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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산(雲住山)은 태백산맥(낙동정맥)에 있는 산으로, 팔공산(八公山)·보현산(普賢山)과 함께 영천의 삼산(三山)으로 불리고 있다.
운주산이란 이름은 구름이 산기슭을 항상 감싸고 있다고 하여 ‘구름이 머물러 사는 산’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지형도에는 운주산(雲住山)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정상부의 안내 간판에는 운주산(雲柱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산이 구름을 받치고 있는 기둥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낙동정맥(洛東正脈)은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九峰山)에서 부산 다대포 몰운대(沒雲臺)까지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산줄기로 그 길이가 1,000리에 이른다.
산행의 원점회귀를 이루는 수성리(守城里)는 임진왜란 때에 김백암(金柏岩) 장군이 이곳에 성을 쌓고 진터를 설치해 생긴 이름이고,
구한말에는 의병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이곳을 근거지로 일제에 저항했다고 한다.
운주산 중턱에 있는 박쥐굴은 전란 때 주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해발 약 200m 기점에서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600여m를 오롯이 올라야하지만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육산의 산세는 마치 동네 뒷산을 오르듯 가볍다.
잡목과 참나무로 겨울 운주산은 황량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푸른 기상의 소나무 세 그루가 꿋꿋이 지키고 있는 정상부의 위용은 그저 혀를 내두를 만하였다.
한눈에 氣가 넘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필시 예전부터 무슨 시설이 있음직하였는데 오호라, 정수리에 천제단(天祭壇)이 설치돼 있었고, 사통팔달 뚫린 푸른 하늘에
첩첩의 산들이 포개져 있었다.
북쪽으로 하얀 시설물을 이고 있는 높은 산은 바로 보현산(1,124m)과 면봉산, 그 앞에 침곡산과 낙동정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론 팔공산의 암괴와, 남쪽 멀리 스카이라인을 그리는 영남알프스의 위용도 감지되고, 남쪽 가까이론 천장산과 그 뒤로 '자도봉어'의 모습도 드러난다.
귀가시에는 경상북도 시도기념물 제62호인 '임고서원(臨皐書院)'을 답사하였다.
임고서원은 1553년(명종 8) 정몽주(鄭夢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임고면 고천동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 1603년(선조 36)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필자는 용인시에 있는 정몽주의 무덤과 '포은 신도비', 그리고 정몽주의 또다른 서원인 '충렬서원(忠烈書院)'을 불곡산 산행 후 답사한 바가 있다.
◇ 답사기 ☞ http://blog.daum.net/bok-hyun/664
코스: 영전마을(운암사)입구-운암사-미루나무갤러리-낙동정맥-낙동정맥 갈림길-운주산-임도-경주최씨묘-임도-구만소류지-구만마을회관-영전마을 입구
클릭하면 원본크기.
약 10km를 3시간 40분이 걸렸다.
고도표
<산&산> 개념도
<임고서원 원점회귀>. 클릭하면 큰 지도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924-2를 입력하여...
영전마을 입구에 차를 댄다.
300m 거리에 운암사가 있지만 조그만 사찰이라 입력이 되지 않는다.
도로명 주소는 '운주산길'. 진행방향으로 잘록한 산등성이가 우리가 올라설 곳이다.
하늘금을 이루는 능선이 낙동정맥이고, 좌측 운주산 방향으로 고도가 높아진다.
좌측에 보이는 작은 사찰은...
운주산 운암사.
우측에 '갤러리 미루나무'가 보인다. 미루나무 방향 골목으로 들어가 424.9m봉과 585.3m봉을 경유 낙동정맥에 합류할 수도 있을 것.
바위가 있는 삼거리에서 포장도로를 이탈하여 좌측 돌길을 들어가며...
바위에 새겨진 '등산로 ←' 안내판을 확인한다.
산길은 임도길 수준으로...
중간에 'Y'로 갈림길...
'다-01' 말뚝이 소방안내판이 있지만 좌측길을 외면하고...
계곡을 건넌다. 여름 하산길에선 홀랑 벗고 씻기에 딱 맞을 것.
