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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과 실제의 차이
(계 3:14-22)
1. 지난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
① 이리안 집사님의 항암 치료
2024년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한 해였습니다.
먼저는 이리안 집사님의 암투병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2월 초에 몸 전체를 검사했는데 담당의사로부터 Cancer is clean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항암치료와 표적치료를 해 왔고 방사선 치료까지 마치고 지금은 3주에 한 번 표적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② 성경일독을 통해 주신 은혜
작년에는 신약만 3번 읽었는데 올 해는 구약과 신약을 이어서 읽었습니다.
2015년부터 성경일독을 해 왔는데 2020년부터 줌으로 나누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10년간 성경 통독을 했었습니다.
성경을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었던 내용 중에 은혜 받은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 이제 좋은 결실을 맺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삶에 적용을 하고 나누는 것이 더 깊어졌습니다.
③ 책을 통해 주신 은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통해 마귀가 어떻게 우리 생활 가운데 유혹하고 있는지 배울 수 있었고 팀켈러의 기도를 통해 기도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④ 성경암송을 통해 주신 은혜
로마서 성경구절 14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과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떤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는지 마음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서 8장 말씀 중에 1,2절, 26절, 28절, 32절, 38,39절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를 더 크게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4장 7-9절 말씀은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죽은 자와 산 자 즉 모든 사람의 주인이심을 마음에 새길 수 있게 했습니다.
⑤ 야외예배를 통해 주신 은혜
오랜만에 야외에서 예배를 드리며 여러 성도님들의 섬기는 손길을 통해 맛있는 갈비와 불고기 야채와 보물찾기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⑥ 선교에 열심을 낸 한 해
선교에 더 많은 재정을 편성하여 원주민 선교, 캐나다 모자이크 교회 협의회, 문서선교 Mission Cansda에 지원하려 했습니다.
또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도미니카에 난민으로 넘어와 있는 헤이티 사람들을 선교하기 위한 비전트립을 다녀왔습니다.
벨빌교회가 시작될 때 초대 담임목사님이신 공재남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올해부터 함께 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름에 원주민 선교에 김윤관 집사님께서 동행하셔서 선교를 도우셨습니다.
2.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은혜
① 일곱교회 중 하나로 부르심
일곱 촛대 중 하나
(계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시록 말씀을 시작할 때마다 교회에 주신 말씀이 먼저 있어서 늘 깊이 묵상하게 되는데 특히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를 향한 말씀은 현대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 생각될 정도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교회들에 주시는 경고와 격려의 말씀을 우리도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②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심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계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일곱 교회 중에 칭찬만 들은 교회가 두 교회요 책망만 들은 교회도 두 교회이며 칭찬과 책망을 다 들은 교회는 세 교회입니다.
칭찬만 들은 교회는 서머나와 빌라델비아교회, 칭찬과 책망을 들은 교회는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교회, 그리고 책망만 들은 교회는 사데와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오늘은 라오디게아교회에 말씀하신 것을 통해 우리에게도 있는 착각과 실상을 확인하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실제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지금도 기록된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 마음의 생각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도 들을 있습니다.
③ 사랑으로 책망하시고 징계하심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런데 라오디게아교회는 책망만 들었던 교회인데 무슨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19절 말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한다고 하십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여 징계하신 이유가 바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 말씀하십니다.
혹시 요즘 주님의 책망을 듣고 징계 가운데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 책망과 징계는 주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④ 문을 두드리시고 찾아와 주심
함께 먹겠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사랑으로 책망하고 징계하시는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들어가고 싶다는 의사 표현입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하자면 라오디게아교회에 예수님께서 들어가고 싶어하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면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모든 것을 함께 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미 예수님을 마음에 모셨다면 감사함으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모든 것을 함께 하면 됩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처럼 아직 예수님을 모셔 들이지 않았다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3. 믿음이 실제가 되려면
① 자신의 실상을 알아야
라오디게아 교회의 착각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제 라오디게아교회에 이런 책망과 징계를 내리게 된 이유를 살펴봅시다.
자신들은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사랑과 용서가 없고 너그러움이 없고 정직하지 못하고 게으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고 하면서도 만족함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곤고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 가련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지만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가난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관점에서 가난하다 할지라도 부요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산다면 그가 가장 부요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이 세상의 관점에서 부요하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나누고 베풀지 않는다면 주님 보시기에 그는 가난한 자인 것입니다.
또 자신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보아야 할 영적인 것, 영원한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눈 먼 자가 된 것입니다.
또 예수님으로 옷 입어 예수님의 성품이 나타나야 하는데 여전히 자신의 성품으로 살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았기 때문에 벌거벗은 자가 된 것입니다.
