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북조선의 비핵화가 가망 없는 생각이라고 본다. 북조선은 비핵화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핵능력을 포기하는 것은 북조선으로서는 고려할 가치가 없는 생각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그러면서 그는 “(비핵화과정에서 미국이 조선에게) 바랄 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일종의 마개를 씌우는 것(some sort of a cap = 핵동결을 뜻함-옮긴이)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미국이 북조선에게 요구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요즈음 한국 언론매체들이 쓰는 말을 빌리면, 조선의 핵동결이란 현재 핵은 폐기하지 않고 미래 핵만 폐기한다는 뜻이다.
토론회 발언기록은 클래퍼가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국가정보실장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조미핵대결에 관해 심각한 발언을 하는 순간, 뜻밖에도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 이 기괴한 장면은 미국의 외교전문가들이, 아니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조미핵대결에 대해 얼마나 무지몽매하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런 기괴한 분위기 속에서 클래퍼의 심각한 발언은 계속되었다. 그는 만일 미국이 조선에게 핵동결을 요구하려면, 핵동결에 상응하여 조선에게 내놓아야 할 “어떤 중대한 유인책들(some significant inducements)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에 인용된 클래퍼의 ‘폭탄발언’을 좀 더 정확한 어법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미국은 조선의 핵능력을 제거하려는 비핵화를 추구하지 말고, 조선의 핵능력을 제한하는 핵동결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도이며, 조선에게 핵동결을 요구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요구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고, 핵동결에 상응하는 중대한 양보조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클래퍼의 ‘폭탄발언’이다.
‘폭탄발언’의 충격파가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었던 2016년 10월 당시는 물론이고, 그로부터 오늘까지 2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조미핵대결이 조선의 승리로 종식되어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사변들이 줄이어 일어나는 조미협상국면에 들어왔는데도, 클래퍼의 ‘폭탄발언’은 워싱턴 정가에서 그 누구도 말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로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의 금기어 속에 조미협상의 해법이 들어있다. 클래퍼의 ‘폭탄발언’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이후 진행되고 있는 조미협상의 해법을 예고한 중대발언이었던 것이다.
요즈음 미국에서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Robert U. Woodward)의 책 ‘두려움: 백악관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를 펼치면, 클래퍼라는 이름을 또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 국가정보실장으로 재직하던 클래퍼는 미국이 조선에게 협상조건으로 제시한 조선의 비핵화는 실현될 수 없으며, 미국이 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방안 같은 비현실적인 대책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현실적인 대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6.25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이며, 평양에 미국의 이익대표부가 설치되기 바란다는 지론을 폈다고 한다. 클래퍼는 당시 오바마 행정부가 은밀히 논의하고 있었던 군사적 선택방안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클래퍼가 제시한 새로운 대안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Barack H. Obama) 당시 대통령은 클래퍼가 제시한 새로운 대안을 철저히 외면하였고,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회의 각료들도 그것을 무시하였던 것이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공연무대 위에서 그 무슨 ‘전략적 인내’라는 제목의 해괴한 요술을 벌여놓고, 무대 흑막 뒤에서는 조선의 미사일시험발사를 교란시키는 이른바 ‘특수접근프로그램(Special Access Program)’이라는 작전명칭의 싸이버공격기회를 노리다가 성공확률이 보이지 않자, 이전 행정부들이 이미 불가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포기했던 대조선선제타격을 다시 검토해보라는 무모한 지시를 내리며 광분하고 있었다고 한다.
2. 오바마의 경고와 클래퍼의 조언, 1년 뒤에 일어난 변화
클래퍼가 제시한 새로운 대안을 외면한 채, 조선을 공격하려는 군사적 선택방안들에 미련을 두면서 화약고 안에서 은밀한 불장난으로 허송세월했던 핵제국의 호전광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났고, 정치권과 거리가 먼 부동산재벌총수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가 그의 뒤를 이어 백악관의 새 주인으로 등장하였다. 대통령선거일로부터 이틀 뒤인 2016년 11월 10일 대선승리도취감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대통령당선인 트럼프는 의기양양하게 백악관에 들어가 오바마를 만나 상견례를 하였다.
