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계21:9-27)
갈등
1. 어느 날, 한 노인이 조용히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는 불빛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고층 빌딩들의 창문마다 형형색색 불이 켜져 있었고, 거리는 사람들과 자동차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걸음을 옮겼고, 광고판에서는 화려한 내일을 약속하는 문구들이 번쩍였어요. 노인의 눈빛은 어딘가 공허해 보였습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진정한 도시, 영광의 도성을 꿈꾸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세월 동안 수많은 도시를 보아왔습니다. 높은 성벽을 자랑했던 바벨론, 부와 향락이 넘쳤던 로마,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도시들까지.
하지만 어느 곳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도시에는 부패와 욕망이 있었고, 불안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화려한 도시 속에서 살아가지만, 불안과 공허함을 안고 있습니다. 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요? 어디에 소망을 두어야 할까요? 그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가 있었어요.“너는 참된 도시를 본 적이 있느냐?”순간, 노인의 눈앞에 완전히 다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도시보다도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곳. 빛으로 가득한 곳.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새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바라볼 수 없는 영광의 도시, 새 예루살렘을 봅니다.
2. 과연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귀한 환상을 보여주었어요. 9-10절,“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마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우리가 장차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새 하늘과 새 땅은 새 예루살렘이라고 말하였고(2절),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10절)
오늘 본문은 이 성의 성곽과 성안을 나눠서 말해줍니다. 11-12절,“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새 예루살렘-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말씀해요. 그리고 크고 높은 성곽이 있다고 합니다. 이 성은 길이와 높이고 넓이가 같은 정육면체입니다.(16절) 그 크기는 만 이천 스다디온, 이 성곽의 기초석은 다양한 보석으로 이뤄졌습니다. 이 성곽이 크기와 다양한 기초석이 전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하나님께서는 이 성을 크고 높은 성곽으로 둘러싸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방어벽이 아닙니다. 성곽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보호하는 동시에, 거룩한 자와 속된 자를 구별하는 하나님의 경계선입니다. 그렇다면 성안은 어떤 곳일까요? 제 우리는 성문을 통과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21절,“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성문은 열둘인데, 각 문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었고, 성내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었어요. 요한계시록은 상징으로 되었기에 이것들을 하나씩 풀어야 합니다. 진주는 고난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진주는 조개가 이물질(모래, 기생충 등)을 품고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겪으며 아름다운 보석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과 연단을 통해 거룩한 성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문을 의미합니다. 열두 개 성문에는 각각 하나의 진주로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문 하나가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오직 하나뿐임을 의미해요. 예수님께서,“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는다.”(요10: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천국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자들만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의 길이‘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순결을 의미합니다.
4. 성경에서 금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성막과 성전의 기구들도 대부분 금으로 덮여 있었어요.(출25:11, 왕상6:20) 새 예루살렘의 길이 금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거할 하나님의 나라는 죄가 전혀 없는 순결하고 영광스러운 곳임을 의미해요. 새 예루살렘의 길은 온전히 정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길 위에서 더욱 찬란히 빛날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23절).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고, 해와 달이 필요 없다고 말씀합니다. 22-23절,“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아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새 예루살렘에는 필요가 없는 것들이 소개되고 있어요. 하나는 성전입니다. 또 하는 해와 달입니다. 이 땅에서는 가장 소중한 것들인데,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전혀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또 이 성의 성문은 닫을 필요가 없고,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이 성에 들어갈 수 없는 자와 들어갈 자들을 다시 언급합니다.(24-27절) 이 성의 특징이 무엇이고 이렇게 말씀하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실마리
5. 새 예루살렘의 크기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동일한 정육면체로 말씀합니다. 이점은 성경에서 지성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전의 지성소도 정육면체였어요. 솔로몬 성전에서 지성소의 크기는 길이, 너비, 높이 모두 20큐빗(약 9m)로 동일했습니다(왕상6:20).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는 곳으로, 오직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레16:2). 새 예루살렘은 곧 전체가 지성소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 모두가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는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성전이나 제사장이 없어도 이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완전한 성전이 된다는 상징입니다(22절).
이 성곽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는 12,000 스다디온입니다. 144,000과 더불어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완성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한 모습으로 모이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도시는 지구 크기를 초월하는 거대한 공간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크고 영광스럽다는 말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모든 구원받은 백성이 충분히 거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공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한정되지 않고, 모든 성도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곳이 됨을 나타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완전한 나라입니다. 성곽의 기초석은
6. 19-20절,“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재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성곽은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되는 거룩한 보호막입니다. 보석들은 빛을 반사하는 성질이 있어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 전체를 비추며, 성곽조차도 그 빛을 반사하는 곳임을 의미합니다. 이 성곽은 단순한 방어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거룩한 경계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시민들은 복음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거룩한 성안에서 영원히
보호받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올 수 있어요(27절). 성곽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거룩한 자와 속된 자를 구별하는 하나님의 경계선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고, 해와 달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공간적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지상에서 성전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했어요. 구약 시대에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장소였습니다(출25:8). 죄인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성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 역할을 했습니다.
7. 새 예루살렘에서 성전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새 예루살렘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3절,“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새 예루살렘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곳이기 때문에, 특정한 성전 건물이 필요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직접 성전이 되시고, 성도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는 상태가 됩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해와 달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해와 달은 이 땅에서 빛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창조물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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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이것을 이미 예언했습니다. 60:19,“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하나님의 영광이 곧 빛이 되어, 모든 것을 밝히십니다. 해와 달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해가 필요 없다는 것은 어둠이 전혀 없다는 말이에요. 죄와 슬픔, 고통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누릴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마지막 특징으로, 성문이 닫히지 않고 만국의 영광과 존귀가 그곳으로 들어오며, 누가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갈 수 없는지가 확정합니다.
8. 성문을 닫는 이유는 위협 때문입니다. 고대 도시들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밤이 되면 성문을 닫았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밤이 없고, 닫을 필요도 없는 곳이에요. 밤은 어둠, 불안, 죄, 죽음을 상징합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두려움이나 위험이 없기에 성문을 닫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올 것입니다. 이것은 각 나라의 가장 귀한 것들이 새 예루살렘으로 가져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민족과 나라에 열려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복음 제시
9. 새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어 우리는 주님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습니다.(22절) 예수님이 영원한 빛이 되시어, 그를 따르는 자들은 어둠이 아닌 생명의 빛 가운데 살아갈 것입니다.(23절) 이곳에는 오직 예수님을 믿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어요.(27절) 이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직접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빛이 되심을 믿고,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도록,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여러분, 새 예루살렘의 문은 지금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이 되면, 그 문은 닫힙니다.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그 도성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지금, 바로 오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준비해야 합니다
기대
10. 오늘 우리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성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곳이며, 죄와 고통과 어둠이 완전히 사라진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단순한 미래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완전한 나라입니다. 이곳에서는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아픔도, 어둠도 없습니다(4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자로서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며 생명책에 기록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의 문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27절).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해와 달이 필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빛을 따라 살며, 이 세상에서도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마 5:14-16). 우리가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로서 빛으로 살아가도록 이 시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