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의 글쓰기에 대해 알아야 하고,
우리가 이제껏 알아왔던 것과는 다르게 알아야 한다.”
침묵당한 약자의 목소리를 되살리기 위해
평생에 걸쳐 몰두한 문학과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들
“의식이 깨어나는 시대에 산다는 건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동시에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죽은 자들과 잠자는 의식이 깨어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오래된 텍스트를 다시 보고, 새롭게 비판하는 때가 됐다.” _본문 26쪽
에이드리언 리치는 미국 페미니즘에 있어 매우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성 인권,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해 여성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1970년대에 대학들이 여성학과를 개설한 이후 가장 많이 읽힌 작가가 됐다.
리치는 대학 졸업과 함께 첫 시집 《세상 바꾸기》(‘예일젊은시인상’ 수상작)을 출간하면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돌연 결혼을 하고 세 명의 아이를 낳으며, 현모양처의 길을 택했다. 리치가 가정 밖으로 나온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 여성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때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깨달았으며, 비로소 시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자신만의 언어와 공간을 회복한 예술가로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 책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는 그런 에이드리언 리치의 변화무쌍한 세계를 반영한다. 자기 인식의 변화로 개인과 시, 정치의 통합을 이뤄낸 글쓰기를 선보이며, 선견적인 통찰과 사회 정의에 관한 혁명적 견해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그가 1960년대부터 2006년까지 평생에 걸쳐 쓴 중요한 산문을 엮은 이 책에는 에이드리언 리치만이 할 수 있었던 다양하고 파격적인 시도들이 담겨 있다. 이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보통이 되지 못한 사람들’ 내면에 축적된 분노를 방출하도록 돕는 데, 백인 사회, 가부장제, 남성의 힘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데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노력들은 그동안 문학사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보기’하고, 제도로서 ‘모성’을 해체하는 연구, 레즈비언 페미니즘 이론 확립, 시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에 가닿는다.
‘다시 보기’로서의 글쓰기
샬럿 브론테, 에밀리 디킨슨, 엘리자베스 비숍, 뮤리엘 루카이저…
잊히거나 이름을 가지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
“여성에게서 시인을 분리하고 여성에게서 사상가를 분리하는 명백한 분열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내가 정치적인 시라고 두려워했던 것을 쓰기 시작했다.” _본문 343쪽
에이드리언 리치는 미국 문학사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비평하고, 소개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리치의 비평은 ‘다시 보기’ 문학비평으로서, “되돌아보는 행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행위, 새롭게 비판적인 방향에서 오래된 텍스트를 접하는 행위”이다. 표제작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에는 시인이자 문학비평가로서 리치의 목표가 담겨 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시를 살핀다. 자기 정체성을 깨닫기 전후의 시를 ‘다시 보기’함과 동시에 자전적 고백을 더한다. 이를 통해 과거 자신과 같았던 여성들, 즉 ‘죽은 자’들에게 함께 깨어나자고 독려한다. 나아가 동일한 생애주기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예술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리치는 오늘날 여성들에게 특별한 힘과 생존의 가치를 전하는 작품으로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다시 보’게 한다. 다층적이고, 능동적인 욕망을 가진 여성이 써내려가는 여성 서사의 가치를 재평가하며, 남성 중심 시선의 한계가 무엇인지 짚어낸다. 또한 “위대한 심리학자였던” 에밀리 디킨슨과 “비주류 정체성으로 읽어야 하는” 엘리자베스 비숍의 작품 세계를 비평한다. 이들에 대한 비평에 이르러 리치는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비평으로 나아가 남성 중심적 비평이 읽어낼 수 없는 메시지, 비유, 전략을 파악해낸다. 이는 디킨슨과 비숍의 성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들을 ‘모호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뭉뚱그리는 기존의 비평에 대항하기 위함이다. 남성 중심 문단이 호명한 ‘특별한 여성’으로 가치 축소되었던 두 시인의 신화를 해체한다.
미국에서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에 대한 찬사를 담은 〈뮤리엘 루카이저: 그의 전망〉도 중요한 수록작이다. 리치는 “내 시를 쓰고, 내 삶을 살아가는 투쟁의 과정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시인”으로 루카이저를 꼽는다. “개인적인 주제와 사회적인 주제를 성공적으로 융합한 시작법”을 이루었으며, 역사와 육체, 기억과 정치, 섹슈얼리티와 공적 공간, 시와 물리학 사이의 결합관계를 이해했다고 평가한다. 루카이저야말로 자신이 속한 시대를 뛰어넘어 ‘가능성의 예술’에 가닿은 시인이라고 말한다.
