 사역을 했을지라도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결국은 신앙마저 팔아먹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세상(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을 끝까지 지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그의 인생여정을 뒤돌아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올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적대자들의 핍박과 방해, 그리고 동역자들의 배신 등 바울을 곤란하게 하던 일이 많이 있었지만, 주님께서 늘 그와 함께 하사 힘을 주시고 강건하게 하셔서 끝까지 산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가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큰 믿음이 있는가 하면, 작은 믿음이 있습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는가 하면, 작은 돌 하나도 옮기지 못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있는가 하면,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산 믿음이 있는가 하면, 죽은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 있는가 하면, 사람 중심의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있는가하면 세상을 더 사랑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믿음, 끝까지 지켜야할 믿음은 큰 믿음요,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요, 산 믿음이요,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 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믿음 가진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눅18:8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마지막 때는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는 실제로 믿음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믿음을 바로 가져야 하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웃푼 예화 하나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영국의 한 도시에, 교회와 술집이 맞붙어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도 종종 떠드는 소리와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사님은 교회 옆의 술집이 문을 닫게 해달라고 모든 예배를 드릴 때마다 성도들과 합심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로 몇 달 뒤에 술집은 손님이 점점 줄어서 문을 닫았고 말았습니다.
평소 교회에서 술집이 문을 닫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을 알았던 술집 주인은 교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 졌습니다.
술집 주인은 목사와 교인들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술집이 망했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우리가 기도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설마 기도 때문에 술집이 망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판사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답니다. “술집이 망한 이유를 떠나서 일단 술집 주인의 믿음이 목사의 믿음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알았다" 라고 했답니다.
본문7절입니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마. 싸. 지>합시다.
마...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 다가고 잘 마치고,
싸... 믿음의 선한 싸움 영적 싸움 잘 싸우고,
지.... 끝까지 믿음을 지킵시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에게 예비 된 의의 면류관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