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자비라는 칭호에 기쁨을 느낀다.
하느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려면 아무리 작아도 모든 행동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조국의 전쟁 때에 어린이들이 격는 어려움들, 눈물, 고통, 추위, 배고픈 상황에 대하여 기도드렸더니 예수님은 눈에 눈물을 흘리시며,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라."
우리의 행동을 가치롭게 하는 것은 사랑 뿐 이다. 사랑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우리 안의 고통의 불길도 사그라져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기쁨이 되게 할 것이다.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줄 좋은 기회를 갖게 됩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적으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보여 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전혀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위대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고통도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순수한 영혼 안에서는 사랑이 이러한 위업을 이루어 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 자비의 바다에 저의 모든 희망을 두겠습니다. 저희들을 위한 자비의 샘이신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이여,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순수한 사랑은 죽음의 순간에도 영혼에게 힘을 더해준다. 내가 십자가위에서 죽어갈 때, 나는 내 자신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불쌍한 죄인을 생각하였고, 그들을 위해 성부께 기도하였다."
너의 마지막 순간이 십자가 위에서 내가 보였던 모습과 같기를 바란다. 영혼을 구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각자가 받는 고통을 내 십자가상의 고통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은 이 말을 이해 할 것이나 세속적인 사랑은 이를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고통이 심할 때, 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애쓴다. 그러한 순간 혀는 스스로 말하려는 경향이 있어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 혀의 임무는 내게 주신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찬양하는 일이다.
내 혀가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했으면 한다. 혀가 저지르는 범죄는 실로 크다. 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성덕을 쌓을 수 없다.
"내 위대함이 이해를 초월하고 있지만, 나는 작은 사람들과만 대화한다.
너도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라."
"네가 단순함과 겸손함을 배울 때까지 나는 어린이의 모습으로 너와 대화
할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성탄 때의 감격으로 성탄 다음 목요일에 해야 할 성시간을 빠뜨렸다. 무엇을 빠뜨린 것 같아서 임무를 하나 하나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열시쯤에 슬픈 얼굴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고통을 너 보다 더 잘 이해해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내 고통을 너와 나누기 위해 지금까지 나는 너를 기다렸다."
내 성심의 사람들, 특히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자비로 넘치고 있다. 내가 그들의 가장 좋은 아버지요, 내 자비에 넘친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기만 한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 자비의 왕으로서 감실 안에 있다.
나는 은총을 베풀고 싶으나, 그들은 받으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너만이라도 자주 찾아와서 그들이 원치 않는 내 자비를 받아 가거라. 그것이 내 성심에 위로가 될 것이다. 오, 사람들은 그 숱한 내 사랑의 증거에 얼마나 무관심한가.
내 성심은 이 세상에 머물면서 배은망덕만 당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일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아도 내 은혜를 받는 데에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선택된 너희에게 눈길을 돌리는데 너희까지도 내 성심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내 마음에는 실망이 인다. 왜냐하면 나의 사랑에 완전히 승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건이 많고 불신이 많고 조심이 많다. 그러나 너무 슬퍼 말아라.
이 세상에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며,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 안에서 산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너무도 적다. 어떤 가정에는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성부께서는 각별한 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그들은 천사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던져 줄 것이다.
그들의 수는 적지만 천상 성부의 정의에 방패가 되고, 세상에 자비를 얻어 주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사랑과 희생으로 인하여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견디고 있다.
"내가 특별히 선택한 영혼이 불성실 할 때, 내 마음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가 남는다. 그러한 불충은 내 마음을 꿰뚫는 화살이 된다." 이에 성녀는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실지로 느껴 보았다.
"일 년 내내 피 흘리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 보다, 한 시간 동안 내 고통스러웠던 수난을 묵상하는 것이 더 값진 일이다.
내 고통스러웠던 상처에 대한 묵상은 나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
네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여 내 뜻이 네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여라. "오늘부터 내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적고 십자가 표시를 하여라. 그리고 그 뒷면에 "오늘부터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이든지 하느님의 뜻대로 할 것이다." 라고 적어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 사랑이 너에게 힘을 불어넣어 이 일이 쉽게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시키는 대로했다. 자기 부정이 일상생활의 습관이 되었다.
나의 자비에 의지하는 사람, 나의 큰 자비에 감사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에 나의 무한한 자비를 얻을 것이다.
정의의 저울을 보여 주셨다. 한쪽에는 정의의 칼이 얹혀있고 다른 쪽에는 천사가 수녀들의 희생을 담아 놓았다. 수녀들의 희생이 하느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 세상을 향해 떨어지는 벌의 칼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할 때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
매를 맞으시고, 고문에 의해 옷은 찢겨 나갔고, 말라붙었던 상처가 다시 터졌다. 병사들은 더럽고 낡은 주홍색 외투로 신선한 피가 흐르는 주님의 상처를 덮어 씌웠다. 옷은 무릎까지 닿았는데 그들은 주님을 나무 그루터기에 앉히고 가시나무로 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웠다.
그들은 주님의 손에 갈대를 쥐어 주고 놀리면서 왕에게 하듯이 절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주님을 때리고 어떤 사람은 갈대를 빼앗아 주님을 때렸다. 어떤 사람들은 손으로 쳐서 고통을 주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수건으로 주님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쳤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고통을 양순하게 받아들이셨다. 누가 그 분을, 그분의 고통을 이해하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눈을 내리 감고 계셨다.
그 순간 나는 예수님의 성심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서로 경쟁이나 하듯 주님을 모독하였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이러한 사악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원인은 죄에 있다. 사랑과 죄악이 만난 것이다.
자비심의 성화 첫 전시
파우스티나는 그 성화가 살아 움직이면서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는 모습을 보았다. 그 빛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은 양으로 비추어 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약하게, 어떤 사람에게는 강하게 비쳤다.
"너는 내 자비의 증인이다. 너는 내 자비의 증거자로서
영원히 내 어좌 옆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자비의 축일은 부활 다음 주일이다.
이 축일은 나의 깊은 자비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축일은 나의 자비가 얼마나 큰지 확인해 줄 것이다. 내 자비를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그 자비를 얻게 될 것이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 하여라. 주님의 자비는 끝이 없도다. 만사는 끝이 있어도 주님의 자비는 끝이 없고 측량 할 수도 없다. 진정으로 참회하는 자에게 당신은 연민 그 자체이십니다. 죄가 클수록 하느님의 자비 또한 더욱 큽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크나큰 계획을 계시 받고 그 엄청난 사실에 놀라며,
예수님과의 대화를 피하고 염경기도에만 열중하려 하였다.>
"너는 이 세상으로 하여금 나의 재림을 준비하게 할 것이다.
내 딸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항상 함께 있겠다. 너는 내가 거하는 곳이요 내 변함 없는 휴식처이다. 너 때문에 벌하려던 손을 거두고 대신 축복을 내리고 있다."
내 마음에 어떤 불이 붙는 것 같았다. 내 모든 감각이 멈춰졌고,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비교 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이상한 고통이 내 영혼에 스며들어 왔다.
하느님의 포옹으로 나는 하느님 안에 잠겨 무력한 사람이 되었다.
물방울이 태양에 떨어져 종적을 감추듯이
나도 하느님 안에서 없어지는 것 같았다.
주님과 일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