그런데 백악관 상견례에서 트럼프는 대선승리도취감에서 깨어나 정신이 버쩍 드는 기이한 체험을 하였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트럼프는 오바마를 만나 10분 동안 상견례를 하려고 하였는데, 예정시간을 훌쩍 넘기며 무려 1시간 이상 회담하였다고 한다. 트럼프와 오바마는 측근들을 대통령집무실 밖으로 내보내고, 1시간 이상 단독회담을 진행한 것이다. 취재진 앞에서 악수하며 웃는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는 상견례가 뜻밖에 심각한 단독회담으로 바뀐 까닭은 정신이 버쩍 드는 매우 심각한 국가안보현안이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우드워드는 자신의 책 ‘두려움’에서 트럼프와 오바마가 심중하게 논의한 국가안보현안이 무엇이었는지를 오바마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서술해놓았다.
“조선은 당신이 직면할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될 것이다. 오바마는 대통령당선인에게 말했다. 그 문제는 내게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후일 트럼프는 오바마가 자신에게 조선이 가장 큰 악몽으로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백악관 참모들에게 말했다.”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 날 트럼프와 오바마가 단독회담에서 심중하게 논의한 것은 조미핵대결 심층정보와 대처문제였다. 하지만 그 심층정보와 대처문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우드워드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드워드는 자기 책에 위와 같이 간략한 서술만 남긴 것이다. <사진 2>
|
백악관에서 트럼프-오바마 단독회담이 진행된 날로부터 12일이 지난 2016년 11월 22일 퇴임을 앞둔 국가정보실장 클래퍼는 대통령당선인 트럼프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정보를 해설했다. 그 자리에서 트럼프는 12일 전 오바마와 만난 단독회담에서 자기의 정신을 버쩍 들게 하였던 조미핵대결 심층정보를 클래퍼의 자세한 해설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조미핵대결 심층정보를 심중히 듣고 난 트럼프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클래퍼에게 조언을 구했다. 클래퍼는 이전에 오바마에게 제기하였으나 외면당했던 새로운 대안을 트럼프에게 조언했다.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클래퍼의 새로운 대안은 조선의 핵동결을 추진하고,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를 추진하는 것이다.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는 클래퍼의 조언을 귀담아들었지만, 2017년 1월 20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11월 29일까지 11개월 동안 클래퍼에게서 들었던 새로운 대안을 자기 정책에 반영하지 않았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에 따르면, 2017년 11개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무대 위에서는 조선에게 적대발언을 늘어놓으면서, 무대 뒤에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각료들에게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철군을 반대하는 그들과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2017년 11월 29일 조선이 미국 본토 전역을 핵타격사정권으로 끌어들인 화성-15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서 성공하여 국가핵무력을 완성하던 날, 트럼프 대통령은 1년 전에 들었던 오바마의 경고와 클래퍼의 조언을 상기하였다.
트럼프가 대통령당선인 신분으로 클래퍼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들었던 새로운 대안, 트럼프가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에서 충격을 받고 상기하였던 새로운 대안은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였다. 오바마의 경고와 클래퍼의 조언을 상기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월 초부터 조선에 대한 자기의 태도를 어떻게 급변시키기 시작했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드워드의 책 ‘두려움’이 포괄하는 서술범위는 2017년 12월에 끝나기 때문에, 아쉽게도 그 책은 2018년 1월부터 조선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어떻게 급변하였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우드워드가 2018년 1월 이후 조선을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들을 새로운 책으로 엮어낸다면,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장면들이 수록될 것이다.
제1장면 - 2018년 1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듣고 충격을 받는 장면.
제2장면 - 2018년 1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이 팜페오-서훈-김영철 연락선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조미정상회담을 제의하는 장면.
제3장면 - 2018년 1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새해에 처음 소집된 국가안보회의 각료회의에서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거론하는 장면.
제4장면 - 2018년 1월 하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방장관에게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하달하려고 하였으나, 존 켈리(John F. Kelly) 백악관 비서실장이 강하게 만류하는 바람에 명령하달을 보류하는 장면.
제5장면 - 2018년 4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培晋三) 일본 총리와 진행한 미일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사람들은 6.25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었던 남측과 북측을 뜻함-옮긴이)은 종전문제를 논의하고 있는데, 나는 이 논의를 축복한다. 이 논의를 정말로 축복한다”고 말하고, 미일정상회담 중에 아베 총리에게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거론하는 장면.
제6장면 - 2018년 5월초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국군 철수문제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미국 국방부에 내리는 장면.