계곡을 건너자 '다-02' 소방안내판.
이후 등로는 너덜지대도 아닌 것이 너덜로 변해있어...
상그럽기 그지없다.
무슨 산사태지역도 아닌 것이,
계곡이나 개울도 아닌 것이...
이토록 상채기가 나있는 건 등산로를 고속도로 수준으로 만들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넘의 잉여예산이 문제일 것.
'다-10' 지점의 낙동정맥에 올라서서...
'가-18' 월성 최씨묘 앞에서 앞서가던 일행들과 합류를 한다.
'가-14' 지점의 고인돌을 닮은 비행접시 바위를 지나고...
포항시 산악구조대의 시 경계 안내판. 이 지점의 정맥길은 영천시와 포항시의 경계.
낙동정맥을 좌측으로 벗어나며 '가-12' 지점에서 석물이 여럿 세워진 커다란 봉분의 무덤을 만난다.
문/무인석이 배알하고 있는 무덤의 비석엔...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이라 적혀있다. <눕힌 사진>
절충장군은 조선시대 정3품 당상관의 서반에게 주던 벼슬 칭호로서 무신계에서 가장 높은 벼슬로, 절충장군이 용양위부호군(종4품)이란 직책을 맡았다는 말.
숙부인(淑夫人)은 조선시대 외명부의 하나로 정3품 당상관인 문무관의 처(妻)에게 주는 작위다.
열혈 산꾼들은 이 길로 오지 않고 부산일보 가이드에 적시한 돌탑삼거리를 올라서...
이정표가 있는 이곳으로 붙는다.
겨울 억새가 바람에 서걱거리는 정상 직전의 헬기장에는...
풀숲에 팽개쳐진 돌비가 숨어있다..
이 돌비는 산이름 밑에 산악회 사람들의 이름을 더 빽빽히 적으며 품위있게 호(號)도 앞세웠지만, 이는 그들만의 파티일 뿐.
억새숲 헬기장 건너 범상치 않은 봉우리가 운주산 정상. 구름이 머무는 건 당근이고, 구름기둥을 받치고 선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겠다.
오래전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온 듯 제천단(祭天壇)이 설치되어 있고...
참나무와 잡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육산에서 소나무 세 그루가 품위있게 산정을 지키고 섰다.
클릭~ <파노라마>
지형지물이 선명한 보현산과 면봉산, 그리고 좌측 가까이에 기룡산이 솟아 있고, 조금 우측으로 수석봉과 낙동정맥이 달린다.
면봉산을 당겨보니 마치 골프공을 올려놓은 듯하고...
카메라를 좌측으로 조금 돌려 서쪽으로 갖다대니 예사롭지 않은 산세가 잡힌다.
당겨 보았더니 팔공산인 듯.
기념사진을 찍은 뒤 정상주를 곁들인 퓨전 햄버그로 점심을 때웠다.
그런 뒤에 다시 기룡산과 보현산, 그리고 면봉산을 왼쪽부터 차례대로 담고...
당겨도 보았다.
남쪽 잡목사이로 솟은 봉우리는 봉좌산인가? 그 옆의 밋밋한 봉우리는 천장산인가?
그 뒤로 멀린 영남알프스인 듯.
주위 봉우리들을...
긴가민가 짚어보며 산정희열을 누리다가...
하산을 서두른다.
두루뭉실한 육산에 모처럼 만난 고인돌 닮은 바위.
제법 가파른 내리막에는 안전밧줄이 쳐져있고...
금세 임도수준의 길에 내려선다. 차도 올라올 수 없는 이곳에 산을 깎아가며 이렇듯 용도불명의 널따란 길을 내어야만 했을까?
'가-06' 지점의 묵묘는 너른 임도급 산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
임도급 수준의 너른길을 버리고 능선을 고수...
김해 김씨 묘를 지나고...
다시 임도급 길과 만난다. <내려서서 돌아본 사진>
이 지점의 말뚝이 소방 안내판은 '나-03'
잘 단장된 '경주 최씨'묘가 있는 지점이다.
