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태가 조인성과 부딪혔던 다음 날, 그러니까 5월 13일 경기를 잡아 낸 이후부터 이글스는 7승3패입니다.
그날 경기만 잡으면 좋은 흐름을 탈거라고 봤고, 아쉽게도 두번째 경기에서 류현진을 내고 접전 끝에 졌는데, 그 뒤에도 투수력이 유지되면서 승수를 많이 쌓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5월 전체로 범위를 넓혀봐도 11승 9패 .550의 비교적 좋은 승률입니다.
사장과 단장이 바뀌기 전, 구단 고위층에서 선수단에 격려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1999년 우승 시즌에도 3억 격려금을 받은 시점부터 승률이 확 올라갔었죠. 확실히 '돈'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긴, 저도 연말에 성과급 받으면 연초에 굉장히 일이 잘 됩니다.
아무튼,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사실, 작년에도 이랬던 적이 있습니다. 5월 11일, 류현진이 최다탈삼진 신기록을 세운 후 팀 분위기가 확 살아나면서 13경기 동안 10승 3패로 내달렸었죠. 중간에 적당한 타이밍에 세번 우천취소가 되면서 투수력도 세이브하고, 타자들이 부쩍 힘을 내면서 두번의 연승을 달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전력은 딱 거기까지였죠.
그 타이밍이 꺾였던 게, 혹자들은 "트레이드로 팀 분위기가 다운되서"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부족한 투수진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원래 투수들, 특히 잘 던지는 중간 투수들은 팀이 연승할 때 더 피곤합니다. 세상 어느 감독도 3연승 후 다음 경기가 접전이라고 "연승했으니 오늘은 쉬어가자" 하지 않습니다. 그럴때 더 바짝 조이죠. 윤규진 박정진 말고는 승리를 이어가 줄 힘이 없었고, 거기서 다시 문제가 시작된 겁니다.
올해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6월. 이제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가 구분되는 시기죠. "겨울 훈련을 못해서 체력이 달리는 선수"와 "스프링캠프를 잘 보내서 체력이 버텨주는 선수"로 나뉘는 시점이기도 하고요. 예전에, 우리가 만년 7위를 하던 시절에도 문제는 늘 6월이었습니다. 3승 13패, 4승 14패같은 살인적인 승률을 찍었던 것도 바로 이 계절이죠.
(몰락이 시작된 08년은 9월이 문제였지만)
그 6월이 또 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선발투수+박정진 / 득점권에서 타선의 집중력으로 연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타자들의 집중력은 언젠가 또 나빠지고, 그러다 또 좋아지고 할 겁니다. 타력이란게 원래 시즌 내내 사이클을 타니까요.
문제(?)는 김혁민/안승민/장민제/박정진이 기대치 대비 최고 수준의 성적을 몇경기 째 계속 찍어주고 있는데, 이 페이스를 어느 수준까지 끌고 갈 수 있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계속 잘했으면 좋겠고, 한화 팬으로서 그러기를 진심 바라지만 어차피 변수란 건 나오게 마련입니다. 더워서 지칠 수도 있는거고 운 나쁘게 다칠 수도 있는거고, 상대 타자들에게 공략을 당할 수도 있는거죠.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예상할 때, 그때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은 누구냐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사실 강팀과 약팀을 나누는 건 바로 이 부분입니다. SK나 삼성이 강팀인 건, <김광현 정대현>과 <장원삼 오승환>이 <류현진 박정진>과 1:1로 붙어서 현격한 비교 우위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 사람들한테 문제가 생겨도 정우람 고효준 전병두 이승호가 나오거나 정현욱 권오준 권혁 안지만 임현준이 줄줄이 나올 수 있는... 바로 그 <전력 운용의 폭>에서 성적이 갈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박정진이 없을 때 대안이 없습니다. 계산이 서는 안전한 카드 말고, 막연한 <바람>이나 <운>에 기대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부분 때문에 올해 <팀 순위>자체는 높지 않을거라고 봅니다.
다만, 지금의 선발 로테이션으로 풀시즌을 치를 수 있다면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겠죠. 09김혁민처럼 그냥 어떻게든 나가서 던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지금처럼 제법 이기기도 하고, 혹시 질때도 4~5이닝 정도는 눈 뜨고 봐줄만큼 막으면서 선발진의 구색을 갖출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면서 박정진이 버텨줄 때 다른 중간계투 요원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올해는 팀 순위와 상관없이 성공적인 시즌이라고 봅니다. 이건 감독이나 코치 한 두명이 마법처럼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고 복합적인 요인이 필요한데, 최근 부쩍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잘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P.S 5월 6일 경기에서 홈런 2개를 맞고도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를 챙겼던 오넬리가, 팀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는지 그 이후 4경기에서는 잘 던져주고 있습니다. 요즘 잘나가는 LG, 강팀으로 분류됐던 SK-삼성-두산을 상대로 던졌는데 4.2이닝 1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1승 2세이브를 챙겼습니다.