제7장면 - 2018년 6월 12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중에 진행된 38분 간의 단독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중대현안들을 논의하는 장면.
위에 열거한, 트럼프 대통령의 극적인 행동변화를 보여주는 일곱 장면들은 마음속으로 그려본 상상장면들이 아니라, 미국 언론매체들에 보도된 사실장면들이다. 그런 사실장면들을 살펴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당선인 시절에 클래퍼에게서 들었던 조언을 1년 뒤에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클래퍼가 조언했던 평화협정 체결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구상에 주한미국군 철수로 반영되었고, 클래퍼가 조언했던 이익대표부 설치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구상에 조미관계정상화로 반영되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평화협정 체결은 주한미국군 철수 이외에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지금은 백악관 각료들의 반대를 물리칠 만한 정세가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 철군결정을 보류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철군의지는 변함없이 확고하다. 예컨대, 그는 자신의 철군의지를 싱가폴 조미정상회담 직후 현장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표명하였는데, 취재기자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약속한 안전담보에 주한미국군 감축도 포함되느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변하였다.
“아니다. 감축이 아니다. 어떤 점에서 나는 솔직해야 하는데, 나는 대선기간 중에 감축 이상의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나는 우리 군대가 철수되기 바란다. 나는 우리 군대를 철수하고 싶다. 지금 32,000명 병사들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데, 나는 그들을 철수하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당면문제가 아니다. 어느 시점에 가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때가 아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조미관계정상화는 이익대표부를 설치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Axios)> 2018년 6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조선의 공식관계를 고려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평양에 미국 대사관을 개설하는 문제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그의 철군의지와 관계개선의지를 확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미정상회담 직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주한미국군 철거문제를 협의하였다. 일본 <아사히신붕> 2018년 7월 5일 보도에 따르면, 2018년 6월 19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제3차 조중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주한미국군 철거를 위해 전략적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하였다고 한다.
3. ‘고차방정식’ 푸는 해법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주한미국군을 철거하고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전략적 목표를 추진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국군 철수와 조미국교수립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구상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그 공감대 위에서 상호신뢰를 유지하면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백악관, 연방의회, 언론계에 우글거리는 잡다한 극우인사들이 공감대→상호신뢰→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진전과정을 일시적으로 지체시킬 수는 있어도 중단시킬 수는 없다. 제2차 조미정상회담이 일정에 오른 것은 그런 사실을 입증해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략구상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구상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두 개의 외피개념 속에 담겨졌다. 그 외피개념을 문서화한 것이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조미공동성명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외피개념을 열어보면, 그 속에 들어있는 두 개의 내실개념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곧 주한미국군 철수와 조미관계정상화다. 이 내실개념을 이해하면, 주한미국군이 철수하고 조선과 미국이 국교를 수립하는 ‘고차방정식’, 다시 말해서 한반도에서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되고,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고차방정식’을 풀 수 있다. ‘고차방정식’을 푸는 해법은 다음과 같다. <사진 3>
|
주한미국군 철수와 조미국교수립은 10년 뒤에 이루어질 전망목표가 아니라, 2~3년 안에 이루어질 중대하고 시급한 당면과업이다. 그 당면과업이 수행되는 2~3년 안에 8천만 겨레의 운명과 동아시아 정세에서 격동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몇 주 뒤에 열릴 제2차 조미정상회담을 중시해야 하는 까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국군을 철수하고 조미국교를 수립하는 ‘고차방정식’을 푸는 해법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차방정식’을 푸는 해법은 두말할 나위 없이 평화협정 체결이다. 종전선언 발표가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종전선언을 발표한 뒤에도 주한미국군을 철수하지 않을 수 있고, 조미관계정상화를 뒤로 미룰 수 있지만,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주한미국군을 이른 시일 안에 반드시 철수해야 하고 조선과 국교를 수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고차방정식’을 모르는 한국 언론매체들은 요즈음 종전선언을 집중적으로 거론하지만, 사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몇몇 선행조치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더욱이 종전선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자발적으로 약속한 것이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박스(Vox)> 2018년 8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명을 받고 2018년 6월 1일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종전선언을 약속하였고, 그로부터 11일이 지난 뒤에 열린 조미정상회담 단독회담 중에 회담을 마친 뒤에 곧바로 종전선언문에 서명하겠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약속하였는데, 존 볼턴(John R. Bolton)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국방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문에 서명하려는 것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선언 서명을 보류해놓았으므로, 제2차 조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발표문제를 합의하고 말고 할 것도 없고,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보류를 중지하고 서명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종전선언과 달리, 평화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수십 년 동안 조선은 미국에게 평화협정 체결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예컨대, 조선외무성은 2015년 10월 17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미국이 먼저 용단을 내려야 할 문제이며, 조미 사이에 우선 원칙적 합의를 보아야 할 문제”라고 밝혔고, <조선중앙통신사>는 2015년 11월 11일에 발표한 ‘조속히 평화협정체결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조선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것은 현 시기 모든 문제해결의 관건이며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단언하였다.
