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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탄호이저에 관한 여러 전설
루트비히 티크 <충직한 에카르트와 탄호이저>
호프만 <탄호이저>
하이네 <탄호이저>
대본 리하르트 바그너
초연 1845년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 극장(드레스덴판)
1861년 파리 오페라하우스(파리판)
배경 13세기 초 독일 튀링겐 지방의 바르트부르크 성
<2014년 4월 베를린 슈타츠오퍼 / 192분 / 한글자막>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 베를린 슈타츠오퍼 합창단 연주 /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 사샤 발츠 연출
탄호이저...................음유시인이자 기사......페터 자이페르트(테너)
볼프람 폰 에셴바흐.....음유시인이자 기사......페터 마테이(바리톤)
헤르만......................튀링겐의 영주............르네 파페(베이스)
엘리자베트................헤르만의 조카딸.........안 페테르젠(소프라노)
베누스......................사랑과 관능의 여신.....마리나 프루덴스카야(메조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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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방황하는 처절한 갈등” 바그너 <탄호이저>
-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 실황
- 실험무대의 명
무용감독 사샤 발츠의 인상적인 연출과 안무
- 거장 바렌보임의 지휘와 정상의 성악진
1845년 드레스덴의 궁정 극장에서 바그너 자신의 지휘로 초연된 <탄호이저>는 바르트부르크의 노래 경연대회와 탄호이저에 관한 독일 전설을 기초로 하여 바그너가 직접 작곡과 대본을 작성한 3막의 독일어 오페라로 노래의 전당, 엘리자베트의 기도, 저녁별의 노래 등의 아리아가 널리 알려져 있다. 본 공연은 독일 실험극의 산실로 통하는 샤우뷔네 출신의 독일을 대표하는 무용 감독 사샤 발츠가 안무와 연출을 맡고 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단의 새로운 작품 <탄호이저>는 오늘날 최고의 바그네리안으로 손꼽히는 피터 자이페르트가 주인공을 맡고 있으며 그외 피터 마테이, 르네 파페, 안 페테르젠 등 막강한 성악가들의 캐스팅에 의해 공연되었다.
중세 독일의 기사 탄호이저는 베누스의 육욕적인 사랑에 매혹되어 그녀와 쾌락의 나날을 보내고 돌아온다. 고향에는 연인 엘리자베트가 변함없는 정신적인 사랑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다. 기사들의 노래경연대회에서 탄호이저는 그만 베누스와의 경험을 실토해버린다. 그는 비난을 받고 영주는 징계를 내린다. 로마까지 순례의 길을 가서 교황의 용서를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누스를 경험한 자는 교황도 용서해 주지 않는다. 이에 절망하여 다시 돌아온 탄호이저는 자신을 맞이해줄 자는 베누스밖에 없다고 자포자기한다. 하지만 엘리자베트의 기도는 하늘에 닿아, 그녀의 희생 때문에 탄호이저는 구원을 얻는다.
=== 프로덕션 노트 === <영상물 내지 해설 / 풍월당 대표 박종호>
이 새롭고 빼어난 <탄호이저> 영상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사샤 발츠의 연출일 것이다. 현대 무용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발츠는 독일의 저명한 샤우뷔네 극장의 리더로서, 독일 실험극의 대표적인 주자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프로덕션에서 발츠는 연출뿐만 아니라 극 중의 모든 안무와 동작도 직접 지시하였다. 그의 이름을 붙인 무용단의 남녀 18명 무용수가 출연한다. 막이 올라가자마자 펼쳐지게 되는 베누스베르크 장면에서 그들은 발츠 특유의 원초적이면서도 꾸밈없는 무용으로, 유혹에 한없이 약하고 욕망의 추구에는 열심인 우리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발츠의 안무는 지금까지의 많았던 <탄호이저> 안무들처럼 다만 관능적이거나 육체미를 그린 것이 아니다. 발츠의 유명한 작품 <육체>를 연상시키는 단순하면서도 의미심장하고 무엇보다도 연민과 사랑이 우러나오게 하는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다. 즉 무용수들은 몸매가 아름답거나, 얼굴이 조각 같거나, 젊거나 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바로 우리 인간의 사회와 사람 종족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베누스베르크 장면뿐만 아니라, 오페라 곳곳에서 가수 출연자들이 잠깐이나마 발츠의 안무를 수행하는데, 주역들도 그러하다. 그런 장면들은 간혹 억지로 삽입시킨 것 같은 삽화적 장면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여기서는 그것들이 드라마의 내용 속으로 부드럽게 용해되고 있다.
