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시민사회, 같은 날 다른 방식으로 던진 하나의 메시지
2026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총성은 멈췄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은 지 73년째, 한국과 미국의 시민사회는 이날을 전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같은 메시지를 세상에 던졌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서울 청계광장의 대형 전광판에는 "어디에도 전쟁은 안 된다(No War Everywhere)"는 슬로건 아래 "한국 전쟁을 끝내자", "모든 전쟁을 멈추자", " 전쟁이 아닌 평화에 투자하라" 등의 문구가 내걸렸고, 워싱턴에서는 73개 미국 시민사회단체가 연명한 성명서가 백악관과 의회로 전달됐다.
두 움직임은 서로 독립적으로 진행됐지만, "휴전은 평화가 아니다"라는 하나의 절박한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미주한인평화재단 문유성 대표, 21일 기자회견에서"타임스스퀘어 캠페인은 전쟁이 아닌 대화와 외교, 평화적 해결을 선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정책 입안자들과 세계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 전희경
타임스스퀘어와 청계광장, 처음으로 함께 켜진 평화의 불빛
미주한인평화재단(Korean American Peace Fund, KAPF)과 한반도평화행동(Korea Peace Action, KPA)은 21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제3회 뉴욕 타임스스퀘어 평화 캠페인의 세부 계획을 발표하고, 25일부터 실제 상영에 들어갔다.
올해 캠페인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슬로건의 확장이다. 지난 2년간 한반도 평화와 종전에 초점을 맞췄던 메시지는 올해 "어디에도 전쟁은 안 된다"로 확장되며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이란 등 전 세계 분쟁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메시지가 됐다. 다른 하나는 장소의 확장이다. 이번이 처음으로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서울 청계광장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미주한인평화재단 문유성 대표는 "가자지구, 우크라이나, 이란 등지에서 벌어진 군사 충돌로 50만 명 이상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고, 전쟁 수행에 투입된 군사비가 1조 달러(한화 약 1,500조 원)를 넘어설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이 액수가 전 세계 1억 8천만 명의 기아 아동에게 약 17년간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라며, "이 막대한 희생과 비용은 인류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사용될 수 있었던 소중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청계광장 전광판에는 7월 30일까지 광고가 나온다. 7일간 100회 송출된다. ⓒ 김덕진
한반도평화행동 김덕진 공동집행위원장은 "작년에는 타임스스퀘어 광고 메시지를 한국에서는 온라인으로만 유포했지만, 올해는 서울 시민들이 많이 오가는 청계광장 대형 스크린에도 영상을 게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광고 영상은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총 4,320회(약 18시간), 청계광장에서는 7월 24일부터 30일까지 7일간 총 100회 송출됐다. 김갑송 국장은 지난 1·2회 홍보영상이 40만 명 이상에게 도달했다며, 이번 3차 캠페인에서는 추가로 20만 명 이상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전했다.
캠페인은 광고에 그치지 않았다. 두 단체는 캠페인 영상과 메시지를 미국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 연방 상원의원 100명 전원, 대한민국 국회의원 300명 전원의 사무실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상에 삽입된 QR코드를 통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미국 하원에 계류 중인 한반도평화법안(H.R.1841) 지지 서한을 상·하원 의원과 대통령에게 보낼 수 있도록 해, 시민 참여형 입법 운동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됐다.
기자회견 질의응답에서는 캠페인의 성과와 함께 냉정한 현실도 함께 드러났다. 문유성 대표는 이 캠페인이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시민 대중 교육 및 홍보에 중점을 둔 그래스루트 활동"이라고 규정하며, "미국 시민들 중에는 여전히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법안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김갑송 국장은 "현재 하원에는 51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하고 있으나, 하원 외교위원장이 표결에 부치지 않아 진척이 막혀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밝히면서도 정작 이 법안에는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는 점, 그리고 미 국무부가 최근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1년 연장한 점을 모순으로 짚었다.
