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4.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주 예수를 아는 이들
기도 박이순 집사 (다음 주 김복순 권사)
성경 말씀 베드로전서 2:11~17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사랑하는 자 들아
찬송 1093 세상 사람 날 부러워
헌금 기도 3010178504011(농협, 연세소망교회)
가족 방문 정구섭 장로 큰아들, 박영숙 집사 전주 아들 부부(생신)
박문식 이옥녀 성도 딸부부, 백춘자 권사 의정부 딸 부부,
임성례 권사 서울 큰아들 가족, 황막례 권사 가족, 김정수 권사 서울(함열) 아들
찬송 356 성자의 귀한 몸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이번 주 수요일(7일)이 입추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저녁은 갈 바람처럼 선선합니다.
그래서 우리 권사님들께서 갈 바람맞으러 휠체어를 타고서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모습들이 아름답습니다.
1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 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절,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절,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 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절, 혹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절,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절,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하라
17절,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지난주에 현직, 퇴직 원우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3개월에 한 번 모입니다.
대부분 60대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5년 내외라면
15번 정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함께 근무할 때는 언짠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곧 퇴직하고 다시 만나니 반갑기만 합니다.
그래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얼마나 재밌고 닭볶음처럼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시월은 선유도 앞바다에서 맛있는 회 잔치가 열릴 것입니다.
아직은 건강한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1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 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오늘 이 말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눈물 납니다.
사랑하는 자 들아!!
베드로의 이 말이 그냥 흘러나왔겠습니까?
마치, 아빠가 죽음 직전에 마지막으로 부르는 소리 같습니다.
모진 풍파를 다 겪고 난 63세의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지금 목사님 머리가 백발이잖습니까?
아마, 베드로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리고 곧 순교당할 것이란 직감에서 하시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당시, 로마 네로 Nero 황제 때 기독교 박해가 불일 듯 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순교(AD61)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순교(AD62)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베드로가 죽을 차례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쓴 편지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 들아!!
이 한마디가
베드로의 마지막 유언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쏟아낸 말씀입니다.
나그네 우리 인생을
정욕과 탐욕에 낭비하지 말자. (11)
마가복음 3장 14절입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
그렇습니다.
열두 제자들을 택한 목적은 하나입니다.
함께 있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예수께서 어떤 생각을 품고 사는지?
예수께서 매일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일일이 보고 듣고 느껴 보라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예수님처럼 24시간 365일 하고도 20년이 넘도록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먹고 자고 비비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누구라는 것을 목사님보다도 더 잘 아실 겁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입니다.
~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래서 장차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 승천한 후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것도 3년 동안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누구보다도 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메시아다!!
우리 이스라엘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실 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꿈은
허무하게도 수포水泡로 돌아갔습니다.
메시아라 믿었던
그래서 베드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받쳤던 예수가
그렇게 허무하게
그렇게 무력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처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뒤 따라가면서
베드로 자신의 비겁한 행동이었습니다.
마가복음 26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로니
오늘 밤 닭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렇듯
처참하게 무너져 버린 베드로 자신의 비겁한 모습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어느 누구에게든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내 자신이 베드로보다도 더 비겁했고 허물이 많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21장 15, 17절입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17절, 또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디베랴 바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뼈저린 후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육을 위해 사는 자 되지 않고
영을 위해 사는 자가 되기로 각성했습니다.
12절입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행실을 할지라도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선생님들 중에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작은 유리 어항 속에 금붕어가 있습니다.
금붕어는 세상 사람 모두가 바라보는 유리 집에서 삽니다.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금붕어는 자유롭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전국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지 않습니까?
우리 요양원만 하더라도
감시카메라가 실내 실외 20개는 족히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요양원 출입구 기둥을 자동차가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시카메라를 모니터링해 봤습니다.
보호자께서 후진하다가 실수로 기둥에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님을 뵙고 깜박 잊고 가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목사, 성도답게 살려고 얼마나 아등거리며 기도합니까?
그렇지만 죄의 관성 때문에
어찌, 깨끗하게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더 큰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목사가 저래.
사모가 저래.
장로가 저래.
권사 집사가 저래.
그렇지만 누가 보나, 안보나
누가 알아주던지, 말던지
금붕어처럼 투명 유리 집에서 착하고 당당하게 살면 됩니다.
그러면 하늘의 무수한 증인과 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송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마태복음 5장 16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빛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렇듯
하늘의 무수한 증인과 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송할 것입니다.
1093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13절입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 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절, 혹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단편 소설에
하나님께서 천사 미하일에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오라고 명령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은 미래를 볼 수 있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목사님 직원 중에 로리꼬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인사를 전해 옵니다.
로리꼬는 일본 여성입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서 익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사고로 오랜동안 남편을 간호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남편이 원망스럽지 않으냐??
로리꼬의 대답은 간단 명확했습니다.
모든 것이 제 탓입니다.
그래서 남편을 끝까지 돌봐드려야 합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은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여성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오후 나절에 잔디를 깎았습니다.
얼마나 덥던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조용림 권사님이 너무나 안타까웠던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 화장지 쪼가리를 꺼내더니
땀을 닦으라고 주셨습니다.
그 화장지 쪼가리를 받아 얼굴에 얼룩진 땀을 닦았습니다.
우리 조용림 권사님은 치매 중증입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을 하나님처럼 떠받듭니다.
그래서 천사 미하일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답을 찾아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악을 악으로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시, 예수님의 수석 제자 베드로입니다.
홍시처럼 익어 성인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60 중반 되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목사님 나이인데도
목사님은 아직 멀었습니다.
16절입니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하라
베드로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4절입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절,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목사님이 노숙자들과 함께 성찬 예배를 드릴 때면
대야에 물을 떠서 노숙자들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 목사님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목사님 카페에 금붕어 2라는 글을 써봤습니다.
네가 참 좋다
좁은 유리방에서
세상 시선에 괘념치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네가 참 좋다
요한복음 8장 32절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래서
베드로가 성인의 경지에 올라선 것입니다.
17절입니다.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그러나
어떻게 윤석열 대통령을 공경해야 할지
베드로에게 묻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