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영혼(29)
고대인은 생식에 대한 숭배가 공통적으로 있다.
때문에 인류의 기원은 여성으로 상정했다.
그러나 부계사회가 형성되면서 인류의 시원을 남성으로 상정하면서
그 생식신을 조(組)에 두고 且를 남근의 상징으로 삼았다.
남성의 선조 신이 자손의 번영과 평화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조상-나 사이에는 피가 흐르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사고로 인하여
분묘 - 종묘 - 사당으로 이어지는 제사 의식이 형성되었다.
이로써
장례 풍속과 제사 의식, 제사의식의 상징적 의미는 세속의 종법으로 되었다.
조상과 혈연의 관계는 인간 사이의 친소를 결정한다.
==> 너무 성대한 제사 의례가 상나라가 망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 제사의례를 통하여 의식이 계통화되고, 질서회 되었다.(혼위를 어느 위치에 모실까 둥)
때문에 제사 의식은 지식이 되고, 제사 의례를 주재하는 사람은 지식인이 되었다.
제사 의례는 ‘주례’라는 학문으로 태어났다.
*** 당시의 왕은
天 즉 하늘과 소통하는 자로서, 하늘과 통하는 사람이라는 자격을 얻었다. 이 때문에 권력도 얻었지만, 씨족이나 부족을 책임지는 의무도 주어졌다.
제사 의례에는 祝 또는 巫라는 직위도 생겼다.
‘이윤 (伊尹)이라는 벼슬은 巫 였다.
天地가 개벽한 후에 무당과 史官은 하늘과 땅, 인간과 신을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사상가나 교육자가 되었다.
갑골문의 기록에도 혈족이 아닌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사회조직에 관료조직이 형성되었고
종교적 질서(비논리적) --> 정치적 질서(합리적)로 이행하였음을 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왕(정치적 지도자)이 제사를 주제하는 사제의 역할을 한다.
이런 사회구조에서는 ‘무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갑골문에 무당의 등장이
줄어들므로, 무당과 왕권이 분리되면서, 왕권 강화가 나타나는 것을 말해준다.
무당은 개인적인 종교역량이 위주이고, 집단적인 조직인 국가에서 무당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국에서 샤마니즘은 신흥국가와는 양립할 수 없었다.
(중국의 통치 구조상으로, 무당과 왕이 같이 존재할 수가 없다.)
이후로 중국에서는 샤마니즘 즉 무당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기록한 것이 많다.
그러나 왕조 이전에는 조상숭배의 제사를 지내고, 점술이 유행했다.
왕조 시기에는 점술이 감소하고, 먼 조상에 대한 제사도 줄어드는 대신에 가까운 조상을
모시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국가통치를 점술에 많이 의존하였으나, 이제는 왕의 권력에 의하여 통치했다.
왕에게도 帝의 칭호를 붙였다. 상의 마지막 두 왕은 帝乙, 帝辛이다.
商나라에서 周나라로 바뀌면서 종교적으로도 天命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天命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향을 띈다.
天命을 바탕으로 하여 쓴 책이 詩經고 書經이다.
권력 쟁취의 합리화를 주장하는 내용으로, 상은 천명을 상실했고
주나라는 천명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통치에 도덕성(권력의 합리화)이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