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의 공동체에서 사고의 공동체로
왜 어떤 공감은 분열을 낳고 어떤 공감은 화합을 이루는가
저자 장대익은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탐구해온 과학 철학자이자 진화 학자.
인간은 타인에게 공감하는 존재인데 왜 우리 시대에는 갈등, 분열, 혐오가 넘쳐날까. 공감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공감을 너무 많이 해서 서로를 편 가른다. 함께 느끼는 정서적 공감은 좁고 깊어 우리끼리만 뭉치게 하고 타인에겐 눈멀게 한다. 이제는 다른 공감을 상상하자. 경계 없이 점점 확장되어 마침내 당신에게 닿을 수 있는 공감을
공감의 두 힘, 구심력과 원심력 간의 투쟁
공감에 대한 가장 흔한 통념은 항상 '느낌'과 연결돼 있다. 공감은 정서적 공감, 인지적 공감 두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정서적 공감이란 쉽게 말해 감정이입이다. 즉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관점(입장, 생각)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역지사지가 알맞은 표현이다
인간의 역사는 곧 공감의 반경을 확장해온 역사다
현시점에서가 아니라 인류의 진화사 전체를 펼쳐놓으면 우리의 공감력은 새롭게 보인다. 인류는 공감이 미치는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장해왔다. 인류는 자원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며 타자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기도 했지만 이성적인 판단으로 공감의 범위를 넓히면서 외집단과의 공존과 평화를 구축해왔다. 공감의 범위는 확장 가능하며 이때의 공감은 단지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이 문명의 물질적 조건이라면 이런 공감력은 가히 문명의 정신적 조건이라 할만하다. 타자/외집단까지 포용하는 공감이 없었다면 집단적 성취인 문명은 축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른 영장류들이 갖지 못한 이런 탁월한 공감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핵심 징표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공감 자체가 아니다. '어떤' 공감을 '어디까지' 적용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