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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조성자
thatami@hanmail.net
나이 예순에 수필가가 되고 예순넷에 첫 수필집을 냈다. 가볍고 얄팍하고 뚜껑도 예전 능화지처럼 부드러워 한 손에 말아 쥐고 누워서도 읽기 좋게 만들었다. 책이 내 손에 들어온 날 일단은 기쁘고 오진 마음이 들었으나 이내 쓸쓸해졌다. 제일 먼저 눈앞에 들이밀며 “여보 이것 좀 봐”할 사람도 곁에 없고, 무엇보다도 그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는 책이기에 꼭 보여드리고 싶건만 고아된 지 오래로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내 곁에 계시지 않음이다.
이날 언니가 왔다. 나를 어디든지 어느 때로든지 데려갈 수 있는 초능력 내 언니.
“회천은 왜 슬픈 표정인고?” 언니가 물었다.
멋진 수필가가 되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노라고. 그러나 막상 그이들은 이 책을 볼 수 없노라고. 그래서 가슴이 뿌지지하다고 답했다.
“너의 아저씨를 만나게 해줄게. 출판 기념 선물이야.”
“정말? 그런데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걸. 그래도 상관없어?”
“당연하지. 세 번쯤 만날 수 있어. 가자. 네가 선택해.”
처음으로, ‘그에게 간다’는 것은, 그가 사람이거나 자연이거나 몹시 이쪽을 흥분시키는 모양으로 자정이 넘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I
이렇게 우리는 강원도 용담으로 갔다. 내가 그이의 작품을 하도 많이 읽어서 두매봉이며, 선비소, 쇠치망 등이 내 고향 풍경처럼 다정했다. 그리고 1918년 나의 아저씨가 소학교를 졸업하던 날을 택했다. 그는 그날 졸업식장에서 제일 빛나는 아이였다. 첫째로 내려오다 졸업에도 첫째로, 우등으로 하는 아이는 그뿐이었다. 상장을 타고 답사를 하는 아이도 그뿐이었다.
그러나 졸업식이 끝난 뒤 졸업장과 상장과 상품을 안고 구경시킬 이도 없는 일가 집 사랑 윗방에 돌아와 혼자 문을 닫고 앉아있는 그를 보았다. 나의 아저씨는 그날 처음 ‘나에겐 왜 어머니가 없나?’하고 울고 있었다. 종일 울었으리라.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다 방을 나왔다. 등을 다독여주며 무슨 위로의 말을 할 수도 있었으련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방을 나와 돌층계를 휘뚝휘뚝 내려왔다.
나이가 어리건 많건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은 기쁜 일이 생길 때 격하게 이는 것이 맞다. 나도 나의 엄마가 계시다면 생전에 백 번도 더 읽으셨다 하신 「행복한 면장」을 펼쳐드리며, 이렇게 말했으리라.
“엄마, 내 책에 엄마가 좋아하던 그 작품 실었어. 마지막 구절이 좋다고 늘 말했었잖아, 엄마가.”
열네 살의 소년을 떠나오며 나의 슬픔과 그의 슬픔이 섞여 마음이 서걱거린다.
저만치 기다리던 언니가 내 어깨를 감싸준다. 우리는 말 없이 용담 풍경을 보며 걸었다. 살구꽃은 잎잎이 흩어졌고 진달래와 개나리는 송이째 떨어져 엎어도 지고 자빠도 졌다.
II
다음 날 언니에게 부탁한 곳은 꿈에도 나타난 적이 있던 곳, 만주다. 이번에는 나의 아저씨와 꼭 말을 나눠보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기차역에서 우리는 만났다. 언니는 늘 그렇듯 저만치 웃음 지으며 물러나 있고 나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저 때가 몇 살쯤 되셨을까. 40대 초반쯤일까 싶다. 호리호리한 키. 맑은 얼굴. 그리고 그 모자에 코트 차림이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사람을 아는 데는 손이 제일이다. 모든 손들은 때로는 입보다 아니, 눈보다도 그들을 여실히 설명하는 것이다.
“이 선생님 아니세요?”
내가 거의 자신을 가지고 먼저 물었다.
“네, 이태준입니다.”
“저두 선생님 독자예요, 꽤 충실한......”
“그러십니까? 부끄럽습니다.”