“모든 여성이 해방될 때까지 누구도 해방될 수 없다”
‘모성’ 경험과 레즈비언 페미니즘
“내가 여기서 ‘레즈비언 연속체’라고 부르는 것을 발굴하고 설명하는 눈앞의 작업은 잠재적으로 모든 여성을 해방시킬 것이다. 이 작업은 서구의 백인 중산층 여성들의 학문이 지닌 한계를 분명하게 뛰어넘어 모든 인종과 민족, 정치제도 안의 여성들의 삶과 일, 집단 분류를 살펴보는 일이다.” _본문 227쪽
리치는 페미니즘 이론에서 비교적 탐구가 덜 이뤄진 ‘모성’에 대해 쓰기를 원했다. 시인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였던 그가 경험한 모성은 가부장제로부터 주입된 ‘제도’였다. 그는 세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경험, 엄격한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딸로서의 경험을 연결시키며 〈여성으로 태어남에 대하여〉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모성이 가부장제 안에서 억류되어 있음을 밝히며, 가족을 넘어 다른 존재에 대한 애정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그의 시선은 레즈비언 페미니즘으로도 이어진다. 그의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모성이라는 가능성을 통해 더 넓은 형태의 ‘여성적 사랑’으로 확장한다. 그의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여성적 존재’로 볼 수 있는 이 사회의 다양한 약자들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을 지향한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리치의 산문인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는 그런 배경에서 쓰인 연구서다. 1970년대 2세대 페미니즘 물결 속에서 리치가 치열하게 탐구해 쓴 이 글은 여성이 어떻게 강제적인 성정체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남성의 권력을 철저히 해부하며, 레즈비언의 존재가 정치적 존재로 박탈당해온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특히 ‘레즈비언 연속체’의 개념을 확립하면서 이것이 인종과 민족, 정치제도 안의 여성을 살핌으로써 모든 여성을 해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약자의 침묵을 깨는 시인의 사회적 역할
“예술은 공식적인 침묵을 깨뜨리고, 목소리를 외면당한 사람들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며, 인간의 타고난 권리로서 존재합니다. 나는 살면서 사회정의 운동이 열어젖힌 예술의 공간을, 절망을 깨뜨리는 예술의 힘을 목도해왔습니다.” _본문 457쪽
리치는 모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레즈비언 페미니즘을 펼치며, 이 사회 안에 발견되지 못한 침묵을 찾는 일에 골몰한다. 〈뿌리에서 갈라지다〉는 리치가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과 마주한 고백을 담은 글로, 시인으로서 그가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담는다. 이 글을 통해 리치는 자신이 유대인의 뿌리를 갖고 있음을 밝히고, 특권을 향한 모든 욕망을 크게 지탄한다. 이는 가부장제 하에서 이성애자 현모양처 행세를 하며 스스로 고통받았던 경험과 이어지며, ‘백인 중심 기독교 제도’의 파시즘에 저항하는 페미니즘으로 나아간다. 그는 스스로 “노란별을 달겠다(나는 유대인이다)”라고 선포하며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되살리겠다고 말한다.
〈피, 빵, 그리고 시〉에서 리치는 사회를 이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예술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니카라과로 떠났던 일화와 그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다. “예술이 상품이나 사치품, 또는 의심스러운 활동이 아닌 조국의 재건을 위한 요소”라는 공동체의 믿음이 자리한 현장에서 시인의 역할에 대한 신념을 담금질한다. 그는 정치 투쟁과 예술가의 정신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를 꿈꾼다. 어떤 아름다움도 희생되지 않는, 어떤 존재도 죽임당하지 않는 사회를 소망한다. 〈나는 왜 국가예술훈장을 거부하는가〉는 리치가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로 알려진 산문이다. 1997년 당시 리치는 예술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상인 국가예술훈장의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이를 거절했다. 그는 미국의 부와 권력의 불균형이 극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예술가에게 상을 수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일갈하며, 이러한 권위를 이양받는 문학, 예술에는 힘이 없음을 꼬집는다. 국가가 해야 하는 일,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지적한다. 이를 통해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21세기적 인류를 향한 희망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