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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기도를 끝내고 나오는데 내방에 종종 찾아오는 대혜(가명)스님이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나오시네요? 오늘은 좀 늦게 까지 하셨나봐요?"
"아니에요...2~3분정도 더 했나? 늘 이시간에 마쳐요... 방에 들어갑시다."
화로에 불을 넣고 책장 서랍을 뒤적이면서
"숙우가 어디갔지? 아, 글쎄 유리다해(숙우)가 깨져 버렸지 뭐에요.. 앞에 있는 숙우는 너무 작아 큰게 필요한데.. 아, 찾았다... 근데 이것도 좀 작군요.. 큰 줄 알았더니... (숙우를 도로 넣으면서) 안되겠네..그럼 이것을 사용해보죠.. 이것은 홍차 전용 다관인데 숙우로 쓰면 좋을 것같아요.."
하얀다기가 홍차 전용 다관이고 옆의 다기는 유리다해(茶海숙우)이다. 유리다해는 대공스님이 선물한 것..
홍차 전용 다관은 독일의 모노라는 유명한 도자기 회사에서 만든 것이라는데 모양이 독특하다.. 대공스님은 철사로 꾸며진 디자인 땜에 맘에 안든다며 이런 것을 뭐하러 샀냐고 구박하지만 현대식 감각이 살아 있어 참 좋다... 철사지만 장인이 직접 다듬고 관리해서 어지간해서는 녹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 사람 물건하나는 야무지다.
백자다해는 용량이 300cc가 약간 넘는 것 같아 넉넉하니 맘에 든다.. 유리다해는 둘이서 먹으면 딱 맞는 크기..
대혜스님이 자기 방에도 차가 좀 있다고 하며 철관음을 가져 왔는데 이것을 둘이서 우려 마셨다...
첫잔을 막 따르고 있는데 전화 벨 소리가 울린다..
"여보세요? 아 네.. 보살님!!! 제가 여러번 전화드렸더니 안받으시더라구요..네...그렇군요.."
79세의 노보살님이신데 사내(寺內) 객실에서 며칠씩 주무시면서 기도를 종종 하시는 보살님이신데 며칠전에 보궁기도집 법공양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돼냐고 물어보길래 알아보고 연락드린다고 했는데 전화드리니 계속 안받으셨다...
노보살님이 하시는 말씀..
"제가 며칠 집에 없었어요.. 시님 기도 한 1년 남았는교? (100일 남았다고 말씀드렸다) 그거 밖에 안남았능교...어쩌나.. 고생이 많으네요.. 얼마나 열심하시는지... 저희집 좀 축원해 주세요... 제가 기도할 때 보니까 스님을 둘러싸는 운무가 있더라구요.. 어떤 땐 너무 진해서 스님이 보이지 않을 정도래요..스님만 그런게 아니고 스님 앞에 쌓아둔 축원장에서도 운무가 있습디다. 축원문을 올려 놓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축원장은 화엄전(접수받는 곳)에 가서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음... 운무라... 내 기도가 헛되지는 않은가? 가끔씩 이와 비슷한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대혜스님에게
"하하.. 뭐...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힘이 나는군요..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기도하는데 그 정도는 돼야겠지요.. 그리고 축원장에 쏟는 정성이 적지 않아요.. 200일 정도 까지는 매일 하루 한번은 다 축원해 줬다니까요..매일 600가구를 축원해 주다보니 시간도 꽤 많이 걸렸고요.. 지금이야 많이 줄였지만....
기도하면서 보니까 이런 신도들을 적지 않게 봅니다.. 꿈에 미리 보여주는 선몽을 잘 하는 사람도 있고 기도하다가 뭔가를 보는 신도도 종종 봅니다.. 그러나 이들이 수행력이 대단하거나 기도를 잘해서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더라구요...기도를 잘하여도 아무런 영험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구요.. 기도하는 사람중엔 이런 신비한 경험을 하지 못하여 의기소침하거나 부러워 하는 사람도 많은데 전혀 그럴 것이 못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신비한 체험을 자주 하는 사람일수록 외도의 수행을 하고 있거나 근기가 약하거나, 잡신들에게 휘둘리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스님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혹 공부를 잘하여 생기는 어떤 신비한 능력도 결국엔 공부에 큰 장애가 되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
대혜스님이 하는 말
"노인들은 그런 것을 보는 분들이 종종 있나봐요... 나이가 드니 명부와 가까와 져서 그런지 아님 오래살으셔서 그런지 일반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곤한답니다.. 그러나 노인들이 그런 것을 말하면 젊은 이들은 노인을 치매에 걸렸다든지 노망이 들었다고 일축해버리고 말지요.. 하지만 실제로 있는 것을 보는것입니다.. 어떤 괴팎한 할머니들은 종종 귀신들을 쫓아버리거나 마을의 길흉을 미리 예견하는 법력도 있다니까요... 그래서 노인은 그 마을의 해결사가 되기도 하지요. 우리가 노인을 공경해야 될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이야기의 주제가 다른 것으로 바뀌면서 대혜스님은 화를 내면 안돼냐고 물어본다...