발츠와 피아 마이어 슈리버가 함께 디자인한 무대미술은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고 상징적이다. 그것은 아주 잘 만들어진 무대의상에서 특히나 역시 그러하다. 남성 앙상블이나 수녀복장의 여성 출연진들의 군중 장면 등에서는 무대보다도 의상 자체의 위용이 위엄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가수들은 뛰어나다. 두 명의 여성 주인공 즉 베누스 역의 마리나 프루덴스카야와 엘리자베트 역의 안 페테르센은 압도적인 가창으로 관객을 감동시키고 있다. 노련한 테너 페터 자이페르트가 부르는 탄호이저와 헤르만의 르네 파페 역시 대단히 훌륭하다. 그리고 페터 마테이가 해석하는 볼프람 역할은 그 어떤 바리톤들보다도 부드러우며 힘을 뺀 우아한 볼프람으로서 이번 공연의 백미다. 특히 그가 아리아를 부르는 동안 수행하는 발츠의 안무에 의한 동작은 아리아 장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만큼 감동적인 명장면이다.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바그너는 최근에 어떤 경지의 물이 올랐다고 할 정도로 유연하다. 그가 지휘하는 자신의 친숙한 악단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사운드는 부드러운 음장감 속에서 적절한 임팩트를 뿜어내면서, 이 명작의 감동을 충분히 전달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 작품해설 === <영상물 내지 해설 / 풍월당 대표 박종호>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
탄호이저
두 세계에서 방황하는 남자의 영원한 갈등
바그너의 오페라와 악극(樂劇)들을 모두 통틀어서 대중들에게 (이름이나마)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이 <탄호이저>다.
어쩌면 바그너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단순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작품의 이미지나 호소력은 아름답고 장중하며 담백하다. 또한 모든 바그너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의 희생에 의한 구원이라는 주제는 진부할 것 같지만, 막상 극을 접하면 그 이미지는 의외로 강렬하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한 마디로 가장 단순하고 유명한 것이 가장 좋다는 진리를 또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오페라가 <탄호이저>인 것이다.
바로 이전의 작품인 <방황하는 화란인>이 흥행에서 실패한 이후 <탄호이저>에 대한 바그너의 의지는 대단하였다. 그리고 그런 만큼 이 작품에서 바그너는 새롭고 의욕적인 발전을 보여주었다. 바그너는 이 <탄호이저>를 위해 두 가지의 소재를 골랐는데, 하나는 '탄호이저란 인물에 관한 전설'이며 다른 하나는 중세 독일에서 있었다는 '노래경연(경창)대회의 전설'이다. 두 가지 다 13세기경에 있었던 것으로 '탄호이저'는 금욕적인 중세 기독교 시대에 육욕(肉慾)적인 베누스의 세계에 몸을 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며, '경창(競唱)대회'의 전설은 중세에 기사이자 음유시인(吟遊詩人)인 남자들이 모여서 서로의 시와 노래를 겨루었다는 이야기이다.
바그너는 이렇게 각기 동떨어졌으며 어쩌면 연관이 없는 두 개의 소재를 하나로 묶어 이 새로운 오페라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이 오페라의 원제(原題)는 <탄호이저와 바르트부르크의 경창 대회>로서, 두 소재의 결합이 제목에도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또한 이 오페라에는 <3막으로 이루어진 낭만적인 오페라>란 부제(副題)가 붙어있다.
그리고 바그너는 언젠가 여행 중에 바르트부르크의 성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그는 이 성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바르트부르크 성을 <탄호이저>의 무대로 삼게 된다. 즉 하나의 성의 이미지 위에 두 가지의 독일의 전설을 쌓아서, 바그너의 새로운 창작물인 이 오페라가 완성된 것이다.
<탄호이저>를 감상할 때는 항상 판본에 관한 이야기가 따라 다니는데,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작곡의 경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탄호이저>는 1845년 드레스덴의 궁정 가극장에서 바그너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그 후 1847년에 드레스덴에서 약간의 손질을 거친 <탄호이저>가 다시 상연되었다. 이것이 요즘 일컫는 '드레스덴 판'이다. 그 후 바그너는 1861년 파리에서 이 오페라를 다시 상연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데 파리에서는 당시의 파리 유행에 따라 발레 장면을 추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바그너는 1막에 원래 있던 베누스베르크의 바카날레 장면을 확대시켜 발레 곡으로 만들게 되었으니, 이것이 '파리 판'이다.
