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재레드 다이아몬드 외 지음
- 출판사
- 와이즈베리 | 2013-04-05 출간
- 카테고리
- 인문
- 책소개
- 언어, 학문, 예술, 제도, 테크놀로지, IT 등 인류가 만들어...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다 아실 만합니다. 그렇죠. 이 책은 '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밈'이란 개념의 창안, 혹은
발견이 누구의 공인지는 다소 모호한 점이 있긴 합니다. 물론 대체로 리처드 도킨스 옹을 떠올리기는 하고, 실제로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장엄하고도 친절한 밀도와 어조와 유감 없이 그 해제가 드러나 있기도 하죠. 그러나 다시 한 번 이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혹은 저자 집단)이 누구인지 살펴 봅시다. '엣지파운데이션'입니다(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 편 에세이의 집필자일
뿐이고, 나머지 눈부신 다른 필진은 모두 재레드 다이아몬드,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요-, 또 이 책에는
편자로 제시되어 있는 존 브록만 같은 재사, 현자, 예언자[?]들이 모두 소속되어 있는 그 집단입니다).
대체로 말하자면, '밈'의 창안에 있어 그 공은 도킨스 옹에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박력은 넘치지만 과학적으로 반드시
명쾌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던 그 개념이, 현재 여기까지만큼이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게 된 것은, 도킨스 한 분의 업적만은 아닌,
그와 공감하고 또 인적으로 교류까지 했던 복수의 두뇌들이 모두 기억되어야 할 복합적인 공로였다고나 하겠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뭐냐고요?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을 보세요. 읽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거의 사십 년 전 지적인 충격(!)을 엄청난
파장으로 몰고 왔으나 동시에 논란도 많이 야기했던 그 개념이, 오늘날 이만큼이나 안정적이고 평온한 외연, 내포를 갖게 될 것이라고
과연 당시의 독자들이 예견할 수 있었겠냐는 거죠. 그것만으로도 어찌 보면, 한 개념 역시 다양한 변인과 환경적 영향을 거치면서,
나름의 진화, 혹은 '공진화'를 겪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이 멋진 책에 도킨스 옹- 그룹의 중요, 핵심 멤버이기도
한-의 글이 없는 것은 유감입니다. 심지어는, 언급이나 인용도 자주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 세 번을 읽었는데,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표지 예쁩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ㅎㅎ
책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솔직히 말하면, 전 아직도 왜 이 책 이름이 '컬쳐 쇼크'라고 붙었는지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ㅎㅎ
물론, 이 책은 '문화'이야기가 주 테마이고, 도킨스의 그 혁신적인 아이디어 '밈'을 보다 '문화' 쪽에 초점을 맞추어 화려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장쾌하면서도 낙관적인 비전을 곁들여 풀어 놓은 책이기는 합니다. ㅋ 그리고, 그 내용의 선진성? 혹은 파격성?
나아가 종래의 안이한 관념 구조를 뒤흔드는 듯한 파장과 깨우침에 충격을 받은 점 역시 매우매우 큽니다(제가 이 책을 1회독한 건
벌써 이 달 초의 일인데, 이제서야 리뷰를 쓰는 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였습니다). 그러니, 저자(집단)이 자연과학의
논리를 빌어(사실 통섭의 입장에서는 이런 구분 짓기 자체가 무의미하겠죠?)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어리석은 저 같은 독자는
'쇼크'를 받으니, 제목은 아주 적절하다고도 볼 수 있겠어요.^^ 그러나 이건 물론 농담이고, 영어 원서(이 한국어 번역본이
대단히 좋아서, 일부러 원서까지 주문해서 읽어 보았습니다)의 제목은 그저 '컬처'입니다. 아마 '쇼크'는 번역하신 분, 혹은
출판사의 고려가 개입된 산물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알 수는 없죠. 그러나 저 영어 원서 제목도 다소 당혹스럽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대체 어떤 책 이름이 아무 수식어도 없이 그저 '컬처'로만 붙을 수 있을까요? 책 내용이야 물론, 엄청난 생각거리와 각성의
계기, 유인을 젯공하고 있습니다만, '책 제목' 자체에 대해 이런 (어찌 보면 공연할)고민을 해 보는 건 또 드문 체험입니다. 이
점은 나중에 생각이 정리되면 제 블로그에 다른 포스트를 통해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첫 장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짧은 에세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분이야 <총 균 쇠>로 워낙 세계적 히트를 치신 분이고, 국내에서도 모
대학도서관에서 대출 1위를 기록한 명저자이니 소개가 불필요하겠지만요, 이 책에서의 아티클을 읽고 느낀 점이란, 역시 못말리는
조심쟁이, 사고와 논리의 완벽, 정연함의 추구에서 언제나 소홀함이 없는 단정한 천생 학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전체계와는 다소 안 어울리는 주제입니다(원서를 보니 번역서의 세 번째 아티클인 대니얼 데닛의 글이 맨 처음으로 등재되었고,
다이아몬드의 글은 두번째로 실려 있더라구요). 그래서, 물론 존 브록만의 확실한 인트로가 있기는 하지만 서브-인트로의 구실을 다시
해 줬으면 하는 의미에서는 좀 부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고갱이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도킨스의 혁신적인 개념 창안 이래, 아직은 그저 약하기만 했던 미숙한 아이가 이만큼이나 잘 성장했나, 아니, 이
정도면 성장이 아니라 '진화'라고나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놀라움이 절로 일 만큼, 대단한 담론의 연속이 오페라처럼, 혹은
거대한 오마쥬처럼(KBS 불후의 명곡 같은 컨셉을 떠올리시면 되겠네요) 펼쳐집니다. 두 번째 아티클에서 데니스 더턴(국내에 그리
자주 소개되는 저자가 아니라서, 이런 합동 저작의 한 일원으로나 만나 보는 게 참 반갑네요)은, 인간의 본질적 특징을 '자발성,
보편성, 그리고 즐거움'을 찾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침팬지의 동작은 그저 기계적인 반사 작용의 일환일 뿐, 그게 인간만의
고유한 어떤 창조나 작업의 과정과는 다르다는 걸 명쾌히 지적합니다. 더턴은 다만, 쇤베르크의 도테카포니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고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저도 솔직히 공감하기 힘들어하는데, 이런 대학자이자
천재가 같은 느낌이라니 안심이 되어서요.
