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영화 ‘배드 지니어스’ - 2017년 감독 나타우트 폰피리야
주님의 그물은 성긴 듯하지만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거짓말과 속임수도 ‘치밀하고 교활(cunning)’합니다.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속이고, 불법을 저지르면서 자기 이익을 챙기고 상대를 곤경에 빠뜨립니다.
태국 방콕의 타이판야고교에 다니는 여학생 린(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 분)의 커닝 방식도 귀신을 속일 만큼 기발합니다. 수학 경시대회 1등의 천재적 지능을 가진 그녀는 피아노 건반을 치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이용해 시험 시간에 24명의 급우들에게 답을 알려줍니다.
그들 중에는 단짝인 그레이스(에이샤 호수완 분)와 부잣집 아들인 그녀의 남자친구 팻(티라돈 수파펀핀요 분)도 있습니다. 물론 재미나 우정으로 린이 그런 짓을 한 것은 아닙니다. 1인당 3천 바트(약 10만5천 원)를 받았습니다. 피아노 교습비를 받은 것이라고 둘러대며 아버지의 옷도 사줍니다.
거짓과 속임수로 부정을 저지르고, 악행을 일삼아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다.” 이혼한 아버지와 가난하게 사는 린도 터무니없이 비싼 등록금, 자발적이라면서 사실상 강제인 기부금, 그 돈을 학생들을 위해 쓰지 않고 교사들이 챙기는 불합리하고 부패한 학교를 탓합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 구걸하지 않고 나의 재능으로 학비를 벌었다,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했고, 누군가 손해를 보지 않고 서로 이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빈틈없고 교묘한 속임수도 전교 1등을 다투는 남학생 뱅크(차논 산티네톤쿨 분)의 고발로 린의 부정행위는 들통이 납니다. 장학금은 취소되고, 아버지는 “내가 널 잘못 키웠다.”며 절망합니다. 여기서 나쁜 재능이 멈추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번 악(惡)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은 더 큰 악과 손을 잡습니다. 악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먼저 속이지 않으면 당하고 마는 것이 인생이야.”라고.
악은 절대 혼자 가지 않습니다. 늘 옆에 있는 선(善)에게 손을 뻗칩니다. 세탁소를 하는 홀어머니와 힘들게 살아가는 뱅크를 끌어들입니다. 아버지의 강요로 실력도 없으면서 미국 유학을 가야 하는 팻이 폭력배를 동원해 그를 절망의 상태에 빠뜨립니다. 이렇게 해서 린과 뱅크가 함께 시차를 이용한 STIC(미국 유학 시험)의 커닝 작전을 벌입니다. 둘이 호주에 가서 시험을 보고 그 답을 외워서 휴대폰으로 4시간 늦게 시험을 보는 태국에 답안을 보내는 기발한 방법.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한 시도로 멋지게 성공하는 듯했지만 화장실을 오래 쓰는 뱅크를 의심한 다른 응시생들의 신고로 결국 발각되고 맙니다.
긴 인생을 남겨놓은 그들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용기 있는 고백으로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천재성을 선하게 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망치게 하는 나쁜 천재로 남을 것인가. <배드 지니어스>에서 “더럽게 버는 돈은 이제 나한테는 의미 없다.”는 린과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힌 뱅크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합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거짓말과 속임수, 부정과 악행이란 없습니다. 그 죄도 언젠가는 반드시 받습니다. 주님(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하지만, 하나도 빠뜨림이 없다(天網恢恢 疏而不漏)고 했습니다.
[2022년 2월 20일 연중 제7주일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