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루스 베네딕트 / 임윤식,오인석 / 을유문화사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돌아다니는 뉴스를 크게 신뢰하지 않고, 들려오는 정보는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머리에 담아두지 않게 되었다.
뉴스를 포함하는 정보들도 마치 입을 즐겁게 하는 패스트푸드와 같아서 당장에는 맛있고 먹음직스럽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결코 몸에는 그리 좋지 않은 것처럼 걸러지지 않은 정보는 나의 바람직한 판단을 방해한다. 시간을 두고 추적하다 보면 전달받은 정보들 그 자체가 하나 둘씩 상반되는 경우가 나의 눈에 도드라져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보를 생산한 곳의 의견이 아무런 해명 없이 180도 달라진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경우는 더욱 그렇다.
매스미디어가 전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내게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가! 불쑥 떠오른 생각이다. 우리는 일본에 대하여 마치 원죄와 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처지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대한국민이라면 모두 같은 입장일 것이다. 역사적인 관계는, 연도를 또박또박 이야기할 수는 없을지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두 안다. 최소한 우리 또래는 그렇다. 그런데 왜 지금 일본인/일본문화/일본국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할까? 나는 일본과 외교/경제/문학 등의 분야에서 관련이 거의 없다. 일본 소설 한 두 작품, 일본산 자동차나 전자제품, 지브리 애니메이션 등 적지 않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공부를 요할만큼의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으며, 딱히 깊은 관심은 없다.
한 가지 읽어야 하는 이유를 대라면...
누가 나에게 일본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전할 때 속지 않기 위해서 일까.
참 거지 같은 이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책을 읽으며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묻는다.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기에 읽지 않을 수 없다. 흉내라도 내어야 하므로 힘들게 책장을 넘긴다. 그렇다고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책이 그렇듯이 전혀 쓸모없는 책은 없다. 이 책에도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나는 여전히 일본에 대해서 모른다. 한 권 읽었다고 앞으로 아는 척할까 봐 그것이 두렵다.
신뢰가 무너졌다.
강을 막는다. 배가 학생들을 태우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녹아내린 후쿠시마 원전의 냉각수를 방류한다. 우리 사회에 커다란 이야깃거리가 던져진다. 전하는 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꼭 이해해야 하느냐고?
전문가들의 말은 신뢰하지 못하겠고, 뉴스에서 전하는 말들은 걸러야 할 필터가 필요하고, 정부 기관들의 행보는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 집단의 종업원처럼 목줄을 잡은 자의 의지에 따라 갈팡질팡한다.
왠지 그런 이유로 내 앞에 놓은 것 같아 이 책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어찌 나에게까지 왔느냐!
* * * * *
온(恩), 주(忠), 고(孝), 기무(義務), 기리(義理), 진(仁), 인정(人情) ....
교회에서도 약간의 맥주가 나오고,
우리의 영혼을 데워 줄 즐거운 불이라도 있다면,
우린 온종일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고 기도드리기도 하면서,
교회를 빠져나와 방황하려는 생각은 갖지 않을 텐데.
If at the church they would give us some ale,
And a plesant fire our souls to regale,
We'd sing and we'll pray all the livelong day,
Nor ever once fom the church to stray.
-William Blake
- 1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