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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보훈의 선구자, 박정희 대통령♧
‘한국보훈의 아버지’ 박정희, 재정난에도 보훈 보상 실행 백 마디 ‘보훈학’ 보다, ‘보훈정책’ 하나가 더욱 절실하다
1950년 6.25한국전쟁 휴전이후 11년이 흐른 1960년까지도 국가를 위해 치열한 전투에서 장애를 지닌 ‘상이군인’들은 국가보훈이 미진하여 육체와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에 대한 국가적 배려는 소홀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상이군인’의 행정기준이 무엇인지 조차도 명확하지 않았다. 행정기준이 명확하지 못하다 보니 1950년대 주요 자료들에 나타난 ‘상이군인’ 수는 적게는 11만여 명부터 많게는 14만여 명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국면으로 접어들어 갔고 당시 열악하고 궁핍한 나라 재정 상태라고는 하지만 집권 정권하에서 행정부 및 입법부에서 정당한 보상차원의 ‘보훈 법’ 재정 움직임과 정부의 전쟁 희생자에 대한 구호나 지원이 전무 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너무 가난하여 정부와 국민정서의 일반적인 인식으로 전쟁희생자에 대한 보훈에 대한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상이군인의 행정기준이 획기적으로 정리된 때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7월 5일 『군사원호청설치법』을 제정하고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던 원호업무를 총괄하는 ‘군사원호청’을 동년 8월에 설치하였다.
‘군사 원호 청’은 이듬해 ‘원호 처’로 승격되었고, 1984년 비로소 지금의 행정명칭인 ‘국가보훈처’로 개정되었다. 신설된 ‘군사 원호청’에서 연금증서 일제갱신사업을 벌여 연금증서를 갱신하지 않거나 신체검사를 통해 자격 미달인 자는 연금수급권을 박탈시켰다.
이를 계기로 연금수급권을 소지한자를 상이군인으로 인정하였다. 이러한 체계적인 보훈행정은「국가보훈기본법」을 태동시키게 된다.
이법은 보훈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의 영예로운 삶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나라사랑정신 함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대한민국 국가보훈 정책의 선구자인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는 1961년부터 1970년 까지는 우선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사, 전상자 위주의 원호를 중심’으로 하는 법률제정을 이끌어내었다.
무능력한 국가운영과 사회혼란이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군정으로 이양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실시한 체계적인 보훈행정은 상이군인들의 걸인 행위를 근절시킴으로서 반듯한 사회가 실현되었다.
당시 상이군인들은 걸인처럼 가가호호 방문하여 구걸하거나 금품의 강요하는 행위 및 물품의 강매 와 자해 또는 미필적으로 일반시민에 대한 폭행을 자행하는 등,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불만과 더불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 등이 다반사였지만 국가보훈 행정을 통해 사회전반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동년 11월1일에는「군사 원호 보상법」을 재정하고 군사원호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결성, 단체 또는 개인 원호활동을 법 규정에 맞게 시행되도록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이와 함께 박정희 군사정부는 이들 원호대상자들에게 각종 재활정책을 시행하고 혜택을 주고자 정권차원에서 보훈 정책 대안을 실행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보훈정책을 체계적이고 사회적 기반조성을 위해 1963년 8월 7일「군사 원호대상자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동년 8월 12일 대한상이군경회, 대한전몰군경유족회, 대한전몰군경미망인회 등 3개 군사원호단체가 합법적으로 설립되었다.
박대통령은 당시 열악한 재정 상황 하에서도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각 단체에 보조금을 교부할 수 있도록 결정하였다. 당시 ‘원호처장’에게 각 단체의 결의가 법과 정관에 위반된 경우 ‘원호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취소와 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권한을 부여하였다.
본 법에 따라 1973년 3월 3일 광복회, 4·19의거상이자회, 4·19의거희생자유족회가 적용대상이 되었다.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국가보훈 정책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어려운 재정상황에서도 보훈보상을 단행하여 ‘국가보훈을 반석위에 세운 지도자’란 평가를 받고 있다.
부패한 사회풍토와 먹고 살기 힘들었던 ‘보릿고개’란 고통 받던 시절을 벗어나 경제혁신을 일궈 세계 수출 선진국의 바탕이 되고, 고도경제성장의 기폭이 된 국민통합을 일군 지도자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보훈정책은 국민을 굳게 단결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나 된 국민여론은 근면성실로서 잘 살기운동에 믿음을 주었다.
가난했던 국민들에게 삶의 가치(value)로 승화된 ‘새마을운동’을 통해 성공을 성취하였다.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이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견인하였음을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시사코리아=안석호 기자>/글, 펌. 編 : 동해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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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라를 위하여 몸 바친 분들을 위해
역대 대통령들중 누가 호국영령 들을
생각 하신 분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예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외는...
원조각하님이 나라를 위한 분들을 많이 챵기셨지요.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호국보훈 원조각하의 깊은 애정이 담겨있었군요
저놈들은 세월호법으로 나라를 분탕질하는대 참으로 대조가 되는군요~~
여행가다 죽은 자들에게... 참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 된 국민여론은 근면성실로서 잘 살기운동에 믿음을 주었다.
가난했던 국민들에게 삶의 가치(value)로 승화된
‘새마을운동’을 통해 성공을 성취하였다. ‘할 수 있다’는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요즘 새민년 인간들 반성 많이 해야합니다
새민년 뿐만아니라 새누리도 마찬가지로 반성. 허나 이놈들 대가리에는 오직 똥만 가득차있으니 무얼 생각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