감정의 봉지를 터뜨리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그의 뒤를 따라 기차에 올랐다. 여기서 봉천까지 가는 야간기차다. 대륙, 그리워한 지 오랜 풍경이다. 삼등 침대의 상단에 언니가 올라가고 나는 하단에 가방을 놓고 앉았다. 맞은 편의 아저씨도 하단에 자리를 잡는다. 아저씨는 키가 커서 매무시를 고치려 일어나니 정수리가 딱 부딪힌다. 멋쩍어하는 모습이 오히려 정감있다. 바로 잠이 들지 않았다. 석 자 거리를 두고 우리는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정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은 <동선당>이다. 그는 봉천박물관도 들러보고 거리 구경도 하겠지만 진정 가보고 싶은 곳은 조선인들이 이주해 농사짓고 사는 이민촌 마을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러시아 소설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거대한 공간, 러시아 소설들이 우리를 누르는 것도 그것들이다. 과거 여러 세기 동안 대국이 해동반도를 누른 것도 그들의 거대한 공간의 농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대륙, 그런 공간을 향해 차는 밤을 가르고 달아난다. 아저씨의 목소리, 말투, 눈매, 웃음과 함께 잊을 수 없는 밤 여행이다.
언니와 나와 나의 아저씨는 드디어 봉천역에 도착했다. 역내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해풍 같은 찝찔한 냄새가 확 끼친다. 내가 왜 아저씨와 함께 꼭 오고 싶은 곳으로 이곳을 택했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저씨 시대의 여성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소에 함께 있어 보고 싶었나 보다. 아니면 그가 그려놓은 동선당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았었는지도 모른다.
봉천의 명물이 된 동선당에 들어가자 ‘위선불권(僞善不倦)’이란 커다란 편액이 걸려있는 사무소, 병원, 목공소, 인쇄소, 직조공장, 유치원, 학교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던 곳, 바로 구산소 내의 구생문에 이르렀다. 아저씨도 우리도 숙연한 기분이 되었다. 구산소란, 사생아의 피살을 막기 위해 빈민 아니라도 조산을 청하는 여자면 얼마든지 환영할 뿐 아니라 산모의 주소, 성명, 임신 관계 등엔 일체 불문에 부치는 것이요 아이를 낳아 놓으면 아이만 남을 뿐, 산모는 언제든지 쏙 빠져 자유로 자취를 감추게 한다는 것이다. 구생문이란, 뒷골목 길에 나선 솟을대문 같은 데다 어린애 하나 들여놓을 만한 구멍에다 함지 같은 것을 놓은 것이다. 그리고 어린애를 놓으면 함지가 눌리어 초인종이 울리도록 장치 되었다. 누구나 무슨 수속은커녕 얼굴 한번 내어놓을 필요도 없이 기르기 딱한 아이면 이 함지에다 갖다 놓고만 가면 그만이게 되어있다. 죄는 덮고 불행만을 구하는, 성스런 자선기관이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 예나 팔십 년이 지난 지금이나 가치가 영원히 불멸하는 것은 진리다. 또한 그것은 선임을 느낀다.
아저씨와 나는 함지박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는 그대로 무슨 깊은 상념에 잠기는 듯 보였다. 나는 나대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019년 대한민국의 미혼모 문제, 사생아 문제들에 대해 알고 있는 바와 짐작 가는 바가 머릿속에서 섞이면서 심란해졌다. 문득 아저씨가 물었다.
“그대의 시대에도 이런 게 있으오?”
“...”
동선당 이곳저곳을 걷고 보자니 열세 시가 넘었다. 이제 아저씨는 봉천을 떠나 신경으로 또 그곳에서 쟝쟈워후로 간다고 했다. 나는 다음 한 곳을 위해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만 동행했다. 나의 아저씨가 기차 식당에서 만날 『죄와 벌』에서 본 쏘냐같은 소녀들, 그들이 가져오는 한 잔 커피, 그리고 그런 커피를 잔을 거듭하면 내일 이민촌을 찾아 끝없는 벌판에 외로운 그림자가 될 것을 걱정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III
여름이다. 아저씨 식으로 말하자면 녀름이다. 눈이 부신 아침, 하늘은 새로 쌌던 포장지, 빨각 소리가 날 것 같다. 언니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미리 갔다. 숲길이 이어진 곳에 이 계절의 푸르름과 맑음과 화려함이 있다. 여름의 천지는 우리 인생에게도 대자비한 어머니였고 대자유의 오픈하우스가 맞다. 신록 아래를 거닐며 나도 고요한 열정에 부대껴 본다. 자기 자신과 말할 수 있고 자기 생명의 실재와 자기 자신의 행복을 만나보는 때를 갖으리라.
언니가 왔다.
“회천, 오늘은 마지막으로 어느 때를 택했어?”
“아저씨의 모기장이요. 가가(呵呵).”
“오, 그래? 이번엔 혼자 다녀와. 여기서 기다릴게.”