그 후부터는 '파리 판'과 '드레스덴 판'이 병행되어 지금까지 사용되어왔다. 그리고 바이로이트 축제 등에서는 지휘자에 따라서 위의 두 판본 외에 파리 판과 드레스덴 판을 적당히 섞어서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 오페라의 매력은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 탄호이저란 남자를 둘러싼 두 개의 세계이다. 순결과 환락을 상징하는 두 세계는 두 사람의 소프라노로 상징되는데, 이 오페라의 두 사람의 여주인공 즉 엘리자베트와 베누스가 각각의 세계들을 대표한다.
엘리자베트를 맡는 소프라노는 순결하고 청초한 노래를 불러야 하며, 반면 베누스를 부르는 소프라노는 관능적이고 육감적인 연기를 해야 한다. 두 명의 소프라노가 보여주는 두 세계는 이 <탄호이저>의 큰 매력이다. 그러므로 많은 소프라노를 <탄호이저> 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엘리자베트 적인 소프라노와 베누스 적인 소프라노의 두 가지 부류가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두 소프라노로 대변되는 두 세계의 대비는 문학적, 연극적, 음악적(성악이 아닌), 성악적으로도 모두 흥미롭다. 과거 귀네스 존스 같은 대 소프라노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두 역을 1인 2역으로 한꺼번에 소화하여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이 두 소프라노는 극 중에서 만나지 않는 독특한 구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연 보통 성악가로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대도전이다. 그럴 경우 소프라노는 3시간 이상을 거의 무대에서 계속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작중에는 이 두 개의 세계뿐만 아니라, 봄과 가을, 낮과 밤 등의 대비가 뚜렷한 것도 역시 특징적이다.
<탄호이저>의 또 하나의 매력은 경창(競唱)대회다. <탄호이저>의 극 중에는 6인의 음유시인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2막의 경창대회 장면에서는 여러 개성 있는 남성 가수들의 대조적인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마치 또 하나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에서는 이렇게 여러 명이 한꺼번에 노래하는 경창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인공 탄호이저의 친구인 볼프람의 노래들은 매력적이라서(또한, 그의 인격 역시 바그너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1막의 베누스베르크 장면도 2막의 지상의 크리스트교적인 분위기와는 대조적인데, 여기서는 환락의 세계가 요염하고 다양한 발레와 합창으로 표현된다.
<탄호이저>는 악극이 아닌 여전히 오페라라고 불리는 작품이긴 하지만, 바그너의 독특한 세계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즉 바그너만의 독특한 무대 예술론이 직접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중요한 작품이다.
이 오페라에서는 당시의 오페라들에 비해 관현악의 역할이 아주 증대되어 있다. 더불어서 관현악은 많은 유도 동기들을 연주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극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고 발전되어 간다. 그리고 이 <탄호이저>에서부터 일부이기는 하나 당시까지의 번호 오페라의 형식을 벗어던지고 이행(移行)기법이 능란하게 사용되고 종지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점은 이전의 <방황하는 화란인>에 비해 많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군데군데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인 수법을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 작품해설 === <2010년 5월 18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바그너, 탄호이저
Richard Wagner, Tannha:user
원제는 <탄호이저와 바르트부르크의 노래 경연>이고, 부제는 '3막의 낭만적 오페라"이다
1845년 초연된 드레스덴 판본과 1861년 파리 상연시 수정된 파리 판본이 존재한다
흔히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친해지기 쉬운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탄호이저]입니다. ‘순례자의 합창’, ‘저녁별의 노래’ 등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어있고, 아직은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인 ‘아리아’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페라이기 때문이죠. 바그너는 ‘오페라’ 대신 ‘무지크드라마(Musikdrama)’라는 형식을 정립해 독일 음악극을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우위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후기 대작 [니벨룽의 반지]나 [파르지팔]은 이 새로운 분류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서른두 살의 바그너가 1845년에 드레스덴에서 초연한 [탄호이저]는 바그너 스스로 ‘낭만적 오페라’라는 부제를 붙인 작품이랍니다.
