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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은 본능적으로 구원을 사모합니다.(행16:16-34)
2025, 1/26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6:16-34절 말씀으로 “사람은 본능적으로 구원을 사모합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이번 주간이 설 명절 주간입니다. 매년 명절이 돌아오면 어릴 때처럼 막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명절이 되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뭔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연휴가 길어서 고향에 먼저 간 이도 있고, 또 갈 분도 있는데, 오고가는 길 안전운전 하시고, 즐겁고 기쁜 명절들 되시기 바랍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속의 갈망 때문에 전도자를 찾고 있습니다.(30절)
둘째로, 어떻게 구원 받을지는 온 인류의 공통된 질문입니다.(30절)
셋째로, 한 사람으로 인해 가족전체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31절)
사랑하는 여러분!!!
어제부터 실제적으로 명절이 시작되었는데 이번 설에 저는 역 귀성하려고 합니다. 주호가 2주 전에 논산으로 이사해서 집도 볼 겸 겸사겸사 갔다 올 예정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에게 설 명절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 가지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믿지 않는 부모형제와 친척들을 일깨워 구원으로 인도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고향을 가면 분명 여러 담소를 나눌 것인데 그때 기회를 보아 교회에서 있었던 좋았던 일이나,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결과를 부정적으로 예단하면 시작 자체가 어렵고, 너무 긍정적으로 예단하면 실망할 수 있으니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고 그냥 전하시면 결과가 좋든 안 좋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설 명절은 가족들을 만나 기쁨도 나누고, 복음도 전하고, 모든 것이 잘되고 형통한 설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사람들이 왜 본능적으로 구원을 사모하며 갈망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속의 갈망 때문에 전도자를 찾고 있습니다.(30절)
본문 3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아멘.
사도바울일행이 점치는 여종의 주인들에 의해 고소를 당했고, 안 죽을 만큼 맞은 다음 빌립보의 감옥에 갇힙니다. 바울과 실라가 고문을 당해 몸이 만신창이가 됐음에도 그날 밤 그들은 하나님께 찬양하며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그동안 반응도 없고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던 하나님께서 그들의 찬양과 기도를 들으셨고, 드디어 이 사건에 직접 개입하여 지진이 일어나고, 손발에 채워진 착고를 풀며, 감옥 문이 열리는 이적을 나타납니다. 이런 걸 봐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없고 무관심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듣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응답이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될 때까지 기도하시고, 또 내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와도 그게 나에게 최상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합니다. 마7: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어두운 감옥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자 제일 놀란 것은 간수였습니다. 죄수가 탈옥한 줄 알고 자결을 하려하자 바울이 급하게 막았는데, 간수가 감격해 자신이 어떻게 하면 구원 얻을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소리를 들었고 그로인해 이런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난 걸 알고 있던 간수가 바울일행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구원 얻을 수 있는지를 물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간수에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구원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구원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 사람을 생령으로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창2:7) 그래서 사람을 영적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도 다 경험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자기도 모르게 신을 찾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다른 신을 찾겠지요. 아니면 이신 저신 다 찾던가.
북한은 기독교를 원체 핍박하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이 탈북과정에서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았던 하나님을 찾았다는 간증을 많이 합니다. 저는 이 말이 이해가 됩니다. 왜냐면 전3:11절에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인간의 탐욕과 정욕으로 통제되어 밖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입니다. 롬1: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이렇게 마음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오늘 간수처럼 또는 탈북자들처럼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갈망하는 저들의 속사람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어야합니다. 그러니까 저들은 우리의 전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파수꾼은 스스로 깨어있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깨울 수 있어야합니다.
사무엘은 사사시대의 영적암흑을 깨웠고, 세례요한은 신구약 중간시대의 영적암흑 시대를 깨웠습니다. 에스겔에게도 "나를 대신하여 저들을 깨우라"고 말씀하시며, 만약 깨우지 않으면 그 책임을 파수꾼에게 묻겠다고도 하셨습니다.(18-20절)
또 3:11절에는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하라." 말씀하셨고, 딤후4:2절에서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안 듣든지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3장은 복음을 전할 때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민족에게 가서 전하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족속에게로 가라는 말씀을 5번이나 하시는데, 복음을 가까운 가족 친척 친구들과 이웃과 직장 동료들에게 먼저 전하라는 뜻으로 보면 됩니다.