다시 능선을 타고 무덤을 지나 반듯한 도로에 내려서니...
'나-01' 지점.
돌아본 모습과...
진행방향은 도로를 따르는 것.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 휘어지는 구절양장((九折羊腸) 도로의...
사각정자와...
구만소류지를 지나니...
전원주택이 있지만 어쩐지 썰렁. 알고보니 빈 집이다.
남향이었지만 겨울바람이 정면으로 불고, 더우기 뒷편에 저수지가 있으니 써억 좋은 풍수는 아닐 것(曰 반풍수).
골목으로 빠져나와...
담벼랑에 붙은 '영천아로니아베리농원' 안내판.
개천을 다리로 건너...
'구만 경로당'을 지나며...
주소를 확인한다. 수성1리의 구만마을인 셈.
감나무 높은 가지에 까치들을 기다리는 까치밥.
원점회귀를 위하여 진행하노라니 정면에 솟은 봉우리는 '자도봉어'의 봉좌산인 듯.
길 옆에 새털보다 가벼운 XXㅇㅇ. 이름을 외웠지만 까먹어 버렸네.
봉좌산을 바라보며 도로를 걷노라니...
우리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게 보인다.
산에서 내려오니 바람은 더 차고 세다. 적당한 뒷풀이 장소가 없어 '임고서원'으로 이동하여 다목적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넓은 주차장에서 내리니 가까이에 숙경문(肅敬門) 편액이 걸린 솟을문이 있어...
담넘어 까치발을 하고 안을 기웃거리다...
계현재(啓賢齋) 편액을 당겨본다. 낙관엔 '유시월상원(乙酉十月上院) 정덕영(鄭德永)'. 현(賢)자의 신하 신(臣)자 옆에 충성 충(忠)자가 흥미롭다.
계현재는 포은 선생의 아버지인 일성부원군 운관(云瓘)과 어머니 변한국부인 영천 이씨의 별묘(別廟)이다.
계현재는 국학(國學) 계성사(啓聖祠)에서 유래한 말이며, 인재를 성현으로 계도하였다는 뜻을 가진 중국 고사의 예(禮)에 따라 훌륭한 부모의 계도가 있었기에
계현재라 하였다.
계현재 편액 안쪽으로 또다른 편액 '일성군재사(日城君齋舍)'가 보인다.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본받아 도나 학문을 닦는다는 사숙문(私淑門). 사숙문은 쪽문으로...
담넘어 고개를 빼고 셔터를 누른 뒤...
높다랗게 전망대 구실을 하고 있는 정자에 오른다.
정자엔 무괴정((無愧亭) 편액이 걸렸으니 곧 '부끄러움이 없는 정자'라는 뜻으로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에서 따왔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럽지 않고, 굽어 보아서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즐거움이라는 말.
무괴정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임고서원.
무괴정에는 여러 시판이 걸려있어 카메라에 담았다.
'억정산기(憶鄭散騎)'는 삼은의 한 사람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의 시다.
- 억정산기/ 정산기(포은) 선생을 생각하며 -
광풍재월정오천 광풍이요 제월이라 정오천은
독구유편속불전 유편을 홀로 연구해 옛 것을 이었네.
증여병구유반수 일찍이 나와 함께 반수에서 놀아
고승교계이다년 교분을 맺어온 지 이미 여러 해.
부주출사동간일 배 띄워 사신 나가 동에서 해를 보고
부궐생환상유천 대궐 갔다 살아옴은 하늘이 위에 있기 때문
긍선자장소탕기 자장의 소탕한 기상 부러워하랴
직장흥상망문선 흥상으로 문선을 바라볼 텐데.
- 알정문충공사(謁鄭文忠公祠)/ 사당을 배알하고 -
백대유풍회새중 백대 유풍이 어둠에 막혀 있을 때
생민무교제애동 백성 가르침 이 없으니 하늘이 동국을 애처롭게 여기었네.