그러나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경계를 없애고 ‘오페라’에서 ‘무지크드라마’로 나아가려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탄호이저]에서 이미 확연히 드러납니다. 아리아가 끝나는 시점을 명확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다음 음악으로 계속 연결해 극의 단절감을 없앤 것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본격화되는 ‘무한선율’의 기초작업이며, 앞에 발표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비교할 때 라이트모티프(시도동기)의 사용도 더욱 두드러집니다.
[탄호이저]는 중세 음유시인이면서 기사였던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엔(Heinrich von Ofterdingen)을 모델로 삼아 ‘사회 인습에 저항하는 예술가의 초상’을 보여준 오페라로, 바그너는 스스로 ‘불행한 천재’라고 믿었던 자신의 모습을 주인공 탄호이저에게 투사했습니다. 13세기 문학작품인 [마네스 노래집]과 [바르트부르크 노래 경연], 그리고 하이네, 호프만, 브렌타노, 티크 등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이 이 중세 소재를 토대로 새롭게 쓴 이야기들을 참고해서 바그너는 자신만의 독특한 탄호이저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대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지요. 문학적 재능이 각별했던 바그너는 자기 오페라의 대본을 늘 스스로 썼으니까요.
순결한 사랑과 관능적 쾌락 사이의 갈등
13세기 초 독일 튀링엔 지방 바르트부르크 성의 기사 탄호이저(하인리히)는 영주의 조카딸 엘리자베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지만, 관능적인 사랑의 여신 베누스(비너스)가 사는 동굴에 찾아간 뒤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세계의 쾌락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적 의무와 맑은 공기가 그리워 바깥세상으로 돌아온 그는 동료기사들을 만나 다시 바르트부르크 성의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합니다.
탄호이저가 자취를 감춘 뒤로 줄곧 그를 그리워해 온 엘리자베트는 그가 돌아왔다는 전갈에 기뻐하며 노래 경연의 전당으로 달려가 아리아 ‘그대 고귀한 전당이여’를 노래합니다. 기사들과 귀족들이 청중으로 모인 전당에서 영주 헤르만이 기사들에게 준 노래의 주제는 ‘사랑의 본질’입니다. 중세의 실존인물이었던 기사 볼프람 폰 에셴바흐,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등이 등장해 ‘욕망을 억제하는 정신적 사랑’을 예찬하자 탄호이저는 그들을 비웃으며 ‘사랑의 본질은 쾌락’이라고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베누스 여신을 찬미합니다. 그가 이교 여신과 함께 쾌락의 세계에 있었던 것이 밝혀지자 분노한 기사들은 칼을 빼들지만, 엘리자베트가 목숨을 걸고 막아서서 그들을 설득합니다. 탄호이저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죠. 그러자 영주 헤르만은 탄호이저에게 로마 순례를 명합니다.
시간이 흘러, 로마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순례자의 합창’을 노래하지요. 엘리자베트는 순례자들의 행렬 안에 탄호이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절망합니다.
탄호이저의 죄를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바치겠다고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엘리자베트. 오래 전부터 그녀를 흠모해온 기사 볼프람은 엘리자베트의 삶이 꺼져가는 것을 느끼며 ‘저녁별의 노래’를 부릅니다. 밤이 깊자 지친 모습의 탄호이저가 볼프람 앞에 나타납니다. 온갖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며 순례자들의 대열에 섞여 로마에 도착했지만, 베누스 동굴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교황은 ‘고목에 싹이 돋지 않는 한 용서할 수 없는 끔찍한 죄’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지 못해 절망한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 여신을 부르며 쾌락의 세계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때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부르자 베누스의 세계는 사라져 버리지요. 합창단이 엘리자베트의 죽음을 알리자 탄호이저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며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거둡니다. 그때 고목 지팡이에 푸른 싹이 돋아나고, 순례자들은 탄호이저가 구원받았다고 합창합니다.
여성의 희생을 통한 천재 예술가의 구원
위의 내용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버전입니다. 그러나 원래의 탄호이저 이야기는 좀 달랐습니다. 13세기 문학을 기초로 해서 16세기에 쓰여진 [탄호이저의 노래]에 따르면, 탄호이저는 베누스와 쾌락을 즐기다가 그곳을 힘들여 빠져나와, 엘리자베트를 만나지 않고 곧장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그러나 교황 우르바누스가 쾌락에 빠졌던 죄를 용서해주지 않자,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의 동굴로 돌아갑니다. 교황은 사흘 뒤에 고목에 새 잎이 나는 기적을 보고 탄호이저를 찾지만, 그는 이미 베누스에게 돌아간 뒤여서 만날 수가 없었답니다.
