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스님에게 글 올립니다.
三寶에 歸依 하옵고......
스님 추수의 계절이다 보니 농부의 바쁜 손길이 움직일 때이고 부처님의 森羅萬象 大自然이 우리의 중생들에게 無言의 가르침이 가슴속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어디 산간 들녘 에만 대자연의 만상이 또 한 해를 보내는 풍경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10월20일 해인사 백련암에도 한해를 보내는 가을의 정취는 사찰 주변 산간에 울긋불긋한 옷으로 단장된 모습들이 우리를 반겨 맞아 주는 듯하였고, 우리 일행은 108번뇌 세속의 때를 잠시라도 벗기 위해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한발 두발 부처님 품속으로 다가가는 그 순간 마음이야 몇 해를 두고 계획했던 일이라 감개가 무량 할 정도의 가슴이 벅차 있었습니다.
성철 큰스님의 “산은 산, 물은 물,” 의 그 유명한 말씀은 아직도 귀에 쟁쟁 할 정도의 가슴에 와 닿고 있지만 이 말씀이 진정한 무엇을 뜻하여 국민에게 하신 말씀인지 수십 해가 지나도 어리석은 생각과 망상에 사로잡혀 아직도 무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경남 합천군 합천해인사 백련암, 옛날 성철 큰스님의 글을 접하고 난 후 대구에 볼일 보러 갔다가 틈나는 대로 그 분이 계신 곳이 어 덴가 싶어 절 구경만 하고 온 경우도 있었고 또한 집사람과 백련암 불면석에서 사진촬영과 성철 큰스님 사리탑에 참배마치고 사진촬영하고 온 기억도 있습니다.
그 유명한 성철 큰스님의 삼천배 이야기는 책을 통해 많이 듣고 알고는 있었지만 제가 삼천배를 해 보겠다는 결심은 그 당시 엄두도 못 냈다가 근간(2년전)에 아비라 카페와 인연이 되어 삼천배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하고 사회생활하면서 언젠가는 꼭 가서 삼천배 기도를 마쳐야 되겠다는 결심은 하고 있었지만 그 결심이 2년의 세월로 훌쩍 넘어 가 버렸습니다.

이 해도 2개월만 지나면 또 한해가 넘어 가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고
부터 이번만큼은 어떤 여한이 있어도 삼천배를 마쳐야 되겠다 싶어 집사람과 의논 끝에 “백련암에서 일주일로 기한을 해서 삼천배를 마치고 오자. 이제 나이가 들면 삼천배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의 의논으로 합의를 보고, 날짜를 잡은 것이 10월20일 월요일로 해서 백련암에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일주일 기간을 잡은 이유는 제가 전번에 아무 준비도 없이 삼천배에 참가하였다가 1천500배에서 좌절을 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실패를 안 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충분한 연습이 필요가 했고, 더군다나 사회에서 절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백련암에서 일주일 기준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우린 백련암의 내부 사정도 모르고 또한 법도와 규칙이 어떤지도 몰랐고, 그저 일반신도가 절에 가서 통상적인 예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을 했고, 절 또한 자신의 근기에 맞춰 절을 하되 삼천배를 마치고 하산하면 되겠다는 생각 이였을 뿐이지 더 이상 더 이하의 생각은 해 본 사실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백련암에 도착하자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젊은 스님에게 우리(마누라, 손자)가 온 목적과 본인의 신분을 밝히고 “원주스님오시면 연락주세요, 인사 올리겠다.”말을 전했고 또한 그 스님도 “오늘은 짐을 풀고 내일부터 기도에 들어가라” 하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남,녀의 처소로 돌아와 저녁 예불은 집사람이 속이 좋지가 않다하기에 손자 녀석과 예불을 끝내고 우선 216배를 부처님께 올리고 처소로 왔습니다.
