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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의 이별
갈마5 김준철
“하하하!, 호호호!”
난 어제, 학원에서 친구들의 수다에 한참 빠져 있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문을 열어 준 큰누나의 눈에 눈물이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난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허겁지겁 물어보았다.
“왜 그래?”
“할...머...니... 돌...아...가...셨...데...”
“......”
난 갑자기 머리가 띵 해졌다. 보니 작은누나도 휴지를 잔뜩 쌓아 놓은 채 넋 나간 사람처럼 울고 있었다. 작은누나의 우는 모습을 보니 나도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그러다 나중에는 결국 눈물이 시냇물처럼 슬픔의 물결을 따라 줄줄 흘러내렸다.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는 상태여서 할머니께서 안 계신 것이 조금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할머니께서 다시는 돌아오시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약간 겁도 나고 허전한 느낌이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난 온갖 생각을 하며 의자로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난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난 할머니 생각에 푹 빠진 채로 고달픈 하루를 마치고 오늘 장례식장에 갔다. 아침 7시쯤 나, 누나들, 그리고 엄마는 장례식장에 가기 위해 준비를 했고 아빠는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장례식장에서 하루를 보내서 이미 장례식장 안에 계신다. 그런데 준비를 다 마치고 안방에 들어가 보니 엄마께서 울고 계셨다. 난 궁금했지만 영문을 묻지 않고 그냥 안방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 일을 까마득히 잊은 채 장례식장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엄마가 말했다.
“가면서 이모할머니에게 드릴 칫솔 사야 하니까 잠시만 기다려...”
엄마는 칫솔 없이 부안에서 대전까지 올라온 이모할머니께 칫솔을 사드려야 한다며 편의점으로 갔다. 그리고 큰누나는 아까 엄마께서 우셨던 영문을 알려 주었다.
“엄마 꿈에 할머니께서 나오셨는데 장례식장에서 토끼눈을 뜨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만 히 서 있었데... 할머니께서 지금 자신이 죽었다는게 밎겨지지 않는 거야...”
내 말문은 그대로 막혔다. 난 항상 거의 대부분 진실로 나타나는 엄마의 꿈이 두려웠다. 정말로 할머니께서 그러신다면 큰 걱정거리이다. 한시라도 빨리 할머니를 진정시켜 들여야 우리가 안심될 텐데...
이렇게 아침부터 근심이 가득한 상태로 우리는 장례식장에 도착하였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장례식장이였다. 장례식장 이름은 성심 장례식장이었다. 하지만 장례식장 시설이 좋을 리가 없지. 분위기만 으스스하고 그냥 사람이 적은 평범한 건물이었다. 장례식장 안의 우리 3빈소에는 이모할머니들과 몇몇의 사람들 밖에 없었다. 난 옷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있는 쪽 구석에 앉았다. 난 영정사진을 보자 마자 할머니와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할머니께서 세상에서 가장 길고 긴 여행을 떠나시는데 난 잘 가라고 말 한마디도 못해주 고... 난 참 불효자예요.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손자 한번 보지도 못하시고 떠나는 아쉬 운 마음, 무거운 발걸음. 정말 내가 여행에서의 최대로 무거운 짐이 되어 드린 거 죄송해 요. 할머니, 정말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은 수백번, 수천번을 외쳐봤자 이미 일어난 일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시간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시간을 확 돌려버리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난 내가 정말 밉다.
내가 장례식장에 적응을 어느 정도 했을 때 아빠는 내가 할 일을 알려 주었다.
“이제 손님이 오시면 아빠 따라서 인사하고 절하는 거야. 알겠지?”
난 손님이 오실 때마다 아빠를 따라서 꼬박꼬박 인사하고 바른 자세로 절을 하였다. 그리고 손님이 없을 때는 향에 피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난 약간 지루했다. 그 때가 대 낮이라 손님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난 또 다시 영정사진을 봐라보았다. 난 할머니께서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 같이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영정사진이 처음 보는 순간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할머니께서 웃는 사진을 보니 할머니와 함께 하던 놀이가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니는 나에게 정말 둘도 없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친구처럼 자상하게 대해주시고 친구처럼 나의 습관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시고 때로는 친구처럼 나와 같이 공놀이를 하며 놀아주시고... 할머니께서 밝게 웃으며 건강하게 뛰어 다니시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내 곁을 떠나버리시고 마셨다.
‘할머니! 할머니랑 하던 발야구, 골프공 주고받기, 찍찍이 공 주고받기 정말 어느 누구랑 하던 놀이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어요. 또 다시 한번만 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그래도 할머 니와 할머니와 함께 하던 시간 정말 최고의 추억이예요!’
긴 생각이 끝나도 난 생각의 나라에서 벗어날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었다. 난 이번에는 할머니의 입장이 되어 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겪은 고통, 기쁨, 추억 등을 생각하는 중 이 말이 불쑥 떠올랐다.
“사는 것은 죽는 것을 연습하는 것 뿐이다.”
난 이 말이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에 가지런히 새겨졌다. 특히 할머니께서는 난소암에 걸리신 이후로 1년 동안 고생하시다 극성페렴으로 의식을 잃은 체 혈압이 떨어지셔서 돌아가신 슬픈 추억이 생겼기 때문에 ‘사는 것은 죽는 것을 연습하는 것 뿐이다’ 라는 말이 더 더욱 내 가슴속 깊이 새겨졌다.