낭만주의 시인 하이네의 유머러스하고 시니컬한 [탄호이저]를 보면 한술 더 떠서, 베누스는 돌아온 탄호이저에게 따뜻한 수프를 끓여주고 순례 중에 상처 입은 발을 치료해 줍니다. 결국 탄호이저는 베누스 동굴의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쾌락을 즐기며 살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천재성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분노하고 있던 바그너는 ‘여성의 절대적 헌신과 희생을 통한 예술가의 구원’을 강조하려고 결말을 진지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비슷한 시대의 작가, 같은 소재라 해도 작가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 따라 이처럼 상반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탄호이저]를 작곡하던 중에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 지휘자로 취임해 스스로의 연출과 지휘로 [탄호이저]를 초연하기로 합니다. 마지막 3막을 두고 고민에 빠진 바그너는 탄호이저가 베누스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탄호이저의 환상’으로 처리하고, 엘리자베트의 죽음과 고목 지팡이에 돋은 새싹 등은 기사 볼프람의 암시와 설명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초연 때 청중은 무대 위에서 사건이 거의 전개되지 않는 이런 방식을 대단히 지루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바그너는 이 부분들을 무대 위 사건으로 전환해서 사실적으로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이 판본은 1847년 8월에 개정판으로 발표되었고, 이것이 바로 ‘드레스덴 판본’입니다. 유럽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의 성공을 갈망했던 바그너는 발레와 화려한 음악을 좋아하는 파리 오페라 애호가들의 기호에 맞춰 서곡, 1막 1장, 2막 4장을 대대적으로 수정했고, 이것이 1861년 3월 13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파리 판본’입니다. [탄호이저]가 파리 판본으로 공연되기를 작곡가 자신이 원했기 때문에 바이로이트에서도 1891년 이후 파리 판본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요즈음은 많은 경우에 파리 판본과 드레스덴 판본의 절충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누스와 엘리자베트는 관능적 괘락과 순결을 상징하는 이분법적 여성상이지만, 한 여성 안에 내재된 이원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 연출가 괴츠 프리드리히는 두 여주인공을 한 명의 가수(귀네스 존스)가 연기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서곡부터 ‘순례의 합창’ 모티프에 베누스 동굴 음악이 겹치면서, 이 주제가 뚜렷이 부각됩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탄호이저-엘리자베트-베누스-볼프람 순
[음반] 르네 콜로, 헬가 데르네쉬, 크리스타 루트비히, 빅터 브라운 등,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게오르크 숄티 지휘, 1970년 녹음(Decca)
[음반] 플라시도 도밍고, 셰릴 스튜더, 아그네스 발차, 안드레아스 슈미트 등,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및 로열오페라하우스 합창단, 주세페 시노폴리 지휘, 1989년 녹음(DG)
[DVD] 르네 콜로, 나딘 세쿤드, 발트라우트 마이어, 베른트 바이클 등,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케스트라와 오페라 합창단 및 오페라 발레단, 주빈 메타 지휘, 데이비드 올든 연출, 1994년(스펙트럼)
[DVD] 스파스 벤코프, 귀네스 존스(엘리자베트+베누스), 베른트 바이클 등, 콜린 데이비스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괴츠 프리드리히 연출, 1978년(DG)
[네이버 지식백과] 바그너, 탄호이저 [Richard Wagner, Tannhäuser] (클래식 명곡 명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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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7월 21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저녁별의 노래
바그너 <탄호이저>
12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독일에 기사문학(騎士文學)의 융성을 초래한 민네징거(Minnesinger, 연예시인)란 오늘의 ‘가수겸 작곡가·작사자’(singersong writer)처럼 시작(詩作)과 음악 양쪽에 뛰어난 기사였다. 탄호이저는 독일 전설의 연애시인 탄호이저와 발트부르크 노래 경연대회를 소재로, 육욕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의 대립에서 사랑의 실현(實現)은 죽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평생의 사상을 테마로 한 낭만적인 색채가 짙은 명작이다.
바그너 필생의 주제인 '사랑에 의한 구원'을 노래한 걸작 오페라
13세기의 독일, 튜링겐 지방이다. 중세의 기사는 민네징거(연애시인)로서 노래를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인 탄호이저는 영주(領主)의 조카 엘리자베트와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관능(官能)의 여신 베누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윽고 간신히 그녀의 애욕의 굴레에서 탈출한 탄호이저는 발트부르크 성의 노래 경연대화에 출전한다. 다른 기사들이 청순한 사랑, 높은 덕성(德性)의 사랑을 노래 가운데, 그는 향락적인 사랑을 부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베누스의 사랑을 칭송한다. 기사들이 모두 놀라서 일제히 칼을 뽑지만 엘리자베트가 결사적으로 나서 목숨을 구한다.
