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깨웠노라(찬송134)
아가 8장
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아가 2장
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창세기 28장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아가 8장
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시편 45편
11.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 주님! 우리들의 자만과 나태함과 게으름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 부지런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도하고 충성할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만이 평안을 누리게 하시는 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복음성가1673,찬송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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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전자승(母傳子承)
훌륭한 아버지 밑에는 훌륭한 자식이 나오는 '부전자전(父傳子傳)'이 있듯이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온다는 뜻의
'모전자승(母傳子承)' 이 있다.
오늘은 우리가 금전 거래시 사용하는 화폐에 모자(母子)의 사진이 들어 있는데 한 분은 오 천원 권 지폐에 율곡 이이 선생의 사진이요, 한 분은 오 만원 권의 사임당 신씨(이름은 仁善) 으로 율곡 이이 선생의 어머니 신사임당이시다.
두 분이 얼마나 훌륭 했으면 한 집에서 한 국가의 국민이 거래의 최고의 수단인 화폐에 등재가 되었을까 ?
그래서 두 분의 시 가운데 먼저 사임당의 시를 올려 봅니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한양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 보니 북평은 아득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산 첩첩 내 고향 천 리 건마는 자나, 깨나 꿈 속에서도 돌아 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히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 톱에 헤어 젔다 모이고, 고깃 배 들 바다 길을 동, 서로 오가네
언제나 고향 땅에 다시 돌아가 색동 옷 입고 앉아 바느질 할꼬."
이 시는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가 북평(오죽헌) 친정에서 용인 이씨(친 모)를 모시고 자식 오 남매를 키우며 살다 시집인 파주 율곡리 사시는 시 어머니 홍씨 부인이 노쇄하여 가정 살림을 할 수 없자 시가로 가면서 대관령 고개에서 오죽헌 을 바라보며 친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읊은 시이다.
'사임당' 이라는 호칭은 고대 중국의 주문왕(周文王)의 어머니 태임 부인에서 따온 이름이라 하네요.
어느 가을 날 사임당이 자녀들을 데리고 화석정(율곡 선생의 5 대 조부 이지돈이 지은 임진강 가에 있는 정자)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니 울긋 불긋한 낙엽이 바람에 딩굴고 사임당이 언덕 넘어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주변을 둘러 보던 아들인 율곡이 시흥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가 시 한 수 읊어도 되겠습니까 ?"
"그래 누구의 시가 떠올랐느냐 ?"
"제가 제 머리 속에서 지은 시입니다."
그 말을 듣고 율곡의 누나와 형들이 놀라서 5 동생인 율곡을 돌아다 보았고, 어머니 사임당께서 말했습니다.
"어디, 우리 현룡(율곡의 아명ㅡ용꿈인 태몽서 따옴)의 시 한 수를 들어 보자" 하여서 율곡이 읊은 시입니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어 나그네의 가슴에 물결이이네
멀리 하늘과 강이 맞닿아 푸르르고, 찬 바람 속 단풍은 어이 이리 붉을꼬
산은 둥근 달을 토해 내는데 가을은 먼데서 부는 바람 머금었구나
변방의 기러기 떼는 어딜 가는지 울음 소리 방울 방울 구름에 잠기네."
'화석정' 은 훗날 관료로서 율곡이 임금에게 10 만 양병설을 주장하고 왜적이 침략 할 것을 예상하여 극히 건의했으나 신하들이 극구 반대하여 관철되지 않았다.
그러나 혜안을 가진 율곡은 틈만 나면 오대 조부가 지은 화석정에다 기름 통을 가지고 올라와 기름 칠을 했다.
율곡 선생은 그 후 사망하고 후일 임진년에 왜란이 일어나 불과 몇 일 만에 한양까지 쳐들어 오니 선조 임금은 북쪽으로 몽진을 한다.
선조와 함께 한 대신들이 임진강을 건너려다 때 마침 비는 오고, 어둠이 드리워 강을 건널 수가 없었는데 할 수 없이 화석정을 불 태워 그 불 빛으로 강을 무사히 건넜다고 한다.
이처럼 예지의 혜안을 기를 수 있었음은 어린 시절 부터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어머니의 가정 교육에 철저한 어머니 상으론 서예의 대가인 한석봉의 어머니와 구 한말의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박 마리아가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오늘 날은 이런 가정 교육이 없어져 사회가 범죄의 소굴로 변하고, 인간의 기본인 보금 자리 가정 마져 파탄 나는 서글프고, 안타까운 세상을 어찌 원망하리오(펌).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