남북미 3자가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남과 북이 군사대결을 중지하는 일련의 선행조치들을 취하면, 평화협정이 체결될 충분조건이 성숙되는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국군이 철수되어야 하므로,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매우 꺼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화협정 체결문제를 언제까지나 묻어둘 수는 없다. 싱가폴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직전 일각에서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거론되었다. 일본 <교도통신> 2018년 4월 1일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8년 3월 9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남북미중 4자가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의하였다고 한다. 조선을 모독하는 도발망언으로 악명 높은 미국 연방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Lindsey O. Graham)도 2018년 4월 1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와 진행한 대담에서 남북미중 4자 평화협정 체결이 조미정상회담의 목표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선례를 보면, 제2차 조미정상회담 이후 평화협정 체결문제가 공론화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4. 평화협정과 철군, 핵동결과 이익대표부
2018년 5월 2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주한미국군은 한미동맹의 문제이므로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평화협정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말이다. 평화협정은 평화라는 두 글자를 써넣은 종잇장이 아니다. 2018년 4월 12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출석한 마익 팜페오(Michael R. Pompeo) 당시 국무장관 지명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종잇장 같은 약속만으로는 안 되고,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는데, 팜페오 국무장관이 말한 종잇장은 평화협정문을 뜻하고, 그가 말한 종잇장 이상의 것은 주한미국군 철수를 뜻한다.
평화협정 체결은 평화를 실현하는 정책변화를 동반하며, 국제법적 구속력에 따른 규범적 행동을 요구한다. 그런 정책변화와 규범적 행동이 수렴되는 총결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이 내려지는 것이다. 조선은 주한미국군을 철거시키기 위해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이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반드시, 전면적으로 철수해야 한다.
베트남전쟁이 종식된 경험을 보면, 평화협정이 체결되기도 전에 미국군이 먼저 자발적으로 철수했음을 알 수 있다. 1973년 1월 17일 프랑스 빠리에서 체결된 ‘베트남에서의 전쟁종식과 평화회복에 관한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그 협정을 체결한 날로부터 60일 안에 남베트남에 주둔하는 모든 미국군과 군사장비를 전면 철수하고 남베트남에 설치한 모든 군사기지들을 해체하도록 규정되었다. 베트남 평화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1973년 3월 20일까지 철군을 완료하여야 하였는데, 미국은 1969년 7월 8일부터 15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972년 11월 30일에 철군을 완료하였다. 미국은 철군을 완료한 뒤에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정전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던 베트남의 경우와 달리 한반도에서는 정전협정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해야 주한미국군을 철수할 수 있다. 정전협정에 철군문제가 명기되었으므로, 정전협정을 교체하는 평화협정에 철군문제가 명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정전협정은 제60항에서 철군문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사령관은 쌍방의 관계 각국 정부에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생한 후 3개월 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조선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및 조선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이에 건의한다.” 이 조항에 따르면, 1953년 10월 이전에 조선과 미국이 정치회의를 소집하여 철군문제를 해결해야 하였지만, 미국은 정전협정이 규정한 철군문제를 외면하는 뻔뻔스러운 작태를 지난 65년 동안 버리지 못했다. <사진 4>
|
미국은 철군문제를 외면해왔지만, 조선은 철군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2018년 4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언론사 사장들과 오찬간담회를 하면서 “북한은 주한미군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오로지 적대정책의 종식, 안전보장을 말할 뿐”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조선에게 철군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는 말이다.