영주가 결단을 내려 그는 로마 법왕의 용서를 얻어오라는 명령을 받고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된다. 탄호이저가 떠난 뒤 엘리자베트는 마리아 상(像)에게 목숨을 걸고 용서를 빈다. 그 모습에 감동한 친구 볼후람(볼프람, Wolfram) 앞에 초췌한 탄호이저가 돌아온다. 그는 로마에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베누스의 관능으로 넘치는 모습이 다시 나타나 그의 마음은 다시 흔들린다. 그 때 엘리자베트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다. 볼후람이 “엘리자베트”하고 외치자 베누스의 모습을 사라지고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탄호이저도 순간 깨어나 숨을 거둔다. 엘리자베트의 희생으로 그의 영혼도 구원된 것이다.
바그너는 자기 오페라의 대본을 모두 자기가 직접 썼다. 그 이전은 대본작가와 작곡가는 분업이 보통이며 직접 작곡가가 쓴 것은 바그너가 처음이다. 이 오페라에는 드레스덴 초연 뒤에 마지막 제3막 제3장에 손을 대 알기 쉽게 한 드레스덴 판과, 1861년에 빠리(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발레를 좋아하는 빠리의 관객을 위해 서곡과 제1막 제1장의 베누스가 사는 산의 동굴 장면, 제2막 제2장의 노래 경연대회 장면 등을 대폭 개정한 빠리 판이 있고, 이 둘을 절충해서 공연하는 일도 많다. 전3막이다.
'저녁별의 노래'
죽음의 예감인양 황혼이 땅을 덮고
골짜기를 검은 옷이 감싼다.
아득히 높은 곳을 향하는 그녀의 영혼에도
밤의 공포를 가로 지르는 길은 두렵다.
여러 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별이여, 빛을 내서
아늑한 등불을 저 멀리 보내어,
부드러운 빛이 밤의 어두움을 헤치고
골짜기의 길을 친히 가리켜 주오.
오 나의 자애(慈愛)로운 저녁별이여,
나는 언제나 행복한 기분으로 반겨 맞지만,
그녀를 결코 배반할 리 없는 이 마음을,
꼭 전해 주시오, 그녀가 지나갈 때에.
아득히 높은 곳에서 천사가 되기 위해
그녀가 이 땅의 골짜기에서 날아오를 때에.
아득히 높은 곳에서 천사가 되기 위해
그녀가 이 땅의 골짜기에서 날아오를 때에.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애(殉愛)의 찬가
로마로 순례(巡禮)를 떠난 탄호이저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성모상(聖母像)에 기도를 드리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를 남 몰래 사랑하는 기사 볼후람이 엘리자베트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예건하고 ‘저녁별이 그녀의 영혼을 편안히 하늘로 인도해 주십시오’ 하고 수금(竪琴)을 연주하며 기도하는, 바그너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이다. 가사는 제1절이 저녁 어둠이 다가올 무렵이고 제2절과의 사이에 저녁별이 빛나기 시작하여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다. 바리톤의 억제된 깊은 감정을 담은 노래이며 결코 소리 높이 부를 수가 없다. 경건(敬虔), 장엄함이 가슴에 다가드는 아리아이다.
추천할 만한 CD와 DVD
[CD] 자발리쉬 지휘,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합창단 에버하르트 배히터(Br) Philips
빌란트 바그너(R. 바그너의 손자이며 명연출가)가 연출한 1962년도 바이로이트 축제 때의 귀중한 녹음이다. 당시 아직 40세가 안 되었던 자발리쉬(Wolfgang Sawallisch)의 신선하고도 침착한 표현을 들을 수 있다. 이 지휘자 특유의 결벽성과 근엄 솔직한 표현에는 이 음악에 대한 진한 욕구와 열망이 엿보인다. 가수진은 녹음 당시 최고의 캐스트로 짜여 있다. 탄호이저 역의 빈트가쎈(Wolfgang Windgassen)은 그 탄력있는 목소리와 풍부한 음악성에 압도된다. 엘리자베트 역의 질랴(Anja Silja)가 아직 기교적인 면에 미숙한 점이 있지만 신선하고 지적인 노래에 이끌린다. 또 당대 최고의 볼후람으로 꼽히는 배히터(Eberhard Wächter)는 관록 있는 풍성한 노래를 펼친다. 그의 온후(溫厚)한 기사 역은 이 드라마에서 다시 없이 중요한 액센트가 있다. 음반은 드레스덴 판과 빠리 판을 절충하여 공연한 실황 연주 녹음이다.