21일 새벽예불부터 참석을 하면서 그때부터 조금씩 절을 시작을 했고 저녁예불에도 참석을 해서 예불을 마치고 법당에서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는 과정에서 스님이 우리를 잠시 볼 것을 청하기에 합장을 하고 의아한 표정으로 옆에 가니 스님이 하신 말씀이 “현재 절을 몇 번 했
는냐,” 묻기에 “집사람은 1천배를 했고 저는 500배 했다”고 말하니, 스님이 하신 말씀이 “내일 아침예불 끝내고 아침공양 들고 하산 하세요” 라는 말을 하기에 어 떨떨 결에 “예”하고 나와 이게 무슨 말인지, 황당해지기만 했고, 또한 창피스럽고 서글픈 마음이 들고 해서 처소에 와 집사람과 멀끔히 서로 처다 보면서 한 동안 말이 없었다가
“절에서 쫓겨나가는 신세에 내일가면 뭣하나, 오늘밤에 짐 싸들고 하산하자”로 합의를 보고 밤에 구룡포로 단박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공양 간에 나이 많으신 보살님의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납니다.
백련암에 도착해서 부처님전에 참배를 하고 저녁 공양하러 공양 간에 가니 나이 드신 보살님께서 제 손자 녀석을 보고 “절에 놀러온 것도 아니고 애를 데리고 와서 무슨 절을 하느냐?” 하기에 그것도 한번으로 끝내지 않고 두 번씩이나 묻기에 “어릴 때부터 가르쳐 야지요” 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 넘겨 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저녁공양시간에 나이 드신 보살님이 또 “여기서 밥 얻어먹으려면 삼천배를 해야 된다.”하기에 기분은 조금 상해 있었지만 삼천배란 자신의 하심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기도에만 열중 할 생각만 가졌는데 그날 저녁예불에 집전스님께서 하산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시니, 무슨 이런 일이 있나 싶어, 한동안 말문이 막혀 서로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스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로마의 법도 로마에 처음 가는 사람에게 로마법을 가르쳐줘야 로마법을 알듯”이 아무것도 모르고 사찰의 통상적인 예만 알고 간 일반신도에게 백련암 사정을 알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백련암의 사정이 어떤지 여기에 머물 동안 처신을 어떻게 하라고 규칙을 가르쳐 주든지 아니면 초행신도와 대화과정을 열어 의논정도는 해야 될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경북포항에서 경남 합천까지 그것도 2년간 벼르고 벼른 끝에 용기 내어 찾아 갔는데 백련암이 무슨 어느 군 특전사부대도 아니고 말입니다. 또한 공양 간에 나이 많으신 보살님도 보아하니 삼천배를 여한도 없이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엄한 백련암에서 쫓겨 가지 않고 안주(安住)하고 계신다,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하고 비교를 해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까지 108배만 하고 다녀도 조금 하심이란 씨앗이 생겨 상대방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아는데 까지 가르쳐주려고 노력을 조금씩 해 왔습니다. 그런데 나이 많으신 보살님께서 저한테 삼천배를 운운 할 정도의 실력 같으면 처음 온 신도에게 자상한 어조로 백련암의 역사나 아니면 삼천배를 해야 되는 동기, 이 사찰에서 지켜야 될 규칙 또는 분위기를 삼천배를 득한 선배 중생으로서 후배 중생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아량(雅量)을 베풀 줄 아는 선배님이여야 되는데 그런 것 같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내용의 글들을 아비라 카페에 올려 제 행동에 대한 비판을 들어 본 결과 어느 회원님은 ‘바람이 부니깐 파도가 친다.“ ”하늘에서 햇빛이 비쳐도 양지와 엄지가 생기는 이유“를 들었고, ”절은 자신의 마음자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란 말과, “스님 말씀 개의치 말고 시작한 삼천배는 마쳐야 된다.“는 말씀과 ”늘 크지도 않는 작은 바람에 늘 출렁대기 마련이며, 우리는 그릇이 덜 찼으니까 그래서 삼천배를 한다.“ ”절밥은 공짜가 없으니깐 절값을 해야 된다” “백년을 닦아도 머리 깍은 스님만 못하다.”다는 댓글이 들어와 있어, 저를 위한 위로의 글과 삼천배 기도에 박차를 가하라는 글들로... 역시 절 많이 하신 분들의 혜량(惠諒)의 글들이 나의분심(忿心)에서 “내 잘못도 있어구나”의 반성으로 되 돌아와 원점에서 다시 시작을 해 볼까합니다.