그 다음 글이 대니얼 대닛의 논설, 혹은 에세이입니다(앞서
말했지만 원서에서는 이 글이 맨 앞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내러티브와 과학적 구조를 준별하여, 문화란 기본적으로
내러티브의 속성이지 어떤 완결적 체계나 구조가 아니므로, 진화론의 토픽이 되기 부적합하다는 반대편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일일이 논파하는데 중점을 두기보다, 그는 자신-그리고 동료 집단-의 관점이 고유하게
갖는 장점에 대해 더 주의해서 포커스를 둡니다. 예컨대, 밈은 마치 개미에 감염하는 기생충처럼 숙주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파고들어, 숙주의 이익과 의사와는 무관하게 어떤 동작이나 결과를 낳기 위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제 서양 철학과 종교의
오랜 주제인 '자유 의지' 이슈가 빠질 수 없죠. 그런데 대닛은, 비록 정면으로 자유의지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는 않아도, 설사
기생충,... 아니 진정한 주인인 밈이 시키는 대로의 수의(불수의?) 활동을 펼친다 해도, 그것이 딱히 우리의 존엄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음을 유쾌히 받아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문화는 그럼 의도적인 계획의 소산인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의 산물인가.
사실 대닛의 논지대로라면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진실은 그 중간지대에 있을 테니까요. 이런 걸 요즘
유행어로 '골디락스'라고 불러 주면 되겠죠?
저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 브라이언 이노의 글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이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사상가나 학자가 아닌 뮤지션입니다. 그런데 그의 장모 조앤 하비라는
분(누군지는 물론 모릅니다)이 지적했듯, "그런 일을 하기엔 머리가 너무 좋은 거 아님?' 같은 청천벽력 같은(?) 지적을 받고
다양한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진정한 통섭은 바로 이런 성격의 인재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그야말로 전혀 종래의 구조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참신하고 논리적인 지적 기여를 해 낼 수 있는 이점이
있을 테니까요. 문화체험은 본질적으로 감상자의 참여를 통해 그 진정한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고, 뒤샹의 작품들은 모두 이런
관점에서라야 제대로 해석될 수 있으며, 모든 문화체험은 따라서 일종의 롤플레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은 참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17편의 에세이, 그리고 대담 녹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의 결론적 요약을 크리스태키스의 짧으나 힘있는 단
한 마디에서 찾고 싶습니다. 인간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일원이자 구성 요소입니다. 네트워크는 그저 부분의
합이라기보다, 그 자체가 독자 의미를 지니는 유기체, 곧 슈퍼올가니즘으로 보아야 하며, 인간의 소통 방식이란 개별 행동의 확산을
넘어 규범의 확산에 가깝고, 행복이 네트워크를 타고(참 표현이 멋지죠?)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전파되는 건 이런 이치에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올가니즘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난 세기의 그 음습한 전체주의를 떠올리기가 십상이겠지만,
크리스태키스는 이처럼 우리에게 그 익숙한 개념으로 즐거운 공명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고립된 섬이 아닌, 원자화의
단계에서 즐거운 탈피를 맛보아야 할 우리 현대인의 미션입니다. 개별 의식의 중요함보다, 전체 네트워크의 조화로운 합창에 공감,
참여할 때 자아는 더 큰 차원에서 완성된다! 바로 이것이 제목에 붙은 '쇼크. 각성, 갈바나이징'의 진정한 의도 아닐까요? 인간은
연대를 통해 어쩌면 신으로 거듭날 지도 모른다는 유쾌한 상상@!(헉 그렇게 깊은 뜻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