부여만고정영기 만고를 지탱할 정령한 기개요
도주오가례악종 우리 유학 육성하신 예악의 조종이라.
청락잉간류후택 맑은 강에 깊은 흐름 보았거늘
태산나득랄고충 높은 산인들 어찌 고충(孤忠)을 가질수 있으랴.
귀연일묘첨의범 드높은 사당 의범 우러러봄에
과자천추기경공 지나는 자 천추토록 공경심 자아내네.
창석 이준(蒼石 李 埈 1560~1635)
창석은 본관이 흥양(興陽)으로 자는 숙평(叔平)이며, 서애(西厓) 유성용 (柳成龍)의 문인으로 조선중기 상주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다.
- 조옹대(釣翁臺) -
돌올고대백여척 오똑한 조옹대 백여 척이라
전임향리후분려 앞에는 향리요,뒤에는 일성군 묘소있네.
수층기복의투조 두어 층 돌여울 낚시하기 적당하고
일면담청가완어 편편한 못물은 고기 구경할 만하다.
궐노수양지주홀 고사리 켄 수양산 늙으니 그 기개 높고
규명낙수귀요제 규성이 낙수에 비치니 요귀들 사라지네.
고산가처금유재 옛산 아름다운 곳 지금도 그대로인데
첨앙인사각기여 사당을 쳐다보니 공경심 절로 일어나네.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 1685~1757)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도옹(道翁), 호는 매산(梅山)이다.
- 조옹대(釣翁臺) -
병안등림변자명 병든 눈 올라오니 저절로 밝아지고
곧대대상벽사평 외로운 대 주변에는 푸른 모래 평평하다.
천주유색금사불 천 포기 버드나무 금실을 펄럭이고
일대천류소연횡 한 줄기 흐르는 강은 흰 비단을 펼친 듯하네.
숙모고인수조취 일찍 고인의 낚시 취미 사모했더니
수지금일부시정 오늘 와서 시 짓는 마음 누가 능히 아랴.
만풍입가청향습 늦바람 잔에 들어 맑은 향기 스쳐지나
암하잔매송낙영 바위 아래 지는 매화 꽃잎 불어 보내오네.
호수 정세아(湖叟 鄭世雅 1535~1612)
정세아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이다. 1603년 임고서원 중건에 앞장선 영천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 임고서원(臨皐書院) -
포은풍렬진오동 포은의 풍렬(風烈) 우리나라에 떨쳐
작묘거거장학궁 사당도 학궁(學宮)도 우람하고 그윽하네.
기어장수제사자 공부하는 모든 선비들에게 말하노니
연원절의양감종 연원과 절의 둘 다 조종(祖宗)이라네.
퇴계 이황(退溪 李 滉)
포은 선생의 시 호중관어(湖中觀魚)
- 호중관어/ 호수에서 물고기를 보며-
잠재심연혹약여 깊은 못에 잠겨 있되 힘차기도 한 것을
자사하취저우서 자사는 멋 때문에 글에다 썼던가.
단장안공분명견 다만 분명하게 살펴보니
물물진성발발어 모든 것이 팔팔한 고기와 같네.
어응비아아비어 고기 물론 나 아니고 나 또한 고기 아니니
물리참차본부재 물리는 들쭉날쭉 본디 같지 않건만
일권장생호상론 호량의 논의를 쓴 장자의 한 권의 책이
지금천재사인미 이제까지 천년동안 사람을 어지럽히네
답사 허용시간이 빡빡하다. 추운 날씨에 일행들은 차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바빠질 밖에...
선생의 업적을 길이 빛낸다는 뜻의 2층 누각 영광루(永光樓).
영광루 1층의 경앙문(景仰門) 편액. 경앙은 사모하여 우러러보다라는 뜻.
까치발하여 담넘어 카메라만 갖다댄다.
임고(臨皐)는 신라 경덕왕 때 영천군의 이름이며, 1554년 사액된 서원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03년 중창되었다.
사액 현판은 없어지고, 지금의 임고서원 현판은 영천군수를 지낸 윤봉오(尹鳳五)의 글씨.
