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그것은
깨어남의 세계/
봄바람이 불면 사춘기 시절
들녘에서 느꼈던 그 뭉클함
이 느껴집니다.
심난함 속에 푹 빠져
보냈던 그 시절,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봄에는 바람이 불어야
나무를 흔들어 주고,
나무들을 흔들어야 물기가
나무 끝까지 오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바람도 그러고 보면 물기를
오르게 하는데 한몫을
하는 것이 됩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카오스(혼돈)도 없습니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우연이고
혼돈이지, 이 모든 일,
바람 한 줄기 불고,
꽃 한 송이 피고 그 향기
따라 별이 모이고 하는 일 등.
정확한 질서와 법칙 따라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운행의 섭리는
신비하고 오묘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어찌 하나님을 안다고
정하고 논하겠습니까?
사랑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공부의 대상이 아닙니다.
연구의 대상은 더욱 아니고요.
하나님은 오직 사랑의 대상,
믿음, 즉 신뢰의 대상입니다.
그분을 사랑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그분께서는 자기를
서서히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계시하신 그 사랑
안에서나 그분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적은 한 부분이겠지요.
현실! 무엇이 현실일까요?
현실은 깨어난 사람만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세계입니다.
깨어난 사람은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요.
그러니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못하고 화에 붙잡히고
싫음에 시달리고 우울에
사로잡혀 있으면, 눈 뜨고
귀 열고 살지만
사는 것이 아니지요.
현실이 아닌 자기 환상,
자기 생각, 자기 꿈
에 있는 것입니다.
잠자거나 졸고 있는 것이지요.
먹고 자고 출근하고 놀고
하는 일상을 현실이라고
들 쉽게 말하는데,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는
깨어나기 전까지는 모르지요.
깨어나 보아야 비로소
지금까지의 삶이 현실이 아니고
꿈이었구나 하고 깨닫지요.
그래서 깨어나기 전에는
현실처럼 삽니다.
잠 속에서 꿈을 꾸면서
얼마나 실감나게 경험합니까?
실제처럼 울고 불고 심지어는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소리도 지르지요. 그런데
깨어 보면 그때서야 꿈이었음을
알아차리고 안심하는 경험
을 다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영성가는 말하기를
사람은 태어나면서 잠자고
잠에서 살다가 잠자면서
장가 가고 결국은 잠 속에서
회갑을 맞고 잠 속에서
죽는다고 하더군요.
옳은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환상에서 벗어
나고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
일생 일대의 큰일 중에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큰일이 없는 사실의 세계에
살지만, 정말 큰 일이 있다면(?)
바로 이 깨어남이라고 봅니다.
우리 주님도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서(깨어나서) 이제
세상의 조항이나 법,
문화, 제도가 아닌 성령의
법에 따라 하늘 원리를 사는
사람에게 무슨 상처가 있겠으며,
무슨 원망이나 서운함이나 대립
이나 경쟁이 있겠습니까?
어머니 자궁이 아닌 자기 자궁으로
태어나는 이 신비, 이 놀라움.
이렇게 태어난 사람,
깨어난 사람은 다 좋습니다.
일체가 은혜요, 감사이지요.
그러나 일체가 은혜로
다가오지 않고 일부만 은혜고
부분만 감사한다면 아직
나는 잠 속에 있는 것이지요.
자기 생각 속에, 자기 느낌 속에,
자기 경험 속에 있는 것이지요.
바울은 그 상태를 자기가 본
환상에 도취되어 까닭 없이 교만을
부리는 것이라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나 내 느낌이 아닌
'주 안에 나 있음으로 있는 나’
를 사는 사람은 거짓이나
허상, 환상에 속지 않습니다.
진인무몽(眞人無夢), 참 사람은
꿈이 없다고 합니다.
현실! 현재와 사실,
지금 여기를 산다는 말입니다.
현실로 나오십시오. 현실에는
아무런 문제도, 고통도 없습니다.
문제와 고통은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허상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언가를
깨달아 알고 있으면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깨달아 알고 있지 못하면 그것이
나를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잠언서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4:23)라고 했고,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도
낫다(16:32)고 했습니다.
바깥 살림이 아닙니다.
안 살림입니다.
바깥이 아니라 안,
남이 아니라 나입니다.
내 가슴의 안부를
먼저 물어 가십시오.
세상 구경이 아닌 세상이
비쳐지고 있는 내 마음 구경!
지혜는 바로 여기서 생깁니다.
그래서 결국 마음이나 생각이
내가 아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자발적
죽음을 체험하고 이제 죽음이 없는
그리스도로 있는 진짜 나,
그런 나 여기 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발견하고 체험하고 나누는
것, 그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 중의 사랑입니까?
아하!(아멘과 할렐루야
를 줄이면 아하)
"사람이 무엇이관대
이토록 생각해 주시고
사람이 무엇이관대
이토록 보살펴 주시는지요?"
찬양이 터지고 감사가 일어나는
삶, 이것이 삶이지요.
이것이 현실이지요.
삶은 현실입니다.
자발적으로 죽었으니,
믿음으로 죽었으니
이제는 죽음과 상관없는
다 이루었다는 세계
거기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출발점입니다.
출발점이 완성인 사람만이
완성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 나 있음으로 있는 나'를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십시오.
여기 있지만 여기 아닌 데
있는 사람그래서 여기 없지만
언제나 여기 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
그러면 열리는 세계,
아니 이미 열려 있는 세계가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없는
세계만이 현실입니다.
현실은 구원받은 사람만이
사는 사실의 영성 세계입니다.
그 세계에 사는 것이
주 안에 거하는 것이지요.
카페 게시글
서정호 목사님방
현실,그것은 깨어남의세계
서정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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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1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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