[CD] 숄티(솔티, Georg Solti)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가극장 합창단, 빈 소년 합창단(1970) 빅토르 브라운(Br) Decca
최초의 빠리 판 전곡 녹음이다. 우선 베누스를 틀에 박힌 이교적(異敎的) 관능의 여신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는 엘리자베트와 대립되는 존재로 그리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빠리 판은 그저 불란서의 그랜드 오페라에 대한 관습적인 타협이라고 치부하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숄티의 연주가 그 점을 시정해 주고 있다. 그의 지휘는 음 자체의 극적인 의미와 공간감(空間感)에 유의하면서 음악의 정서와 분위기를 미묘하고 예리하게 나타내고 있다. 특히 베누스의 동굴 장면에서 관능적인 오케스트라색채감과 전곡에 걸쳐 세부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신경을 쓴 풍성한 연주 표현은 깊은 감명을 준다. 가수로는 꼴로(René Kollo)의 싱싱한 힘이 넘치는 탄호이저 역이 돋보인다. 자발리쉬 지휘 때의 빈트가쎈이 노련하고 분별 있는 탄호이저라면 꼴로는 육욕(肉慾)의 쾌락과 정신적 고결(高潔) 사이를 헤매는 인간다운 설득력을 지닌다. 데르네슈(Helga Dernesch)의 엘리자베트, 메조 소프라노 루트비히(Christa Ludwig)의 베누스 등 모두 수준 높은 가수진이다. 또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의 빼어난 연주와 합창이 이 오페라를 더욱 빛낸다.
[DVD] 구스타브 쿤 지휘,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 관현악단/합창단(2000) 루트비히 바우만(Br), 헤르쪼크 연출, Panorama 수입반
지휘자 쿤은 카라얀 밑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사람이다. 탄호이저 역의 우드로우(Alan Woodrow)는 처음 한동안 음조(音調)가 불안정하다가 차츰 안정을 되찾아 자신감 넘치는 노래로 일관한다. 그리고 헤르만 역의 실베스트렐리(Andrea Silvestrelli)가 뿜어내는 넓고 깊은 베이스와 볼후람 역의 바우만(Ludwig Baumann)의 저력있는 바리톤도 인상적이다. 엘리자베트 역의 오텐탈(Gertrud Ottenthal) 역시 나무랄 데 없는 노래 솜씨를 보이나, 펜체바(Marianna pentceva)는 보다 요염한 목소리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헤르쪼크(Werner Herzog)의 연출은 전통적인 무대 장치가 아니고 의사(疑似) 근대적인 것이지만 별로 위화감(違和感)은 없다. 녹음상태와 화질은 우수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난해하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는 바그너 입문자에게 이해하기 쉬운 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DVD] 콜린 데이비스 지휘,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합창단(1978) 베른트 바이클(Br) 후리드리히 연출 DG
탄호이저 역의 벤코후(Spas Wenkoff)는 불가리아 태성으로 당시 평판 높던 헬덴 테너이다. 엘리자베트와 베누스 역의 죤즈(Gwyneth Jones)의 노래는 여성의 이면성(二面性)을 잡으려는 연출 의도 때문이라고는 하나, 전성기의 그녀다운 열기에 찬 표현이다. 동독 출신의 후리드리히(Gotz Friedrich)의 ‘체제(體制)’를 느끼게 하는 연출은 의식적인 풍자였다. 그가 바이로이트에 처음 등장한 1972년 이후의 프로덕션이다. 이 성공으로 그는 서독에 넘어 왔다. 이 무렵부터 오랜 동안 계속되어온 비란트 바그너의 상징주의적 연출이 없어지고 정치적으로, 성적(性的)으로 대담하고 명확한 해석이 강한 공연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런 입장에서 이 실황 연주도 선구적(先驅的)인 작품이지만 아직 정통파의 격조 높은 면이 남아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저녁별의 노래 - 바그너, [탄호이저]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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