"화요? 당연히 안되죠... 화를 내는 원인을 살펴보면 어떤 대상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거나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관과 객관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요..나와 너를 갈라놓고 생각하다보니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전도된 생각일 뿐이지 본래는 한물건도 없는 것입니다.. 또 통으로 하나인 것입니다..
수행의 가장 근본이 되는 부처님 말씀은 삼법인으로서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 적정입니다.... 모든 겻은 변합니다.. 항상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우리가 의지해 살고 있는 이땅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고 나의 육신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해가고 있습니다.. 나의 읫기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지요... 주관이든 객관이든 모두가 변해가고 있으니 나라고 여길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연따라 모였다가 인연따라 변하고 흩어지는 것뿐입니다.. 이것을 체득하면 바로 모든 고통과 번뇌가 스러지고 묘한 즐거움만 있는 열반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 말씀의 근본입니다.. 수행자가 체득해야 할 경지 이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엔 늘 화두 챙기듯 가지고 있어야 할 좌우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야 할 불자가 화를 낸다고요? 모든 고통과 번뇌의 원인인 나와 너를 갈라 놓는 마음을 갖는 것도 치욕적인 일인데 거기에 집착을 하여 화를 낸다니 어찌 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화를 낸다는 것은 소승을 닦는 사람에게도 큰 허물이거늘 어찌 일체 중생을 한 몸으로 여기는 대비심으로 삼아 일체 중생을 제도 하겠다는 서원을 가진 대승의 수행자가 대상에 집착하여 화를 내겠습니까?
대승을 수행하는 보살에겐 모든 것이 자신과 다름이 없이 하나입니다... 꿈틀거리는 벌래들도 자기 자신이니 그들이 배고프면 자신의 아픔이라 자신 몸을 떼서라도 그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화를 내겠습니까? 화를 내면서 수행하는 사람은 외도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술을 먹으면 지혜의 종자가 끊어지고 음행을 하면 생사의 굴레에 허덕이게 되듯 화를 내는 것 또한 번뇌의 큰 종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화에 대해 물어보지요?"
대혜스님이 하는 말
"제가 소임을 보다보니까 마음에 거슬리는 것들이 종종 보여서요,.. 그런 것들을 지적해 주면 '너나 잘하지 왜 참견하냐는 식으로 대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시절이 아니면 그러한 버릇들을 고칠 수 없기에 말을 안할 수도 없고 말하면 감정상하고.....
남의 허물은 곧 자신의 허물이라고 하잔아요... 그런면에서 보면 구지 말을 할 필요는 없잔아요.."
"네... 남의 허물은 곧 자신의 허물이 맞지요... 내가 지은 업으로 인해 그런 사람이나 그런 사건, 혹은 환경을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방치한다면 그 또한 남이 잘못하도록 계속 두는 것이니 오히려 더 큰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요? 참으로 미묘한 문제입니다.. 큰지혜와 방편이 필요하지요.. 그러기에 수행을 열심히 하여 법력을 키워야 하지요,,, 법력이 크면 자신의 한마디나 작은 행동에도 굴복하거나 귀의해서 올바른 길로 갈 것이니까요...
옛 큰스님들 어록을 보면 종종 화를 내시는 것을 볼 수 있고 현재의 큰스님들도 화를 내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방편으로 그런 것같습니다.. 악업이 중첩된 사람은 어지간한 법력으로도 잘 바뀌지 않아 무서운 모습을 보여줘야 귀의합니다.. 부처님들도 보면 자비로운 불상이 있는가 하면 무서운 불상 그러니까 분노존이 따로 있어 무서운 모습을 보여줘야 말을 듣는 중생에게 몸을 나투지 않습니까....