이렇게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전하는 것을 관계전도라 하는데, 이 관계전도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잘 알고 있어서 나를 보면서 복음을 받을지 안 받을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의 영혼을 깨우는 것은 말보다도 우리의 거룩하고 본이 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깨어있어야 하고,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삶일지라도 바울과 실라처럼 낙심하지 않고 기쁘게 찬송하며 사는 것을 이웃들에게 보여준다면 우리는 그들 속에서 잠자는 영혼을 깨울 수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밀어내고 복음을 거절해도 그의 영혼은 우리의 전도를 갈망합니다. 오늘 빌립보간수도 하나님의 기적이 잠자던 그의 영혼을 깨웠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것입니다. 다만 그 방법이 바로 입술을 포함해 선한 삶이어야합니다. 이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어떻게 구원 받을지는 온 인류의 공통된 질문입니다.(30절)
본문 3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아멘.
죄수들이 도망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자결하려했던 빌립보 간수가 너무도 의연하고 초연한 바울과 실라를 보고 깜짝 놀라 그들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와 묻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지금 이 간수는 구원의 방법을 묻는 것입니다. 마치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내가 어찌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던 상황과 같습니다. 이처럼 구원에 관심을 갖고 구원의 방법을 묻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인 관심이고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사람들은 왜 이렇게 구원에 대해 본능적으로 관심이 있을까요?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영적존재라서 그런 겁니다. 그래서 어떤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구원을 바라는 강렬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고집과 편견으로 하나님을 피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건 자기를 속이는 기만입니다.‘나는 구원 그런 거 몰라. 신은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정말 목숨이 경각에 달린 급박한 상황이 오면 본능적으로 신을 찾고, 구원을 찾는다는 겁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빌립보간수가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인류는 오늘 간수처럼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이 질문 때문에 만들어졌고, 나름대로 선행이나 명상이나 고행, 그리고 오늘날에는 과학 같은 것을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과연 이런 것들이‘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이 만든 종교에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인간을 만들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가능해집니다. 다시 말해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구원 얻을 방법을 말하고 있는데도 마치 빌라도의 법정에서 학식과 덕망 높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막혀 못 알아듣는 것처럼 못 알아듣습니다. 요14:6절에는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 하셨고, 행4:12절에는 예수 외에 구원 얻을 다른 길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 외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잘 돌봐줘야 합니다.
세속종교도, 과학도 결코 인간구원의 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헛된 것을 구원의 길로 알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는 것을 볼 때 실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의 길을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묻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줘야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계시와 성령의 조명으로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복음으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며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명쾌하게 답을 해주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한 사람으로 인해 가족전체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31절)
본문 3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아멘.
본문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는 간수의 질문에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대답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리를 좀 당황하게 하는 것은 구원은 개인의 신앙고백으로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얻는 것인데, 바울은 한 사람이 예수 믿으면 가족전체가‘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은 가족 중 누구 하나가 주를 영접하면 가족전체가 자동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구원의 가능성과 관련성을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가족 중에 가장 한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그 가족전체가 예수 믿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가장의 권위가 별로라서 이 내용이 깊이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가장이 가족의 생사여탈권을 가질 만큼 절대적이라서 그런 가장이 예수를 믿으면 가족 구성원들이 전부 믿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오늘 빌립보 간수는 가장입니다. 그가 예수를 믿자 그의 가족전체가 믿게 되었는데, 마치 가이사랴의 백부장이 예수를 믿자 그의 온 식솔들이 다 예수를 믿은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오늘날도 비록 가장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지만 가장이나 가족 중 한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그로 인해 가족 전체가 예수를 믿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집니다.
가족 중에 하나가 예수를 믿으면 끊임없이 복음을 말할 것이고, 거기다 변화된 모습까지 보여준다면 가족전체는 큰 영향을 받아 결국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먼저 믿은 사람은 그 가정에 뿌려진 구원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가정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 가정의 구원의 씨앗인 줄 알고 더더욱 언행에 있어서 가족들에게 본을 보여야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먼저 믿는 자는 온 가족을 구원으로 이끌 수도 있고, 반대로 아예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특히 명절에 믿지 않는 가족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시겠죠? 하나님이 나를 먼저 내 가정에 선교사로 보내 주신 것으로 알고,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참 많은 노력을 하셔야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고난은 필수적입니다. 아니 복음전파 자체가 고난입니다.
바울일행이 빌립보에서 많은 복음의 결실을 맺었는데, 이런 결실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매를 맞고 차디찬 감옥에 갇히는 등의 고난을 통해서 얻어졌습니다. 세상일도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얻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도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든, 가족들에게 전하든 그냥 쉽게 되어지지 않고 거기에 그만한 고난과 어려움이 따른다는 걸 생각하며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이기고 나가면 온 가족이 구원을 이룰 수 있고, 나의 이웃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으니 충분히 해볼 만 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복음도 전하고, 신앙생활도 잘 해나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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