강당인 흥문당(興文堂)은 학문을 열심히 닦으라는 가르침.
그 옆방인 명성협(明誠夾)은 '중용(中庸)'에서 따온 글.
서재(西齋)인 함육재(涵育齋)는 능력이나 품성따위를 기르고 닦는다는 말.
동재(東齋)인 수성재(修省齋)는 '주역(周易)'의 두렵기에 마음을 가다듬고 반성한다라는 말.
포은 정선생 비석.
우측에 또다른 건축물이 같은 모습으로 있어 그 현판을 당겨 보았더니 임고서원이다.
그렇다면 임고서원 건물이 두개로서 구임고서원과 신임고서원이 있다.
담 옆에 식별이 힘든 희미한 글자의 비석을...
가까이 당겨 놓고 아래의 안내판을 참고삼아 해독을 한다. 증통정대부공조참의최선매기적비'.
최선매는 난리 때 포은의 영정을 기룡산 석굴에 피신시켰다가 난리가 평정되고 서원이 중건되었을 때 다시 영정을 안치한 인물.
안내판.
구임고서원의...
현판을 당겨본다.
1965년 서원을 복원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가 1992년 신서원을 지은 뒤 영정을 이안하고 향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래서 신/구 두 서원이 있게 된 것.
임고서원 안내판.
올려다 보는 조옹대 정자.
살짝 당겨보는 조옹대.
더 당겨보았다.
조옹대(釣翁臺)는 포은이 낚시를 하던 곳을 말하는데,이곳에서 낚아올린 고기가 물고기 아니라 용이었다하여 조룡대(釣龍臺)라 부르기도 하고,
그 연못을 용연(龍淵)이라 불렀다.
용연.
포은유물관으로 바삐 들어간다.
동방이학지조 포은 정몽주의 모습.
두서없이 셔터를 누르기만하고 나중에 P/C앞에서 공부하리라 하였다.
개목사에서 포은 선생이 10년간 수학하였다네. 개목사는 안동 천등산 산행 때 답사한 적이 있는데, 옛모습과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의를 몸소 실천한 포은 선생.
포은 선생의 시 '저성역의 봄비', '술을 마시며', 일본에 가서 지은 시.
동방이학의 뿌리인 조선 성리학은 포은 선생으로부터 피어나고, 뿌리를 내렸다.
퇴계 이황 선생도 포은 선생을 존숭(尊崇)하였다.
임고서원 전적은 보물로 지정되었고,
서원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단다.
주요 유적은 선생의 신도비와 유허비, 그리고 서원을 옮길 때 따라 옮겨온 오래된 은행나무가 서원 앞마당에 있다.
또한 포은 선생이 이방원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선죽교가 서원 앞마당 은행나무 옆에 원형대로 재현되어 있었지만 미처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포은유물관 운영안내<매주 월요일 휴관으로 개관시간은 10:00~17:00>
2분 전.
헐레벌떡 차로 귀환한다.
사정상 끓이지도 못한 생오뎅을 안주삼아 두어 잔 술로 일정을 마감한다.
다음날 출근길 라디오에서 들리는 음악, 봄 여름 가을 겨울의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이다.
♬ 내겐 더 많은 날이 있어 무슨 걱정이 있을까
어제 힘들었던 순간들은 모두 지나간 것일뿐
내겐 더 많은 날이 있어 무슨 걱정이 있을까
하루하루 사는 것은 모두 기쁨일 뿐이야
오늘은 낡은 책상 서랍에서
10년이나 지난 일기를 꺼내어 들었지
왜 그토록 많은 고민의 낱말들이
그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
그 오랜 기록들이 어두운 거밋줄에 쌓여 있는 동안
물론 힘겨운 날들도 많았지만 가끔은 깜짝 놀랄만큼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고 생각을 해봐
그래 지금은 모두 힘겹다고 하겠지
하지만 하지만 다가올 날들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
세상은 그렇게 어두운 것만은 아니잖아
♬- - - - - - -
첫댓글 기해년 새해 잘 감상하고 갑니다~수고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