스님도 마냥 자비로운 모습으로 소임을 보면 어려움이 많겠지요.. 때로는 화를 내거나 무서운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절대 화를 일으키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래는 부처님들의 분노존을 말하는 명왕에 대한 설명이다.. 참고하기 바랍니다..
명왕이란(明王) Viday-raja
밀교(密敎)의 성스런 말인 진언(眞言)이나 다라니의 신비적인 주력(呪力)에서
발생한 밀교 특유의 존격(尊格), 여래의 명을 받아 일체의 마장(魔障: 악마의
장애)을 물리친 다고 한다. 힌두교의 제존(諸尊)과 마찬가지로 분노상에
다면다비(多面多臂)가 특색이다. 명왕은 음강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분노신의
모습을 겉으로 나타내어 매우 두려운 모습을 함으로써 불타의 자비심에서
흘러나오는 성상으로 광명의 지혜로써 일체의 악마를 제어하고 항복하게 하는
깊은 뜻이 있다.
밀교의 삼륜신설(三輪身設)에서는 여래·보살에 이은 제 3류로 치며, 여래의
교령윤신(敎令輪身)으로서 반불교적인 중생을 압복(壓服)·화도(化導) 한다고
한다. 대일여래의 교령윤신인 부동명왕(不動明王)과 항삼세(降三世:
금강수보살)·군다리(軍茶利: 허공장보살)·대위덕 (大威德:
문수보살)·무능승(無能勝: 지장보살)·부동·보척(步擲: 普賢보살)의 8대 명왕이
유명하다.
그밖에 신앙이 두터운 명왕으로서
애염(愛染)명왕·공작명왕(孔雀)·태원수(太元帥)명왕들이 있다. 공작명왕은
명왕이면서 보살상이고, 마두관음은 보살이면서 분노상이기 때문에
마두명왕이라고도 불린다.
2. 오대명왕 (五大明王)
중앙에 부동명왕 (不動明王)
동방에 항삼세 명왕 (降三世明王)
남방에 군다리 명왕 (軍茶利明王)
서방에 대위덕 명왕 (大威德明王)
북방에 금강야차 명왕 (金剛夜叉明王)
1) 부동명왕(不動明王)
힌두교의 시바신(神)의 이명(異名).
산스크리스트 아찰라나타의 한역(漢譯)이다. 발음에 따라서는 아차라낭타라고도
하고,
부동금강명왕(不動金剛明王)·부동존(不動尊)·무동존(無動尊)·부동사자(不動獅子)등으로도
쓴다. 불교에서는 이를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사자(獅子)로서 수용하였다. 여래의
명을 받들어 분노의 상(像)을 하고, 밀교(密敎)의 수행자를 수호하여 각종 장애를
배제하며, 마중(摩衆)을 멸하여 수행을 성취시킨다고 한다. 5대 명왕 또는 8대
명왕에서 중앙에 위치하는 주존(主尊)이다. 인도에서 시작하여
티베트·몽고·중국·일본 등지에서 널리 믿어지고 있으며, 많은 존상이 제작되고
있다. 그 형상도 다면다수(多面多數)의 동자상(童子像)까지 여러가지이다.
대체로 오른손에 검(劍), 왼손에 견삭(견삭)을 쥐고, 검푸른 빛깔의 전신은
화염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부동명왕은 대일 여래의 교령륜신, 곧
변화 신이다. 대일여래의 가르침을 받아서 현세의 일체장애와 모진 일을 제거하기
때문에 기도 법회의 본존이 된다. 또한 대일여래의 변사를 대신하기 때문에
변사명왕이라고 한다. 부동명왕의 머리 위에 있는 연화는 일체중생을 싣고 있는
것을 표시하고 생사가 있는 세상에서 생사 없는 저 세상에 이르는 대비(大悲)를
나타내고 있다. 부동이란 이름을 가진 것은 경전에서 설하고 있듯이
'보리심(大寂靜)'의 뜻이라고 한 바와 같이 인간의 본심은 본래 부동의 불성이
있으나, 외계의 유혹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명왕의 진언을
외움으로써 불가사의한 가지력을 입어 나와 네가 일체라는 오묘한 세계를
깨우치게 된다는 것이다. 부동 명왕은 여덟 동자가 있다. 이들은 악마를
항복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이것은 대일여래의 여덟 가지 공덕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2) 항삼세명왕(降三世明王) = (금강수 보살)
동방 금강부(阿如來)의 분노신(忿怒神)이다. 항삼세라는 것은 탐욕, 진예, 우치의
삼독번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러한 세 가지 번뇌를 없애기 위해서 강삼세라는
이름을 가진다. 일설에는 삼세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를
가리킨다고 하나 그 의미에 있어선 같은 것이다.
