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얼마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는 102층 시어즈 빌딩이 마주 보이는 미국 시카고에 와 있습니다
시카고라는 도시는 당신도 잘 아시듯이 1920년대만 해도 알 카포네와 그 일당의 총성이 멈출 줄 모르던 암흑의 도시였지만 지금은 세계 곡물의 30%이상 수출거래가 이루어지고 밤 늦게까지 다운타운을 활보해도 안전에 아무런 염려가 없는 미국 중서부의 중후한 도시가 되어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미국 5대호의 하나이자 그 크기만도 남한만 하다는 미시건호가 자리잡고 있는 호반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자동차로 주변지역을 10시간 이상 달려도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 있는 곳이지만 미국에서 뉴욕 로스엔젤레스 다음으로 큰 제3대 도시로서 아침 출근시간에는 서울 못지않게 트래픽 잼이 심한 곳이 되어 있습니다
시카고의 의미는 원래 인디언 말로 양파껍질, 늪지대를 뜻하고 변형된 의미로는 별 볼일 없는 곳이란 뜻이라 하는 데 하기야 사람 사는 땅에서 별 볼일 있는 곳이 얼마나 있겠는가마는 이러한 회의적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세상 모든 곳을 시카고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 싶습니다
시카고에는 최희섭선수가 뛰고 있는 시카고컵스와 화이트삭스등 2개의 메이져야구팀이 있는 데 엊그제 신문에 보니 두 팀 다 미국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는군요
또한 이 시카고에는 시어즈빌딩말고도 98층의 존핸콕빌딩과 80층이 넘는 빌딩들이 수두룩한 데 하나하나가 건축미의 극치를 달리고 있어서 세계 각지의 건축학도들이 첨단 건축공학의 현장을 견학하러 몰려든다고 하는 데
특히 존 핸콕빌딩(98층 빌딩) 96층 뷔페식당(식사가격은 15달러)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와 호반 전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밤에는 슈베르트극장에서 브로드웨이 인 시카고란 뮤지컬을 거금 40달러(1등석은 100달러)나 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언어는 그렇다 하더라도 고급 대중예술에 담쌓고 살아온 처지여서 인지
동작이며 음률, 조명등까지 한없이 낯설기만 하여 ‘시카고 뮤지컬 보았다’는 이야기 할 것 외에 남은 것이 없고 그래서 그런 것일까 주인공중 1명 벨마 역을 맡은 흑인배우의 하아얀 치아만이 더더욱 낮 설게 다가온 어색한 밤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 지난 주말에는 랜트카로 94번 고속도로를 달려 위스콘신주에 있는 델튼 레이크에 들렀습니다
1940년대 제2차대전에 투입되었다는 수륙양용 자동차(장갑차 윗부분을 개조)를 타고 델튼호를 돌았는 데 기름냄새, 소음, 열기에 한 시간 여를 시달리다 보니 델튼호의 흐린 물빛깔과 함께 미국의 얄퍅한 상술에 똑똑한(?) 한국인 1명이 속아 넘어간 것 같아 씁쓰레 하더니만
이게 왠 걸 언덕 경사진 곳에 오막살이 하나 지어놓고는 원더스팟(wonder spot)이라하여 대단한 것이 있는 것처럼 꼬시는 통에 12달러내고 들어갔다가 다시 한번 미국인의 실없는 사기행각에 놀아난 꼴이 되어 홧김에 길거리에 가래침만 퇘 뱉고 돌아서 버렸습니다
저녁에는 주변에 있는 월마트에 들어가 취사장비하나 없는 상태에서 불고기감하고 취사도구까지 준비하여 숙소에서 불고기 바배큐를 해먹었으니 이걸로 가뜩이나 왜소해진 한국인의 체통을 가까스로 살린 셈이라 하지만
월마트! 그 다양하고 거대한 규모에 또 다른 시각에서 미국의 저력을 보는 것 같아 조금 전 장갑차와 원더스팟의 신통챦음을 다소간 용서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참 당신도 아시겠지만 미국은 모든 게 크지 않습니까
미국내에만도 동서간 시차가 3시간이나 되고
나무며, 길이며, 차며, 사람이며, 땅이며, 건물이며
옆으로 위로 다 크고
한 마디로 미국은 크다라고 해서 크게 틀린 것은 없을 듯 싶습니다
저 월마트만 해도 그 안에서 사람 놓치면 쉽게 찾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너무 넓어서이기 때문인 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월마트의 10배정도 상상하면 될까요
그것도 위스콘신 촌동네의 유락지에 소재한 월마트가 그 정도니 말입니다
심지어는 한인식당 불고기 1인분도 칼질만 잘하면 서울의 3인분도 만들 정이니 그들의 배포도 손길도 욕심도 다 크고 크고 크기만 한 것 같습니다
이왕에 크다는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미시건호가 담수호이면서도 수평선이 있다는 걸 믿으시겠습니까
시애틀 숲의 큰 나무를 장정 5명 팔 벌려도 감싸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12일간은 미국 북서부 항구도시 시애틀에 머물렀습니다
시애틀은 인디언추장 시애틀에서 그 이름을 따 왔다고 하는 데 그 추장 무척 젊쟎고 조용한 성격이었나 봅니다
시애틀 도시 자체가 매우 조용하고 안정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그러하고 광활한 태평양 북단의 항구이면서도 도시에 연한 태평양의 부드러움이 호수처럼 잔잔한데서 더욱 그러함을 느낍니다
시애틀은 4월부터 10월까지가 우리나라의 봄날씨처럼 낮에는 따뜻하거나 약간 무덥고 아침저녁으로는 무척 신선한 날씨라고 합니다
반면 그 기간 동안은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여서 스프링쿨러 없는 곳에서는 잔디가 하얗게 죽어있기도 합니다만 11월부터 3-4월까지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우기라는군요
그래서 그런지 시애틀이 자리한 워싱터주내에 미국 국립공원이 3개나 있고 호수도 많고 4,000m가 넘는 레이니어산도 있고......