제가 스님에게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 동기는 “수염이 석자라도 손자 말은 들어야 한다.“ 는 옛말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원주스님이라 하면, 백련암의 책임자 또는 감사의 직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찰의 모든 권리와 집행은 원주스님에게 책임이 있고, 사찰에 일어나는 일거수일투족들이 원주스님께서 알고 있어야 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하산명령을 한 것은 원주스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고 있습니다. 사찰의 모든 일들이 스님을 통하지 않고 덮어져 넘어가고 있다면 그 피해는 누가 본다고 보십니까?
위의 글과 같이 누가 잘했고 못 했고 가 아니고 이제는 절의 분위기를 쇄신시켜 일반신도들도 절에 있으면서 삼천배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가르쳐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철 큰스님께서 이후, 제자들에게 원(圓)자 돌림의 법명을 지어주신 이유가 당신처럼 너무 딱딱하게 살지 말고 둥글게 살아가라는 뜻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예로 성철 큰스님 살아계실 때 사월 초파일 되면 다른 사찰에는 연등을 달아 그래도 그 시주로 절 살림을 살아 왔는데 그것마저 못 달게 했고, 비구니스님이 큰스님에게 친견 차 왔다가 해질 무렵 하산하라는 엄명으로 그 당시 차량도 없는 산골에서 야밤에 내려온 일들이나, 스님들이 참선과정 잠시 졸고 있다가 큰 스님에게 발각되어 “야, 이 도둑놈들아 밥 값 내놔라”하시면서 의 호통은 우리같이 세속에 적을 두고 있는 중생들은 상상도 못할 일들입니다.
이젠 사찰도 시대에 맞게 현대화로 갈 때가 되었고, 원칙은 지키되 대승적 차원에서 방법을 조금씩 시정 해 나가면서 일반신도들이 쉽게 접근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될 줄 믿습니다.
사찰에 理判僧 事判僧이 있는 이유가 공부하는 스님과 공부하는스님을 돕는 경제를 담당하는 스님들이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시주하는 신도가 없으면 또 절은 어떻게
세워집니까? 절과 스님, 그리고 신도는 불가분의 관계는 석모니 부처님 시절부터 내려온 전례로 이어져 왔습니다.
제가 스님에게 글을 써다보니 글이 많이 길어 진 것 같습니다.
혹 글의 내용이 잘못 된 부분이 있더라도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주스님의 건강과 불보살님의 가호가 항상 곁에 있으시길 기원 드리면서 삼보에 귀의하는 마음으로 공손히 글 올립니다.
2008년 11월10일
경북 구룡포 이 영 철 합장 _()_()_()_
경남 합천해인사 백련암 원주스님 귀하
첫댓글 이 글을 원주스님께서 보시길 바라고, 보시면 꼭 설득력 있는 답변이 있으셔야 할 것 같네요. 뭔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이 분 말씀대로라면 많이 섭섭하셨겠습니다. 가끔 노보살님들 중에는 터무니없이 용감한 분들이 계시기는 합니다. 아이를 데려간 것이 기도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그리 판단하신 것은 아닌지...
예전에 큰스님 생전에는 아이들 데려가면 큰스님 말씀하시길...큰 놈은 가서 절하고 작은 놈은 이리 와라...하셨다는데. 그래서 어른들은 가서 3천배하고 아이들은 큰스님과 놀았다는데...극락같지 않나요?
부처님 향한 간절한 마음, 그거 하나면 되지, 쫒겨나야 할만한 그런 법도랄께 있겠습니까?...설사 있다면 알려 주면 되지 몇 년 벼르고 준비해 온 기도를 말 한마디로 자른다는 것은 첨 어이없습니다. 원주 스님이 그렇게 하신데는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큰 실수하신 것 같네요.
