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곰장어가 있는
온천 사거리에서 시실골 넘어가는 도로 왼쪽에 명륜 2차 아이파크 1단지 아파트 맞은편에
아직도 푸른 숲이 우거진 동래읍성 성벽 아래는 "성벽도 문화재"라고 옛 날 골목길 그대로다 .
이곳에 그 당시 부잣집 이라고 불리든 이층 양옥집이 영혜집이었다
나는 동래중학교 정문 판자촌에 반여국민학교에서 전학와서 성지국민학교로 전학 가기 전까지 살았는데 ~
지금 동래문화회관이 있는 대포산에 자주 올라가 놀았다
영혜집 가까이에서 놀았기에
어려울 때는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고 했다.
언젠가 서로의 추억을 더듬어 골목길을 찾아 갔는데 일치하는 거라곤 " 만화방에 자주 갔다" 라는 것이다
" 욱곤아! 이리로 이사해서 전포국민학교 까지 통학했는데
만화방에서 차비 다 쓰고 집까지
걸어 온 적도 있다." 라고하며 스스로 부끄러운지 말꼬리를 흘린다.
영혜가 걸어 왔다는 길은 나는 차비가 없어 수시로 걸어서
등, 하교하든 길이다.
그리고 이 주변에서 내 청년기의 전반, 중반을 보냈기에 나에게 매우 소중한 지역이다
제1 구간 : 전포초교->동천로-> 부전사거리
->중앙대로->삼전교차로
나는 범전로에 있는
극장 태평씨네마에 포스타 부착용 압침을 납품하러 갈 때마다
마주보고 있는 전포로를 보면 '황량한 거리' 라고 느꼈다
흥아고무공업주식회사가 흥아타이아를 생산했던 공장의 출입구가 항상 닫혀있기 때문이다.
철공소 모여 있었든 곳에 "삼정코아" 가 있다.
"동성로" 이름은 애초에 학교에서 따온 만큼 상당한 학교 밀집지이다
유래가 된 부산 동성고등학교는 물론 동성초등학교, 부산진여자중학교, 부산동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가 있고
비록 동성로는 아니지만 근처에 덕명여자중학교, 성북초등학교도 존재한다.
삼전교차로에서 범전로 우측에는 성매매 집창촌 300 번지가 있었다
동천은 백양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른다고 하여 동천이라 하였고
강 따라 가는 길이라 동천로라 하였다.
이 동천은 물줄기를 남쪽으로 방향을 틀며 오른쪽에서 흘러들어 오는 당감천을 안고
부암동에서 가야천을 받아들여 남쪽으로 흘러 부전동에서 부전천과 합류하여 광무교를 지나
전포천을 만나 범호교를 지난다 .
다시 범내골에서 호계천을 만나 자성대 공원을 지나 북항으로 흘러들어 간다.
현재는 대부분이 복개되어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성지국민학교는 하야리야 부대, 집창촌을 뒤에, 부전천을 옆에 두고 앞으로는 부전역, 부전시장이 있었다
이 거리 주변은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 시작하는 곳이자 끝나는 곳이기도 하다.
1950년대에서부터 1970년대까지 부산 소재의 생산공장 대부분이
동천을 공업용수로 이용해
성장 발전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근로자들이 일하기 위해 부산으로 몰려들어
동천은 한국산업경제발전의 근원지라 할 것이다
합판 왕국의 영광과 좌절을 겪은 강석진의 동명목재
동트는 새벽의 여명 " 동천 " 이다.
서면복개천은 서면 일대를 가로지르던 동천을 복개하여 형성된 도로 인근을 의미한다.
부산상업고등학교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뒤안길에 서게 되었다
부전사거리에 있는 기장골목시장에는 동해남부선을
이용하여 온 온갖 상인들로 새벽 일찍부터 붐볐다
삼전교차로로 진입하는 '범전로' 양 켵에는 300번지와 태평시네마가 있는 유흥지역이었고
'전포로' 쪽으로는 성전초등학교 와 항도중학교가 있어
중앙대로를 두고 환경이 판이하게 구분되는 지역이다
고교 동기들 중 천포초교 출신들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58마당" 자축 기념식에 마누라 와 친구 ㅇㅇ도 참석했다
ㅇㅇ이는 한 해 선배이고 ㅇㅇ이는 한 반에서 한 담임선생 밑에서 공부한 모양이다
초등학교 동기들 만큼이나 즐겁게 옛 날 이야기를 나눌 상대는 별로 없다,
그것도 20여 년이나 지나 만나
그 때의 흔적들을 맞추어 나가는 기쁨도 솔솔하겠다.
나는 초등학교를 여러 곳에 다녀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함께할 친구가 없어 부럽기도 했다.
제2구간 : 삼전교차로 ->중앙대로-> 선큰광장
->송상현광장->송공삼거리->송상현동상
->거제대로->하마정 교차로(거제대로와 동평로 교차)
부산의 명소 송상현 광장,
인도에서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선큰광장은
자동차 길 사이에 공원이 있어서 소음과 매연 때문에 사람이 모이겠나 싶다
임진왜란 때 격전지의 하나였던 동래성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의 지휘 아래
군관민이 합심하여 왜적에 대항한 끝에 모두 순절한 곳으로
이들을 추모하여
동래남문비는 동래읍성의 남문 밖 농주산에 처음 세웠다.
