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한 국가였던 중남미 나라들
① ‘그란 콜롬비아’서 나온 에콰도르 등 3개국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페인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는 1800년대 초 스페인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각지에서 해방운동이 벌어졌다. 이 중 오늘날 콜롬비아·베네수엘라·에콰도르·파나마와 페루 일부를 포함한 ‘누에바 그라나다’ 지역이 1819~1823년 사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1819년 콜롬비아 지역을 독립시킨 시몬 볼리바르는 미 합중국을 본뜬 ‘그란(大·great) 콜롬비아’란 국가를 출범시켰다.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는 별도로 독립한 뒤 그란 콜롬비아에 통합됐다. 이때 그란 콜롬비아 국기로 채택된 것이 베네수엘라 출신 독립 운동가 프란시스코 데 미란다가 1806년 고안한 3색기다. 빨강·파랑·노랑의 3색으로 구성된 이 기는 스페인(붉은색)과 대서양(파랑), 아메리카 대륙(노랑: 황금의 땅)을 형상화했다.
하지만 인종·지역에 따른 분열과 남미 통일국가의 등장을 원치 않았던 영국·미국의 견제 등으로 그란 콜롬비아는 삐걱거렸다. 결국 볼리바르가 실각(1829년)하고 1830년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 등 3개국으로 쪼개졌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각각 과거 그란 콜롬비아의 3색 배열을 그대로 이어받은 국기를 사용하고 있다.
② ‘중앙아메리카 연방’이었던 다섯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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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지역도 이 시기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1903년 콜롬비아에서 독립한 파나마를 제외한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니카라과·코스타리카 등 5개국의 국기는 모두 흰색과 파란색이 들어가 있다. 다섯 나라가 과거 하나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1823년 이 지역엔 ‘중앙아메리카 연합국’이라는 국가가 탄생했다. 이듬해엔 국가명이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으로 바뀌고 공식 국기도 만들어졌다. 디자인은 1816년 루이 아우리(중앙아메리카 독립에 공헌한 프랑스인 항해가)가 니카라과 동해안에 상륙해 게양한 아르헨티나 기를 본떴다. 하지만 연방은 각 지역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오래 가지 못했다. 1838년 니카라과의 탈퇴를 시작으로 네 나라가 차례로 독립해 1841년 연방은 공식 해체됐다. 그러나 이들 5개국은 과거 중앙아메리카 연방 국기를 바탕으로 흰색과 파란색이 들어간 모양을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1964년 자유를 뜻하는 붉은색을 추가해 모습이 조금 다르다.
한 뿌리 보여주는 동유럽과 중동의 국기들
③ 슬라브 민족 대표하는 ‘수평 3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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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白)·청(靑)·적(赤)의 3색이 수평으로 배열된 이른바 ‘범슬라브색’은 다수의 동유럽 슬라브계 나라들이 국기에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먼저 사용한 나라는 러시아다. 17세기 러시아 상선들은 네덜란드 국기를 기본으로 색깔 위치만 바꾼 깃발을 사용했다. 이 깃발은 18세기 초 표트르 1세에 의해 러시아 민간 선박 기로 인정됐다. 1883년 정식 국기는 아니지만 공식 행사나 축제에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기로 신분이 격상됐다. 이후 수평 3색기는 당시 러시아의 슬라브주의에 동조한 동유럽 지역 슬라브인들이 널리 사용했다. 1848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제1회 슬라브 민족회의에서는 백·청·적색의 수평 3색기 디자인이 슬라브 민족을 대표하는 색으로 채택됐다.
20세기 들어 옛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 등이 슬라브색을 바탕으로 국기를 만들었다. 옛유고연방에서 독립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와 체코와 분리된 슬로바키아가 비슷한 양식으로 국기를 제작했다. 정작 슬라브기의 원조 격인 러시아에서는 1917년 제정 붕괴 뒤 사라졌다가 소련 시절에도 사용되지 않았다. 소련 붕괴 후 새로 등장한 러시아는 2000년 슬라브기를 다시 국기로 채택했다.