큰스님 계실 때, 3천배 다 못채우고 부도낸다고 혼내시고 내쫒는 것은 있으셔어도 아이를 데려온다고, 무슨 법도를 몰라 지키지 않는다고 쫒아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원주스님께 우리 중생들이 모르는 어떤 깊은 뜻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백련암 첨 같을때 경험했을만한 이야기를 글로 올리셨네요.. 백련암 가면 저도 모르게 주변을 살피며 조심하게 되더라구요..아이들 데리고 가면 더욱 조심스럽구요....백련암 보살들은 절많이 하기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렇다 ..이런 말을 누가 하던데...절 많이 하면 할 수록 하심 해야 하지 않나요..?
충격의 정도가 비슷합니다. 회향날 하산준비 상태에서 [유사한 상황]으로 ...산을 내려오며 정황을 돌아보니 회향날 착오였지요.허공을 흩어지던 눈물..허탈한 웃음...수행과 수행자를 다시 생각한 좋은 기회였지요..공양주..지금은 다른 분이겠지만 낮 천도제때 젊은 보살들이 세면장에 신발을 신고 들어와 흙이 있기에 물로 청소했는데 저녁공양하러 들어서니[ 소리소리 ]합니다.세면장에 신발신고 들어갔다고...기도객은 저 혼자였거든요. 처음 본 사람에게 죄인몰듯이....처음과 끝이 내 의지와 아무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이것도 내 허물이다 싶어 잊어버렸고 나름의 환상에서 깨어났지요.
제도 백련암에 처음 갔을 때 마냥 다 좋을 순 없었습니다. 제가 몇번 맘 먹고 기도하러 갔었을 때, 오래 기도 하셨다 하시는 보살님 중에도, 초심자에게 쌀쌀맞고, 퉁명스럽게 구는 보살님이 계시기도 했고, 반면에 상냥한 친절하고 고맙게 대해주시는 보살님도 계셨습니다. 제도 어찌보면 백련암 기도 갈때 마다 이 두 가지 경우를 다 겪었습니다. 첫번째 같은 보살님을 만나면 기도도 많이 힘들어지요 ^^;;; 아마 아무리 절이라고 하시만,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 긴장되고, 모르는 초심자에게 퉁명하고 쌀쌀맞게 대하는 보살님을 접할 때 몸도 마음도 힘들어 짐니다.
안 그래도 힘든 기도하는데...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라 그런가 봅니다. 그렇지만,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 퉁명스럽고, 다 쌀쌀맞지는 않기에... 스님들 역시 말씀이 간단하고, 뭐.... 그리 친절하다고는 말할수 없는 스님도 뵈었고, 반면 또 그렇지 않은 스님도 계시기에... 스님도 사람이라 이런 스님 저런스님 다 섞여 있는 듯 합니다. 반면 어떨때 보살님이 스님보다 더 친절하고 자상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ㅎㅎㅎ~ 말 그대로 보살같이.
慈悲(자비).............원주스님과공양주보살..........아상...백련암....상구보리 하화중생...
진여법계엔 無他無自라.. 원주스님 한 방망이 때리세요 그라고 중생의 분별심 서운하단 생각 없는 자리로 돌아가시지요 성불하세요 _()_
서운한거 없습니다. 그곳이 [백련암]이였기에 글 쓴분의 황망함이 느껴져 몇자 적은것 뿐이지요. 어느곳이든 수행중에 만나는 경계는 내 업장의 그림자가 모습만 달리 나타난다고 여기고 수행의 공부거리로 삼습니다. 입산에서 하산까지 거의 묵언으로 지내고 머물던 자리 흔적없이 깨끗히 정리하는것으로 마무리 할 뿐 입니다. _()_
남의 말에 속거나 끄달리지 말아야 겠습니다 무릇 그 말이 지고지순한 법이라 할지라도...큰스님께서도 고구정녕 내 말에 속지 말라고 당부하셨지요 어느곳에서나 스스로 주인이 된다면 진실의 순간을 느낄것입니다 도반님들 모두 백련암 아니 우주의 주인 되시길 바랍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