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3일(금)
요한일서 3:1-10
죄를 없애려고 오신 죄 없는 하나님 아들
사도 요한은 감격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큰 사랑이 그 어떠한 사랑인지를 생각할 때, 요한은 감격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린 것이 또한 감격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린 근거에는 하나님의 큰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 사랑은 측량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떠한”으로 번역된 ‘포타포스’는 인간의 언어와 지식을 뛰어넘는 개념입니다.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을 보고 놀란 제자들의 입에서 “어떠한”이란 단어가 튀어 나왔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언어와 지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글을 읽고 있는 공동체에게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었고, 요한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을 질책하거나 정죄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거나,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흠이 있고, 연약함이 있고, 그들을 미혹하는 자들로부터 미혹을 당하여 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현재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사랑에 기초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흔들림이 없었던 것처럼, 요한의 글을 읽고 있던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인 것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요한의 이러한 확신은 장래에 그들에게 나타날 변화를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2절).” 맞습니다. 장래에 그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미래의 모습은 현재의 확신에 기초합니다. 즉, 그들은 장래에 다시 나타나실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영광스럽게 변화될 자들입니다.
그들은 장차 재림의 주님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에 그들에게 일어날 영광된 소망입니다. 그러나 이 소망은 현재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믿음 안에서만 기대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소망의 원천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은 단지 내세만의 소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를 향한 우리의 소망은 현실의 삶을 변화시키는 강한 동기와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해 줍니다.
먼저, 주를 향한 우리의 소망은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는 내세에서의 온전함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 비결은 우리가 그 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6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9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일시적으로 죄를 짓는다 하더라도,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씨(9절)”가 거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죄의 자리로부터 다시 일어나 주를 향한 소망의 자리로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5절). 그리고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나타나셨습니다(9절). 마귀의 일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충동질하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우리는 그분의 깨끗하심을 닮기 위해 날마다 점진적인 성결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여기서 “깨끗하게 하느니라.”라는 헬라어 단어(하그니제이)는 제의적인 정결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속죄의식에서 물로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이 단어는 현재 시제로 사용되어, 계속적인 정화의 과정을 나타내기도 합니다(장진성, 생명의 삶 플러스 2022년 12월호, 221).
혹 우리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주님의 깨끗하심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의 열매는 이 세상에서 의를 행함과 사랑을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구분되는 분명한 기준은 의를 행함과 형제를 사랑하는 삶의 열매 여부에 있습니다.
제가 더욱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저에게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목적이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고자 하심인 것을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제 안에 하나님의 씨가 있음을 기억하고, 다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달려 나오겠습니다.
제가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범죄하지도 않고, 범죄할 수도 없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영적으로 성숙하는 신앙인이 되고 싶습니다.
오! 성령이여, 저를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