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아픈 자의 기도 》
시 6:1~10
〈 울면서 살아야 하는 인생 〉
저는 살면서 볼 수 있었는데, 못 봐서 섭섭한 장면들,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못 봤어요!
두 자녀가 태어날 때, 그 당시는 병원 분만실에 아빠는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래서 못 봤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하고, 아이들에게도 미안합니다.
두 손주가 태어날 때도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때도 못 봤습니다.
아내가 먼저 가서 지켜봤고요, 둘째 손주 때는 집에서 큰 손주 보라고 해서…
기회가 네 번 있었는데, 한 번도 못 봤어요!
아, 슬퍼요!
요즘에는 남편이 아내 뒤에서 붙잡아주고 분만하는 경우도 있던데, 저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꼬치꼬치 물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아내가 한 대 쥐어박을 것 같아서 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산부인과 분만실 풍경, 메스컴에 잠깐씩 나오는 것으로 대체합니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울어야 한다면서요?
만일 아이가 울지 않으면 의사가 엉덩이를 찰싹 때려서라도 울게 한다면서요?
엄마 뱃속에서 세상에 나왔는데, “가장 먼저 할 것이 우는 것이다!” 이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가장 먼저 할 것, “울어라! 울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울면서 세상살이를 시작합니다.
웃음은 며칠 지나야 합니다. 방긋방긋 웃는 일은 나중 일입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 “웃는 것이 아니라 우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왜 이렇게 섭리하셨을까요?
“울어라! 울면서 살아라! 울면서 살아야 한다!”
떠오른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왕 다윗의 고난과 질고 〉
오늘 설교 제목을 보십시오! 《 아픈 자의 기도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울어라!”를 맨 먼저 주문하셨습니다.
울면서 살아라, 울면서 살아야 한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위로를 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설교 제목 《 아픈 자의 기도 》사실은 우리 모두의 기도입니다.
☞ 여러분도 아픈 자이고, 설교하는 저도 아픈 사람입니다.
시편 6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다윗도 아픈 자입니다. 우는 자입니다. 애통하는 자, 다윗입니다.
성경에 다윗이 어떤 질병이 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시편 6편을 보니, 다윗이 많이 아파요!
(2~3절)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 이는 육체의 아픔입니다.
“나의 뼈가 떨리오니” 수척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아픔이지만, 뼈까지 떨린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심신이 아픈 것뿐 아니라, 영혼까지 흔들린다고 고백합니다.
심신이 병들었습니다. 멘탈이 흔들립니다. 불안합니다.
여기에 영혼까지 매우 떨린다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픈 자의 기도》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건강하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입니다.
사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인생을 보면 얼마나 굴곡이 많습니까?
한 나라의 왕위에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합니다.
현대도 그렇지만, 고대 시대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고대 시대 왕은 전쟁의 선봉에 서야 합니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폼만 잡고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육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칼을 쓰고, 활과 창에 능해야 합니다. 말도 잘 다뤄야 합니다.
여기에 다윗의 가정사는 또 얼마나 참혹합니까, 왕자의 난이 일어나 서로 죽입니다.
아들 중 압살롬은 아버지를 밀어내고 자기가 왕위에 오릅니다.
☞ 다윗의 육신이 무쇠같이 단단하다? 그러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입니다.
〈 독서 목욕 〉
다윗은 시인입니다. 아주 탁월한 시를 썼습니다.
오늘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 다윗 곁에 감히 근접도 못 합니다.
요즘 작가 한강이 한국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그의 작품을 열독하고 있습니다.
‘독서 목욕’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저도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요즘 한국인들 목하 독서 목욕 중입니다.
한강의 작품에 뼈져서 지내는 중입니다. 한강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작가 한강이 매우 많이 아파하고 있구나!” “한강이 아픈 자이구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예술가로서 한강은 자기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광주 5월로 아파합니다. 제주 4.3으로 아파합니다. 이것 뿐이 아닙니다.
자전적 소설인 「흰」을 읽고 있습니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 낳은 지 2시간 만에 죽은 언니 이야기를 합니다.
그 언니가 있었던 그 태에서 자신이 잉태되어 태어났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것이 뭐 어때서? 하고 잊어버립니다. 애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2시간을 살고 간 생명을 깊이 애도합니다. 아파합니다.
우리가 아파해야 할 것들, 꺼내기 시작하면 한이 없을 겁니다.