지난 날 조선은 철군문제를 외면해온 미국을 철군협상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적도 있었다. 1998년 10월 21일부터 24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제3차 4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각각 논의하는 두 개의 분과위원회를 구성하는 문제가 합의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분과위원회에서 철군문제를 논의할 수는 있지만, 협상할 수는 없다고 미리 금지선을 그었다. 조선측과 미국측은 제3차 4자회담 기간 중 네 차례에 걸쳐 별도로 양자회담을 진행하면서 철군문제를 협상하였다. 제3차 4자회담이 끝난 뒤, 김계관 조선측 수석대표는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질문 - 의제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기존 방침을 북측이 양보했는데...
답변 - 의제를 먼저 정해야 한다는 우리의 기본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조미평화협정과 주한미군철수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근본문제다. 우리는 이러한 자세로 앞으로의 협상에서 이를 반영시켜 나갈 것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4자회담에서 제기하겠다.
질문 - 주한미군문제는 어느 분과위원회에서 논의되는가?
답변 - 앞으로 계속 논의돼야 할 문제다. 분과위의 성격을 보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곁에 있었던 리근 조선측 차석대표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논의하는 분과위원회에서 철군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보류해둔 주한미국군 철수명령을 미국 국방장관에게 하달할 것이고, 조선과 미국은 국교수립문제를 논의할 것이다. 일본 <아사히신붕> 2018년 10월 7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보도 당일 네 번째로 평양을 방문한 팜페오 국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것에 맞춰 미국의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시설을 평양에 설치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고 한다.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라고 명시하지 않고,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는 시설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 시설이 이익대표부(interest section)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폐기하는 핵동결을 실행하면, 조선과 미국은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이익대표부를 설치한다는 말이다. <사진 5>
|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2016년 11월 22일 클래퍼 국가정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당선인에게 국가정보를 해설하는 기회에 조선의 핵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를 조언한 바 있었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평화협정 체결과 이익대표부 설치가 제2차 조미정상회담 의제로 된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트럼프는 클래퍼의 조언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익대표부 설치는 국교수립 직전 단계의 조치다. 1973년 5월 연락사무소를 워싱턴과 베이징에 각각 설치한 미국과 중국은 연락사무소를 이익대표부로 격상시키지 않고 곧바로 1979년 1월 1일 국교를 수립하였다. 미국과 이익대표부 수준의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이란이슬람공화국이다.
5. 가슴 벅찬 전환시대의 흐름 속에서
제2차 조미정상회담 이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평양과 워싱턴에 이익대표부가 각각 설치되면, 주한미국군 철수가 일정에 오르게 될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철수되지 않은 평화협정은 있을 수 없고, 조미국교수립을 촉진시키지 않는 평화협정도 있을 수 없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국군이 철수하고, 남북군비감축이 시작되고, 이익대표부가 설치되면, 적대관계가 불가역적으로 해소되고, 최종적이고 완전한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 그런 상태를 한반도 평화체제라 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국군은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반환하고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한다. 지난 시기 조선은 미국에게 3단계 철군을 요구하였다.
평화협정 체결은 주한미국군을 철거시킬 뿐 아니라, 남북군사대결도 중지시킬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철수하면, 남북군사대결이 격화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남북군사대결이 중지된다. 그렇게 예견하는 근거는,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부터 남북군사대결을 중지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들이 이미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6>
|
2018년 9월 19일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직후, 그 자리에서 두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남측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측 인민무력상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하였다. 이 군사분야합의서에는 남북군사대결을 중지하는 조치들이 담겼고, 합의사항들을 이행하고 점검하고 평가하는 상설군사기구인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설치하는 획기적인 조치도 담겼다. 군사분야합의서에 담긴 조치들은 조선이 1990년 5월 31일에 발표한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에 이미 명기된 조치들인데, 조선은 남북군사대결을 중지하는 과업을 무려 28년 만에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남북군사대결이 중지되고 신뢰관계가 조성되는 가운데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군사대결을 완전히 중지하는 최종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인데, 그것이 바로 남북군비감축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더불어 남북군축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국군은 주한미국군으로부터 작전통제권을 반환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주한미국군사령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남북군축을 추진할 수 있다.
2018년 10월 현재 종전선언 발표는 이미 예정되었고, 남과 북은 군사대결을 중지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이행하기 시작하였으니, 평화협정이 체결될 날도 멀지 않았다. 8천만 겨레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역사적 전환을 2019년에 맞을 것이다. 조미관계는 평화공존으로, 남북관계는 통일실현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전환이 다가오고 있다. 가슴 벅찬 전환시대의 흐름 속에 우리가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