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예화/ 로뎅의 '칼레의 시민'동상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
조각가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칼레의 시민>
로뎅의 조각품인 '칼레의 시민'동상은 '가진자의 책임',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직역하면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뜻이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으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 정신에서 비롯된 말) 의 표상이다.
이 동상의 배경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1337~1453)에서 부터 유래한다.
말이 100년이지 전쟁의 승패를 알기 위해서는 4, 5대에 걸쳐 유언이 전해져야 했으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이다.
소위 100년 전쟁이 한창일 때 잉글랜드는 프랑스 영토인 크레시(Crecy)전투에서 크게 승리했다.
여세를 몰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는
1346년 9월 프랑스의 칼레(Calais) 항과 성을
완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도버 해협에 면한 칼레 시민들은
튼튼한 성채 안에서 포위한 영국군을 상대로
무려 1년 가까이 처절한 저항을 계속했다.
그러나 성채 안의 모든 양식이 떨어지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사라졌다.
이에 프랑스 칼레 시에서는 사자를 보내
잉글랜드에 항복을 전하며 칼레 시와 시민에 대한
관용을 요청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칼레 시 때문에
고생한 에드워드 3세가 거절을 통보했다.
"칼레의 시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겠다!"
칼레 시는 영국 왕에게 여러차례 사절을 보내
제발 생명만은 살려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러자 왕의 측근인 월테 머네이 경이
패자에 대한 관용을 간절히 청했고,
이에 왕은 칼레의 항복을 수용하되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좋다. 그러면 시민들의 목숨은 보장 한다.
그러나 그동안 영국군을 애먹인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영국 왕은 시민 대표 6명을 뽑아 보내면
그들을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으며,
대신 다른 시민들은 살려주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6명이 그들을 대신해 죽어야 한다니..
누군가는 나서야 했지만,
아무도 목숨을 버리려 들지 않았다.
그때 칼레에서 가장 부자며 지도자였던
유스타슈 생 피에르가 죽음을 자처했다.
"칼레의 시민들이여, 내가 나서겠소!
나오라. 용기를 가지고."
그러자 시장도 나섰다.
상인도 나섰고, 그의 아들도 나섰다.
죽음을 자처한 사람이 모두 일곱 명이 되었다.
한 명은 빠져야 한다고 했지만
모두가 죽음을 자처하며
칼레시민을 위한 희생을 자처했다.
생 피에르는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내일 아침 장터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도록 하자"
모두가 이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이 되자
서로가 앞다투어 장터로 달려 나왔다.
여섯명이 다 모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가장 먼저 죽음을 자처했던
생 피에르가 오지 않았다.
그는 반드시 나올 사람이었기에 이상했다.
그의 집으로 달려갔더니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혹시라도 살기를 바랄 마음이
모두의 마음속에 꿈틀거릴 것을 우려한 그가
솔선수범하여 목숨을 먼저 끊은 것이다.
이에 남은 여섯 명은 생 피에르의 희생에
자기들 또한 칼레 시민들을 위한 희생의 자리로
담대히 나아갔다.
머리에 동아줄을 매고 허리에는 끈을 맨 후
항복의 표시인 칼레 시의 열쇠를 들고
에드워드 3세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와 그 곁에 있는 교수대였다.
생 피에르와 이 여섯명의 희생적 모습에
마침 임신 중이던 에드워드 3세의 왕비 필라파 드 에노가 자신의 뱃속 아기의 안전한 출산을 위해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을 남편인 왕에게 간청했다.
이에 왕은 허락했고 여섯명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칼레 시민 모두의 생명도 구하게 되었다.
결국 칼레시에서 가장 많이 가진자였던 유스타슈 생 피에르 한 사람의 희생과 여섯명의 목숨을 건
용기가 적의 수장까지 감복시켜 칼레시민 전체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끝났다면 칼레 시란 이름은 역사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칼레시의 영웅적 이야기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유명한 조각가 로뎅의 작품 때문이었다.
생 피에르의 희생으로 칼레시민이 구출된
이 사건이 있은지 544년이 지난 1890년 경
칼레 시민들은 칼레의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조각가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에게
이 위대한 칼레의 영웅들의 동상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였다.
그리하여 2년여의 작업 끝에 완성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칼레의 시민> 동상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영국에서도 프랑스 칼레가 비록 적이었지만
그토록 용감했던 칼레의 일곱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1913년 로뎅의 <칼레의 시민> 작품을 본떠서 런던의 국회의사당 정원에도 <칼레의 시민>청동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