누군들 작가 한강만큼 아프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그 아픔을 그냥 넘기지 않아요!
꺼내서 “아프다”라고 소리칩니다.
마치 분만실에서 태어나 “응에응에~”하고 울었던 그 때처럼 계속, 쉬지않고 울어요!
예수 믿는 우리! 예수 믿고 평강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주신 평강으로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받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산다고 살아가는 중에 ‘노벨문학상!’
하나님이 한국의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도록 섭리하신 은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너무나 희희낙락하면서 산다. 기쁘고 행복한 것은 좋지만, 아픔도 느껴라!”
저는 요즘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시편을 텍스트로 시리즈 설교하는 중에 마침 6장을 만났습니다.
☞ 시편 6편은 《 아픈 자의 기도 》입니다.
〈 평안의 저변에 깔린 아픔들 〉
제가 아까 ‘독서 목욕’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책 읽기로 심신의 때를 벗겨낸다는 뜻입니다.
독서 목욕하는데, 우리는 지금 어떤 때를 벗겨내야 하겠습니까?
작가 한강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 믿는 우리는 ‘나도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 믿었다고 작가 한강이 느끼는 아픔을 면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 한강이 느끼는 아픔들, 예수 믿어도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 아픔들을 어떻게 하고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평강을 누려야 하겠습니까?
☞ 어떤 이들은 착각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아프지 않고 날마다 기쁨과 감사만이 차고 넘친다!”
틀리지 않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픔은 외면하고, 기쁘고 좋은 것만 생각하는 것이 감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픈 중에, 고난과 질고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답을 들으니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상처를 싸매주시고, 위로해 주시니, 감사입니다. 할렐루야~
다윗의 믿음, 다윗의 하나님 사랑, 우리는 그 언저리에도 못 미칩니다.
그렇게 믿음이 뛰어난,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도 자기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숨기지 않습니다.
☞ 다윗과 작가 한강, 공통점과 상이점이 있습니다.
아픔과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이점은 뭘까요?
다윗은 자기의 고난과 질고를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작가 한강은요?
작가 한강의 문학적 특성은 “신화적이다”라고 평론가들이 말합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거기서 주인공은 나무가 되고자 합니다.
주인공이 어린시절 아버지가 키우던 개를 잡아서 온 가족이 함께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개를 어떻게 잡았습니까? 오토바이에 매달이 개가 죽을 때까지 달립니다.
그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렇게 죽은 개를 잡아 보신탕을 끓여 온 가족이 먹습니다.
또 아버지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걸핏하면 얻어맞으면서 자랐습니다.
주인공은 이러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벗어나 나무가 되고자 합니다. 나무가 되고자 하는 주인공 이야기가 채식주의자입니다.
‘사람이 나무가 되려 한다.’ 이것이 신화적이라는 것입니다. 신화를 바탕으로한 작품입니다.
인간 실존의 참담함에서 벗어나 죄와 폭력이 없는 나무의 세계로 회귀하겠다는 주인공!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바로 이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 인간 세계의 트라우마, 신화로 벗어나느냐, 살아계신 하나님이 벗겨주느냐?
〈 다윗의 탄원 〉
작가 한강은 작품을 집필하면서 우는 날이 많았다고 고백합니다.
울면서, 울면서 책을 집필합니다. 그런데 다윗은요?
(6~7절)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다윗이 아파하는 것은 작가 한강보다 더 처절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한강보다 훨씬 더 아파하면서 시를 씁니다.
다윗은 아파하는 중에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작가 한강은 아파하는 중에 ‘신화’를 염두에 둡니다.
그에게 아직은 주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강의 책으로 ‘독서 목욕’을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한강 작가도 신화로 답을 찾지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탄원하면 좋겠다!’
☞ 다윗의 시는 어떻게 결말을 맺습니까?
①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다.(8절)
②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다.(9절)
③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신다.(9절)
사람들은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성경은 이러한 신화를 “허탄하다”라고 선포합니다.
딤전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구약시대 믿음의 자손 다윗, 일찌감치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그의 탄원을 들어주시고, 기도를 받아주십니다.
☞ 아픈 자의 기도, 이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신 줄 믿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합니다. 아픈데 안 아프다고 시침 딱 떼면, 큰일 납니다.
울고싶을 때는 울고, 소리지르고싶을 때는 소리 지르십시오!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