④ 아랍 국가들이 쓰는 네 가지 색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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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여러 아랍 국가들은 빨강·검정·하양·초록 네 가지 색으로 국기를 만들었다. 17세기 이라크 시인 사피 알딘 알힐리의 시에 네 가지 색이 처음으로 한꺼번에 등장했다. 흰색은 행동력, 검은색은 전투, 초록은 대지, 빨강은 칼을 뜻한다. 우마이야 왕조(백색), 아바스 왕조(흑색), 파티마 왕조(녹색) 등 이슬람의 옛 왕조를 나타낸다는 해석도 있다. 빨강은 1916년 발생한 대아랍봉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20세기 초 오스만제국 지배하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에서 본격적으로 아랍을 상징하는 기로 사용됐다. 1916년 독립한 헤자즈 왕국이 처음으로 4색을 바탕으로 국기를 만들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뒤 독립한 아랍 국가들이 차례로 4색 디자인을 국기로 채택했다. 현재 시리아·아랍에미리트·요르단·이라크·쿠웨이트·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아프리카 수단 등에선 네 가지 색을 모두 사용하며 이집트와 예멘은 녹색을 뺀 세 가지만을 쓴다.
종교적 공통점이 있는 국기들
⑤ 영국 · 그리스 … 십자군원정서 유래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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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문양은 11~13세기 십자군원정 당시 깃발과 방패 등에 새겨졌다. 원정에 동원된 선박에도 사용됐는데 이때 배의 국적을 구분하기 위해 다양한 문양이 생겨났고 이것이 유럽 각국의 국기로 발전했다. 크게 가로축과 세로축 길이가 동일한 ‘그리스 십자(영국·그리스·스위스·통가)’와 세로축이 왼쪽으로 치우친 ‘스칸디나비아 십자’로 나눌 수 있다. 덴마크의 ‘단네브로그’는 1397년 공식 국기가 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모양이 바뀌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국기인 단네브로그는 1219년 덴마크 십자군이 에스토니아군과의 싸움에 나설 때 로마 교황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덴마크군이 하늘에서 이 깃발이 내려온 뒤 대승을 거뒀다는 전설도 있다. 오랜 세월 덴마크와 한 나라였다가 독립해 역사·문화적으로 밀접한 노르웨이·스웨덴·아이슬란드의 국기도 단네브로그와 기본 형태가 같다.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17년 독립한 핀란드는 북유럽 지역 일원임을 나타내기 위해 이듬해 스칸디나비아 십자를 넣은 국기를 제정했다.
⑥ 터키·파키스탄 … 이슬람 상징 초승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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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과 별은 이슬람교에서 진리의 시작을 상징한다. 예언자 무하마드가 알라신으로부터 최초의 계시를 받을 때 하늘에 초승달과 샛별이 떠 있었다고 전해진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에선 구체적 사물 대신 추상적 도형이 종교적 문양으로 쓰였는데 주로 초승달과 별이 애용됐다. 이 문양이 국기에 처음 쓰인 건 오스만 제국 때다. 1793년 붉은색 바탕에 초승달 모양을 한 제국기가 제정됐고 1844년 별이 추가됐다.
오스만 제국의 뒤를 이은 터키 공화국도 1936년 이를 그대로 국기로 채택했다. 오스만 제국은 14세기부터 600년 이상 서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를 지배했다. 이 영향을 받은 튀니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도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뒤 이 문양을 국기에 쓰고 있다.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도 이슬람의 상징으로 국기에 초승달과 별을 넣었다.
네팔 국기는 삼각형 2개 … 파라과이는 뒷면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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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국기는 가로가 세로보다 긴 직사각형에 뒷면이 없다는 일반적인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파라과이·몰도바·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는 양면을 갖고 있다. 파라과이 국기 앞과 뒷면의 원형 문장에 그려진 그림과 글씨가 다르다. “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하마드는 예언자다”란 코란 구절이 씌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국기는 뒤쪽에서 글자가 거꾸로 읽히지 않도록 같은 모양의 천을 맞붙여 만든다. 몰도바 국기의 뒷면엔 앞면에 있는 독수리 모양의 문장이 없다. 직사각형이 아닌 국기도 있다. 네팔 국기는 삼각형 2개를 포개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스위스와 바티칸은 가로·세로 길이가 같은 정사각형의 국기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