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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한전재직 시 두 차례 북한 방문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번은 선박으로 함경남도 신포시로 입북하여 건설 중인 KEDO 경수로 현장을 보고 함흥과 평양을 거쳐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그 때는 북한과의 관계가 좋아 에너지협력에 대한 여러 가지 제안들이 오가던 시절이었고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알아 볼 좋은 기회였다. 첫째, 우리 정부가 2백만kW의 전력을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전혀 대응이 없어 그들의 속셈이 궁금했다. 둘째는 경수로 2기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인데, 최대부하가 4백만kW도 안된다고 알려진 북한계통에 단위용량 백만kW의 핵발전소를 투입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3십만kW 이하의 중유나 가스발전소를 여러 대 짓는 것이 건설공기도 짧고, 부하추종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할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 신포 건설현장에서 쓰려고 가져갔던 프린터와 팩스가 전기품질 때문에 타버려서 오래된 왕십리내연발전기를 이설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 북한의 공급설비도 궁금했다. 현장 근처 식당의 220V 전압이 보통 190V이하, 60헤르츠 주파수도 50이하로 계측될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신포현장을 본 뒤 70여km 떨어진 함흥으로 이동하는데 자동차로 3시간 넘게 걸렸다. 길 옆에 빈약한 배전선로가 보였는데, 전주는 산의 나무를 베어 껍질만 벗겨놓아 꾸불꾸불 했고 핀 애자가 전주에 붙어 있지 않고 전선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산을 넘어 들판에 나가니 멀찌감치 220kV 송전선로가 보인다. 평범한 2회선 철탑인데, 가공지선 2조 중 하나는 끊어져 둥그렇게 말아서 묶어놓았고 기초 위의 앵커가 아연도금이 벗겨져 벌겋게 녹이 슬어 있었다. 동행하는 안내원에게 평양에서 함흥까지 기차로 얼마나 걸리느냐 했더니 12시간 내지 20시간 정도란다. 북한 철도는 모두 전기로 가는데, 전기가 있으면 가고 없으면 서있으니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기는 정밀한 기계를 작동시키는 고급 에너지가 아니다. 석유나 석탄 등 일반연료처럼 쓰이고 있고 전압, 주파수 등의 품질은 논의대상도 되지 않는다. 지금도 상황은 같을 것으로 보여 진다. 함흥에서 먹은 단고기무침의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려항공의 낡은 비행기로 평양으로 가 고려호텔에 묵었다. 간신히 허락을 받아 호텔 옆길로 나가보니 전주는 없고 지중맨홀이 보였다. 설비상태를 볼 수는 없었으나 평양은 특구 였다. 호텔에서 단일 채널인 TV를 볼 수 있었고 낮에도 전등이 켜졌다. 평양냉면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일행을 안내하던 사람에게 맥주한잔 같이하자 했다. 이름은 잊었지만 말을 비교적 자유롭게 하고 전기상식도 있는 걸 보면 전력분야 당 간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농담 삼아 마음에 담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2백만kW 전기를 주겠다는데 같은 민족으로 성의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 핵발전소 보다 중유발전소가 북한에 유리하지 않느냐? 그의 대답을 종합해 보면 간결하다. “일 없음네다”라는 말의 중심은 주체사상이고 대외의존 극소화였다. 2백만kW의 전기를 받아서 공장도 돌리고 잘 쓰다가 상황변화로 남한에서 송전을 중단하면 어찌 할 건가? 중유나 가스발전소를 건설 후 그 비싼 연료를 구하려면 누구한테 구걸해야 하나? 핵발전소는 북한 땅에 남겨지는 자산이 가장 크고 연료비는 가장 저렴한 옵션이다. 품질 나쁜 전기라도 많아야 좋은 것 아닌가? 이리 단순한 답변을 오랫동안 궁금해 했었다. 주체사상 보다 인민을 먹여 살리는 일이 중요치 않느냐 하는 건 우리의 논리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대외원조(ODA)로 일 년에 2조 5천억을 쓰고 있다. 효율적인 원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원조공여국이니까 우리 생각대로 줄 것을 결정한다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뿐이다. 쌀 없어서 밥 굶고 있다니까 그럼 빵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 하는 얘기가 돼서는 안 된다. 그들의 현 상황을 잘 살피고 문화나 생각의 흐름까지도 이해해야 도움을 줄 수 있고 경제개발의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김문덕 前 서부발전 사장