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가 깃든 삶] 어느덧나무
작고 붉은 꽃이 피는 나무가
있었다
어김없이
꽃이 진다고 해도 나무는
제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어김없이 어느덧
흐릿한 뒤를 돌아보는 나무
제가 만든 그늘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어느덧나무 어느덧나무
제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러보는 나무를
떠나간 사랑인 듯 가지게 된 저녁이 있었다
출가한 지 오래된 나무여서
가까이할 수 있는 것은 이름밖에 없었다
―심재휘(1963∼ )
옛적에, 내가 가보지도 않았고 살지도 않았던 시절에 ‘무엇’이 살았다. 이런 첫 문장은 항상 기대된다. 책을 펼친다면 그 시작은 항상 이런 문장 때문이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이 하는 말이 궁금해서 남의 글을 읽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작고 붉은 꽃이 피는 나무가 살았다는 첫 문장이 너무 좋다. 그는 어디서 나무를 만났을까. 작고 붉은 꽃은 얼마나 작고 얼마나 붉었을까. 사실 그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었을 것 같은데, 시인은 그것을 어디에 감춰두었을까. 잊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불렀다고 했다. 나무 아닌 것이 ‘어느덧’ 나무가 되었다는 말로도 읽힌다.
나도 이런 나무가 될 수 있을까. 마음속 나무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간절히 부르면 나도 분명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꽃을 피웠다고 혼나지 않고, 꽃을 떨궜다고 비난받지 않고, 꽃이 피면 피는 대로, 꽃이 지면 또 지는 대로 그저 나무일 수 있을까. 그대로, 너대로, 네 이름대로 살렴. 이 시는 그렇게 응원하는 듯하다. 이 더운 날, 더운 지구 위에서 나무의 지지를 받고 싶다.
✵심재휘 시인은 1963년 강릉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고려대학교 국문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시인이 되었고, 2002년 첫 시집이자 제8회 ‘현대시 동인상’ 수상시집인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을 펴냈다. 시집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등이 있다. '작가세계' 신인상, 현대시동인상, 발견문학상, 김종철문학상 등을 수상 하였다. 현재 대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동아일보 2024년 08월 10일(토), 〈詩가 깃든 삶, 나민애(문학평론가)〉》,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호아킨 소로야(Joaquín Sorolla, 1863-1923), ‘바닷가 산책(Walk on the Beach)’,
1909년, 캔버스에 유채, 205x200cm, 마드리드 소로야 미술관.
호아킨 소로야(Joaquin Sorolla, 1863~1923), '순간의 포착', 1906년.
호아킨 소로야(Joaquin Sorolla, 1863~1923), '이탈리안 소녀와 꽃(Italian girl with flowers)', 18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