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관객 일천만 돌파에 즈음하여
지난 2월 22일에 개봉한 영화 ‘파묘’가 한달 만에 일천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한국은 인구 오천만의 나라입니다. 일천만이 영화를 보았다면 인구 다섯 명 중에서 한 명이 보았음을 의미합니다. ‘파묘’가 일천만을 동원했다니 대단합니다.
파묘는 흔히 말하는 ‘오컬트 영화’로서 미스테리한 사건을 다룹니다. 풍수사가 등장하여 조상 무덤의 길흉을 진단하고 무당은 푸닥거리를 합니다. 그리고 한 무덤을 파냅니다. 거기서 나오는 ‘험한 것’이 스토리를 이어갑니다. 한 마디로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를 다룹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일천만 관객을 넘어섰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한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본 영화라면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거기에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다수결을 좋아합니다. 다수가 선택한 길에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그 길을 따릅니다.
‘파묘’를 만든 장재현 감독이 언론에 나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혼”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영혼이 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취향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로 찍어서 일천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감독이 ‘영혼’의 존재 유무에 대한 아무런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있었으면 좋겠다는 애매모호한 생각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관계가 아닌데 사람들이 환호합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하면 상대방의 반응은 ‘정말 하나님이 있습니까?’입니다. 정말 있다면 믿겠다는 반응을 드러내는데, 유령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실토하는 감독이 만든 영화에는 환호합니다.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 델포이에 있는 신전에 적힌 글귀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자주 인용하여 유명해졌습니다. 이 한 마디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사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데, 그것을 바탕으로 알아가기 시작했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것과 똑같습니다. 알파(시작)를 모른다면 오메가(끝)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나,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비로소 겸손의 길에 들어선 것이고, 아직도 모른다면 교만의 우물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입니다. “당신은 겸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