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처럼 인생의 싹을 틔우는 법
"서두르지 마라, 때가 되면 흙이 너를 부를 것이다."
꽃담원의 아침은 깊은 정적 속에서 시작된다.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정원 한구석에 앉아 파종을 준비할 때, 손바닥 위에 놓인 씨앗들은 마치 작은 돌멩이처럼 딱딱하고 무심하다. 이 작은 알맹이 하나하나가 장차 거대한 나무가 되고 화려한 꽃을 피울 생명의 설계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완강한 적막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묘한 경외심과 함께 의구심을 느낀다. 이 먼지보다 조금 큰 존재들은 지 금 이 순간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파종을 위해 흙을 고르는 나의 손길은 분주하지만, 정작 생명의 주인공인 씨앗은 아무런 기척이 없다.
나는 식물 연구자 시절, 우리 땅에서 자라는 자생식물의 씨앗을 수확해서 싹을 틔우는 종자 발아 실험을 수없이 반복했다. 당시에는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씨앗의 행위를 생존을 향한 치열한 본능이자, 죽음을 이겨내려는 위대한 의지라고 굳게 믿었다. 현미경 아래서 관찰되는 발아의 순간은 마치 한 편의 전쟁 드라마처럼 역동적이었다. 하지만 수백 번, 수천 번의 파종 실험을 거듭하며 데이터가 쌓일수록 마주한 진실은 달랐다. 씨앗은 결코 싹을 틔우겠노라고 스스로 결심하거나, 자신의 힘만으로 세상 밖으로 밀고 나오지 않았다.
식물학적으로 씨앗의 발아는 내부의 주관적인 의지가 아니라 외부 환경이 건네는 정중한 '허락'에 가깝다. 종자 내부에는 발아를 억제하는 호르몬인 앱시스산ABA이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이 빗장을 풀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분과 온도 그리고 산소라는 세 가지 조건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씨앗의 심장을 두드려야만 한다. 외부의 습기가 껍질을 적시고 적정한 온도가 세포를 깨울 때, 비로소 생명의 기제 호르몬이 활성화되며 잠들었던 배Embryo가 기지개를 켠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씨앗이 스스로 온힘을 모아 싹을 피우는 일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발아는 씨앗의 독단적인 행위가 아니라 환경과 씨앗이 주고 받는 정교한 화학적 응답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가 말한 '코나투스 Conatus'를 떠올린다. 스피노자는 모든 사물이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관성을 지닌다고 말했지만, 그 관성은 결코 고립된 의지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씨앗의 코나투스는 토양과 태양이라는 타자(他者)와의 마주침 속에서만 비로소 기쁨의 상태, 즉 발아로 나아간다. 씨앗이 싹을 틔우는 일은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간절한 부름에 응답하는 과정인 것이다. 만약 씨앗이 환경의 허락 없이 홀 로 싹을 틔우려 고집을 부렸다면, 그것은 생존이 아니라 자살 행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하면 된다'라는 의지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살아왔다. 특히 인생 2막을 준비하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열정'과 '도전'을 강요한다. 내면에 불꽃만 있다면 사막 한가운데서도 꽃을 피울 수 있다며 무책임한 용기를 불어넣는다.
하지만 정원을 가꾸며 배운 진리는 다르다. 열정은 생명을 순환시키는 에너지일 뿐 씨앗을 품어줄 토양이 아니다. 만약 당신의 삶에서 씨앗이 아직 발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의 의지가 부족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아직 당 신의 계절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당신이 싹을 틔우기에 부적절한 땅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른다.
씨앗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들은 토양이 차가우면 깊이 잠들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묵묵히 기다린다. 발아는 내가 억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내가 정답게 마주할 때 비로소 당하는 경이로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파종의 순간, 나는 내 손바닥 위의 씨앗들에게 속삭인다.
"서두르지 마라, 때가 되면 흙이 너를 부를 것이다."
식물이 전하는 철학들 중에서
은퇴한 식물학자가 정원에서 발견한 32가지 인생의 지혜
송정섭 저자
출판사 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