농주산은 지금의 동래경찰서 자리이며 일제강점기 시가지계획과 전차길 개설로 깎여 평지가 되었다
지금은 동래성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성터만이 남아 있다.
송상현은 동래부사(東萊府使) 가 되어 전란에 대비하여 동래성 주변에 나무를 최대한 많이 심는 등 방어 준비를 철저히 했다.
1592년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 군은 첨사 '정발'이 지키고 있던 부산진성을 함락시키고 하루만에 동래성에 도달했다.
동래성에 도착한 왜적은 목판에
" 戰則戰矣 不戰則假道" 라는 글을 적어 항복을 요구한다
" 戰死易假道難 " 라고 하며
유키나가의 일본군에 맞서 성을 지키며 방어하다가 전사했다.
하마정(下馬停)은 "정문도 묘소" 입구에 하마비(下馬碑)가 한 개 서 있었다.
이곳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려 지나간다.
송상현광장 바로 옆에 있는 '양정라이온스공원'은 2012년 라이온스 부산세계대회를 기념하기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이곳은 1960년 1월 15일 육군군수기지사령부가 창설된 장소로서
초대 사령관은 박정희 소장(제 5~9대 대통령)이었다.
1970년 12월 15일 군수사령부로 개편되었다
부대 정문을 지나 부대 담 옆으로
홀로 걷기에는 힘들겠고 직진하면
벼농사를 짓는 들이라 길찾기 힘들겠다
송공삼거리에서 하마정까지가 전차길이라 위험하긴 해도 별 수 없이 이 길을 걸어야 겠다
하마정에서 거제시장 입구까지는 판자촌이 즐비하게 있었는데
대부분 "니나노 집" 이었다.
여기에서 세병교까지는
동해남부선철로가 관통하며 조선견직,미원공장이 있었으며 육군제1 정비창, 피란민이 모여사는 판자촌
달동네라고 불리는 "거제리 안동네" 가 있었다.
거제천이 복개되기 전이라 인도라고
할 만한 길이 없었다
현재는 멎진 가로수 길이나
그 당시에는 주변의 황막함으로 건장한 남자라도 걷기에 대단히 힘든 구간이다.
제3구간 :하마정교차로 ->거제 해맞이역 -> 거제3동행정복지센터 ->거제역(법원 검찰청)
->거제대로->교대역 1번 출구
->교대사거리 ->중앙대로->세병교
그 당시 이 곳은 논밭이 펼쳐진 시골이었다.
변변한 기반시설이나 기관은 찾아볼수 없었고 중앙동과 남포동 등 부산의 도심과 동래를 연결하는
길목 정도에 불과했고 교통 수단은 전차가 다닐 뿐이었다
걸어 올려면 위험한 전차길을 피해 밭길 또는 논길로
농부들에게 물어가며 왔을 것이다.
부산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거제동 일대에 주택이 늘어나고 부산의 관할 구역이 커지면서
이곳이 자연스럽게 부산의 중심에 서게 됐다.
1998년 부산시청이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명실공히 부산의 행정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 해 시청과 함께 부산시의회, 부산지방경찰청도 이전했다
제4구간 : 세병교->명륜로->동래경찰서->수안역
->KT동래지사->명륜교차로
->동래사적공원입구->명륜동가구거리
->기장곰장어->온천장 입구사거리
세병(洗兵)이란 병기를 물로 씻었다는 말인데, 아마도 동래읍성 남문 앞 온천천에서 임진왜란 같은 큰 전쟁을 치를 때
피 묻은 창칼을 물로 씻은 곳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짐작된다
온천장 입구에서 명륜 로터리까지의 구간은 조선 시대 동래읍성에 동래 부사가 부임할 때 행차하던 도로라 하여
'대낫드리'라는 지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세병교에서 온천천을 보며 온천천로가 걷기가 편안하겠으나 너무 조용해서,
주거가 밀접해 있는 명륜로로 걸어왔을듯하다.
나는 이 길을 중학교 때 거꾸로 수시로 걸어 다녔다
나와 영혜는 주로 성지계곡에서 놀다가 18번 직행버스를 타면
영혜는 온천입구에 내리면 조그만 걸어가면 집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양정역에서 하차 후 제법 많이 걸어야했다.
언젠가 내가 쓸쓸하게 보였든지
"욱곤아 술 잔 하고 갈래'
마다할리 없다.세병교 부근이였다.
노가리를 안주로 막걸리 한 잔하고 헤어졌다
그 당시 데이트 비용은 영혜 용돈 500원이었다.
이 돈으로 커피 두 잔, 막걸리 두 되 정도 먹는 것이 가능했다 .
나는 오랫동안 얻어만 먹었다.
남자 : 4km/시간 ,
여자 : 3.3km /시간이라면
남자는 2시간 15분, 여자는 3시간 거리이다.
학교 종례 마치고 걷기 시작하여 부지런히 걸으면 저녁 먹기 전에
집에 도착하겠다
다리가 무척 아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