그 여름밤 나의 아저씨는 모기장 속에 있었다. 조명 없는 방 작은 모기장 안에 말없이 앉아서 토방 쪽을 보고 있었다. 나도 그 곁에 나란히 자리한 모기장 속으로 들어가 앉았다. 달밤인가? 신문 보조배달원 황수건이는 다녀갔나. 아니면 별을 보고 계셨나. 작은 모기장 속에 우리는 각각 생각에 잠겨 한동안을 보냈다. 진정한 인간의 행락이란 그의 명상의 세계를 떠나서 다른 곳에 없을 것이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모기장 속을 좋아하오. 될 수만 있으면 사철 모기장을 치고 살고 싶은 것이오. 모기장 속은 파리 한 마리 간섭하지 않는 완전히 나의 독차지의 세계이기 때문이지. 죄고마한 모기장 속! 그러나 얼마나 광대한 천지이랴. 영원을 생각하기에 어찌 산상이나 해변을 비기리오.”
말로 하지 않아도 그의 생각들은 나에게 전해져 왔다. 좋은 글을 써 보려면 공부도 공부려니와 오래 살아야 될 것 같다. 60,70,100에 이르기까지 그 총명, 고담의 노경 속에서 오래 살아 보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가을을 지나 농익은 능금처럼 인생으로 한번 흠뻑 익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그처럼.
“인생은 즐겁다!”
“인생은 슬프다!”
어느 것이나 20,30의 천재들이 흔히 써 놓은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가을, 70,80의 노경에 들어 보지 못하고는 정말 ‘즐거움’ 정말 ‘슬픔’은 모를 것 같지 않은가! 팔십 세 때의 아저씨를 선택해 방문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인다.
한없이 마음이 평화로웠다. 그렇게 모기장 속에서 시간을 잊고 앉아 있었다. 간간이 나눈 대화와 이어지는 생각들로 그가 나인 듯, 내가 그인 듯, 둘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작별의 시간이 왔다.
“아저씨. 이제 떠나야겠어요.”
“....”
“저도 그래요. 얼마나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생의 시간들에 찌싯찌싯 붙어서 수필을 씁네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잃어버리면 울지 않고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작품을 꼭 한 편 써보고 싶어요.”
“그러오.”
“그때 다시 올게요. 안녕, 나의 아저씨.”
각주-두꺼운 글씨체로 인용된 구절이나 문장의 첫 단어와 작품 제목
(모두 이태준의 작품들임. 수필은 수, 단편소설은 단)
1.가볍고-(수)책
2.가슴이-(단)영월 영감
3.처음으로-(수)만주기행
4.그날 졸업식장에서-(수)내게는 왜 어머니가 없나?
5.그러나-(수)내게는 왜 어머니가 없나?
6.돌층계를-(단)까마귀
7.살구꽃은-(수)낙화와 적막
8.사람을-(수)인사
9.저두 선생님-(단)까마귀
10.감정의-(수)코스모스 피는 정원
11.대륙-(수)거대한 공간
12.거대한-(수)거대한 공간
13.역내에-(수)골육감
14.사생아의-(수)동선당
15.가치가-(수)진리
16.기차 식당에서-(수)만주기행
17.하늘은 새로-(수)해촌 일지
18.여름의-(수)백일몽
19.고요한-(수)신록
20.자기 자신과-(수)신록
21.가가-(수)병 후
22.신문-(단)달밤
23.진정한-(수)모기장 속
24.나는-(수)모기장 속
25.좋은 글을-(수)조숙
26.찌싯-(단)패강냉
27.잃어 버리면-(수)작품애
2015 『에세이스트』 등단
수상 :
2020 제12회 정경문학상
2016 2017 2018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3회
수필집 : 『베란다 보이』, 『땅바닥 essay』
첫댓글 [에세이스트]100호 기념판에 실린 작품.2021년
원래 인용귀절,단어가 볼드체로 두껍게 씌여졌었는데 복사가 안되네요.연구해서 수정해볼라고요.
산상이나해변에 비길수없는 죄고마한모기장.
모기장속에서 온전한세상을느끼기에는나는아직수양이덜됐는가
날마다 오전에 오름하나씩오르고
해변산책하며 오후에는조용히책도읽고
제주에서지내고있네
최고의 라이프.멋지고도멋지네. 철학이 있어도 실천하기 어렵지. 최고여.
오랜만에 글방을 열었더니
아름답고 고급진 단어들이 모처럼 만초의 잠자는 정서을 살짝 건드리네요
눈이 나쁜 핑계로 활자를 멀리한 지가 오래 되었는데 ~
저도 눈이 나빠져서 요즘은 윌라라는 책읽어주는 프로에 가입해서 듣고있어요. 잠자기전에.ㅋㅋ
오~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