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 판 3억3000만달러, 모기향 2000만달러, 세탁비누 1㎏ 3000만달러. 아프리카 남부의 내륙국가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의 수퍼 ‘제이스 스파’에 붙어있는 가격표다. 여기서 달러는 미화가 아닌 짐바브웨달러(Z$). 계산대에선 음료수 환타 한 병과 식빵 두 덩어리를 사든 사람이 돈 계산을 위해 20만 Z$ 돈 다발을 비닐 봉지에서 꺼내놓았다. 돈 부피가 물건 부피와 비슷하다. 거리에는 20만 Z$와 5000Z$ 지폐 두 장이 바람에 뒹굴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어갈 생각을 않는다. 돈 가치를 잃은 탓이다.
인구 1500만명인 짐바브웨의 29일 대통령 선거 최대 쟁점은 살인적인 인플레다. 짐바브웨의 인플레율은 평시로는 유례가 없다. 지난 1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0만580%였고, 작년 12월에는 5만6212%였다.
선거는 로버트 무가베(Mugabe·84)대통령과, 노조운동가 출신인 야당 MDC(민주변화운동)후보 모건 창기라이(Tsvangirai), 무소속인 심바 마코니(Makoni) 전 재무장관 간의 3파전이다. 창기라이와 마코니 후보는 무가베의 국정 파탄 심판을 주장하고 있다.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당시 아프리카의 제2의 공업 국가였고, ‘주요 곡창지대’라는 말을 듣던 짐바브웨를, 무가베가 28년 장기 집권한끝에 파멸로 몰아갔다고 한다. 반면 무가베 대통령은 서방국가가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자신을 인권탄압을 이유로 경제 제재하는게 경제난의 이유라며 재신임을 요구하고 있다.
하라레의 전 언론인 음쇼리와(42)씨는 기자와 만나 “모든 사람들이 선거일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흥분하고 있는 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제학자 존 로벗슨(Robertson)전 짐바브웨 대학교수)은 “경제 회복을 위한 최선의 처방은 새로운 정치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짐바브웨 대학교에서 만난 둠보(역사학과 대학원생)씨는 “올드 맨(무가베를 지칭)이 물러나야 한다. 분위기는 압도적으로 창기라이에 가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무가베 정권의 강권 통치를 두려워하며, 공개적인 대통령 비판을 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부정선거가 예상되고 정권 교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짐바브웨의 살인적인 인플레는 최고액권 기록을 매달 경신하고 있다. 작년 연말에는 20만 달러가 최고액권이었으나, 올 1월에는 25만, 75만 달러 지폐가 나왔고, 한달뒤인 2월에는 100만, 500만, 1000만 달러 등 세 종류의 고액권이 새로 나왔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새로운 고액권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무가베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돈을 마구 찍어냈기 때문이다. 교사, 군인, 공무원 월급 1000%를 올리고 신권으로 지불했다. 이로 인해 물가는 계속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가치가 폭락한 최고액권 500만 Z$는 27일 암시장에서 미화로 21센트(1달러=4700만Z$) 밖에 나가지 않는다.
초(超)인플레는 물자난을 가져왔다. 하라레 시내 북쪽 지역의 대형 수퍼 ‘오케이 마켓’은 26일 아예 문을 열지 않았고, 인근 ‘제이스 스파’의 매대는 30~40%가 비어있었다. 주유소에서 돈을 내고 기름을 살 수 없다. 그래서 석유 암 시장 상인들이 판친다. 도심에만 500여명의 암석유상이 있다. 하라레는 나은 편. 서부의 중소도시 ‘빅토리아 폴스’에는 기초 생필품을 볼 수 없었다. 1000배가 넘는 실질환율(1달러=4700Z$)과 공식환율(1달러=3만Z$) 차이는 경제 왜곡을 더욱 심화시킨다. 실업율은 80%라고 얘기된다.
인플레의 이유로는 2000년 실시된 농지개혁 실패가 지적된다. 무가베 정부는 이 나라 농토의 70%이상을 소유하고 있던 소수 백인으로부터 땅을 빼앗아, 흑인에게 분배했다. 하지만 영농기술과 장비를 갖고 있지 않은 흑인 대다수는 농장 경영에 실패, 농업 생산량이 크게 떨어졌다. 아프리카의 곡창지대로 불렸던 이 나라는 현재는 식량 수입국이다. 정부의 반 기업적 정책은 외국인 투자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