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타국 전쟁에 참가했던 적이 있다.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후 한국군이 참전한 전쟁이자 외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한국군이 참전한 것은 한국 역사상 처음이다. 물론 고구려나 고려 그리고 조선때 일부 중국 변방과 전쟁을 벌인 적은 있지만 제대로 체제를 갖춘 군병력이 대거 투입돼 전쟁을 벌인 것은 베트남 전쟁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그 이후 평화유지군 형식으로 몇몇국에 파병은 했지만 현지 질서유지차원이지 제대로 된 전투전력은 베트남이 아직까지는 유일하다.
한국에게 베트남전 참전은 참으로 묘한 여운을 남기는 역사적 현장이다. 한국이 베트남과 무슨 원한이 있어서가 절대 아니였다. 그냥 미국의 요청으로 파병한 것뿐이다. 목숨을 담보로 용병생활을 해서 돈을 좀 벌어보자고 나섰던 것이 베트남 전쟁이다. 하지만 한국 파병군들은 그야말로 용감하게 싸웠다고 한다. 미군은 꺼려하는 작전도 한국군은 그냥 수용해 상대를 굴복시키기도 했다. 당시 베트콩이 파놓은 땅굴속을 미군이 덩치가 커서 들어가지도 못하지만 체구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군은 그냥 들어가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누적된 한이 많았는지 한국군은 살벌하게 상대를 향해 공격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은 끝나고 이제 한국은 베트남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한국 유수의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몰려가 거대 공장을 세워 현지인들을 고용해 생산하면서 베트남 경제의 30% 가까이 충당하는 그런 관계가 됐다. 하지만 베트남인들 뇌리속에 담겨있는 그 학살의 현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었다는 베트남인들이 점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해결 방법을 모르고 시간도 상당히 지난 일이어서 한국측에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하지만 베트남 유족들은 과거의 역사를 들쳐냈다. 이에대해 2023년 2월 7일 한국의 서울중앙지법은 베트남인 63살 응우옌티탄씨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에게 약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020년 4월 제기한 소송의 1심판결이 이제서 나온 것이다.
이번 소송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것은 정부차원이 아니라 개인차원의 소송이라고 재판의 규모를 애써 축소했다. 사실 베트남 정부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 당시 벌어진 일에 대해 사과하려 할 때마다 자신들은 승전국 입장인데 패전국의 일종인 한국의 사과를 굳이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내전의 형식도 있기때문에 통일이 된 지금 굳이 그때 일을 다시 떠올리기가 싫은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이런 소송이 수면아래로 내려앉아 있던 베트남 남과 북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은 조금 요상하게 흐른다. 한국 정부가 1심 판결에대해 항소를 제기하자 베트남 정부도 더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이다. 베트남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베트남 정부는 한국 법원의 판결과 한국 정부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자신들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을 옹호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진실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베트남전과 관련한 소송이 한국을 넘어 미국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원치 않지만 그 당시 자행된 학살에 대한 진실을 굳이 묻을 생각은 없다는 입장임이 분명하다.
그렇다. 역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역사는 특정인 몇명이 지우려고 한다고 지워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떤 외교적인 작용을 통해 거칠게 나타나느냐 순하게 나타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국 정부입장에서도 과거에 대해 책임질 것은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회에서 떳떳할 수가 있다. 현재 이 정부에서 행한 것이 아니고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을 왜 이제 와서 야단이냐고 할 성격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역사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역사가 존재하는 한 과거사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 과거사를 그냥 덮자고 해서 덮어지는 것도 전혀 아니다. 몇몇 특정인이 없애려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본과도 마찬가지다. 일본측은 어떻게 해서라도 한반도에서 저지른 만행과 파괴행위에 대해 사죄를 하지 않고 그냥 덮으려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에는 공소시효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적당히 임기만 넘기면 되고 극우세력에게 빌미를 주지않으려 온갖 꼼수를 다 부리지만 역사는 냉엄하게 지켜볼 것이다. 일본 정부뿐만이 아니고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가 과연 어떻게 나오고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역사는 꼼꼼하게 기록할 것이다. 누가 과연 용기 있는 자이고 누가 과연 역적인가를 말이다.
2023년 3월 1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