한국 상황에 대해 김덕진 위원장은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단절돼 대중의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운영 구조상 결의안 상정 자체가 쉽지 않은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다만 지난해 69명의 의원이 결의안에 서명하는 등 꾸준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시민사회 73개 단체, 워싱턴에 별도의 목소리
7월 26일 워싱턴 디씨 링컨 메모리얼에서 있었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집회 ⓒ 크리스 기
같은 정전 73주년을 전후해, 태평양 건너 워싱턴에서도 별도의 움직임이 있었다. 종교계, 한국계 미국인 단체, 참전용사 단체, 학계, 시민사회 활동가로 구성된 '코리아 평화 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는 73개 단체의 서명을 모아 미 행정부와 의회에 한국전쟁 공식 종식과 북한과의 성실한 대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전달했다.
성명서는 정전협정이 본래 일시적 조치였으며, 정전 직후 평화협정이 체결될 예정이었으나 70년 넘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미국친우봉사회 (AFSC, 퀘이커단체) 오스틴 헤드릭 아시아 지역 옹호활동 코디네이터는 "미국은 70년 넘게 북한과 전쟁 상태를 지속해 왔다"며 "여론은 미국 국민이 전쟁의 지속을 원하지 않으며 평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이자 이산가족의 일원인 '위민 크로스 DMZ' 캐시 최 사무총장은 "7월 27일은 휴전이 곧 평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며, 전투 재개의 상시적 위협과 사회경제적 불안정 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지적했다. 연합감리교회 콜린 무어 국장도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위험하고 지속 불가능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그 접근 방식을 바꿀 것을 촉구한다"며 힘을 보탰다.
이 성명서는 미 행정부에 ▲최고위급 직접 외교 재개 ▲긴장 완화를 위한 상호적 조치 ▲전쟁의 공식적 종식 ▲민간 교류 회복 등 네 가지 구체적 권고를 제시했다.
숫자로 확인된 여론, 조금씩 움직이는 미국인들의 마음
두 움직임 모두 근거로 삼은 것은 미국친우봉사회(AFSC)가 해리스폴(Harris Poll)에 의뢰해 매년 실시하는 여론조사였다. 2025년 조사에서 미국인 70%가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와 만나야 한다"고 답해 북미정상회담에 찬성했으며, 이 비율은 2023년 68%, 2024년 69%로 꾸준히 상승했다. "한국전쟁을 공식 종료해야 한다"는 응답 역시 2021년 41%에서 2024년 48%, 2026년 55%로 해마다 높아졌다. 이밖에 미군 유해 송환 협력에 75%, 북미 연락사무소 등 외교 거점 설치에 63%, 대북 제재 완화에 61%가 찬성 입장을 보였다.
정전 73주년, 뉴욕-서울 동시 평화 전광판 캠페인, 뉴욕 타임스스퀘어광장(7/25~7/27)서울 청계광장 청계한국빌딩(7/24~7/30),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전광판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려주세요. 한반도 평화와 한국전쟁의 종식, 그리고 전 세계 평화를 위한 마음을 공유해주세요! ⓒ 한반도평화행동
"평화는 시민의 힘으로"…같은 목표를 향한 두 갈래 길
방식은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다. 타임스스퀘어와 청계광장의 전광판이 대중을 향한 인식 확산과 정책 결정권자에 대한 직접 압박을 병행하는 '풀뿌리 캠페인'이었다면, 코리아 평화 네트워크의 성명은 종교계와 시민사회의 조직적 연대를 통해 행정부에 구체적 정책 권고를 제시하는 '정책 촉구'의 성격이 강했다.
미주한인평화재단과 한반도평화행동은 "남북 간 소통이 완전히 단절된 지금은 작은 오해와 오판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시기"라며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전쟁의 종식을 위해 앞으로도 시민들과 함께 행동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갑송 KAPF 국장은 광고 후원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미주한인평화재단
코리아 평화 네트워크 역시 "진정하고 지속 가능한 안보는 상호 파괴의 위협 위에 세워질 수 없다"며 "이 전쟁을 끝낼 힘은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그 힘을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고 성명서를 마무리했다.
7월 26일 워싱턴 디시,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집회에서, 조현숙 위민크로스디엠지 코디네이터는 미국 시민의 입장에서 "우리 정부인 미국이 미정부가 가장 오래 지속하고 있는 전쟁인 코리아 전쟁을 종식하라"고 말했다. 이 집회는 종교계, 한국계 미국인 단체, 참전용사 단체, 학계 및 시민사회 활동가가 참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