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턴을 켜고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사위가 밝아진 듯하다.
이쯤이 형제봉일텐데 나타나지 않는다.
쉰 목소리로 쉬고 있는 청년에게 형제봉이 얼마나 남았느
냐 물으니 모른댄다.
금방 형제봉 바위와 소나무가 나타난다.
배낭을 벗어놓고 나무로 올라가보는데 아직 해는 뜨지 않는다.
천왕봉 북쪽으로 붉게 물든 하늘을 찍고 내려온다.
벽소령까지 쉬지 않고 걷는다.
7시무렵 벽소령에 닿는다.
세찬 바람이 차가운데 길가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취사장 안에도 나혼자 헤집고 차지할 자리가 없어 다시 나온다.
오르는 경사 구석에서 버너에 불을 켜 라면을 끓인다.
어제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남은 밥덩이를 녹여 먹는다.
8시가 못되어 챙기고 일어선다.
장터목에서 자고 천왕에 올라 일출을 보고 하산하려던 계획은
로타리대피소에서나 자고 법계사에서 일출보고 하산하는 것도 좋겠다라는 것으로 바뀐다.
지리바 꽃 무더기가 한창이다. 큰용담도 흔들린다.
벽소령을 출발하여 덕평봉 오르는 긴길을 쉬지않고 올라 선비샘에서 쉰다.
한시간 남짓에 많이 왔다. 이러다간 오늘 내려가도 되겠다.
하긴 하루에 주능을 걸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랴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 무등에선가 남은 쌀이 배낭에 있는데
밥을 해 먹기 어중간하다. 칠선봉도 지나치고 영신봉 철계단을 올라 천왕봉을 보며
사진을 찍는다. 세석을 지나친다. 뒷길 관찰로를 따라 촛대봉까지 걷는다.
촛대봉 오르는 길도 생각보다 힘들다. 쉴 때 쉬어야 한다.
촛대봉 남쪽 바위 끝에 올라 남해를 보는데 바람이 차다.
혼자 천왕봉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보는데 영 어색하다.
가난한 간식을 먹으며 30여분 놀다가 11시가 다 되어 다시 무거운 배낭을 맨다.
위쪽이 무거워 자꾸 뒤로 넘어지려한다.
연하선경을 걷는 길은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간다.
저 남해와 사천의 산 너머로 바다가, 그리고 진주 남강인가 물이 보이는데
카메라는 가물가물 흐리다.
12시 무렵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한다.
여기도 여전히 북새통이다.
문 앞의 한 사람이 정리를 하고 있어서 그 옆에 딱 붙어 기다린다.
그가 나가자 또 라면을 끓인다.
먹으려는데 어떤 여자 한사람이 깨끗하게 먹었다면서 돼지고기볶음을
코펠뚜껑에 주신다. 돼지고기가 있으니 소주를 곁들인다.
라면에 소주에 돼지고기 나의 목은 참 괴롭겠다.
그녀가 맴다는 부침개까지 주어 얻어먹으니 배는 부르나 영 거북하다.
배낭을 두고 천왕에 갔다가 백무동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남원에서 순천가는 기차 시간표가 전화기에 뜨지 않아 진주 쪽으로가기로 한다.
제석봉 오르는 길도 오가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가로 돌만 쳐다보며 걷는다.
어깨도 아파온다.
사진을 찍다가 힘을 주어 천왕봉으로 향한다.
통천문을 지나 철계단 오르는 길에서 사람이 밀리곤 한다.
천왕봉은 사람이 아래까지 그득하다.
천왕봉엔 2시쯤 닿는다. 정상 표지석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보이지도 않고
서쪽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을 포기하고 옆사람에게 그냥 하나 찍어달라고 한다.
중산리 쪽응로 길을 잡아 내려오는데 올라오는 사람이 많아 자주 멈춰선다.
이 비탈을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보지 못한지라 오르는 이들이 존경스럽다.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스틱에 의지해 조심조심 내려온다.
설악 12선녀탕 계곡을 뛰어 남교리로 내려올 때에 비해 너무 느리다.
법게사에 들러 단풍나무와 자연석 위에 선 삼층석탑을 본다.
작은 굴삭기가 소리를 내며 일을 하고 있다.
칼바위에서 한참을 쉰다.
4시 반쯤 탐방 안내소에 도착하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또 걸으랜다.
다리를 끌며 아스팔트를 걸으니 또 허리가 신호를 보내온다.
아무래도 산길을 걸으라는 모양이다.
5시 15분 표를 끊었는데 사람이 많아 못 타고 50분차를 탄다.
서 있는 사람이 많다.
7시쯤 진주에 도착해 순천행을 물으니 7시 50분이다.
도로로 나가 약국을 찾아 또 기침 감기약을 산다.
진주시내에서 유등축제 때문에 정체하다가 순천에는 9시 반쯤에 닿는다.
불꺼진 가게앞을 지나 24시 김밥집에서 짜디짠 된장찌개를 먹는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하지만 목을 생각해 참는다.
현석이한테 목욕탕을 알려달라하고 밥을 사 달라해도 답이 없다.
화엄사골로 올라 피아골로 내려온 그도 피곤했으리라.
철대문을 여닫고 차를 주차하고 안방문을 열 때까지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시다가
내가 방에 들어서자 밥은 먹었느냐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