여전히 부당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고 내가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나에게 잘 해 주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미워하고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보면 비판하고 정죄하니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기회를 놓치고 여전히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어 벌거벗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데 모르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의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다고 고백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그 믿음이 실제가 되려면 지금 자신의 믿음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보는 나의 믿음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시는 실상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실상을 정확하게 보려면 성경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깨우쳐 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말씀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는 깨닫는 것 같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거울로 자신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이 돌아서면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처방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그들이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 멀고 헐벗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말씀하십니다.
불로 연단한 금은 바로 고난을 통과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욥이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백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순금은 고난을 통과하며 단련된 믿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물질로 부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고난을 통과할 때 부요해지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계신 분이 있다면 부요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흰 옷을 사서 입으라 하시는데 흰 옷은 이 세상의 온갖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정결하게 한 옷을 의미하기 때문에 모든 죄를 회개하는 것이 흰 옷을 사는 것입니다.
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것은 바로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고난을 통과하여 불로 연단한 금과 같은 믿음입니까?
여러분이 입은 옷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하여 정결하게 된 흰 옷입니까?
여러분은 성령의 역사로 마음의 눈이 밝아져 영원한 것을 볼 수 있습니까?
② 회개하고 예수님을 모셔야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렇게 되려면 대충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여 징계하시며 열심을 내라 하십니다.
그들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아니하여 미지근하기 때문에 토하여 내치겠다고 하셨습니다.
24년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을 내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열심을 내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심을 내고, 선교에 열심을 내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에 열심을 내고 사셨습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는 미지근하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에는 열심을 내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하십니다.
흰 옷을 사서 입으라 말씀하셨지만 다시 회개하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는 것은 자신이 주인 된 자리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문을 열고 예수님을 모셔야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회개하라 촉구하시는 예수님은 우리 마음 문 밖에서 지금도 두드리고 계십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곤고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것입니다.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로 가득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함께 먹고 마시며 예수님과 동행할 때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지만 명목상 영접한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거실에만 모시고 있어도 안 됩니다.
안방 뿐만 아니라 집의 소유권을 예수님께 이전해야 합니다.
내 인생의 계획, 자녀와 물질, 그리고 가지고 있는 재능까지 모두 예수님의 것이라 고백하고 그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할 때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계십니까?
저는 요즈음 얼마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얼마나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는지 매일 저녁에 점검하는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돌아보면 예수님을 바라본 것이 60%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바라보았더라도 순종한 것은 절반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도 있구요, 성경을 읽고 신앙서적을 읽고 주석을 보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제가 깜짝 놀랍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뭔가 문제가 생기려 할 때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일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는 그냥 내가 편한 대로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먹고 예수님과 함께 먹는 생활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매일 일기를 쓰며 점검한 것이 두 달이 되었는데 이제야 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고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실상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실제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날마다 저의 실상을 발견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니 감정적으로 화가 나는 일을 만나도 주님 눈치를 보고 바로 주님을 한 번 부르고 제가 화를 내면 안 되지요 주님 어떻게 할까요? 묻게 됩니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다가도 주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아내와 함께 유튜브를 볼 때도 아내가 원하는 것을 보려고 하는데 지금도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면 안 보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가장 많이 보던 영상은 스포츠 관련 영상과 뉴스였는데 최근 들어서 스포츠를 보는 시간이 많이 줄었고 성경과 설교, 찬양과 간증, 그리고 주석을 살펴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계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긴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 되어 살 것인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나를 기쁘게 하며 살 것인가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버리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여 승리하셨던 예수님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할 때 이기게 됩니다.
24년에 우리 믿음의 실상이 어땠는지 돌아보고 라오디게아교회 성도들과 같은 믿음이었다면 예수님의 책망을 받아 들이고 열심을 내어 회개함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먹고 마시며 동행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제 25년에는 책망과 징계 속에서도 믿음으로 고난을 통과하여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회개하여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고 안약을 사서 발라 성령의 역사로 영원한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예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벨빌 공동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4. 함께 드리는 기도
① 벨빌교회를 위한 기도
우리 믿음의 실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말씀을 볼 때 성령께서 눈을 열어 주셔서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살 수 있는 기회임을 알고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마음의 눈이 떠져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이 땅에 있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해 주셔서 내가 주인 된 죄를 회개하고 오직 주인이신 예수님께 순종하여 이기는 자 되게 하소서.
작은 예물을 드립니다. 열에 하나 십일조를 드리고 여러 가지 제목으로 감사헌금을 드리며 선교헌금을 드립니다. 예물 드린 손길에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자로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소서.
이 물질이 쓰일 때도 함께 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찬송 :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