3) 군다리명왕 (軍茶利明王) = (허공장 보살)
남방의 보생여래(寶生如來)의 분노신(忿怒神)이다. 군다리는 병이라 번역하고,
혹은 감로, 안락이라 고도 번역된다.
이 명왕은 마장을 제거하고 뱀이나 열병이나 음식을 못 먹는 병 등 장애를 없애는
본존이다. 이의 수법은 규주군다리야차법(叫做軍茶利夜叉法)이다. 진언종 5대
명왕중의 하나로서 남방에 있는 보생여래의 교령윤신. 군다리야차, 감로군 다리,
길리길리명왕 이라고도 한다. 군다리는 감로의 뜻으로 증익경애의 덕을 나타내며
남방을 지키는 명왕이다. 얼굴은 하나, 눈은 셋, 팔은 여덟이고, 몸은 푸른빛인데
첫 번째, 두 번째 손은 시무외인을 맺고 있으며, 흰 연꽃이 양발을 받치고 있고,
목, 8개의 팔, 두 다리에는 12마리의 뱀이 휘감겨있다. 원래 뱀으로 표상된
샤크티, 곧 성력을 숭배하던 사상이 불교에 들어온 뒤에는 재난을 없애는 공덕
있는 명왕이 되었다.
4)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 (문수보살)
서방 연화부 무량수불의 분노신(忿怒神)이며, 범어 이름으로는
야만카타(yamantakah)로서 중생의 계박을 풀어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중생이 가지는 번뇌를 없애주는 명왕이다. 진언에는 대주와 소주 두 가지가 있다.
5) 금강야차명왕 (金剛夜叉明王) = 금강야차명왕(金剛藥茶明王)
동밀(東密)의 오대명왕의 하나이다. 북방 갈마부 불공성취여래(不空成就如來)의
분노신(忿怒神)이다. 이 명왕은 감식 일체유정의 부정삼매(不淨三昧)를 표시한다.
금강야차명왕의 또 다른 소개 밀교(密)의 오대명왕(五大明王)의 하나.
금강약차명왕(金剛藥茶明王)라고도 하며, 금강감식(金剛瞰識)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북방(北方)을 수호하고 불공성취여래(不空成就如來)에 대응하는 분노존(忿怒尊),
또는 오추사마명왕(烏樞沙摩明王)과 동체(同體)라는 설이 있다. 몸은 청흑색으로
삼면육비(三面六臂)이고 중앙의 얼굴은 오목(五目)을 지니고 육비에는 오고저(五
杵)와 금강령(金剛鈴)·궁(弓)·전(箭)·검(劍)·윤(輪)을 쥔 채 한쪽 발을 올려
밟고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범어로 Vajra-yaksa 라고 하고, 밀호(密號)를 조복금강(調伏金剛)이라 한다.
< 유기경(瑜祇經) > 하권에 이 존을 중심으로 한 금강야차
만다라다도(曼茶羅圖)를 설치한다.
첫댓글 아침 시간에만 글을 쓰다보니 쓰고 싶은 말이 있어도 미쳐 못쓰는 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도반이 와서 제대로 못?군요... 있다가 밤이나 내일 아침에 다시 손을 봐야 할 듯합니다.. 오늘 오후엔 대공스님과 맛나는거 먹기로 했거던요.. 혹시 수정되거나 첨가될지 모르니 나중에 다시 읽어 주셔요.
매번 법문 들을 적마다 감동하여....지리산 먼곳에서 오신 선지식께 고마운 마음 전하며 , 삼보께 감사드립니다...글 수정하시면 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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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다해 멋져요 유리와 도자기의 조화가 이색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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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항상 기도는 사랑이다...불교는 과학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요즘은 조금 느낌이 옵니다..왜 그런 말씀을 하셧는지요...
이제야 끝났군요....많이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읽는 이 시점은 다 정리 된거죠 스님..? 나날이 바쁜 나날 속에 가끔 스님 글귀에 얻어 가는게 많습니다...항상 감사함을 느낍니다...
스님,좋은아침입니다.()정말 복잡다양하면서도 정밀한,마치 요즘 나오는 컴터응용 기능 같군요.맘먹기에 따라 하나로 일축할수도 있겠군요.글 잘 보았습니다.좋은 하루 되세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