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성경적 실천의 현장과 클레로스(282) – 사도들의 실천과 클레로스(261) – 고린도전서 강론(5)
고린도전서 강론(5) – 4장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할 위치에 있는 고린도 형제들이 판단을 내린 결과로서의 당짓기 (4:1-7)
사도 바울은 고린도 형제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것을 선언을 하는 우리를(3:22-23)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대언하는 청지기로서 여겨야 하며, 그 청지기들이 신실한 자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이 신실하게 변화되고, 실제로 신실한 삶을 살게 되었는가를 잘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는 고린도 형제들이나 세상 사람들에 의해 판단을 받는(아나크리노의 수동태)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며, 나 또한 나 자신을 판단하지(아나크리노)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내가 의롭다고 인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판단하시는(크리노)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은 의로운 자로 재창조되고 점점 더 의로운 자로 변해 가는 것이다.(칭의 구원은 옛 언약의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을 내리지(크리노)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지금 그대들은 판단을 내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주께서 오셔서 어둠 속에 감추어진 것들을 밝히시고 마음속에 의도들을 드러내실 때에 각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임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판단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 당이 갈라져 있는 문제 때문이다. 그것이 판단에서 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판단의 연속이며, 판단 없이는 삶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결론은 눈에서 들보가 빠지면 그때 판단하라는 것이 결론이다.(마7:1-5) 영에 속한 자가 되어야 판단하라는 것이다.(고전2:15) 즉 정확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 예수님의 결론이다. 판단하면 안 되는 자들이 판단을 내린 결과물이 지금도 기독교 교단이 갈라지고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당이 갈라지는 일에 그대들을 위하여 자기와 아볼로를 적용시켰으니,(그래서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한 것이니) 이는 그대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배워 기록된 것을 넘지 않을 것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즉 허락되지 않은 것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 돌아봄으로써 그대들이 당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대적하면서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상적인 인간은 유불리 판단과 호불호 판단이 각각 달라서 무엇을 해도 패가 갈려 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고린도 형제들이 하나님을 쳐다보지 않고 당이 갈라져 정상적인 인간들처럼 서로 최종 판결한다는(디아크리노) 것이 말이 되느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하나님께로 받지 않고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처럼 착각하고 어떻게 서로 싸울 수 있느냐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4:7 누가 그대를 판결합니까(디아크리노) 그대가 가진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받은 것을 어찌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아나크리노 : 판단하려 들다, 판단하기 위해 자세히 조사하다(4:3,4) 즉 판단을 위해 가는 과정을 의미
크리노 : (그 결과) 판단을 내리다(4:5)
디아크리노 : (최종적으로) 판결하다(4:7)
고린도 형제들에게 나를 본받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하는 사도 바울 (4:8-21)
사도 바울은 고린도 형제들이 뭐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벌써 풍족해져서 우리를 떠나 왕도 아닌 자들이 왕인 것처럼 설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싸움박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대들이 왕의 자격을 갖추어 우리도 그대들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도들을 사형 언도를 받은 자들처럼 가장 낮은 곳에 두시고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성한 자들은 왕 노릇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불합리한 자들인데 그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자들이며, 우리는 유약하나 그대들은 강하고, 그대들은 영광을 누리나 우리는 경멸을 받는다고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굶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얻어맞으며, 머물 곳이 없으며, 우리 손으로 일을 하며 지쳐 있고, 욕을 먹으면 축복하고, 박해를 받으면 참아내고 모욕을 당하면 권면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마치 온 세상에 오물처럼, 만민의 쓰레기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쓰는 것은 그대들을 조롱하려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자녀들 같이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인 우리는 세상에 구경거리가 된 자들인데 어떻게 그대들은 거꾸로 가고 있느냐고 반어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수많은 길잡이들이 있을지라도 아버지는 흔치 않으니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대들을 낳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에게 나를 본받는 자들이 되기를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자기가 잘났다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우리처럼 성장하게 되는 자들이 되기를 간곡히 권면하는 것이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대들에게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며 주안에서 진실한 디모데를 보내니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나의 삶을 그대들에게 상기시켜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 그대들 안에 어떤 이들이 마치 내가 그대들에게 가지 않을 듯 자랑하고 있으나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속히 그들에게 가서 자랑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닌 능력을 알아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 속에 있지 않고 진리의 삶을 사는 능력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진리의 삶을 사는 능력이 발휘되면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진리의 삶을 살아가는 나라인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그대들이 무엇을 원하느냐고, 내가 막대기를 가지고 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사랑과 온유한 영(프뉴마)을 가지고 가기를 원하는지 고린도 형제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연동흠 형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