“힘내셔서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병을 이겨내셔야 해요!”
라고 말하며 할머니의 손을 한번 잡아드리고 싶었는데... 하지만 그 정성과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사소한 꿈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시 뭐든지 나의 끝없는 관심과 노력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잠시 후, 엄마는 내 곁으로 다가와 영정사진을 보며 말했다.
“할머니 이제 그만 고생하시라고 할아버지께서 일찍 할머니를 데려가셨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몇 십년이라는 세월을 한 번의 만남 없이 떨어져 지내시기 어느 무엇보다도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할아버지께서 더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더 이상 차마 참고 볼 수가 없고 한 시라도 빨리 할머니가 보고 싶어 일찍 데려가신 모양이다. 난 엄마 말에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엄마 말에 동감한다. 아니 엄마 말이 분명 맞을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같이 아빠께서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복막염이라는 병에 걸렸었다. 하지만 가족이 미처 병을 몰랐고 가장 가까이 있는 병원의 의사도 술을 마셔 치료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는 트랙터를 타고 부안에서 전주에 있는 병원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었다. 전주에는 도착하였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난 후 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복막염을 성급히 치료하지 못해 아주 젊은 나이로 일찍 세상을 뜨셨었다. 난 항상 궁금하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생활 하셨고 어떻게 생기셨을지...
엄마와 애기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벌써 6시였다. 그래도 손님들의 휴식처는 아직도 넓은 들판처럼 텅 비어 있다. 하지만 이런 한가한 대 낮의 시간 뒤로 피곤할 정도로 힘든 저녁 시간이 찾아 왔다. 손님들은 마치 전쟁터의 지원군처럼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원군도 과하게 많으면 그 어마어마한 군사를 다 이끌기 힘들어 오히려 해가 되는 법! 우리도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와 다리에 알이 배기게 되었다. 하지만 같은 우리편인 지원군을 돌려보낼 수는 없지! 우리 가족도 모두다 친척이고 아는 사람들이라서 차마 내쫒거나 오는 걸 거절할 수가 없었다. 또 우리를 위해 와주는 것이기 때문에 친절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난 다리가 무척 아파 부러질 것만 같았지만 할머니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파도 꾹 참고 ‘할 수 있다!’ 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다. 난 내 자신을 한 번의 후회도 없이 굳게 믿었다. 난 간신히 손님대접을 마치고 방바닥에 누워 대(大)짜로 뻗었다. 손님 대접을 마치고 우리가족도 나도 우린 모두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마음속으로 전화했고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열심히 한 우리가족에게 해맑은 표정으로 서로 잘했다고 칭찬 릴레이를 해주었다. 이 때 할머니도 서로를 칭찬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영정사진이 아까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지금도 할머니의 잔소리에 짜증을 부리며 할머니께 잘 못해 드린 것이 후회되고 또 후회된다. 사람들은 반드시 언젠가는 죽게 되있지만 제발 할머니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나의 꿈은 점점 커지는데 현실의 장벽이 너무나도 높다. 하지만 사나이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난 할머니께서 환하게 웃고 계시는 모습과 나와 즐겁게 놀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더 이상 울지 않기로 결심했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우는 모습을 보면 또 괜히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죄책감에 오히려 미안한 생각 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난 평생 할머니 생각에 빠져 울기만 하는 것보다 할머니의 몫까지 다해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난 더 이상 할머니께 걱정거리를 드리고 싶지 않다. 난 이제 더욱 멋진 준철이로 변신하고 싶다. 이젠 슬픔의 세상에서만 머물러 있지 말고 순간순간의 짧은 시간에 찾아오는 행복을 살려 할머니께 항상 즐겁게 살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다. 할머니께서도 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것이다.
“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할머니께서 행복하게 해 달라는 기도 밖에 없네요... 하지만 그 수줍은 기도 하나하나라도 할머니께 큰 행복, 큰 기쁨으로 찾아 왔으면 해요.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살아계셨을 때와 돌아가셨을 때 저에게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선물들을 보내주셨어요. 바로 할머니께서 절 아끼시는 마음과 교훈이요. 전 할머니께서 주신 밝은 미소만 봐도 행복해요. 정말 그 밝은 미소는 아무도 따라하지 못하는 특급 미소인 것 같아요. 또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다 생명이라는 소중한 보물을 가지고 있고 우리들은 그 생명은 존중하고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요. 할머니! 저 할머니께서 주신 선물, 죽을 때까지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둘게요.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셔도 그 밝은 미소, 그 친절한 마음씨 절대로 잊지 마세요. 할머니의 밝은 미소, 친절한 마음씨 하나하나가 모두 할머니를 아름답게 빛나도록 해주고 또 할머니의 밝은 미소, 친절한 마음씨는 다른 사람에게는 큰 행복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정말 할머니와의 이별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고통과 슬픔. 할머니, 이제 엄마 말처럼 그만 고생하시고 하늘나라에 가셔서 할아버지와 함께 여기서 받았던 스트레스 다 푸시고 즐겁게, 또 편하게 사셔요. 그 곳에서는 여기처럼 아프시지만 말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서 끝없이 질주 하세요! 의 소중한 네잎클로버 할머니!”
(충청교육신문 문예 부분 은상을 탄 글)
첫댓글 유휴~ 준철~~
충청교육신문에서 은상 탄 글이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도 준철이 상타게 해주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