오넬리의 거취 문제를 판단하기가 계속 애매해지고 있습니다. 박정진이 잘 던지니까 교체하고 타자를 데려오자는 의견이 압도적(?)인데, 막상 그래버리면 우리는 좌불펜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선발과 마무리만 갖고 (99년처럼, 그러니까 13년전 스타일로) 야구를 하게 됩니다. 지난번 두산전처럼 3이닝 마무리를 맡겨야 되는 상황이 더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동안이라 다들 잊으셨나본데, 박정진 올해 36살입니다. 마일영이 회복되고 윤규진이 더 많은 이닝을 던져주면 가능한 시나리오긴 한데 아직 불투명한 명제죠. 점점 더 복잡한 계산법이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오넬리가 망친(?) 경기의 충격과 데미지가 상당하지만, 곰곰히 뜯어보면 변론해 줄 부분도 있습니다. 시즌 초 2경기는 잘 막았고, 세번째 경기에서 6실점으로 널뛰기를 했는데 등판 간격이 굉장히 길었습니다. 보름 동안 딱 세경기 나왔으니까요.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은 부분도 있을겁니다. 심지어 다른 리그에서 첫 시즌인걸요.
그 후 4경기는 출루를 좀 허용하며 가끔 분식회계를 하면서 무실점. 다음 2경기에서 1경기는 못던지고 1경기는 잘 던졌는데, 그 다음 3경기에서 홈런을 연달아 허용하며 소위 '폭망'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4경기에서는 또 잘 던지고 있는거죠. "기복이 심하니까 더 망가지기 전에 빨리 내보내자"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한편으로는 "시행착오를 겪고 이제 안정세에 접어드니까 기다리면 잘 할거다"라는 판단도 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각자의 자유지만 말입니다.
첫댓글 날카로운 분석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오넬리 방출은 보류예요.. 데폴라는 어여좀....
오...감탄이 절로 나오는 명확한 분석이네여...우리의 문제점이 대체자원이 부족하다는건 예전부터 알았는데...젊은 선수들이 올라와줘야 하는데...선발로 간 투수들은 어느정도 자리를 굳히는거 같은데...불펜이 생각만큼의 활약을 못해주니...ㅠㅠ
저도 불펜의 과부화와 자원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인거 같습니다. 그래서 안영명이 복귀했을때 좋아라 했지만 현 상황에선 예전의 안영명은 아닌 것 같아 많은 이닝을 소화하긴 무리인것 같고 초반 좋았던 정재원 또한 2군으로 내려간 상황에서 좋던 싫던 1이닝은 먹어줄수 있는 데폴라와 오넬리가 "아직"까지는 필요하디고 봅니다. 박정진혼자 이끌고 나가기엔 너무 많은 이닝과 너무 많은 나이가 문제입니다.
정말 간만에 보는 1선발님의 글이네요... ... 짧더라도 자주 좀 글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1선발님 글때문에 들어오는 1人
1선발님 글때문에 들어오는 2人. 많은글 부탁 드립니다..
저도 그래서 들어오는 3人, 공감하고 돌아갑니다.
역시 경륜이 느껴지는 글... 저 역시 교체한다면 타자보다는 투수가 휠씬 좋다고 생각하고 교체는 신중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저도 공갑합니다....오델리랑 데폴라를 타자로 바꾸자는데....
가만히 보면 시즌 초반빼면 은근 지할일들은 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아 진짜 1번선발님은 분석력도 분석력이지만 저 깔끔한 문장력...물론 그 바닥에서 일하신다고 항상 겸손해하시지만 느무느무 부럽다는...
데폴라는 어떻게 하는게 정답일까요?? ...
ㅋㅋ 동감입니다. 08년도의 비극은 태균 선수의 뇌진탕 ㅠ.ㅜ 그 이후로 하락세..ㅠ 오넬리 이제 44세이브 남았다는..ㅋㅋ목표가 50세이브니..^^;;;
둘 다 교체가 답입니다 오넬리보다 좋은투수데려올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