시애틀시가 항구이면서도 도시안에 넓디 너른 호수가 여기저기 널려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따뜻한 한낮의 햇살, 아침저녁의 선선한 바람, 맑은 공기, 푸르고 광활한 숲,
아
미국인들은 참 복 받은 사람들이다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여유로움과 느긋함과 대인연하는 것이 다 이러한 넉넉함과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에서 비롯한 것임을 새삼 느낍니다
시애틀에는 당신이 즐겨들지도 모를 스타벅스커피(세게적인 커피 체인망) 1호점이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사 본사도 있으며 그 회사 소유주인 빌게이츠가 호수면까지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저택에서 살고 있고 세계유수의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의 본사와 공장이 있기도 합니다
참 이곳에서는 9월1일이 노동절 휴무라서 8.30부터 9.1 3일간 가이드를 구해 캐나다 뱅쿠버로 여행 갔습니다
남녀 혼탕의 해리슨온천장에서 목욕을 했더랬는 데
이미 그 체형이 망가지고 무너져 내린지 오래인 장년의 서울사내가 늘씬하고 살결곱고 아름다운 백인 아가씨 비키니차림을 손가락 사이로 보고 있노라니
아아 속절없는 세월이여
허망하게 지나가버린 젊은 날이여
나도 한때는 아령으로 몸다듬고 60킬로도 안되는 늘씬한 몸매 자랑하던 때도 있었는 데
지나간 시절을 애통해 해봤자 속만 더 상할 것 같서
나오자말자 줄담배를 서너대 피워댔더니 속만 더 답답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 오델로 터널이며, 호프마을이며, 빅토리아섬을 왕복하는 크루즈 선상관광이며 빅토리아섬에 있는 뷰차드가든이며 인디언보호구역이며,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 경이롭고 부럽고, 작디작은 땅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처지들이 아쉽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늘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제와 그제는 나아아가라폭포를 다녀왔습니다
시카고에서 버팔로까지 비행기로 1시간반 걸리고 버팔로시에서 폭포까지 40분 걸리는 데 가이드 안내로 미국쪽, 캐나다쪽 나이아가라의 모든 것을 샅샅히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이아가라는 미국 5대호중 하나인 이리호에서 온트리올호로 강물이 흘러들면서 생긴 폭포이고 그 강 사이로 미국과 캐나다간 국경선이 지나는 데 미국보다는 캐나다쪽에서 보는 광경이 훨씬 낫습니다
지축을 흔드는 굉음, 수십미터 상공까지 치솟아 오르는 물보라, 하얗게 부서지는 물줄기
모든 것이 장관이었습니다. 거길 다녀 온 분들도 있겠지만 장엄한 나이아가라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자연의 위대함, 그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 이런 모든 것들은 앞으로 오랜 기간 쉬 잊히지 않을 듯 습니다
한편 우리야 이제 막 주5일제를 시작하는 입장이지만 이 나라는 벌써 주4일근무제(희망자에 한하여 평일에 2시간씩 연장근무후 금요일부터 휴일)를 시행하는 직장도 있다하고 주5일근무제를 시행하는 곳도 나인 투 파이브라하여 오후5시가 넘으면 남이야 일을 하든 말든 알아서 퇴근을 한다고 하니 나같이 별 볼일 없는 봉급장이 입장에서는 여간 부러운게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사회라 하여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것같고 합리성과 개인주의의 이면에 내재한인간상실의 소외문제등 나름대로 짚어 볼 대목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참 쓰다 보니 당신에게는 내가 할 일 없이 미국에 놀러온 룸펜처럼 비춰질까 송구스러운 데 무슨 팔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번 미국행이 사실은 95년 동남아(말레이, 싱가포르, 홍콩쪽)행 이후 8년만의 업무상 해외여행이고 그 짬을 이용한 나들 길이 되고 있다는 점을 너그러이 살펴주기 바랍니다.
두서없는 글이고 주제넘은 내용도 있겠으나 작은 경험을 공유했으면 하는 생각에 몇자 적어본 것임을 받아주시기 바라면서
또 다음 기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