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매미채를 돌리며 돈 내놓으라 하더라.
내가 어려서 학교에 다닐 때 학생들이 운동화나 신발을 제대로 신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신발값이 너무 비쌌고 먼 길을 통학했기 때문에 신발이 너무 자주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먼 길을 통학하는데 왜 그렇게 운동화가 잘 떨어지는지 정말 대책이 안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운동화를 새로 사서 신으면 정말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그렇게 조심스러운지 신을 신기가 겁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리 조심해서 신어도 두 달이 멀다하고 다시 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동화를 수선해주고 바닥을 때워주는 운동화나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들이 시장에는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등산화나 운동화가 아주 질기고 또한 값이 대단히 비싼 것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그리고 비싼 운동화 한 켤레를 사려면 고등학교 1년 등록금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고등학교 때 어렵게 친구를 몇 명 성당에 인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과 면담도 하고, 교리 공부도 시켰습니다. 그런데 교리공부를 하게 된 둘째 날 대형 사고가 터진 것입니다. 친구는 새 운동화를 벗어놓고 교리공부를 하였는데 나와 보니까 그 새 운동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타이어를 잘라 만든 슬리퍼를 빌려 주시고, 운동화 값으로 1,000원이나 주신 것입니다. 그 때 천 원은 지금 약 3만 원 정도 하는 돈입니다. 그래서 정말 신부님께 죄송한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 때 이런 노래가 유행했었습니다.
예배당에 갔더니 동네 처녀 총각 연애하느라 정신이 없더라. 예배당에 갔더니 눈감으라 하더니 신발 훔쳐 가더라. 예배당에 갔더니 매미채를 돌리며 돈 내 놓으라 하더라.
그래서 교회를 ‘연애당’이라고 부르기도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운동화 분실 사건을 수습하느라고 정말 혼이 났었습니다. 아이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 신발을 훔쳐가지 않고, 신발을 노리는 사람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한 사람도 없지만 교회를 비방하고 헛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매미채를 돌리며 헌금을 받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귀하게 여기신 예수님의 말씀은 과부의 감사하는 마음을 귀하게 여기신 것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정성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은 돈의 액수를 감사의 마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점점 없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감사하는 마음을 없애버리는 세 가지 요인
모든 것을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는 교만이다. 이 교만은 그가 모든 것을 스스로 성취하고 또 모든 것을 자신의 덕으로 돌릴 때 오로지 ‘나’만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명성이다. 건강, 성공한 사업, 직무, 청명한 날씨 등이 선물임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고마움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마운 것을 기억하기보다는 잘되기만 늘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는 자리마다 순간마다 감사거리가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범사에 하느님의 사랑을 볼 줄 안다. 한편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인생의 어두운 면, 부정적인 면만을 보게 된다. 감사는 더 감사할 여건을 만들어 주지만 불평은 불평거리만을 만들어 줄 뿐이다. (송봉모 신부님의 글 중에서)
봉헌은 감사의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그 동안 감사의 마음으로 봉헌하고 지극 정성을 다하여 봉헌했는지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없애버리는 세 가지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