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홍명보, 20일 브라질전 끝으로 13년 대표팀 아듀
2002-11-20 11:54
둘이 있어 두려울 게 없었다!
"온 국민들은 그대들이 있었기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떠나는 길에 행운을 빕니다"
▶황선홍…… 88년 첫 태극마크 '통산 50골'금자탑
▶홍명보…… 90년 데뷔 'A매치 135회 '영원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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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의 두 거인 황선홍(34ㆍ전남)과 홍명보(33ㆍ포항)가 20일
브라질과의 친선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을 떠난다.
지난 10여년간 한국축구의 역사는 이들의 일대기라 봐도 무방하다.
지난 88년 건국대 재학 중 일본과의 A매치 데뷔전서 헤딩골을 터트리
며 화려하게 떠오른 황선홍.
먹이를 찾으면 놓치는 법이 없는 '황새'처럼 황선홍은 누구도 따를
자 없는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 네팔과의 경기에서 8골을 터트렸는가
하면 같은 해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일본과의 8강전 결승골로 온 국민
들을 환호케 했다.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는 선제
결승골을 쏘며 개인통산 A매치 50호골을 성공시켜 황새는 아직 죽지
않았음을 역설했다.
물론 쓰라린 기간도 있었다. 번번히 골 찬스를 놓쳤던 94년 미국 월
드컵, 부상으로 한경기도 뛰지 못했던 98년 프랑스 월드컵.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몸고생을 하던 그였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투지를 불살랐다.
홍명보 역시 한국 축구의 산 증인이다.
90년 2월 노르웨이전 당시 약관을 갓 지난 풋내기 대학생으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홍명보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맹활약,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94, 98년 또 2002년.
한국의 월드컵 출전사에는 어김없이 홍명보의 이름 석 자가 따라 다녔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영원한 주장',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 그리고 '센추리 클럽 멤버'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곤 했다.
역시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 지난해 히딩크 감독에게 버림받아 9개월간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것.
하지만 결국은 히딩크 감독의 매서운 테스트를 통과했고 A매치 135회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들이 함께 걸어온 지난 13년. 이제 정들었던 18번과 20번을 후배들
에게 물려주려 한다.
"국가대표로 뛰는 기간동안 보내준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 김태근 기자 amicus@>
황선홍, 홍명보 프로필
황선홍 프로필
▲생년월일=1968년 7월14일
▲출생지=충남 예산
▲신체 조건=1m83, 79㎏
▲포지션=스트라이커
▲출신교 및 소속=숭곡초-용문중-용문고-건국대-독일 부퍼탈-포항-
일본 세레소 오사카-수원-일본 가시와 레이솔-전남 드래곤즈
▲A매치 데뷔전 및 경력= 88년 12월 아시안컵 일본전(102경기 출전, 50득점)
▲월드컵 경력=90-94-98-2002년월드컵
▲가족관계=부인 정지원씨와 1남1녀
홍명보 프로필
▲생년월일=1969년 2월12일
▲출생지=서울
▲신체 조건=1m83, 72㎏
▲포지션=수비수, 리베로
▲출신교 및 소속=광장초-광희중-동북고-고려대-상무-포항-일본
벨마레 히라스카-일본 가시와 레이솔-포항
▲A매치 데뷔전 및 경력= 88년 12월 아시안컵 일본전(134경기 출전, 9득점)
▲월드컵 경력=90-94-98-2002년월드컵
▲가족관계=부인 조수미씨와 2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